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호 "한국사회 보수와 진보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현실적 잣대 필요"

문화 / 조용호 / 2020-01-06 14:02:52
[2020 새로운 10년을 말하다] ③문학평론가 유종호
"보수는 박근혜 정부 때 자멸…그때 그 사람들 태도로는 보수 유지할 수 없어"
"보수 진보 프레임 우리 사회에 안맞아...진보라는 쪽, 과연 진보냐 하면 그것도 아냐"
▲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공간을 거쳐 산업화, 민주화 시기를 두루 관통해온 원로 인문학자 유종호. 그는 "이즈음 한국사회는 제가 살아온 시대 중 가장 극렬하게 분열돼 있다"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 어려워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정병혁 기자]


대담=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갈수록 인문학이 설 자리가 없어져간다는 한탄이 나온 지 이미 오래다. 인문학은 삶의 자리를 돌아보고 미래를 살아갈 지혜를 담보한 보고이지만, 어느 사이 우리 사회에서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폐기돼가는 분위기다. 1970년대 후반부터 한국문학을 정립(鼎立)하는 세 바퀴 중 하나를 지탱하면서 한국의 대표적인 인문학자로 살아온 문학평론가 유종호(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전 연세대 특임교수·85). 이화여대와 연세대에서 오랫동안 제자들을 가르치다 은퇴한 후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2013~2015)까지 역임한 원로 석학이 진단하는 작금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유종호 평론가는 일제강점기에 성장기를 거쳐 광복을 맞은 후 6·25전쟁의 참화를 겪었으며, 가난의 터널을 지나 산업화 시대를 살았고, 민주화 시기까지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관통해온 세대이기도 하다. 그는 "제가 겪어본 중에서 지금이 가장 국론이 극렬하게 분열된 상황으로 이렇게 가다가는 사회의 존립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며 "사생결단의 태도로 갈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서로 중지를 모아 의견을 접근시켜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또 "한국사회 보수와 진보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라며 "낡은 프레임에서 벗어난 현실적이고 타당한 잣대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ㅡ21세기 세 번째 10년을 어떻게 예측하시는가.
"피터 드러커(1909~2005)라는 미국 경영학자가 90세가 넘어 방송에 출연했을 때, 자신은 예측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1929년 불경기가 시작되자 오래 안 갈 거라고 생각하고 얘기했는데, 너무 오래 가더라는 것이다. 예측이란 사실상 희망적 관측에 지나지 않는다. 니체는 19세기 말에 신은 죽었다고 했지만, 20세기 들어 세계 도처에서 근본주의적인 종교가 흥했다. 니체처럼 예언자 기질을 가진 철학자도 예측을 못하는데 내가 어떻게 예측하나. 다만 이런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다. 우리 사회가 제가 겪어본 중에 가장 국론이 분열되어 있는 상황이다. 예전에 이렇게까지 분열된 적은 없다. 상대방 말에 반대하면서도 맞는 부분은 수긍했지만, 지금은 100% 상대방이 틀렸다고 한다. 이렇게 가다가는 사회의 존립자체가 어려워 질 것이다. 사생결단의 태도로 갈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서로 중지를 모아서 의견을 접근시켜나가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이 순조롭게 되려면, 일종의 친선경기 하듯이 해야 한다. 어려운 시기에 서로 의견에 접근해서 상대방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그렇게 되길 바란다."

ㅡ권력을 두고 다투는 숙명을 지닌 정치에서 상대방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하나.
"상대방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것은 폭력의 논리다.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천사고 너는 악마다, 악마는 없애야 한다는 태도로는 큰일 난다. 좌건 우건 마찬가지다. 상대 주장도 40%까지는 인정을 하면서 나의 정당성은 60%, 많으면 70%, 이런 태도로 나가야지,  안 그러면 우리가 놓인 환경에서 모두 같이 쓰러지는 결과가 안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

ㅡ한국사회를 재단하는 보수와 진보는 유효한 잣대인가. 
"보수는 박근혜 정부 때 자멸했다. 그때 그 사람들이 지닌 태도로는 보수를 유지할 수 없다. 한국의 보수는 자체의 논리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한국 사회가 산업화를 거쳐 발전해오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보수라는 게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제대로 성찰하지 못했다. 다만 사회주의 같은 사상에 대한 반개념으로 보수가 성립된 것이다. 영국의 보수는 과거 귀족제도와 왕의 존재 같은 전통을 지키자는 건데 우리는 고려나 조선 왕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잖은가. 그냥 북에서는 사회주의를 채택하고, 여기는 자유민주주의를 수입한 거다. 남도 북도 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였다. 보수의 이데올로기가 자유민주주의인데, 이는 우리의 전통이 아니다. 우리의 전통이 아닌 것을 하자면서 보수라고 자처하는 건 모순이다. 한국의 보수는 사회주의의 반개념일 뿐이다."

ㅡ수입한 낯선 이데올로기들을 서로 붙들고 실체도 없이 대립해온 세월이란 말인가.
"한국사회를 가르는 보수와 진보는 현실에 맞지 않는 프레임이다. 예전에는 '진보'라는 말 대신 '혁신계'라는 표현을 썼다. 이 말의 대칭 개념으로 보수계라는 말도 쓰지 않았다. 보수 진보라는 프레임 자체가 우리 사회에 맞지 않다. 보수가 지켜야 할 것도 없고, 진보라는 쪽이 과연 진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가령 베트남이 통일된 뒤 중국과 월맹이 싸우지 않았나? 캄보디아에서는 대학살이 일어났는데 이건 사회주의 참모습이 절대 아니다. 동구권이 붕괴한 뒤에도 한국의 소위 진보주의자들은 이후 역사 동향과 그 과정에서 드러난 과거의 사회주의 현실에 대한 공부나 이해가 없는 것 같다. 그냥 예전 계몽주의 끄트머리의 사회주의 정도로 소박하게 받아들이는데, 이런 세력에 '진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유종호 문학평론가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카페에서 UPI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병혁 기자]


ㅡ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나가야 하는가.
"소위 진보에서는 립서비스, 정치적 수사로만 산업화를 인정한다고 하지만 사실 인정하지 않는다. 또 보수 쪽에서는 저 쪽을 어디까지나 불온한 사상을 가진 이들처럼 대한다. 서로 수상하다, 믿지 못하겠다는 거다. 이런 태도를 버리고 상대방을 인정해야만 한다. 사실 한국의 오늘을 이루는 데는 3대 세력이 큰 역할을 했다. 6·25 호국세력, 산업화 세력, 민주화세력. 저마다 독점적으로 자신들의 역할만 주장할 게 아니라, 이만큼 오는데 다같이 기여를 했다고 서로 인정을 하면서 역사를 계승하는 쪽으로 생각해야 살지, 어느 쪽이든 상대방을 반동 세력으로만 본다면 가망이 없다."

ㅡ글로벌 시대 대외관계도 어려운 난제다. 일본이 근년 들어 우경화하면서 한국의 민족 감정을 많이 건드린 상태인데 어떤 태도가 바람직한 것인가.
"베트남을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 한국군의 잔학행위도 있었지만 베트남에서는 한국어학과가 제일 인기다. 베트남 여성들이 한국에서 핍박받는 일들을 일부러 보도하지 않는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지나간 것이니 실사구시로 가야한다. 소박한 민족주의는 소아병이다. 물론 아베가 마뜩지 못한 짓을 많이 한다. 일본에 아베 비판자들도 많다. 한국에서도 일본과 잘 지내자는 목소리가 있는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토착왜구라고 한다. 내가 이 말을 하면 악역을 맡는 셈이지만, 한국에서도 문재인 정부에 대해 대일관계에서 절제된 태도를 요구해야 한다. 죽창 들고 나가서 싸우자, 그러면 나라가 제대로 되겠는가. 현 정부는 전문가들을 너무 무시한다."

ㅡ자살률, 범죄율, 출산율 등을 보면 우리가 과연 문명국으로 가고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근본 원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여유 없이 피차간에 먹고 살기 위해서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까 타인에 대한 배려, 예의, 매너 같은 것이 부족하다. 예전부터 우리 이데올로기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유교였다. 이것으로 사회가 유지되지 않는다. 사회가 복잡해지는데 따르는 행동양식이 사회현실에 맞게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급격히 변한 상황에서 적응 못하는 아노미 상태가 여전히 지속되는 것이다. 크게 보면 교육의 실패가 있다. 교육 정책을 너무 자주 바꾼다. 전문가의 의견을 듣지 않고, 비전문가들의 소박한 사회정의 개념으로 제도를 자꾸 바꾸는 게 문제다."

ㅡ이전 시대에 비해 이즈음은 한국사회에서 사람들이 존경하고 신뢰할 만한 원로가 잘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런가.
"급변하는 사회에서는 존경받기 어렵다. 사회가 안정돼서 집약적인 농업이 오래 지속되는 사회에서는 오랜 경험을 가진 사람이 최고의 지혜를 가지게 된다. 지금은 전자기기 다루는 법을 손자에게 배우는데, 손자가 존경 하겠나? 적어도 70, 8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어찌 보면 정신적인 면에서는 지금처럼 분열되지 않았다. 해방 직후에는 오히려 좌우 대립으로 단순했다. 지금은 대립 양상이 좌우, 남녀, 노소, 지역, 빈부 대립 양상으로 번져 질이 아주 나쁘다. 이렇게 복잡해지니 자연히 원로가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원로는 만들어 지는 것이기도 하다. 링컨은 민주주의 표본처럼 받들어지는데 반은 만들어진 신화이다. 영웅이나 전설적인 지도자는 국민이 어느 정도 만드는 것이지, 날것으로 훌륭한 사람은 드물다."

▲뛰어난 기억력으로 지나온 시대의 미시사를 섬세하게 에세이로 풀어내 독자들과 공유한 유종호. 그는 에세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실감을 정치적 사건을 중심으로 소설에 담아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병혁 기자]


ㅡ이 혼탁한 시대에 우리는 어떤 별을 보고 가야 할까.
"민주주의라는 게 비용이 많이 드는 정치체제다. 국민들이 역사를 비롯한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주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역사공부도 안하면 부화뇌동할 수밖에 없다. 시민들이 정치권력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정치라는 게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공부 많이 해야 한다. 조선시대에는 농사 짓고 공출이나 하면 됐지만, 지금은 다들 한 표씩 행사하고 국가 앞날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데 아무것도 모르면 문제다."

ㅡ객관적인 정보와 지식을 전달해야 할 언론이 오히려 부화뇌동하면 어찌 하나.
"어느 한 편을 들면서 죽창 들고 나가서 싸우자는 태도는 아주 질이 나쁜 행태다. 두 번 때리고 한 번 맞는다고 뭐가 좋은가. 본디 자유주의라는 것이 그리스, 네덜란드, 영국처럼 장사가 흥한 나라에서 발전했다. 상호교역국끼리 흥정하는 것이다. 타협이 상인정신이고, 곧 민주정신이다. 우리나라는 그런 정신이 없다. 타협하면 야합했다고 비난한다. 타협이라는 단어 'compromise'를 좋은 어감으로 만들어야 한다."

ㅡ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모두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문재인 정부도 협치를 한다고 말은 했지만 노력은 하지 않았다. 야당은 야당대로 초심으로 돌아가 상대방을 인정하고 대화를 해야 한다. 친선경기 하듯이 정권을 주고받을 수는 없지만, 같은 하늘 아래 불구대천 원수처럼 대하면 되겠는가."

◆유종호 문학평론가는.

한국 문단의 원로 평론가인 유종호는 1935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문리대 영문과와 뉴욕주립대(버팔로)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과 더불어 1970년대 후반부터 한국 사회 지성의 세 축을 담당한 '세계의 문학' 편집위원으로 장기간 활동했으며, 이화여대에서 교수로 오래 재직하다 2006년 연세대 특임교수직에서 퇴임하면서 교직 생활을 마감했으며 현재 예술원 회원이다.

원숙한 지성과 날카로운 분석력으로 쉼없이 저술활동을 펼쳐온 유종호는 지난해에도 시론집과 에세이집을 동시에 펴내는 등 여전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요즘도 '현대문학'에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는 그는 올해는 시집도 낼 예정이다. 소설도 쓰고 싶다는 그는 "그동안 정치적인 사건들을 겪어오면서 느낀 소회를 제대로 전달하려면 소설이라는 형식이 필요한 것 같다"면서 "기억이 더 흐릿해지기 전에 올해는 집필에 착수하겠다"고 말했다.

정리=이민재 기자, 사진=정병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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