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차별받지 않은 조선 여인들이 꿈꾼 유토피아"

문화 / 조용호 / 2020-02-10 13:41:19
대하소설 '금강' 전10권 완간 소설가 김홍정
16세기 조선의 100년, 상단과 '소리'와 사랑
소리를 하고 상단 운영하는 여성들이 중심
이즈음 소설은 점점 짧아지는 양상이다. 200자 원고지 400~500장 분량의 경장편도 자주 눈에 띈다. '토지' '태백산맥' '장길산' '객주' 등 밀리언셀러로 각광받던 대하소설은 이제 발붙일 자리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한 권짜리 장편도 부담스러워하는 추세다. 이러한 출판·독서 지형에 우직스럽게 15년에 걸쳐 10권짜리 대하소설을 최근 완간한 이가 있다. 16~17세기에 이르는 100년 동안 금강 유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조선의 사람들과 역사를 담은 '금강'(전10권·솔)이 그것이다. 이 소설을 완간한 작가 김홍정을 간담회 자리에서 만났다.

소설 '금강'은 충청지역 금강 유역에서 일어난 '이몽학의 난'을 모티브로 중종반정(1506) 이후 임진왜란(1592), 후금(後金) 건국(1616), 허균의 죽음(1618)까지 혼탁했던 16~17세기 조선 사회를 전체적으로 조망한다. '조선실록'을 비롯한 여러 사료를 바탕으로 기묘사화, 신사무옥, 을사사화, 기축사옥 등 끊임없는 사화로 사대부들의 권력투쟁이 거듭되던 조선의 정치 현실을 드러낸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당시 피폐해진 민중들의 삶을 실증적으로 담아낸다. 이 과정에 충청도 방언은 물론 북방 사투리까지 당시 사람들의 말을 세밀한 고증을 거쳐 재현해낸 공도 크다.

동석한 솔 출판사 대표이자 문학평론가인 임우기는 "박진감과 실감이 넘치는 방언을 구사한 언어적 능력과 고증에 대한 실사구시적 정신이 돋보인다"면서 "서울 말이나 충청도 말은 기본이고 함경도 북방언어나 일본어뿐 아니라 만주 언어까지 각 지역 언어를 문체로 살려냈다는 것은 언어에 대한 엄청난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 기획하고 꼼꼼한 자료조사를 거쳐 집필을 끝내기까지 15년 걸린 대하소설 '금강' 전10권을 완간한 소설가 김홍정.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ㅡ오랫동안 붙들어왔던 대하소설을 완간한 소감이 어떤가.

"사실 지난달 소설이 인쇄에 넘겨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 느낌이었다. 며칠 동안 잠도 잘 이루지 못했다. 책이 나왔을 때 감동은 이루 말할 수도 없다. 개인적으로 영광이지만 이 작품의 의미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1990년대 이후로 대하소설이 씌어지지 않는 엄혹한 현실에서 과연 '금강'이 독자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갈지 걱정도 됐다. 다행히 주변에서 이구동성으로 격려를 해줘서 요즘은 조금 정신이 든 느낌이다."

대전 출신 평론가 임우기는 고향 후배들로부터 공주 지역 김홍정이라는 소설가와 그가 써놓았다는 소설 '금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를 만나 초고를 넘겨받았다. 임우기는 요즘처럼 소설이 잘 읽히지 않는 시대에 대하 장편을 낸다는 부담이 앞서 솔직히 출판을 거절할 요량으로 소설 속 각 지역 말들을 현지 방언으로 고쳐달라고 요구했는데, 한달 만에 그 작업을 마쳐 다시 원고를 보내오는 바람에 놀랐다고 했다.

ㅡ이 소설을 처음 구상한 계기나 문제의식은 어떤 것이었나?

"2005년 한미FTA 반대 시위가 한창일 무렵 지역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학부모나 지역 주민들이 전부 농사 짓는 사람들이어서 그들의 시위에 같이 참여해 길바닥에서 농민회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학교 앞 '홍산'이 임진왜란 시기 의병들이 가담했던 '이몽학의 난' 발원지라는 사실을 듣게 됐다. 왜군을 상대로 싸우던 사람들이 임금을 향해 거꾸로 역성혁명으로 나아간 배경이 궁금해 추적해보았다. 그렇게 금강 유역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이야기의 끝이 사림파와 훈구파가 대립하던 조선 중종조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백성들이 기대하는 세상을 만들려고 했던 지식인들의 노력, 그들과 결합된 백성들의 움직임, 그들의 숱한 가족들의 이야기가 '금강'에 고스란히 담겼다. 준비 기간이 길었는데 더 이상 늦춰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세월호 참사였다. '이게 나라냐'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는데, 이 문제는 임진왜란 시기 의병들이 창을 거꾸로 들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역성과 도저히 다르지 않았다."

ㅡ연향, 미금, 부용, 수련, 영은으로 이어지는 5부의 각 소제목들이 모두 여성 이름이다. 여성들을 중심인물로 설정한 배경은 무엇인가.

"사실 16세기까지는 조선에서 여성은 남성과 별 차별이 없었다. 조선 성리학이 거대 담론으로 자리잡아 17세기로 넘어오면서부터 여성들이 부엌으로, 안채로 다 들어가게 됐다. 이 시기는 여성들의 활동이 조선사에서 왜곡되는 시점이다. 이 소설의 큰 동기가 왜곡·변형되고 잘못된 것들을 바로 보자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 시기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16세기 왕성하게 활동했던 여성들의 삶이 17세기 조선사에 들어오면 보이지 않는다. 요즘 여성들이 씩씩해진 것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셈이다. 여성에 특별히 방점을 찍었다기보다 왜곡되고 잘못 진행된 것에 대해 바르게 해석하고 되찾아보자는 의도다. 이 소설 속 여성들은 단순히 영웅이라기보다는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모성이 강하면서도 자신의 식구만이 아니라 이웃사람들을 모두 보듬을 수 있는 전형적인 모성을 지닌 이들이다."

ㅡ페미니즘 시각을 떠나 소설 속 여성들이 상단을 이끌며 조선 경제의 한 축을 지탱하는 모습들이 인상적이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 형식을 갖추기 시작한 상단을 되살려놓은 것도 이 소설의 특징 중 하나인데, 어떻게 썼는가.

"16세기 조선 역사 기록을 보면 전국에 '장시'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강이 있는 지역에서 세곡선 200~300척씩 거느리는 공세창을 두어 세금을 거두고 보관했는데, 그 현물들을 배로 실어서 시전과 궁궐로 옮겼다. 아직 보부상 개념이 생기기 전이어서 이를 주관하는 세력을 '상단'이라고 하고, 그 일을 하는 이들을 '발품꾼'이라고 명명했다. 사신단이 오갈 때 이루어지던 국경의 공교역은 물론 묵인 아래 진행되던 교역까지 망라해서 다루었다. 당시 100년 동안 상단의 부상과 그들의 역할을 정리한 셈이다."

▲'금강' 완간 간담회 자리에 동석한 오봉옥 시인(왼쪽)과 문학평론가 임우기 솔출판사 대표(오른쪽).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이 대하소설의 7~10권에는 안면도를 중심으로 소금을 만드는 이야기가 나온다. 천일염을 만드는 방법을 일본으로부터 배우기 전, 특별히 염분 농도가 높은 바닷물을 끓여서 소금을 만드는 이야기다. 작가는 이 소금을 매개로 '팔기군'과 거래하는 밀무역을 비롯해, 팔기군 안에 이 땅을 떠나 자발적으로 합류했던 조선인 중심의 '조선영(營)'의 존재도 풀어놓았다.

ㅡ소설을 이끌어가는 또 하나의 중심이 '소리'라는 평가다. 판소리가 정착되기 전 각 계층의 소리들을 문체로까지 끌어들였다는 평가인데, 어떤 배경인가.

"여성들이 마음껏 서정을 펼칠 수 있는 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니 바로 소리였다. 그 소리가 조선 여인들이 지닌 한의 정서를 온통 담을 그릇이었다. 그네들의 심정을 소리의 가사로 만들고, 기왕이면 소리로 불릴 수 있도록 율격에 맞게 운율을 맞추는 문장을 만들었다. 그렇게 쓰다 보니 저절로 소리가 되었다. 소설 속 사대부들은 자신들이 연희에서 시를 짓는데 현존하는 시는 인용을 했고, 가공인물들의 시는 직접 창작해 넣었다."

임우기는 "소설 '금강'에서 소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주제의식을 이룬다"며 "모든 떠나간 혼들의 소리, 혼을 따라가는 혼의 소리, 혼을 부르는 초혼의 소리들이 어우러진 채로 깊이 흐르는 소설 '금강'은 혼이 혼을 부르고 떠나보내고 다시 부르는 간절한 혼의 소리의 소설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발문에 썼다.


ㅡ각 지역의 방언을 비롯한 당시 언어와 다양한 명칭들은 어떤 고증 작업을 거쳤는가.

"언어학을 전공한 대학 시절부터 방언학에 대한 공부는 늘 해왔다. 고전 문헌에서 단어들을 찾아 카드로 작성해왔는데 그 자료를 이번 소설에 도입한 것이다. 지역에서 사용되는 지명, 벼슬과 관직 이름들도 정확히 고증하려고 노력했다. 예컨대 지금은 경희궁으로만 알고 있는 궁궐이 당시는 경덕궁이었고, 계룡산 동학사는 동계사였다. 독자들 입장에서는 어렵겠지만, 당시 명칭들을 사용하고 주석을 달 수밖에 없었다. 함경도·평안도 방언은 북한말사전을 많이 참고했다. 무녀들이 쓰는 언어는 '무가연구' 인용문들을 참고했다. 감히 말씀드리자면 잡가를 쓸 때는 잡가 형식, 주술문은 무가 형식, 사대부 시연은 한시 형식으로 가려고 노력했다."

ㅡ이 소설이 지금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이들이 바라보는 나라나 사회,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개념은 현대와 다를 게 없다. 그 시대를 사는 이들이 꿈꾸었던 새로운 삶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따라가다 보면, 근본은 지금과 같다. 너무 자본주의에 찌들어 성공과 실패의 기준을 돈으로만 재단하는 건 근본적으로 잘못된 인식이다. 소설에서 상단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상행위로 벌어들인 돈을 공정하게 나누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려고 한다. 그런 것들을 그려보려고 했다. 머릿속 유토피아가 아니라, 현실에서 구현되는 그런 진정한 삶 말이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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