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영 칼럼] '무라(村) 사회'와 그 공범자들

사회 / 이원영 / 2020-01-22 11:54:18
아주대병원 사태의 본질은 '돈'
폐쇄적 조직 문화는 썩기 마련
내부 개혁 목소리 응원 보내야
"무라와 그 구성원은 기득권 수호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는다. 풍파 요소를 철저하게 억눌러 현상 유지를 꾀한다. 무라에 불상사가 일어나도 외부에 알리지 않고 책임 추궁도 흐지부지 얼버무린다."

일본의 방사선과 의사 나토리 하루히코 박사가 '건강의 배신'이라는 책에서 현대의료계를 질타하며 내뱉은 말이다. 환자의 입장을 고려하기보다는 약과 검진을 남용하며 병원과 의사의 이익을 먼저 추구하는 현대 의료의 생태계에 분노한 것이다.

'무라(村)'는 마을을 뜻하는 일본말이다. 일본의 전통 마을(무라)들은 관습을 따르지 않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을 배척하고 내몰았다. 무라 안에는 룰에 철저히 복종하는 사람들끼리 공생했다. 이 전통은 사무라이 정신과 전체주의 문화로 흘렀다. 현대 일본 사회가 조용하고, 데모도 없고, 순종적이며, 자민당 일당독재가 이어지고 있는 배경엔 이 같은 폐쇄적 무라 전통이 자리잡고 있다.

하루히코 박사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

"무라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하는 인간은 철저하게 배척한다. 그래서 자기만의 생각이 있어도 쉽사리 내놓지 못하고 무라의 가치관에 맞춘다. 무라의 규정을 충실하게 따르면서 결국은 생각도 하지 않고 주장도 안 하는 무라 사람이 되어 간다."

그의 말을 듣자면 무라 문화가 일본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도 곳곳에 무라가 있고, 무라의 이익을 흔드는 자들은 '왕따'가 되어 손가락질받거나 조직을 떠나고 있다.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이국종 교수와 병원 측과의 갈등 국면을 보면서 오로지 돈만을 추구하는 현대병원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이 교수에게 막말을 퍼부어 논란이 되고 있는 아주대 유희석 의료원장은 철저하게 병원 비즈니스 논리에 충실했다.

정부의 보조금은 몇십억 원씩 받았지만, 외상센터 의료진은 충원되지 않았다. 일반 병실이 남아도는데도 외상환자에겐 병실을 내주지 않았다. 구차한 이유를 대고 있지만, 의료계 내부를 잘 아는 사람들은 '돈 안 되는 일을 자꾸 벌이는 이국종이 병원에서 왕따를 당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 교수는 여러 차례 외상센터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생명이 촌각을 다투는 환자들을 위해 병상과 의료진 확충을 요구했으나 병원 측은 시큰둥했다. '비용은 많이 들어가고 돈벌이는 안 되는' 외상센터가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의료계의 내부고발자 역할을 서슴지 않고 있는 성형외과의 이주혁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주대병원 측의 처사를 이렇게 비판했다.

"장기 파열로 숨이 멎어가는 외국인 노동자의 목숨? 산업 현장에서 추락하여 출혈로 실려 와 빨리 수혈을 해야 하는 노동자? 판자촌에 살다가 큰 화재를 당해 빨리 CPR과 고압산소치료를 해줘야 하는 독거노인? 유희석 원장 같은 분한테 중요한 건 그런 거 아니에요. 사람 목숨도 삶도 불쌍한 사람들 치료도 그 무엇도 아니에요. 돈이에요. 이국종 교수는 사람 목숨을 살리려 하는 분이고, 유희석 씨는 죽자 살자 재단을 위해 돈을 벌려고 하는 분이니 어떻게 둘이 사이가 좋겠어요?"

이쯤 되면 왜 이국종 교수가 센터장을 그만두겠다고 했는지 해답이 나온다. 외상센터에 엄청난 예산을 지원한 보건 당국은 왜 이렇게 파열음을 내고 있는 외상센터 운영을 들여다보지 않는지, 그들도 혹시 '병원 무라'의 일원은 아닐까.

무라 사회가 어찌 병원만이랴. 검찰개혁을 위해 10여 년 째 내부에서 외로운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임은정 검사도 '검찰 무라'의 견고한 이익공동체의 실체를 폭로하고 그들의 자정 노력을 촉구하고 있다.

임 검사 역시 조롱과 외면 속에서도 그들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 문화는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 임 검사에겐 '검찰 무라'에 충성한다는 말로 들려 진저리치지 않았을까.

내부 개혁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조직원만의 기득권 유지를 최고 가치로 구현하는 조직은 언젠가 곪아 터지기 마련이다.

그런 조직의 앞날을 걱정하고 앞장서 개혁의 목소리를 내는 소수자들이 어디든 있다.

이런 양심의 소리를 내는 내부 고발자들이 비록 안에서는 외면당하더라도 밖에서는 그들을 응원해줘야 한다. 그래야 내부 개혁의 씨앗이 되어 사회가 좀 더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역사는 늘 그런 방식으로 진화해 왔으니까.

서강대 교수를 거쳐 인문학 공동체 '건명원' 원장을 맡고 있는 최진석 교수도 저서 '탁월한 사유의 시선'에서 말한다.

"종속적인 주체는 이미 있는 이념에 빠져 그것을 지키는 데에만 힘을 쓰기 때문에, 그 이념으로 지탱하는 공동체를 정해진 모습 그대로 유지하려고만 하지 공동체의 질적 진보를 가능하게 하는 돌출적인 시도를 못 한다."

많은 무라에서 외롭게 '공동체의 질적 진보'를 위해 '돌출적 시도'를 하고 있을 제2, 3의 이국종, 임은정이 시들어버리지 말라고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 이원영 사회에디터

UPI뉴스 / 이원영 기자 lw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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