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랏말싸미' 사실 논란으로 '꿈의 역사' 간과

문화 / 김혜란 / 2019-08-12 11: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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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상상력이 결합한 역사영화는 역사에 없는 또 다른 통찰력을 제공할 수도"

영화에서 허구적 상상력은 어디까지 허용될까. 


▲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컷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지난달 개봉한 '나랏말싸미'(감독 조철현)가 이런 영화의 허구적 상상력에 대한 논란에 휩싸이며 이슈의 중심에 섰다. 논란의 핵심은 이 영화가 역사적 사실로 알려진 '세종의 한글 창제설'을 부인하고 '신미대사의 조력설'이란 허구적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것이다. 분노한 사람들은 "대왕 세종을 흠집 내고, 왜곡된 역사를 재생산하는 것을 지켜볼 수는 없다"며 급기야 해외 보급을 막아달라는 '청와대 국민 청원'까지 내기에 이르렀다. 


논란이 거듭되자 조철현 감독은 개봉 5일 만인 7월 29일 입장문을 통해 "수십 년간 세종대왕과 한글을 마음에 품고 살아왔다"며 "그렇기에 이 영화에 대해 반감을 표하는 분들의 마음을 안다"고 밝혔다. 이어 "제작진의 마음과 뜻은,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을 폄훼하고자 한 것이 결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나랏말싸미에서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신미대사로 대표되는 불교계가 한글 창제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소리글자라는 한글의 정체성에 당시 억압받던 종교인 불교의 언어가 들어 있다는 가설을 전제로 한다. 소리글자인 산스크리트어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한글을 발명했다는 것이다. 나랏말싸미에는 산스크리트어, 티베트어 등 불교 문자에 능한 신미대사와 승려들이 등장한다. 


이에 대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김선명 강사는 "나랏말싸미 안에 한글 창제에 내속한 사회적, 역사적 조건이 잘 드러냈는지로 영화 비평을 할 수 있겠지만, 단순히 이 영화가 실제 역사와 다르다고 해서 비난을 받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는 "역사 왜곡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처럼 영화 내 신미대사의 한글 창제 개입이 세종의 업적을 폄훼하고 특정 종교의 세를 과시하는 것으로 이어졌는지, 아니면 유교를 왕권의 정통성으로 삼았던 조선의 숭유억불정책, 사대부와 왕권의 대립, 문자독점에 의한 권력의 폐단 등을 드러내는 역할을 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때 나랏말싸미 속 신미대사는 세종을 폄훼한 특정 세력이라기보다는 권위에 대한 도전하는 인물로 풀이될 여지가 있다. 신미대사는 유교의 조선에서 박해받던 불교인이었던 것만큼 냉소적이고 날이 서 있는 권력의 정점과 충돌하는 인물로 적합하기 때문이다. 


앞서 조 감독은 올해 초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조선에서 왕과 중은 각각 가장 고귀한 신분과 가장 천한 신분 아닌가"라며 "이 두 사람이 같은 일을 하는 이상한 상황인데, 둘은 상대를 깎아내리거나 찍어 누르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팽팽하게 대립을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사실 왕조 시대에 "개가 절하는 거 보셨냐"라며 왕에 예를 갖추지 않는 중이 있으면 목을 날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세종은 신미대사에게 그런 소리를 듣고도 그를 내치지 않는다. 백성을 위한 문자 만들기가 먼저였던 세종의 애민 정신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영화 속에서 신하들은 어좌에 앉아 있는 왕을 놔두고 빠져나가고, '탄핵'이라는 단어를 수시로 언급한다. 그런 탓에 세종을 무기력한 존재로 그렸다는 비판도 있다. 이에 조 감독은 본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열린 대화를 추구한 국왕으로 바라보면 어떨까"라며 "백성을 위한 새 문자에 대한 간절함 때문에 신하나 신미대사 등의 겁박과 수모에도 굴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때 이 영화는 세종을 무력하게 표현하려고 했다기보다는 패권적 지위를 벗어던진 포용적 리더십의 왕으로 재해석한 것이 라고 볼 수 있다. 


또 조 감독은 입장문에서 "조선왕조실록에 1443년 12 월 30일 임금이 친히 새 문자를 만들었다는 기록 이전에 아무것도 없는, 훈민정음의 창제 과정의 역사적 공백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신미대사는 그 공백을 활용한 드라마 전개에서 세종대왕의 상대역으로 도입한 캐릭터다"고 전했다. 


실록에 드러나지 않은 역사의 행간에 집중하는 조 감독의 역사관에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아닌 유학자로 대표되는 사대부의 언어로 풀이된 기록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소거된 존재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는 숭유억불 상황서 억압받던 신미대사 같은 '불자' 들로 국한된 것은 아니다. 왕후, 궁녀 등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영화 나랏말싸미가 신미대사를 앞세워 불교의 힘을 강조하려 했다는 비판은 지나친 측면도 있다. 


영화는 소헌왕후의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낸다. 신미대사가 "진정한 대장부는 소헌왕후다"라는 말을 남길 정도다. 소헌왕후는 "암탉이 울어야 집안이 흥하고, 나라도 산다"며 궁녀들에게 언문(한글)을 익히게 한다. 사대부의 탄압 속에서도 한글이 백성의 문자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 힘없던 여성들도 한몫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영화는 소헌왕후를 통해 기록되지 않은 존재를 상상하며 한글이라는 위대한 발명품에 깃든 피와 땀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다. 


▲ 영화 '군함도'(2017)와 '덕혜옹주'(2016)는 역사 왜곡 시비로 논란을 빚었다. [CJ엔터테인먼트,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실 영화계에서 역사 왜곡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7년 개봉한 영화 '군함도'는 강제노역을 하는 조선인이 일본인에 뇌물을 바치거나, 조선인끼리 대립한다는 점이 일제 탄압을 희석했다는 논란에 직면했다. 한 평론가는 "친일 조선인을 작품에 내세웠다는 그 자체는 문제가 안 된다"면서도 "다만 가해자인 일본과 강제징용 조선인 간의 전선이 뚜렷하지 않아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묶음으로 뭉뚱그려진다는 것은 연출의 실패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영화 '덕혜옹주'(2016년) 역시 역사 왜곡 시비에 휘말렸다. 실제 덕혜옹주는 일본에 빌붙어 왕족으로 호의호식했는데, 영화 속에선 그녀의 불편한 삶이 항일 활동으로 왜곡됐다. 역사학자인 김기봉 교수는 한 간담회에서 "영화를 너무 정색하고 볼 필요가 뭐 있나. 실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덕혜옹주가 민족의식을 갖고 그렇게 했더라면 좋지 않았겠는가. '꿈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지 않냐"라는 말을 했다. 이때 꿈의 역사란 과거의 사실과 다르더라도 '이랬더라면 좋았겠다'라는 의미가 담긴 허구적 상상력에 관한 것이다. 


종합하면 군함도와 덕혜옹주에 쏟아진 비판의 배경에는 갈등의 한일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 반면, 나랏말싸미를 둘러싼 논란은 애민 군주로 칭송받는 세종과 그의 업적으로 알려진 한글에 대한 민족적 자부심이 결부된다. 

 

하지만 영화 나랏말싸미는 역사 교과서가 담지 못한 과거 너머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하승우 교수는 "허구와 사실 의 결합이 다양한 방식들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과 모순을 드러내면서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더욱 깊게 느끼게 된다"며 "이럴 때 역사영화는 지면의 역사가 제공하지 못하는 통찰력을 제공할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그 사건을 체험하도록 한다"고 역설한다. 


UPI뉴스 / 김혜란 기자 khr@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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