[남인복의 타박타박 지구촌] 현대사 아픔 떨치고 정치·경제 발전 일궈

문화 / UPI뉴스 / 2019-08-10 10: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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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레 산티아고

우리는 일상에 지쳤을 때 여행을 꿈꾸곤 한다. 그냥 떨치고 나서면 다 괜찮아질 것 같아서다. 그러나 세상 일이 마음 먹었다고 다 할 수 있던가.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어 여러 곳을 다녔다. 쉽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여행지에 대한 기억을 펼쳐놓으려 한다. 새삼스런 설렘에 나 자신 다시 길 위로 나설지도 모르겠다.

칠레공화국(the Republic of Chile)은 세계에서 가장 독특하게 생긴 나라라고 할 만하다. 남아메리카 대륙의 맨 서쪽을 길게 차지하고 있는데, 그 길이는 4270km나 된다. 그 대신 서쪽에서 안데스산맥이 있는 동쪽까지 폭은 비교적 좁아 평균 177km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길이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10배 정도, 폭은 서울에서 대전까지 거리인 셈이다. 길게 뻗은 끝의 꼬부라진 곳까지 넣으면 해안선 길이는 무려 6435km나 된다. 


▲ 아르마스 광장. 멀리 대성당이 보인다.


가장 긴 나라답게 지역에 따라 완전히 다른 자연환경이 펼쳐진다. 북부에는 아타카마 사막이 있고, 가운데는 온난한 기후로 사람이 몰려 살며, 남쪽으로는 바람 부는 파타고니아 평원을 거쳐 빙하가 있는 남극까지 이어진다. 또 봉우리는 아르헨티나에 있지만 국경 지대에는 남미 최고봉 아콩카구아(Aconcagua, 6962m)가 자리하고 있다. 


아타카마 사막 오아시스 마을인 산페드로데아타카마에서 만난 20대 후반 여성은 곧 프랑스로 유학을 갈 예정인데, 정작 자기 나라의 남쪽 지역에는 가보지 못했다면서 여행자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대통령 관저 모네다 궁전, 현대사 아픔 지닌 곳 


16세기부터 시작된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거쳐 1810년 독립을 선언하고 1818년 완전한 자치를 얻었다. 1970년 세계 최초로 선거에 의해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를 대통령으로 뽑아 사회주의 정부를 탄생시켰으나 3년 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육군참모총장이 일으킨 군사 쿠데타로 정권은 무너지고 말았다. 이는 칠레 현대사의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16년 동안의 군사독재를 거쳐 1989년 12월 선거에서 파트리시오 아일윈(Patricio Aylwin) 후보가 당선되면서 민정을 회복했다. 지금은 중도좌파 정권이 안정적인 정치를 펼쳐 경제 발전도 이뤄내고 있다.
수도 산티아고는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위치도 국토의 한가운데 있다. 산티아고라는 이름은 알려져 있듯 ‘성 야고보’의 스페인어 표기다. 


▲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고 있는 모네다 궁전.


1541년 스페인정복자 페드로 데 발디비아(Pedro de Valdivia)가 마포초(Mapocho)강을 방어선 삼아 건설했는데, 분지 지역인 특성상 스모그 현상이 심해 안데스 산맥의 멋진 풍광을 제대로 볼 수 없는 날이 많다고 한다. 그래도 아르마스 광장을 중심으로 주요 볼거리가 모여 있어 여유롭게 이국의 문화를 즐길 수 있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2km 정도 떨어진 북쪽에는 서울의 남산처럼 케이블카를 타고 오를 수 있는 산크리스토발 언덕이 있다. 정상에 서 있는 성모마리아상이 도시를 껴안듯 팔을 벌리고 있다. 넓은 공원 안에는 와인박물관, 일본 정원, 동물원 등이 있어 시민들도 많이 찾는다. 


시내에는 좀 더 야트막한 산타루시아 언덕이 있는데, 천천히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어 젊은이의 데이트 코스로 인기가 높다. 전망대에 오르면 산티아고 시내도 내려다볼 수 있다. 이곳은 스페인이 침공 당시 원주민의 저항에 대응하기 위해 사용한 요새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한편 아르마스 광장 한쪽에는 모네다 궁전이 길게 자리 잡고 있다. 1743년 착공해 1805년 완공된 뒤 화폐국으로 사용했다가 1845년부터 대통령 관저로 쓰고 있다. 관저는 원래 이름을 따 모네다(La Moneda, 화폐) 궁전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1973년 군사쿠데다 당시 아옌데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저항하다 최후를 마친 곳으로도 유명하다. 모네다 궁전 뒤쪽 헌법광장에는 아옌데 대통령의 동상이 서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잠깐 옷깃을 여미게 한다. 모네다 궁전 앞쪽 광장 지하에는 모네다 문화센터가 있다. 피노체트가 집권할 당시 만든 지하 비밀 벙커를 개조한 곳인데, 손으로 만드는 칠레 전통방식 인형을 전시한 ‘인형박물관’이 있다.

보행자 거리 아우마다에는 길거리 공연 풍성


아르마스 광장은 하루 종일 사람들로 북적인다. 광장 주변에는 대성당을 비롯해 주요 건물들이 둘러서 있고, 한쪽에는 핫도그 맛집이 ‘골목’을 이루고 있다. 그 옆쪽으로 보행자 전용 아우마다(Ahumada) 거리가 뻗어있다. 산티아고의 번화가로 길거리 공연도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어 심심하지 않다. 중간쯤에서 이른바 누에바 요크(Nueva York, 뉴욕)라고 부르는 거리가 이어지는데 뉴욕의 금융가처럼 거대한 빌딩들이 묵직한 느낌을 주며 서있다. 모두 금융과 관련된 건물이다.


산타루시아 언덕 맞은편 산프란시스코 교회는 산티아고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높이 솟은 시계탑이 인상적인데, 뒤쪽으로는 옛 시가지 파리스(Paris)와 론드레스(Londres) 거리가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산티아고의 유럽’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중세 유럽식 돌길과 건물이 남아 있어 전형적인 유럽 도시를 연상하게 한다. 골목 곳곳에는 카페에서 내놓은 식탁이 있어 차 한 잔 하며 쉬어가기 적당하다. 번잡한 도심의 소음과 잠시 떨어져 있을 수 있어 마음도 차분해진다. 


칠레의 특산물 와인을 맛볼 수 있는 와이너리 투어도 뺄 수 없다. 대표적인 곳은 1883년에 세워진 콘차이토로(Concha y Toro)로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디아블로(Diablo) 상표로 유명하다. 


칠레는 이웃 아르헨티나와 함께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의 전통 와인의 아성에 맞서는 신대륙 와인의 주요 생산지이다. 연중 안정적인 기후와 이상적인 토양 조건으로 병충해도 별로 없다고 한다. 


남위 30도 코큄보(Coquimbo)부터 40도 테무코(Temuco)까지 약 1100km에는 드넓은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 생산하는 품종 다양하다. 2017년에는 와인 생산국 세계 10위 안에 들었고, 최근엔 생산량의 60% 이상을 수출해 세계 5위에 올랐다. 

 
한편 산티아고 파트로나토(Patrnato) 지역에 규모는 작지만 한인타운이 있다. 싼 옷을 파는 가게가 많은 번잡한 곳이라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도 많다. 한인 민박, 음식점, 슈퍼마켓 등이 있어 한글 간판도 흔하고 떡볶이, 짜장면, 라면 등 익숙한 음식도 만날 수 있어 향수를 달랠 수 있다. 다만 상가가 문을 닫은 뒤에는 거리가 어두워지므로 조심해야 한다.

파블로 네루다…노벨문학상 받은 민중 시인 


칠레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시인 파블로 네루다(Fablo Neruda, 1904~1973)이다. 1971년 칠레에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안겨줬으며, 지금도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민중 시인이자 국가 영웅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정치가로서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도 힘을 쏟았기에 아옌데 대통령과 뜻을 같이했고, 프랑스 주재 대사 등 외교관으로도 활동했다. 아옌데 대통령이 사망한 12일 뒤인 1973년 9월 23일 그도 세상을 떠났다. 


▲ 이슬라 네그라에 있는 네루다의 집.


현재 그가 살던 집 세 채는 모두 1986년에 세워진 ‘파블로 네루다 재단’이 박물관으로 만들어 공개하고 있다. 산티아고에 있는 ‘라 차스코나(La Chascona)’와 산티아고에서 버스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이슬라 네그라(Isla Negra)’, 그리고 발파라이소에 있는 ‘라 세바스티아나(La Sebastiana)’ 등이다. 세 곳 모두 네루다의 문학적 영감은 물론 일상과 취미 등 인간적 면모를 알아볼 수 있게 꾸며져 있다. 


또한 여성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Gabriela Mistral)도 유명하다. 그녀는 1945년 남미와 칠레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네루다가 테무코에서 학교에 다닐 때, 그곳 여학교 교장이던 미스트랄의 지도를 받아 시작(詩作)의 길에 들어섰다고 한다.


글·사진 남인복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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