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국민 분노에 반하는 성범죄 판결, 탄핵감이다

사회 / 권라영 / 2020-04-29 14:40:29
계속된 솜방망이 처벌에 법원 불신하는 대중
정부, 부랴부랴 디지털성범죄 근절대책 마련
2차 가해 지적당한 언론…발맞춰 변화해야
육군이 한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했다. 19세 이원호 일병. 그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에 가담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조주빈, 강훈에 이어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피의자로는 세 번째 신상공개다.

이러한 결정은 여론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텔레그램 성착취방 가입자를 포함한 가담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200만 명 이상 동의했다. "나라가 아이들을 아동 성범죄자들로부터 지켜주지 않을 거라면, 알아서 피할 수라도 있게,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을 낱낱이 공개해 달라." 청원인이 신상공개를 요구한 이유다.

이 분노어린 목소리는 동시에 사법부도 비판했다. 그는 "이 범죄는 대한민국에서 반드시 재발할 것이다. 그 방에 가입된 26만의 구매자가 아무 처벌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관리자나 공급자에 대한 처벌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겠지만"이라고 좌절감을 토로했다.

사법부에 대한 이런 불신은 어디에서 온 걸까. 다크웹 성착취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관련 판결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현재 폐쇄된 '웰컴 투 비디오'는 회원 수가 128만여 명에 달하는 세계 최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사이트였다. 우리나라는 미국·영국 등과 국제 공조를 통해 이 사이트를 수사했다. 운영자가 한국인일뿐더러, 검거된 이용자 310명 가운데 한국인이 200여 명이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지난해 미국 법무부가 이 사건에 대해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아동 성착취물을 받은 한 이용자는 징역 70개월과 보호관찰 10년을 선고받았다. 아동 성착취물을 소지한 혐의로 징역 97개월과 보호관찰 20년을 선고받은 이도 있었다.

그러나 국내에서 재판받은 사이트 운영자 손정우의 형량은 불과 징역 1년 6개월이었다. 이용자들은 대부분 초범이라는 이유로 150만~10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뒤늦게 알려진 사실에 대중은 분노했다. 손정우를 미국으로 송환하라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검찰은 범죄인 인도절차에 돌입했다. 하지만 이중처벌 금지 원칙에 따라 손정우는 미국으로 가더라도 돈세탁 혐의로만 처벌을 받게 된다. 처음부터 미국에서 재판을 받았다면 최소 15년 형은 받았을 것이란 게 법조계의 추론이다.

한국 사법부의 잇단 '성범죄 솜방망이 처벌'은 어디서 연유할까. 법관 뿐만 아니라 남자 기성세대들 사이에선 최근에 잇단 '미투' 문제를 놓고 "옛날엔 그냥 묻어갔고, 죄의식도 없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법관이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광범위한 '성추행문화 집단'에 속했던 이들이 어디 한둘일까. 성범죄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니 분노하지 않고, 그러니 '엄벌'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성범죄에 대응해온 이들은 언론도 성범죄 사건을 대하는 방식이 성숙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공소장에 등장하는 피해들이 언론을 통해 '단독'을 달고 보도되고 있다. 어떤 직업이며, 어떤 영상인지 등. 이 상황은 조주빈 등이 설계한 범죄 구조를 반복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공론화해온 '프로젝트 리셋'은 "수많은 기사, 판례, 정치인들의 언행, 이에 동조하는 댓글, 온·오프라인에서 일어나는 2차 가해 발언이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를 든든히 지키는 방패"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을 내놓고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형량 기준을 높이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하다. 또 시늉만 내는 것은 아닐까.  

다른 것들은 미국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다 따라하려 하면서 유독 성범죄 처벌에 있어서는 미국의 쇠망치 판결을 솜방망이 판결로 바꿔 내는 '자주성'을 보여주는 우리 사법부. 이제 우리 사회는 청원과 시위, 재판 방청 연대 등으로 성범죄를 관대하게 처벌하는 사법부에게 직접 분노를 표출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국민들 눈높이에 부응하지 못하는 판결이 이어진다면 국민들은 그 사법부를 '탄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권라영 사회부 기자

UPI뉴스 / 권라영 기자 ryk@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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