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원하거든 통일 포기해야"…마이클 브린의 '역설'

정치 / 강혜영 / 2020-01-10 11:17:52
[2020 새로운 10년을 말하다] ④ 언론인 마이클 브린
"한국, 보수와 진보가 철학적 기반 없이 소모적 논쟁 지속" 
"독재정권에 뿌리 둔 보수세력, 보수가치와 반대로 움직여"
▲ 2019년을 하루 남겨둔 12월 30일 서울 광화문 커피숍에서 UPI뉴스와 인터뷰 중인 마이클 브린 전 주한 외신기자클럽 회장. 인터뷰는 한 시간 남짓 주로 영어, 간간이 한국어로 진행됐다. [정병혁 기자]


대담 = 류순열 편집국장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외국인. 마이클 브린(67) 전 주한 외신기자클럽 회장을 설명하는 레토릭이다. 십수년간 더 타임스, 가디언 등의 한국 특파원을 지냈고, 37년째 서울에 살고 있으며, 한국에 대한 저술이 활발했던 그를 출판업계는 이렇게 한 줄로 압축했다.

레토릭 그대로 그는 한국과 한국인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했다. 한국 정치에 대해 "보수와 진보가 철학적 기반 없이 소모적 논쟁을 지속하고 있다"고 촌평했다. 특히 "보수의 경우 보수의 가치와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수세력이 독재정권에 뿌리를 두고 있어 민주주의 사회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자유의 가치를 제대로 체화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남북 통일에 대한 생각과 전망은 멀고, 어두웠고, 역설적이었다. "G2(미국,중국)가 통일을 나서서 도울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면서 "통일은 한국인들이 직접 풀어야 하는 과제"라고 말했다. 남북 관계에 대해선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미안하지만 북한을 향한 노력은 실패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역설적인 대목은 "통일을 하려면 통일을 포기해야 한다"는, 모순적 발언이었다. "북한을 남한의 영토라고 명기한 대한민국 헌법은 북한에 위협적이다. 개헌을 통해 남한이 통일을 포기해야 한반도 평화가 찾아오고, 역설적으로 통일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3조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북한이 남한의 위협을 자양분 삼아 독재정권을 공고히 하고 있어 변화로 나아가지 못하는 '더블 딜레마'적 상황에 처해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렇게 통일을 포기하면 2020년대에 통일이 이뤄질까.

그는 남북 통일은 "2028년 프로세스가 시작돼 2068년 완성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멀고 먼 얘기인데, 그는 "40년 단위로 한국이 격변했다는, 나만의 이론"이라면서도 "근거 없는 판타지"라고 말했다. 사실 2020년대 통일이 이뤄질지 누가 알겠는가. 그 역시 "솔직히 말하면,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마이클 브린과의 인터뷰는 2019년을 하루 남겨둔 12월 30일 서울 광화문 한 커피숍에서 한 시간 가량, 이어 이란이 미국 주둔 이라크 공군기지에 미사일을 날린 지난 8일 전화로 두 차례 진행했다.

▲UPI뉴스와 인터뷰 중인 마이클 브린 전 주한 외신기자클럽 회장. [정병혁 기자]


ㅡ미국·이란 충돌 사태가 북미 관계에도 영향을 줄 것 같은데

"2018년 트럼프는 북한에 위협적인 언행을 일삼았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계자들까지도 자칫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상황은 바뀌었고, 북한은 대화의 장으로 나왔다. 하지만 양국 대화는 결과적으로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고, 북한은 트럼프의 과거 전쟁 발언들이 허세에 불과한 것(bluffing words of war)이자 레토릭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이란 사태는 실제로 트럼프가 전쟁을 실행할 역량이 있음을 북한에 보여주는 경고성 효과(cautionary effect)가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이번 사태로 미국에 다가가거나 대화하려고 하진 않을 것이다."

ㅡ김정은과 트럼프의 관계는 이미 정상회담 이전으로 회귀한 듯 하다

"소련의 붕괴 이후 1990년대부터 북미 관계는 냉온탕을 오갔다.북한에서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이런 부침이 지속할 것이라고 본다. 트럼프는 정치인이나 외교관이기보다는 뉴욕 사업가이기 때문에 협상 방식이 매우 다르다. 그는 일단 주먹으로 얼굴 친 뒤 미안하다고 말하는 스타일이다. 상대에 대한 예의를 갖추거나 친절하게 굴지 않는다. 다만 친구라고 여겨지는 상대에게는 한없이 포용적인 태도를 보인다. 트럼프는 2017년에는 북한에 주먹을 휘둘렀고 2018년에는 친구로서 끌어안는 태도를 취했다. 2020년은 알 수 없다. 다만 비즈니스맨인 트럼프에게 전쟁은 매우 두려운 것이므로 전쟁 만큼은 피하려고 할 것이다."

ㅡ쿠데타가 아니라도 북한이 변할 수 있지 않은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에 걸친 북한 리더십에는 큰 차이가 없다. 최고 지도자가 바뀔 때마다 이번엔 다를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다 똑같았다. 김씨 일가가 물러나지 않는 한 큰 희망은 없다고 본다. 러시아를 보면, 스탈린이 죽고 후르쇼프가 지도자가 된 이후 그는 공개적으로 스탈린이 틀렸다고 선언했다.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과거를 딛고 나아갈 수 있었다. 당시 김일성도 깜짝 놀라 가족 구성원을 후계자로 선정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됐을 것이다. 가족은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ㅡ스위스 유학파인 김정은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 않은가
 

"북한은 '더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첫째 독재국가에서 민주주의 국가로 전환하는 어려움이다. 지나친 자유를 허용하게 되면 체제가 붕괴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둘째, 가장 가까운 이웃인 남한이 위협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남한 헌법은 한반도와 부속도서를 영토로 규정하고 있다. 북한이 남한의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되는 것 자체가 위협이다. 북한은 독재정권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위협을 활용한다. 위협이 제거되면 독재의 정당성이 약해진다. 그러니 아이러니하게도 한반도 평화를 원한다면 통일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The irony is if you want peace give up unification)."

ㅡ평양에도 여러 번 다녀오신 걸로 안다

"1990년대에 몇 번 다녀왔다. 김일성 주석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스무 명 남짓 사람들과 점심을 먹었다. 당시 김일성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영국 여왕과 만났다고 가정해보자. 여왕이 "우리는 독일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지금은 극복한 상황"이라고 말한다면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할 거다. 김일성이 그랬다. 그가 하는 말의 대부분이 일제강점기 당시의 투쟁에 대한 얘기였다. 당시 일본인들도 배석했는데, 그들에게 굉장히 예의를 차렸다. 일본 친구들에게 미안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일제와 싸웠다고 조심스럽게 말하던 기억이 난다."

ㅡ2020년대에 통일이 가능하진 않을까

"솔직히 말하면 아무도 모른다. 유럽 사회주의 진영이 붕괴했을 무렵인 1991년 미국 외교관 2명과 한국인을 포함한 외신 기자 3명이 통일 시기를 두고 내기를 한 적이 있다. 그 중 한국인 기자는 1995년에 통일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5명 중 가장 보수적인 대답이었다. 미국인들과 나는 1~2년 안에 될 것이라고 봤다. 체코, 헝가리, 루마니아에 이어 북한도 금방 무너질 것이라고 본 거다. 내 예상 적중률이 썩 높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든 예시다."

ㅡ통일이 쉽게 이뤄지겠나. 신뢰 회복 등 상당한 준비 과정이 필요한 일인데

"40년 단위로 한국이 격변의 시기를 겪어왔다는, 나만의 이론이 있긴 하다. 1905년부터 1945년 8월까지 일제 강점기, 1948년부터 1988년까지 독재 시대를 겪었다. 1988년부터 2028년까지를 민주 시대라고 보고, 이 패턴이 지속할 경우에 2028년 통일 프로세스가 시작돼 2068년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내 생각일 뿐, 아무런 근거가 없는 판타지이다."

ㅡ한국 정치판에서 보수와 진보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보나

"한국 보수와 진보의 철학적 차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는 혼재된(mixed) 경우가 많다. 진보가 철학적 기반을 조금 더 가지고 있기는 하다. 진보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부의 분배를 핵심 가치로 여긴다. 그러다 보니 증세와 정부의 규제가 더욱 필요한 것이다. 보수는 일반적으로 자유를 수호하는데, 한국 보수는 그렇지 않다. 이것이 한국 보수의 문제다. 한국은 보수를 떠올리면 정부의 통제가 연상된다. 한국 보수가 그 뿌리를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사회로 넘어오면서 이들은 자유를 지향한다고 말은 하지만 자유를 수호하는 방향으로 철학을 명확하게 선회하지 못했다."

ㅡ구체적 예를 든다면

"박근혜 정권 시절 통합진보당 해산 사태를 들 수 있다. 당시 헌법재판소가 통진당을 사회주의 추종 정당으로 규정해 해산명령을 내렸다. 특정 정당이 사회주의를 추종하느냐의 여부는 스스로 정의한 것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통진당은 자신들이 좌파는 맞지만 사회주의자들은 아니라고 밝혔다. 이 같은 상황에서 통진당 해산 명령이 내려져 상당히 놀랐다. 어리석은(kind of stupid) 결정이었다고 본다. 한국 보수가 자유를 지향한다면 당시 새누리당은 통진당 해산에 반대했을 것이다. 진정한 보수는 자유를 도모해야 한다. 한국의 옛 보수 진영은 입으론 자유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유가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ㅡ한국사회는 여전히 좌와 우, 보수와 진보 이분법 대결 구도다

"깊은 철학적 바탕이 부재한 상황에서의 논쟁과 갈등은 무의미하다. 자유한국당의 입장은 일관성이 없고 철학적 기반이 없다. 오래된 예를 들자면 1950년 조봉암 선생은 북한과의 대화를 제안했다가 처형당했다. 그러나 10년 뒤 정부는 북한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철학적인 고찰에 근거를 둔 결정이 아니라 누가 집권했느냐에 따라 정책이 달라지는 것이다."

ㅡ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을 정의한다면

"고전적 자유주의자(Classical liberalist)에 가깝다. 나는 최대한 자유를 수호하기를 원한다. 이런 측면에서는 보수주의자다. 개인의 책임도 중시한다. 내가 실패하면 그것은 시스템이나 타인의 잘못이 아닌 내 탓으로 돌린다. 정부는 최대한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 역시 보수적인 입장이다. 동시에 정의와 부의 분배 등 진보 가치도 중시한다. 투표할 때도 그때 그때 다르다. 외국인이라 투표는 못 하지만 만약 할 수 있다면 1987년에는 김영삼을, 그 다음 대선 때도 김영삼, 그 다음은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순으로 투표했을 것이다. 지난 대선 때는 안철수를 뽑았을 것이다."

◆마이클 브린은

'더 타임즈', '가디언', '워싱턴 타임즈' 등에서 십수년간 한국 특파원을 지냈다. 영국 출신으로 예멘, 독일 등에서 자랐다. 한국엔 1982년도에 처음 왔으며, 서울에서 37년째 살고 있다. 고국보다 한국에서 산 기간이 더 길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외국인'이라고 불리는 배경이다. 조선일보 등 국내 언론에 한국의 사회, 문화, 정치 이슈에 대한 칼럼을 싣고 있다. 저서로 <한국을 말한다>, <한국, 한국인>, <Mr. 김정일> 등이 있다.

정리=강혜영 기자, 사진=정병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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