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진실과 정의가 조리돌림 당하는 대학 만화경

문화 / 조용호 / 2020-02-03 16:28:56
소설가 고광률 장편 '시일야방성대학'
부실판정 받은 대학 구성원들의 이전투구
신랄한 풍자, 생생하고 풍성한 에피소드
▲ 부실대학 판정을 받은 대학의 구성원들이 이전투구하는 현실을 '시일야방성대학'에 담아낸 소설가 고광률. 그는 "잘못된 지배에 대해 최고 지성인이라는 교수들이 침묵을 하면 대학은 물론 그 사회는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


"오늘날 대학 문제라고 하면 일단 소유주와 경영진을 문제 삼고 나섭니다. 틀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맞는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릇된 소유주와 경영진에게 시의적절하게 아부하고 물불 안 가리고 맹종하는 교수들이 없다면 대학이 이토록 잘못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다들 그 밑에 빌붙어 호의호식하다가 어떤 문제가 터졌다 하면, 소유주와 경영진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자신들은 빠져나옵니다. 개구리들처럼 울다가 쥐처럼 빠져나오는 것이지요."

소설가 고광률(59)이 최근 펴낸 장편 '시일야방성대학'(나무옆의자)에서 개탄하는 오늘날 대학의 현실이다. 이 소설은 일찍이 황성신문 주필 장지연(1864~1921)이 나라가 망하는 것을 통탄한 글의 제목을 비틀어 대학 사회의 이면을 생생하게 토로하는 작품이다. 고광률은 이 작품에서 다양한 유형의 인물들을 등장시켜 한국 사학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모도일 총장은 아버지가 세금폭탄을 피하기 위해 설립한 일광학원을 이어받아 '일광대학'의 수장으로 살고 있다. 그는 교육부로부터 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가선정돼 부실 판정을 받은 일광대학의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하고 퇴진을 요구하자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분투한다.

아버지 대부터 일광학원 설립에 기여한 주시열 교수와 의대 학장인 윤우 교수는 일광대학의 양대 라이벌이다. 모 총장은 윤우 교수를 끌어들여 주시열의 공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데, 이 과정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소설의 축이다. 구체적인 세목들이 넘치도록 상세하거니와 이는 작가가 30년 넘게 대학 사회에서 직접 경험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고광률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은 물론 여러 사학의 교직원들과도 만나 다양한 사례를 채집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오늘날 대학을 황폐화시킨 주역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교수들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 고광률은 "예전에 대학 교양교육의 병폐가 교련이나 윤리였다면, 이즈음은 틀만 빌려서 본질을 훼손한 채 적용하는 '융·복합'이라는 트렌드"라고 말했다.


"많이 배웠다는 이유만으로 대학 개혁의 주체가 자신들이 되어야 한다며 이를 당연시합니다. 중이 제 머리 깎겠다는 것이요, 자기 자체가 무오류라고 주장하는 오만한 짓이지요. 재벌의 소유주와 최고 경영진을 탓하면 정의롭고 공의로운 재벌개혁이 되나요. 생각 있는 소비자들이 노력을 해야지요. 대학도 교수가 자발적으로 노력해야 하는데 하지 않으니 이제 학부형들이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부는 오늘날의 대학을 만든 장본인이니 당최 믿기가 어렵지 않겠어요."

5년 전부터 준비했다는 이 소설은 사실 그가 현장에서 쌓아온 내용들이기에 오래 전부터 배태된 셈이다. 풍자적인 문체와 생생한 인물 묘사가 시종 흥미롭다. 소설 출간을 계기로 지인들과 출판을 기념하기 위해 지방에서 올라온 그는 "대학 위기의 원인이 교수들에게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우리시대 최고 지성으로 뭔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야 할 사람들인데 오히려 밖으로부터 개혁을 요구받는 현실이 웅변한다"면서 "지금 대학에는 사실상 학문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시류에 영합하는 '융·복합'이라는 명분에 압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광률은 이 소설에서'융·복합'을 여러 곳에서 풍자적으로 사용한다. 이를테면 모도일 총장은 "늘 유언비어를 첩보인 양, 첩보를 유언비어인 양 둔갑시켜 보고하는 놈들 때문에" 힘들었는데 이는 "첩보와 유언비어가, 비빔밥도 아니고 폭탄주처럼, 융·복합처럼 서로 스며들어 있어서 분별해 내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고 쓴다. 아울러 "융·복합을 부르짖는, 근본을 찾기 힘든 다양성을 장려하고 귀히 여기는 세상"에서 "교수들은 학문이 아닌 보직과 또는 정치와 융·복합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고 이어간다. 그가 이렇게 '융복합'을 풍자하는 이유는 "순수한 의미보다는 자신들의 생존수단이나 입지 방편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순수학문이 망했다는 오래된 소문을 이 소설은 구체적으로 실감나게 보여준다.


소설 속 '일광대학'은 "구조개혁을 이유로 영문학, 불문학, 중문학, 일문학, 러문학 관련학과들을 인문대학에서 모조리 뽑아내 경영대학 경영학과 밑으로 밀어넣은 뒤 구조개혁의 편의상 어학 기능만 취하고 문학 기능은 차차 버려 나갈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에 대처하는 교수들을 두고 작가는 "찍소리도 못한 채 눈만 껌벅껌벅하며 납작 엎어져 있던 해당 학과 교수들이 폭풍우가 친다고 한탄했는지, 뒤늦게 들고 일어나 개구리 떼가 울 듯이 그 부당성을 지껄여대며 중구난방으로 성토하는 모습도 가히 꼴불견이었다"고 쓴다.

이 소설은 이른바 '주고박구'의 멤버 고무승, 박영홍, 구본수, 주시열이 벌이는 작태를 풀어가면서 한편으로는 작가의 분신처럼 여겨지는 교직원 공민구를 내세워 중심을 잡는다. 공민구는 피아를 구분하지 않는 독립군이자 자유인이고, 자신만의 원칙과 소신으로 무장된 캐릭터이다. 총장에게 바른말을 했다가 4년이나 지난 뒤 그 말이 간신들에 의해 재해석돼 고초를 겪는다. 소설 속에서 지방 군소 언론의 사이비기자의 협박을 무마하기 위해 마련된 술자리 대화야말로 이 작품의 단면을 제대로 만져볼 수 있는 사례일 터이다.

"삼십여 년 전부터 생겨난 당신네와 같은 고만고만한 군소 언론사들도 지금은 유기된 강아지들처럼 길바닥에 쫙 깔렸잖소. 문교부가 1980년부터 지방 곳곳에 무턱대고 싸질러 놓은 대학도 당신네들과 마찬가지 신세 아니오. 인구 팔십만이 겨우 넘는 소도시에 대학이 여섯 개요. 이제는 교육부가 대학을 만만하게 보면서 죄인 취급을 하는데, 우리같이 지은 죄가 없는 지방의 군소 대학들은 눈치만 보면서 벌벌 떨고 있소. 이런 살벌한 야만의 세상에서 우리 같은 지방의 지질이들이 서로서로 돕고 살지 않고 아웅다웅하면, 그러면!" "맞습니다, 맞고요. 우리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자 자유 시장 경제를 표방하는 국가요. 회사마다 자기들이 속한 시장에서 고객들을 상대하며 알아서 경쟁하면 될일입니다. 국가기관이 시장에 개입해서 이 회사는 좋다 나쁘다, 싸다 비싸다, 살 수 있네 없네, 기타 등등. 간섭하고 통제하고 평가하고 지랄들을 하면서. 굳이 이지메 같은 짓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오랜만에 낸 소설을 기념하기 위해 상경한 고광률은 "소설은 내 삶보다 위에 있지 않다"면서 "분노할 일이 없으면 소설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광대학 감사실장 봉백구의 열변에 기자가 장단을 맞추자 옆자리에 앉아 있던 접대 여성이 파이팅을 외친다. 이 장면을 정리하면서 작가는 "백구가 볼 때 대한민국 교육부 관료가 지방의 허접한 군소 언론사의 사이비 기자나 접대부들만도 못한 것이었다"고 해설한다. 너무 부정적인 시각으로 일관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고광률은 "소설에 풀어놓은 이야기들은 실제 일어나는 일들의 일부일 뿐"이라면서 "분노 때문에 소설을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내 소설이 불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세상의 도리가 무너지고 잘못된 것들이 정의인 양 행세하는 것에 대해 작가라면 이야기해주는 게 도리"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도 읽는 재미를 돋우는 이 소설을 흥미롭게 따라가다 보면, 작가의 말처럼 한국 사회 대학을 깊이 들여다볼 계기도 덤으로 확보할 수 있을 터이다.

"저는 한 대학에 30년 넘는 세월 동안 재직했습니다. 그 긴 세월 동안 대학 구성원의 이런저런 언행을 숱하게 많이, 그리고 낱낱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언행이 대학의 실체이자 한국 고등교육의 미래였습니다. 교육은 한 나라의 총체입니다. 그래서 덩샤오핑도 교육에는 흑묘 백묘를 도입하지 않았잖아요. 저는 이 소설을 통해 오늘날 대학의 문제가 무엇이고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등을 잘 들여다보시길 바랄 뿐입니다. …글을 많이 아는 지식인들이 그 신분과 지위를 이용하여 어떻게 사실을 뭉개고 진실과 정의를 어떻게 조리돌림 하는지, 그리고 그 책임을 어떻게 벗어나는지, 이 얕은 소설을 통해 깊이 들여다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UPI뉴스 / 글·사진=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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