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차박(車泊)문화'의 새 지평을 열다

산업 / 김혜란 / 2020-02-14 14:44:03
캠핑, 펜션 등 예약·장비 챙기기 수고없는 '차박', 새 레저 트렌드 부상
전기차가 주도…소음·진동 없는 냉난방, 저렴한 연료비 등 가성비 '최고'
다양한 주제 '차박' 유튜브…"차박 위해서라도 전기차 사고 싶다"

캠핑에도 미니멀 바람이 분다. 보통 캠핑을 떠난다고 하면 '카라반'(야영용 트레일러)을 빌리거나 '글램핑' 업체를 찾아야 했다. 또 대형텐트, 타프(천막) 등 각종 장비들을 챙기느라 많은 짐을 들고 다녀야하는 수고가 필수였다.

하지만 '내 차'에서 이동과 숙식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차박'(車泊)이 유행을 타면서 번거로움을 덜게 됐다. 직장인 김경하(38) 씨는 "별다른 캠핑 장비 없이 차만 가지고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며 기동성과 간편함이 보장된 차박의 매력을 전했다.

지난해 한국관광공사 '캠핑' 키워드 관련 빅데이터 자료만 봐도 차박에 대한 관심도는 전년보다 71%나 증가했다. 호캉스(호텔+바캉스), 홈캉스(홈+바캉스)에 이어 차캉스(차+바캉스)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은 셈이다.

이런 가운데 '차박 라이프'는 전기차 등장 이전과 그 이후로 나뉜다고 말하는 '차박러'들이 있다. 분당에 사는 두 딸의 아빠 임근준(42) 씨도 그중 하나다.

내과 개원의인 임 씨는 환자를 보느라 바쁜 중에도 '전기차 차박' 예찬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테슬라의 모델X가 차박의 세계를 열었다"고 강조했다.

임 씨는 "예전 차가 7인승 디젤차였다. 오프로드를 다니기에 좋은 차로 만족하고 탔다. 하지만 여름, 겨울엔 덥고 추워서 차에서 자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느 날 한 유튜버가 올린 영상을 보고 전기차는 사계절 내내 차박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엔진차는 시동을 켜야 공조장치를 돌릴 수 있지만 전기차는 그렇지 않다. 여기서 '전기차 차박'의 최대 장점이 나온다. IT 블로거 '나씨'는 "전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소음과 진동 없이 히터와 에어컨을 켠 채 잘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매연이 발생하지 않아 환경을 파괴한다는 부담도 없다. 내연기관 차는 내부로 매연과 가스가 들어오기도 하는데 전기차는 그런 걱정 없이 잠들 수 있다.

▲ 차박 마니아인 임근준 씨가 지인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 자신의 차 테슬라 모델X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임근준 씨 제공]


임 씨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팔콘윙 도어(새의 양 날개처럼 위로 올라가는 문)를 여느 순간 들리는 파도소리나, 숲속의 나무 향…겪어봐야 안다. 결국 또다시 가게 된다"며 자연과 물아일체가 되는 차박의 묘미를 전했다.

차박족(族)들이 말하는 전기차의 매력은 차고 넘친다. 우선 충전비가 기존 내연기관 유류비의 10%~20% 정도라 원거리 여행에도 경제적인 부담이 없다. 또 친환경차 혜택으로 고속도로 통행료가 50% 감면된다.

임 씨는 "병원 지하에 '회사밥'(충전시설)을 만들어, 관리비와 합산해 내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계산은 어렵지만 하루 왕복 출퇴근 80km에 한달 충전비(약 2000km)는 9만 원 정도 든다"고 말했다. 예전 디젤차는 40만 원이 훌쩍 넘었단다.

전기차 유저들 사이에서는 외부 공용 충전소는 '외식', 자택 차고에 충전장치를 갖춘 경우 '집밥'이라는 은어가 쓰인다. 테슬라의 경우 '홈차저(Home Charger)'를 사서 주택 차고 등에 설치할 수 있다. 아파트 단지에서도 입주민 회의를 통해 충전소를 새로 마련하는 일도 있다.

한때 전기차는 '세컨드카 정도로 적당하다'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충전 인프라가 적고, 주행거리가 짧아 장거리에는 불리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기차 오너인 문경렬 씨는 "요즘 나오는 전기차는 1회 완전 충전 시 350km 이상을 달릴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장거리 운행에 있어서 한번 충전으로 얼마나 갈 수 있냐는 의미가 없다"며 "어차피 휴게소를 한 번씩은 들르기 때문에 운전자가 다음 고속 충전 거점까지 몇 시간이나 운전할 수 있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기차 배터리는 주행거리(1회 완충 후)에 따라 1세대 160㎞ 미만, 2세대 320∼500㎞로 나뉜다. 2020년 새롭게 등장할 3세대 배터리는 500㎞ 이상을 달릴 수 있다.

임근준 씨는 "차에 '오토파일럿' 기능이 있어 장거리 운전에도 피로감이 덜하다"고 설명했다.  테슬라의 오토파일럿이란 앞차와의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가는 크루즈 기능과 차선의 가운데로 핸들을 유지하는 장치이다. 다른 완성차 업체들도 '스마트 크루즈', '어댑티브 크루즈' 등의 이름으로 주행 보조 장치를 갖추고 있고, 그 기능도 점차 향상되고 있다.

▲ 임근준 씨가 테슬라 모델X에 매트리스를 깔아 차박을 하기 위한 사전 준비를 하고 있다. [임근준 씨 제공]
▲ 포드의 머스탱 전기차를 이용하는 야영객들이 전면 트렁크인 '프렁크'를 이용해 치킨 파티를 즐기고 있다. [포드 제공]


객실(?) 만족도는 어떨까. '잠자리가 불편하지 않냐'는 질문에 임 씨는 "그렇지 않다. 직접 누워봐야 안다"며 차박 필수 아이템으로 '매트리스'를 꼽았다. 그는 "전기차 중 모델X 내부가 가장 넓기 때문에 이만큼 편안한 차도 없는데 뒷좌석을 접고 매트리스를 깔면 된다"고 전했다. 모델X는 테슬라의 스포츠유틸리티차(SUV)로 5인승, 6인승, 7인승으로 나뉜다.

'차박의 8할은 평탄화 작업'이라는 말이 있다. 시트를 접어도 완전히 평평하게 펴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에어매트나 얇은 판자를 사용해 단차(차량에서의 이음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온라인 쇼핑몰에 '차박 평탄화'를 검색하면 각 전기차 브랜드에 맞는 관련 제품이 쏟아진다. 아니면 직접 제작해서 사용할 수도 있다.

또 전기차는 대부분은 앞부분에 엔진룸 대신 150리터의 가량의 '프렁크(front trunk)'가 있어 기존 트렁크에 넘치는 짐을 추가로 수납 할 수 있다. 정 짐이 많다면 루프 박스를 따로 달 수도 있다. 

▲ 니로 전기차 소유자인 한 인스타그래머가 자신의 반려견과 함께 차박을 즐기고 있다. 차박용 텐트와 그늘막 등 다양한 물품을 활용한 것이 눈에 띈다. [인스타그램 사용자 '5tagonia' 제공]


현대기아차의 코나와 니로, 재규어 I-PACE, BMWi3, 벤츠 EQC, 닛산 리프 등도 2열 시트를 활용할 수 있어 차박이 가능한 전기차로 꼽힌다.

2018년에는 극지탐험가 마레크 카민스키가 닛산 리프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90일 동안 실크로드를 횡단하기도 했다. 195㎝ 장신인 그는 "리프가 소형차지만 널빤지를 깔면 최대 220㎝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유튜버 판테타가 세단 전기차 역시 차박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유튜버 판테타 제공]
▲ 기자가 테슬라 모델3의 뒷좌석을 접은 채 트렁크 방향으로 다리를 뻗은 채 누워있다. [김상선 디자이너]


세단도 예외가 아니다. 테슬라 모델3, 모델S 역시 2열 시트를 눕힐 수 있다. 실제로 기자가 모델3로 실험한 결과 넉넉하게 몸을 눕힐 수 있었다. 루프 글라스로 보이는 외부 풍경은 덤이었다.

▲ 유튜버 '방도날드'가 자신의 차량인 전기차 코나에 확장형 텐트를 설치하고 있다. [유튜브 '방도날드' 화면 캡처]
▲ 유튜버 '방도날드'가 강원도 동해 사천에서 차박을 하면서 주변 풍경을 영상으로 담고 있다. [유튜브 '방도날드' 화면 캡처]


코나 오너인 유튜버 '방도날드'는 트렁크를 연 채 사용하는 '확장텐트'나 후방에 놓고 쓰는 '도킹텐트'를 이용해 소형 SUV의 한계를 극복했다.

그는 '공영주차장에서 퇴근박', '계획 없이 방어 먹으러 떠나기' 등 다양한 주제로 차박 리뷰를 만든다. 댓글을 보면 '차박 때문에 전기차를 살까 한다'는 반응이 많다.

보통 '여행'하면 '마음먹고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지만 전기차로 인해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지 떠날 수 있게 됐다. 양가희(가명) 씨는 "예전에는 여행할 때 계산기 두드리느라 최저가 보장 사이트나 앱을 참고하는 등 머리가 아팠다"며 "그런데 이제는 경제적인 부담 없이 언제, 어디든 떠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 네이버 '전기차 동호회'에서도 차박이 인기 주제다. [네이버 카페 캡처]


그러면서 "전기차 동호회 내 차박 모임이 있는데 '웃돈 없이 오션뷰를 즐겼다', '방어회가 먹고 싶어서 급 강릉여행을 떠났다' 등의 후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고 전했다.

▲ 임근준 씨의 두 딸이 강릉 차박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곤히 잠에 든 채 차에 타고 있다. [임근준 씨 제공] 
▲ 임근준 씨가 테슬라 동호회원들과 함께한 차박에서 '불멍'(불 놓고 멍때리기)을 즐기고 있다. [임근준 씨 제공]


지난 7개월간 임근준 씨가 모델X와 함께한 거리는 2만4000km 정도다. 그간 적지 않은 곳을 다녔다는 임 씨는 "2019년 6월 초 차를 인도 받은 후 그해 7월 첫째 아이와 전북 군산을 다녀왔다. 8월에는 테슬라 동호회인 'TOC'의 다른 가족들과 가평으로 떠났는데 당시 11명의 딸들이 모였다"고 전했다.

그 외에도 고성, 속초, 안동, 둔내, 강릉 등을 다녀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냐는 질문에는 "각각의 추억들이 모두 좋아서 도저히 못 뽑겠다"는 말을 남겼다.

실제로 그가 TOC 카페에 올린 사진을 보면 차박을 함께한 회원들은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불멍(불 놓고 멍 때리기)'을 즐기고 있었다. 이들은 "이게 뭐라고. 이거 하나로 저렇게 즐거워 할까"라며 여운을 남겼고 임 씨는 "이런 행복을 위해서 테슬라를 산 거 같다"고 적었다.

글램핑
'화려한'이라는 뜻을 가진 '글래머러스(glamorous)'와 '캠핑(camping)'을 합한 말이다. 자연 속에 있는 펜션에서 숙식하는 캠핑 형태다. 음식, 가구, 조리기구, 텐트 등 장비를 따로 챙기지 않으면서도 야영을 즐길 수 있다. 기존 캠핑장에 글램핑장을 따로 만들거나 글램핑만을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업체도 증가하는 추세다.

차박
차와 숙박을 합친 개념이다. 원칙적으로 차를 세울 수만 있다면 어디든 가능하다. 바닷가, 산, 공원, 야영지 등 다양한 곳에서 야영을 즐길 수 있다. 차 트렁크를 열어 뒷좌석을 침대로 삼으면 안락한 침실이 된다. 단 도킹텐트나 확장텐트를 사용하려면 캠핑장이나 야영이 허가된 곳에서 차를 대야 한다.


UPI뉴스 / 김혜란 기자 khr@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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