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단톡방 경조사 '슬기로운 부조생활'

오피니언 / 이원영 / 2020-05-29 16:41:34
단톡방에 수시로 오르는 경조사 소식
갈까 말까, 봉투엔 얼마를 '스트레스'
주인공과 추억 있는 소규모만 초청을

선배 A로부터 카카오톡 연락이 왔다. B가 모친상을 당했다고 알려줬다. B는 20여년 전 직장 선배였다. (필자는 20년간 미국생활 후 지난해 귀국했다.) 오랜 타국 생활 후 귀국한 터라 한국의 경조사 문화에 적잖이 당황 혹은 고민하고 있던 터였다.

A에게 답신을 했다. "제가요, 한국으로 들어온 후론 가까운 친구와 친인척만 경조사에 참석하기로 원칙을 정했습니다. 연락 받는 대로 챙긴다고 하면 시도때도 없네요 ㅠㅠ"

A는 자타가 알아주는 마당발이다. 그는 수년 전 퇴직하고 지금은 '백수'다. A에게서 답신이 왔다. "그래요. 나도 백수가 된 이후로는 가까운 분들은 찾아가되 축의금이나 부의금은 제 부친상 때 부의한 사람만 한답니다 ㅎㅎ"

"백수는 봉투 안 내도 되는 문화가 정착되고 있는 건가요?^^"

"제가 제일 먼저 실행하고 있는 거지요. ㅎㅎㅎ"


마당발 A는 분명 이래저래 챙겨야할 경조사가 많을 게 분명하다. 수입이 없는 지금 일일이 경조사 봉투를 낸다면 적잖이 부담이 갈 터인데 어떻게 하나 실은 궁금했다. 그 부분에 그가 먼저 대답을 한 셈이다. 봉투를 안 내고 인사만 하는 데서는 밥을 안 먹는다는 원칙도 정해놨단다. 

가까운 사람이 경조사를 치르니 기꺼이 축하, 위로를 해주어야 하는데 부조금은 낼 형편이 안 되니 그리 알라는 취지다. A는 자신이 이런 문화를 제일 먼저 실천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오랜 타국 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뒤의 고국 생활은 옛 동창, 친구, 동료들과 다시 만나게 되는 즐거움을 안겨줬다. 가입하게 된 단톡방만 열 군데가량 된다. 반가운 것은 말할 나위 없지만 하나 고민이 생겼다. 수시로 단톡방에 올라오는 경조사 소식 때문이다. 축하와 애도 메시지가 넘친다. 참석 못하는 친구들을 위해 혼·상주의 계좌번호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여기서부터 고민이 시작된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 정도로 친한 사이인가, 가지 않으면 섭섭해할까, 돈만 보낼까, 얼마 보내야 적당하지, 내가 부조금 받은 적이 있던가, 부조하고 나서 나중에 되받을 일이 있나, 아예 단톡방에서 빠질까, 빠지면 애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신문에 부음 소식은 왜 내지? 장례식 시간과 장소는 왜 알리지? 아예 내놓고 많이들 오라는 거잖아. 별의별 생각이 든다.


미국인들은 경조사에 주인공과 추억을 공유한 사람들만 초청한다. 가족처럼 축하하고, 애도해줄 사람들이다. 인사치레로 참석하는 건 양쪽에게 모두 어색하다. 그렇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초청하고 대체로 소규모로 친밀하고 밀도 있게 행사가 진행된다.


미국문화에 익숙한 교포 2세 신랑이 결혼식 때 아버지 친구들이 인사치레로 들렀다가 밥만 먹고 자리를 휑하게 만들며 빠져나가는 현장을 보고 울음을 터뜨린 경우도 있었다. 끝까지 남아서 뒤풀이 축제를 함께 즐기는 결혼식 피로연이어야 하는데 '아빠 아는 사람들'이 분위기를 망쳐놓았기 때문이다.


부조(扶助)는 잔칫집이나 상가에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는 의미로 돈이나 물건을 주는 미풍양속에서 비롯됐다. 받은 만큼의 돈을 언젠가는 되갚아야 한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경조문화는 너무 의례화되어 버렸다. 인맥을 과시하는 행사 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수십 년 전에 '허례허식을 버리자'는 게 국가적인 캠페인이었는데 아직도 그 굴레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의 경조사 문화가 은근히 스트레스여서 몇 사람에게 물어보니, 다들 수긍한다. 문제를 인정하지만 그동안 부조로 나간 돈이 있으니 나도 같은 방식으로 수금은 해야겠다는 입장도 보인다.


답이 없을까. 한꺼번에 고쳐질까만, 사회 지도층부터 경조사를 조촐하게 치르는 모범을 보이자. 경조사 소식은 단톡방에 올리지 말자. 신문에도 부고 내지 말자. 꼭 와주었으면 하는 사람에겐 개인적으로 알리자. 부르는 사람도, 가는 사람도 마음을 함께할 사람이 모여야 뜻깊은 경조사 모임이 되지 않을까.


암튼 A 선배의 '슬기로운 부조생활'이 많은 사람들에게 힌트를 주었으면 좋겠다.

▲ 이원영 사회에디터


UPI뉴스 / 이원영 기자 lw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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