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택의 연예비사] 너무 잘나 미운 여자, 배우 박정자

연예 / 김병윤 기자 / 2019-03-26 08:3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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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편 이상 외골수 연극 인생…한국 최고의 연기파

세계문화 예술계에 한류열풍이 뜨겁다. 오늘의 한류열풍은 어려운 시절을 극복해온 대중예술 선배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중예술인들이 딴따라라고 멸시받던 1960년대에 주간한국 연예담당 대중예술을 지면화한 언론인이 있다. 후배 연예담당 기자들은 그를 연예기자 대부라 말한다. 한국 대중예술의 산증인 정홍택 전 기자의 생생한 증언이 담긴 연예비사를 알아본다.[편집자]

 

박정자. 나는 그녀가 밉다. 연극배우 박정자가 정말 밉다. 모르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한국에서 최고로 연기를 잘하는 배우인데. 의리도 있는데. 대인관계가 좋은 여인인데. 왜 그녀를 미워하느냐고 할 것이다. 

 

나는 그래서 밉다. 1800년대 프랑스의 작가 겸 철학자인 아나톨 프랑스는 이렇게 말했다. “실수가 없는 녀석은 지겹다. 왜냐하면 그들에게서 배울 점이 없기 때문이다” 박정자가 그렇다. 살면서 실수와 실패를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박정자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도 박정자에게는 배울 점이 많다. 박정자는 실수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박정자가 밉다. 


박정자는 1942년생. 한국 나이로 78살이다. 진명여고. 이화여대 출신이다. 대학교에 들어가 연극을 시작했다. 연극에 미쳤다. 공부는 뒷전이었다. 이런 열정이 오늘의 박정자를 있게 했다. 박정자는 노래도 잘한다. 다재다능하다. 무대에 서는 순간 미치광이가 된다. 무대에 올라가면 미쳐 버린다. 소름이 끼친다. 연기자의 역할로 보이지 않는다. 그 사람으로 보인다. 연극 ‘신의 아그네스’에서 원장 수녀 역을 맡았다. 박정자가 수녀로 보인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김기영 감독의 ‘이어도’에 출연했다. 무당 역을 맡았다. 전생이 무당 같았다. 박정자는 맡은 역할에 몰입한다. 광신도의 모습 그대로다.

 

▲ 박정자 [뉴시스]

‘엄마는 50에 바다를 발견했다’에 출연했다. 그 당시 박정자의 나이도 50살이었다. 변기에 앉아 딸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었다. 박정자는 치마를 아무렇지 않게 내리고 변기에 앉았다. 관객들은 깜짝 놀랐다. 아무리 연기지만 그래도 여자인데 하고. 옷 벗는 장면이 여러 번 있었다. 우연히 그때 오십견이 왔다. 팔을 들기가 힘들 정도로 아픔이 있었다. 주변에서 걱정했다. 해낼 수 있을까 하고. 박정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연기를 해냈다. 연출진들이 탄성을 자아냈다. 박정자는 그런 연기자다. 


‘19 그리고 80’에서 박정자의 열정은 빛을 발한다. 80살 할머니가 19살 청년을 좋아하는 내용이다. 매년 공연을 한다. 나무에 올라가는 장면이 있다. 박정자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올라간다. 아슬아슬하다. 보는 사람들이 숨을 죽인다. 팬들은 궁금해한다. 박정자의 열정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뛰어난 연기를 언제까지 볼 수 있을지. 박정자가 정말 싫어하는 것이 있다. 나이 얘기다. 삶에는 열정이 필요할 뿐이라 말한다.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아마도 박정자의 연기는 끝이 없을 것이라고. 박정자의 열정을 알기 때문이다. 


박정자는 200편 이상의 연극에 출연했다. 햄릿·파우스트·대머리와 여가수·대한국인 안중근·세빌리아의 이발사·에쿠우스 등 수많은 작품을 빛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연극과 영화의 무게감은 다르다. 연극의 무게감이 영화보다 훨씬 크다. 박정자의 장점이자 단점이 있다. 박정자는 오직 연극만 안다. 정치·사회 등 다른 분야에 관심이 없다. 전혀 얘기도 안 한다. 박정자는 스스로 말한다. 연극을 통해 인생을 얻었다고. 연극을 안 했으면 별 볼 일 없는 인생이었다고. 연극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장인정신이 돋보인다.


박정자는 따뜻한 사람이다. 겸손한 여인이다. 주변에 사람이 들끓는다. 친구가 많다. 연극계에 트리오가 있다. 손숙, 윤석화와 잘 어울린다. 손숙은 형님이라 부른다. 윤석화는 언니, 엄마라 호칭한다. 오랜 시간 정을 나누며 살아왔다. 친자매 이상으로. 박정자의 팬클럽이 있다. ‘꽃봉지회’다. 완전 열성분자 모임이다. 고정 팬 들이다. 이들만 갖고도 만석을 이룰 정도이다. 박정자는 어릴 적 꿈이 있었다. 창문 있는 방에서 사는 거였다. 소원을 이뤘다. 꿈을 이룬 뒤 박정자를 울리는 사람이 있다. 어머니다. 박정자는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다. 얘기할 때마다 어머니가 꼭 나온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딸에게로 이어진다. 딸을 엄청나게 아낀다. 딸이 매니저 노릇을 한다. 4살 연하 남편은 CF 감독이다. 가끔 남편에 대해 농담을 한다. 동생이 반말 한다고. 


박정자의 배려심은 연극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연극분장실을 안방처럼 꾸민다. 꽃보다는 음식을 좋아한다. 떡볶이, 순대, 호떡 등을 갖고 오는 걸 더 반긴다. 출연진들과 함께 먹으며 수다 떠는 것을 즐긴다. 이런 매력에 사람들은 박정자 옆에 있고 싶어 한다. 박정자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인간성이 없어 보이는데. 인간성이 넘쳐흐른다. 연극인 복지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마땅한 후임자가 없다고 한다. 복지재단 업무에도 충실하다. 업무에는 철저하고 책임감이 있다. 따뜻함으로 동료들을 챙긴다. 박정자는 대범하다. 평론가들의 평에 무관심하다. 혹평도 좋아한다. 혹평을 받아야 발전한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박정자에게 두 가지 바람이 있다. 첫 번째는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Godot)를 기다리며’ 주인공을 맡았으면 한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주인공은 남자들만 해왔다. 박정자의 연기력은 독보적이다. 그동안의 유리벽을 확실히 깨뜨려줄 것이다.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 두 번째는 노래로 콘서트를 했으면 한다. 소화력이 가수 이상이다. 목소리가 연극으로 단련돼 성량이 풍부하다. 노래를 정말 잘한다. 우연히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들은 적이 있다. 정말 감동적이었다. 함께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탄성을 자아냈다. 똑같은 말이 나왔다. 가수로 전환하라고. 


열정과 재능을 겸비한 배우 박정자. 그녀에게는 소박한 세 가지 꿈이 있다.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오길 염원하고 있다. 좋은 관객들이 늘어나길 갈망하고 있다. 건강이 유지되길 기원하고 있다. 한국 연극계의 발전을 위해 박정자의 꿈이 이뤄지길 바란다.

 

UPI뉴스 / 정리=김병윤 기자 bykim7161@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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