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태의 세계는 지금] 성 정체성 보호 vs 종교적 양심의 자유…미국 사회 달구는 법리논쟁

국제 / 조광태 / 2019-10-03 08:22:17
트랜스 젠더의 호칭 문제를 둘러싼 미국사회의 새로운 논쟁

개인의 성 정체성 보호가 우선일까? 혹은 종교적 양심의 자유가 우선일까?

지난 1일, 미국의 한 고등학교 교사가 종교적 양심의 자유를 침해당했다면서 학교를 대상으로 법정소송을 제기했다. 단순한 사건처럼 보이던 이 소송이 미국 언론들의 관심을 끌면서 미국사회에 생각지 않던 논쟁이 시작되고 있다.

 

▲ 피터 블래밍 교사 [CNN 캡처]

소송을 제기한 사람은 미국 웨스트 포인트 고등학교의 프랑스어 교사인 피터 블래밍 교사이다. 지난 해 12월, 학교 측으로부터 학생을 차별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했던 인물이다.

해고사유는 같은 해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교의 한 여학생이 여름방학 동안 성 전환수술을 했고, 이것이 발단이 됐다. 수술 후 학생은 자신을 지칭할 때 남성 인칭대명사(he, him)를 원했고, 교사는 이를 거부했다. 자신이 믿는 종교적 신념에 비추어, 여성을 남성으로 지칭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므로 자신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다.

10월에 학생은 "선생님의 종교적 신념은 이해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존중받아야겠다"는 의사를 전달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문제가 지속되자 학교 측은 교사, 학생, 학부모, 학교 운영자들로 운영회를 구성하고, 교사에게 이의 정정을 요구했다. 이에 교사는 학생을 대명사로 지칭하는 대신 학생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방식으로 마찰을 피해갔다.

하지만 같은 달 31일, 가상현실 안경을 쓰고 복도를 걷던 그 학생이 벽에 부딪치게 될 상황에서 교사는 다른 학생들에게 "그녀를 도우라"고 요청하는 일이 발생했다. 학생은 즉시 교사의 수업을 거부했고, 그 결과는 교사의 해고로 이어졌다.

교사는 이번 소송에서 학교측에 100만 달러의 보상, 자신의 복직,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했음에 대한 학교 측의 발표 등을 요구했다. 학교 측은 자신들의 해고에 아무런 잘못이 없음을 강조하며 소송대비에 필사적인 노력을 다하겠다는 강경한 언어를 구사하기도 했다.

교사측의 주장은 간명하다. 자신이 종교적 신념을 자유롭게 말하고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했다는 것이다. 또한 성적인 불쾌감과 관련한 대중적 논쟁에 어느 한 편을 들도록 강요당한 꼴이며 인간의 본질과 관련해 자신이 잘못됐다고 믿고 있는 바를 강제로 표현하도록 이끌렸다는 것이다.

반면 학교 측은 학생이 자신의 정체성을 존중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맞서고 있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남성으로 존중받아야 할 학생이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교사가 학생을 대명사 대신 이름을 직접 부른 행위에 대해서도 차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른 학생들을 대명사로 지칭하면서 해당 학생 한 명에 대해서만 유독 직접 이름을 호명하는 행위 자체가 차별적이라는 것이다.

교사가 해고되던 시점부터 이미 이 논쟁은 예고된 것이었다. 해고가 결정되자 학교 내에서는 교사의 입장과 학생의 입장을 옹호하는 논쟁이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 발생했다. 학생 100여명이 "남성은 남성, 여성은 여성"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나와 교사의 구명을 요청하는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다만 이 행진에는 반대측 입장의 학생들도 함께 참여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1일 교사가 소송을 제기하면서 한 때 잊혀졌던 이 문제는 네티즌들에게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트위터등의 SNS를 통해, 교사의 입장을 옹호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다. 한 네티즌은 "교사에게 성전환 학생의 호칭까지 요구하는 일은 가르치는 교사에게 축구 코치와 버스 기사의 역할까지 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논리로 교사의 입장을 옹호하는가 하면 다른 네티즌은 "교사가 학교의 원칙을 무시하고 학생의 성 정체성을 존중하지 않는데다가 학교측의 지휘감독을 따르지 않았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해고의 사유가 된다면서 학교 측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성전환수술을 받은 학생에 대한 호칭문제를 둘러싼 잡음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8월에도 플로리다주 잭슨빌의 어느 한 수학교사가 같은 문제로 학교장으로부터 질책을 받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지난 해 가을에는 오하이오주 쇼니(Shawnee) 주립대학의 교수가 자신의 입장 때문에 고발을 당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생물학적인 성'에 입각해서 학생들의 성을 지칭하는 학교의 교사들은 이번 블래밍 교사의 제소가 자신들에 대한 학교 측의 일방적인 처벌내지는 제재에 제동을 걸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더욱이 트럼프 행정부 들어 학교, 군, 병원 등에서의 성전환자들에 대한 보호가 크게 쇠퇴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번 재판의 결과에 어느 정도의 기대감을 갖고 있는 눈치다. 블래밍 교사 측의 칼렙 달톤 변호사는 이 소송의 승리에 자신감을 피력하고 있다.

하지만 예단은 어느 측도 쉽지 않다. 지난 8월에만 하더라도 웨스트 포인트와 길 하나를 맞대고 있는 글로스터(Glouster) 카운티에서 성전환학생의 입장에 손을 들어주는 판결이 있었던 점이 이를 시사한다. 한 학생이 성전환 수술 후 자신이 원하던 성별의 라커룸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자 소송을 제기했던 것인데, 연방법원 측은 학교가 학생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판결한 것이다.

교사 측의 소송제기로 미국사회가 성 전환자들의 성 정체성 문제를 놓고 또 한차례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종교적 양심의 자유라는 미국 사회로서는 중요한 이념적 가치문제까지 가세함으로써, 재판 결과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UPI뉴스 / 조광태 객원기자 jkt@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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