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여기, 남몰래 숨겨 놓은 신부가 있다"

문화 / 조용호 / 2020-01-28 14:14:43
제주에서 만난 수선화…봄을 마중하는 여신
추위를 이기고 어둠 속에서 쏘아올리는 희망
역대 문인들이 노래한 수선화에 담긴 정한
"가슴에 종을 달고 두 손 모으는 언니 같은 꽃"
▲ 제주 한림공원에서 만난 수선화 군락. 동백과 어우러진 수선화들이 "파아란 혀끝으로 봄을 핥으려고" 애쓰고 있다.


아직 바람은 맵찬데 추위는 아랑곳없이 미리 봄을 마중 나오는 꽃들이 있다. 수선화도 이들 중 하나인데 매화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편이다. 추위와 외로움을 딛고 피어 고고한 절개와 기상의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꽃으로, 매화와 쌍벽을 이루는 수선화다. 매년 새해가 열리면 일월의 꽃으로 각광받는 수선화를 보기 위해 제주에 내려갔다. 난초처럼 가늘고 긴 비췻빛 이파리를 흔들며 청초한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수선화들이 맑고 서늘한 향을 풍기며 환하게 객을 맞았다. 열악한 주변 환경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피어서 많은 문인들이 제 마음을 투사해 어여삐 여긴 꽃이다.

"지금 거리에는/ 하늘은 음산히 흐리고/ 땅은 돌같이 얼어붙고/ 한풍(寒風)은 살을 베고/ 파리한 사람들은 말없이 웅크리고 오가거늘/ 이 치웁고 낡은 현실의 어디에서/ 수선화여 나는/ 그 맑고도 고요한 너의 탄생을 믿었으료"

청마 유치환(1908~1967)이 노래한 '수선화' 한 구절이다. 땅은 돌같이 차갑고 매서운 바람은 살을 에는데 춥고 허름한 현실 어느 귀퉁이에서 수선화는 피어나는가. 청마는 "그 순결하고 우아한 기백은/ 이 울울(鬱鬱)한 대기 속에 봄 안개처럼 엉기어" 있고 "그 인고하고 엄숙한 뿌리는 지핵(地核)의 깊은 동통(疼痛)을 가만히 견디고 호을로 묻히어" 있다고 읊었다. 땅속 어둠 속에서 구근으로 견디다가 꽃대를 내밀어 추위 속에서 만개하는 수선화의 생태를 두고 한 말이다.

▲ 흰 꽃잎 여섯 장 위에 '솜병아리 주둥이' 같이 자리잡은 수선화 꽃송이. 수선화는 "어린 연잎처럼 오므라진 흰 수반에 암탉 모양으로 앉아 있다"고 신석정 시인은 묘사했다. 

 
소설가 공선옥은 단편 '피어라 수선화'에서 모든 생명이 움트는 곳은 어디나 모두 한결같이 깊고 어두운 곳이라고 했다. 땅속 어둠을 견디지 않고서는 피어날 수 없는 수선화에 기대어, 공선옥은 이 소설에서 불우한 성장기를 보낸 여자아이에게 희망을 선물했다. 그 여자가 성장해 원치 않은 아이를 뱃속에 품은 채 자살을 시도하다가 어린 시절 고픈 배를 부여잡고 잠 속으로 꾸역꾸역 기어들어갈 때 큰어머니가 별을 보며 중얼거리던 말을 떠올린다. "영판 수선화 맹이네." 큰어머니는 별에서 수선화를 보았다. 땅속 어둠 속에서 스스로 분열하여 번식하는 수선화 구근이 매서운 추위일랑 가볍게 무시해버리고 지상으로 찬란하게 쏘아 올리는 그 꽃.

수선화에서 별을 연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서양 수선화들은 꽃잎이나 꽃받침 모두 노란 빛깔이다. 영화 '빅피쉬'에서는 허풍쟁이 아버지가 전해주는 프러포즈 배경에 등장한다. 미국 여러 주에서 공수해온 노란 수선화를 바다처럼 깔아놓고 그 꽃바다에서 창문을 올려다보며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닥터 지바고'에도 노란 물결 수선화가 등장한다. 지바고가 오지의 별장에서 봄을 맞으며 노란 수선화밭에서 떨림을 느끼고 희미한 희망을 품는 장면이다. 가수 양희은이 부른 번안곡의 수선화도 '황금빛 일곱 송이'다.

수선화는 공식 분류시스템으로 나누어진 품종만 3만2000종 이상 등록돼 있을 정도로 종류가 다양하다. 한국에서 볼 수 있는 토종 수선화들은 흰 바탕에 노란 점처럼 찍혀 있는 꽃들이 대부분이어서, 멀리서 보면 흰 나비들이 춤추는 것 같다. 노랑이 강조되기보다는 희고 정갈한 이미지에 가깝다. 제주에 내려가 수선화 축제가 한창인 한림공원에서 본 수선화들은 흰 꽃잎 위에 노란 병아리 부리 같은 꽃이 가운데 피어난 모양이다. 서양에서 중국으로 전래됐다가 다시 남쪽 바다를 통해 흘러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 품종이다. 제주 해안가에 자생하는 제주수선화는 흰색 꽃잎에 노란색 수술이 겹으로 피며 향기도 좋다.

▲ '초록빛 스커트'를 입은 수선화들이 '가슴에 종을 달고' 기도를 하고 있다.


"초록빛 스커트에/ 노오란 블라우스가 어울리는/ 조용한 목소리의/ 언니 같은 꽃//  해가 뜨면/ 가슴에 종(鐘)을 달고/ 두 손 모으네// 향기도 웃음도/ 헤프지 않아/ 다가서기 어려워도/ 맑은 눈빛으로/ 나를 부르는 꽃// 헤어지고 돌아서도/ 어느새/ 샘물 같은 그리움으로/ 나를 적시네"

이해인 시인의 '수선화'는 다감하고 그리운 '언니 같은 꽃'이다. 흰 꽃잎 여섯 장이 둘러싼 가운데에 노랗게 앉아 있는 작은 꽃이 종(鐘)처럼 다가오는 것은 수녀 시인에게 자연스러운 연상일 수 있다. 가슴에 종을 달고 두 손을 모아 맑은 눈빛으로  나를 부르는 꽃, 헤어져 돌아섰는데 어느새 다시 그리움으로 나를 적시는 꽃.

한림공원에서 만난 수선화 꽃밭은 먼저 피어난 홍매 청매들과 더불어 이승의 현실과는 유리된, 꿈속에서 부유하는 공간처럼 다가왔다. 다양한 '수선화' 노래들이 소나무 둥치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흘러나와 배회하는데 구름 속을 빠르게 드나드는 해가 수선화 무리 위로 조명을 드리워, 하늘거리는 수선화 꽃대가 흰 나비들과 노란 별들이 어우러져 춤을 추는 장관을 연출했다.
 

▲ 품종이 다양한 수선화는 서양에서는 주로 황금빛이지만,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보이는 한국 산야의 수선화는 흰빛 이미지가 더 강하다.


"물결 가르는 선녀의 먼지 이는 버선/ 물 위에 가볍게 떠 희미한 달빛 밟고 걷는 듯/ 누가 이토록 애끓는 혼을 불러서/ 차가운 꽃으로 심어놓고 수심을 붙였는가"

수선화는 중국 송대에 이르러 문사들에게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시인 황정견(黃庭堅, 1045년~1105년)은 수선화를 물 위의 선녀라고 일컬었다. 수분이 많이 필요한 수선화는 물가에서 자란다. 이러한 생육 조건 때문인지는 모르나 중국에서는 선녀이지만, 서양에서는 나르키소스라고 불리는 꽃이다. 자신의 구애를 외면하자 후일 메아리가 된 에코가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에게 요청하여 나르키소스는 물 위에 비친 자신만을 사랑하다 죽었고, 그 자리에 수선화가 피어났다는 그리스신화에서 유래한다. 꽃말도 자기애, 자신만을 사랑하는 어리석음이지만 자존심, 고결함, 신비로움의 이미지도 함께 지니고 있다.

황정견이 수선화에서 '수심'을 읽은 이래 동북아의 시인들은 수선화에 고난을 견디는 비애를 자주 투사했다.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유난히 수선화를 아꼈다. 일찍이 연경에 다녀온 사신에게 선물로 받은 수선화를 다산 정약용에 보낼 정도로 귀하게 여겼는데, 55세에 제주에 유배와 보니 도처에 수선화가 자라고 있었지만 잡초 취급을 받는 것을 보고 눈물을 지으며 자신의 처지를 투사한 애잔한 시들을 남겼다.

"한 점 겨울 마음 송이송이 둥글어라/ 그윽하고 담담한 기품에 냉철하고 영특함이 둘러있네/ 매화가 높다지만 뜨락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맑은 물에서 참으로 해탈한 신선을 보는구나/ 푸른 바다 파란 하늘 한 송이 환한 얼굴/ 신선의 인연 그득하여 끝내 아낌이 없네/ 호미 끝에 베어 던져진 예사로운 너를/ 밝은 창 맑은 책상 사이에 두고 공양하노라"

▲ 서귀포시 대정읍 추사 유배지 담장 아래에서 만난 수선화. 추사는 겨울에 피는 수선화에 자신의 처지를 투사했다.


한림공원에서 나와 대정읍 추사 고택으로 향했다. 추사관은 휴관일이어서 둘러보지 못했고, 담 아래 수선화들은 아직 푸른 잎만 하늘거릴 뿐 꽃을 매달지 않았다. 하릴없이 돌아서려는데 담 안쪽 모퉁이에 수선화 한 포기가 햇빛을 받아 환하게 피어 있다. 바람에 흔들거리며 담벼락에 그림자 춤을 추는 모양이 아늑하고 다감하다. 

"슬픈 기억(記憶)을 간직한 수선화(水仙花)/ 싸늘한 애수(哀愁) 떠도는 적막(寂寞)한 침실/ 구원(久遠)의 요람(搖藍)을 찾아 헤매는 꿈의 외로움이여// 창백(蒼白)한 무명지(無名指)를 장식(裝飾)한 진주(眞珠) 더욱 푸르고/ 영겁(永劫)의 고독(孤獨)은 찢어진 가슴에 낙엽(落葉)처럼 쌓이다"

추사 이래 이 땅에서 수선화는 아름답지만 서글픈 수심을 간직한 이미지로 자리잡은 듯하다. 함윤수(1916~1984) 시인은 수선화에서 가슴이 찢어지는 '영겁의 고독'을 보았다. 이 시대 대중에게 사랑을 받는 정호승 시인도 '수선화에게'에서 '울지 마라'고 당부한다.

▲ 수선화 군무. 수선화도 무리를 지으니 외로운 이미지보다는 분방하게 깔깔거리는 소녀들 같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의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양희은의 노래로도 잘 알려진 이 시편에서 정호승은 고독을 인류 보편의 양식으로 받아들이자고 제안한다. 새들도, 수선화도, 산 그림자도, 하느님도 모두 외롭기는 마찬가지라고. 윌리엄 워즈워스(1770~1850)도 수선화에서 외로움을 보긴 하지만, 그 고독을 축복으로 승화한다. 시인이 외롭게 방황하고 있을 때 수많은 황금빛 수선화 무리를 보았는데, 그 꽃들을 은하수 별들처럼 빛나며 경쾌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고 묘사한다. 그는 "물결들도 그 곁에서 춤추었지만/ 기쁨에 겨워 반짝거리는 수선화를 따라갈 수 없었다"고 경탄한다.

"때로, 외로이 길게 누워/ 헛된 공상이나 수심에 젖어 있을 때/ 내 마음에 꽃송이들 섬광처럼 피어나니/ 고독이 주는 축복인가./ 어느새 내 마음은 기쁨에 넘쳐/ 수천수만 송이 수선화와 춤추고 있네."

▲ 제주 대정읍 노을해안로에서 만난 야생 수선화. 

 
한림공원에서 수선화 군무를 보았고, 추사 고택에서도 돌담 아래 외로운 수선화를 운 좋게 발견했으니 제주에 내려온 목적은 웬만큼 달성한 셈이다. 여기에 해안가에서 자생하는 야생 수선화를 만난다면 금상첨화일 텐데, 일몰 시각이 얼마 남지 않아 초조해진다. 대정읍에서 노을해안로를 달리다가 석양의 바다 위를 낮게 나는 새떼를 보고 급히 차를 세우고 해안가로 갔을 때, 바위틈에서 해풍에 시달리고 있는 수선화를 만났다. 잘 가꾼 공원이나 양지바른 돌담 아래 피어난 수선화들처럼 정갈하고 단정한 자태가 아니라, 지치고 헤어진 몸에 머리칼이 어지럽게 흩어진 모습이다. 시인도 이곳 어디쯤에서 저 여인을 만났을까.

"여기 수선화가 있다, 남몰래/ 숨겨 놓은 신부가// 나는 제주 바닷가에 핀/ 흰 수선화 곁을 지나간다// 오래 전에 누군가 숨겨 놓고는 잊어버린/ 신부 곁을"(류시화, '수선화')


UPI뉴스 / 제주=글·
사진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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