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자] 근현대 100년의 기억 보관소

문화 / / 2019-05-26 12:56:50
돈의동 박물관마을과 새문안마을
'맨발의 청춘' '고교 얄개' 극장간판 걸린 새문안 극장

돈의동 박물관마을 지도를 들고 서울도시건축센터 옆 계단을 올랐다. 계단 중간쯤에 오른쪽으로 열린 문에 ‘오권원근 조각전’ 포스터가 보였다. 전시실 안으로 들어갔다. 옛 건물의 벽돌이 그대로 드러난 전시실 내부에는 작고 통통한 남자 조각품이 늘어서 있었다. 인상은 좀 험하지만 조금은 순진하고 조금은 어눌해 보이는 남자 조각품을 하나하나 둘러보고 있자니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B급 인생들에게 바치는 오마주’라는 전시 해설을 보고서야 조각품을 보며 가진 애잔함과 안도감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 돈의동 박물관마을 안내소 [정병혁 기자]


마을마당 의자에 앉아 지도 위에 동선을 그렸다. 돈의동 박물관마을은 새문안 동네길, 갈래길, 옛안길, 꼬리길, 한옥길 등을 중심으로 전시관, 체험교육관, 마을 창작소가 나뉘어 있었다. 박물관마을이 만들어지기 전 이곳의 주요 정보와 박물관마을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기록, 전시된 ‘돈의문전시관 아지오’를 먼저 찾았다. 


한양도성의 서쪽 대문이었던 돈의문 밖 일대는 마포로 가는 길목에 있는 교통의 요지였다. 싸전과 약국, 신발과 땔감 등을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으며 풍류객들은 반송정, 서지 같은 명소를 내려다보며 시작(詩作)을 하며 놀았다. 1899년 개통된 전차도 돈의문에서 청량리를 왕복하는 노선이었다. 한양과 인천을 잇는 경인 철도도 돈의문 앞에 서대문정거장이 설치되었다. 20세기 초 돈의문에서 소의문에 이르는 성벽 안쪽에는 미국·유럽인이 많이 거주하였고 자연스럽게 신문물이 들어오는 창구 구실을 하였다. 돈의문 일대를 박물관마을로 만든 이유에는 우리의 근대 문화가 마을 곳곳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 서울 종로구 돈의동 독립운동가의 집 [정병혁 기자]


돈의동 박물관마을에 남아 있는 건축 양식도 다양했다. 새문안마을에 남아 있던 조선 시대 한옥, 1930년대 일본식 주택, 1960년대 도시형 한옥, 1970년대 슬래브집 등을 도시재생 방식으로 개조해 마을을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아지오 2층에서는 2013년 돈의문 뉴타운이라는 이름으로 철거되기 전까지 교남동을 모형과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새문안동네가 현재의 돈의문 박물관마을로 변하게 된 과정도 사진으로 전시하고 있었다. 새문안마을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마을부지를 문화시설로 전용하고 콘텐츠를 덧입혀서 현재의 돈의문 박물관마을을 만들었다. 골목골목에 자리했던 식당들 사진 안에는 한때 친구들과 자주 갔던 중국음식점도 보였다. 그 친구 중에는 새문안마을 세탁소가 집이던 친구도 있었다. 그때 어울렸던 친구들과는 연락이 끊어졌는데 친구들과 짜장면을 먹곤 했던 중국음식점 사진 속에서 기억이 되살아났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아마리 잘 기록한다고 해도 사라진 것을 대신할 수 없다. 사라진 것에 대한 쓸쓸함을 대신할 수는 없다. 


한옥길가에 늘어선 체험관에서는 한지공예ㆍ서예ㆍ자수공예ㆍ종이공예ㆍ다도체험 등을 할 수 있다. 6시가 조금 넘어서 대부분 문이 닫혀 있었다. 대문이 열린 ‘독립운동가의 집’으로 들어서자 마당엔 요즘 상영하는 드라마 포스터가 서 있다. 초등학생들이 붓글씨로 쓴 의열단 가입선언서를 천천히 읽는다. 나라 잃은 백성으로 돌아가 독립운동가의 삶을 체험해 보는 이 프로그램은 초등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붓글씨 체험관에서는 운필법을 배우고 가훈 쓰기ㆍ방명록 작성ㆍ이름 쓰기 등을 해 볼 수 있었다. 


▲ 돈의동 돈의문콤퓨타게임장 [정병혁 기자]


갈래길로 가면 근현대 100년의 생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생활사 전시관이 있다. 60~70년대 부엌과 거실, 공부방을 재현해 놓았다. 바로 옆 ‘돈의문콤퓨타게임장’에서 옛날 게임을 했다. 한때 ‘오락실’이라는 이름으로 유혹하던 장소가 이제는 박물관 안으로 들어왔다. 게임장 바로 옆에 ‘맨발의 청춘’, ‘고교 얄개’ 극장 간판이 높게 걸린 새문안 극장이 있다. 극장 안으로 들어서면 극장 매표소가 보인다. ‘성인 600원, 국경 400원, 학생 300원’이라고 적혀 있다. 상영관에서는 마동탁과 설까치가 주인공인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엄지를 위해 설까치가 기꺼이 마동탁에게 져 주던 그 영화였다. 


▲ 돈의동 삼거리 이용원 [정병혁 기자]


삼거리 이용원에는 오래된 이발소 의자가 놓여 있다. 하얀 거품을 듬뿍 묻히고 면도를 해주던 이발사는 없지만 잊힌 이발소 문화를 떠올려보기에는 충분했다. 남자의 사랑방이었던 이발소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곳이 되었다. 서대문 사진관은 실제로 영업을 하고 있다. 사진기가 귀한 시절 꼭 기념할 일이 있으면 사진관을 찾아갔었다. 가장 깨끗한 옷을 입고 의자에 앉아 카메라를 뚫어지게 보고 있으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사진이 찍혔다.


돈의문 박물관마을은 오래된 도시의 삶과 기억 그리고 역사적 층위가 잘 보존되어 재생된 국내 최초 마을단위 도시재생 사례지이다. 사라진 동네의 역사와 골목 문화를 기록하여 전시하고 있다. 입주한 예술가들의 창작 현장을 직접 볼 수 있고, 참여 가능한 교육프로그램도 있다. 처음 마을로 들어설 때 올랐던 계단을 내려오는데 전시관 안내 책자에 적힌 이탈로 칼비노의 말이 새롭게 읽혔다.

“도시는 자신의 과거를 말로 서술하지는 않습니다. 그 과거의 기억들이 거리의 모퉁이에, 창문의 창살에, 계단의 난간에, 깃발 게양대에, 피뢰침의 안테나에, 그리고 모든 부분 부분에 흠집으로 각인되고 무의식같이 새겨져 마치 손에 그려진 손금과도 같이 담겨 있을 뿐입니다.”


강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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