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조정래 "창작이란, 자신의 심장에 총을 쏘는 일"

문화 / 조용호 / 2020-07-29 10:35:55
30여년 만에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개정판 출간
오대산에 집필실 마련, 74년 만에 '영혼의 귀향'
'등단 50주년 기념 독자와의 대화'도 단행본으로
"역사와 사회의식 없으면 인간애도 생기지 않아"

소설가 조정래(77)는 1986년 7월, '태백산맥' 집필을 끝내면서 자신의 소설이 염려스러울 뿐이라고 작가의 말을 썼다. 그는 "작가생활을 시작한 이후 우리 민족이 겪은 역사적 수난과 아픔을 쓰고자 했지만 그러한 의식의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다"면서 "의문과 회의와 질문이 많았던 때문일 텐데 그것들을 올올이 간추리고 엮어 베를 짜기로 한 것이 '태백산맥'"이라고 소개했다.

'그 베는 소수인의 치장을 위한 비단이 아니라 다수인의 삶을 감싸는 삼베나 광목이어야 했다. 민족 분단의 삶을 날줄과 씨줄로 엮어 민중의 상처와 아픔을 감싸고자 하는 베짜기 작업이 어떻게 종합되고 통일을 이루어, 잘려진 태백산맥의 허리를 잇는 데 얼마나 기여할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 짐을 나는 지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역사의 소금을 뿌렸으며, 객관의 현미경으로 살폈는지 염려스러울 뿐이다.'

▲오대산 자연명상마을에 집필실을 마련한 조정래. 그는 이곳에서 존재의 심연을 탐색하고 영혼을 들여다보는 만년 작품을 완성할 계획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그로부터 34년이 흐른 지금, 그의 염려가 지나친 겸양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1948년부터 1953년까지 분단과 전쟁 국면의 한국 현대사를 문학의 영역에 끌어들여 1983년부터 집필을 시작해 10권짜리 대하소설로 완성해낸 '태백산맥'은 그동안 800만부 넘게 팔린 초대형 밀리언셀러로 자리잡았다. 그는 이후 연달아 '아리랑'(12권) '한강'(10권)으로 이어지는 대하소설 3부작을 완성했다. 32권에 이르는, 20여년에 걸친 장정이었다. 이 대하 3부작은 모두 합쳐 1600만부가 넘는 판매를 기록하며 한반도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시대의 벽화로 돋을새김됐다.
 
조정래는 지난해 9월부터 올 4월까지 다시 이 작품들을 톺아보며 손보는 작업을 끝냈고, 8월부터 10월까지 한 달 간격으로 3부작 개정판을 순차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올해 등단 50주년을 맞은 그는 번거로운 형식적 기념 행위를 떠나 자신의 지난 작업을 손질하는 일로 대신하는 셈이다. 그는 이제 다시 6년 계획을 세워 존재의 심연을 파헤치고, 영혼을 들여다보는 집필에 곧바로 착수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영혼을 들여다보는 마음 환경을 찾아 집필 공간도 오대산 자연명상마을로 옮겼다. 이곳 명예촌장으로 추대되면서 후일 문학관으로 보존될 집필실도 마련된 것이다. 비가 내리는 날, 오대산 월정사 아래 조정래 집필실 '세심헌'(洗心軒)을 찾았다.

-대하 3부작을 30여년 만에 다시 들여다 본 소감이 어떤가.

"그동안에는 들추어보지 않았다. 이번에 어쩔 수 없이 등단 50주년 기념으로 출판사 제의를 받아 다시 보게 됐는데 잘했다고 생각한다. 예술이란 완성은 없고 끝없이 완벽을 지향하는 것이다. 잘못 썼으면 어쩔까, 사실 두렵기도 했다. 원래 구성 노트 없이 머릿속에 다 집어넣고 써나가는 습관이 있는데, 그 때문에 오류가 있을까봐 걱정했지만 하나도 그런 구석이 없었다. 스스로 대견했고 충족감이 들었다."

 

▲대하소설 3부작 개정판을 펴낼 예정인 조정래. 그는 "오늘 쓰는 작품은 내일 쓸 작품의 적"이라면서 "작가의 숙명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싸우면서 완벽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그동안 이 작품들을 돌아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새 작품을 쓰느라 읽을 틈이 없었다. 작가는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으로 나아가야 한다. 작가의 적은 둘인데, 하나는 나보다 먼저 좋은 작품을 쓴 자들이다. 그걸 넘어서야 하니까 무서운 고통이 따르는 거다. 또한 오늘 내가 쓴 작품도 내일 쓸 작품의 적이다. 그러니 '태백산맥'은 '아리랑'의 적이고, 이 두 작품은 '한강'의 적이었던 셈이다. 작가생활은 이게 무서운 거다. 그래서 좌절하고 절망하고 포기하기도 하는데,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정래는 '아리랑'을 쓸 때는 '태백산맥'을 잊기 위해 애를 썼다고 했다. 이어 '한강'을 쓸 때는 '아리랑'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세 작품들에서 주요 인물들의 성(姓)도 전부 다르게 쓰기 위해 고심했다. 그는 자신의 전작을 잊어버려야 한다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세뇌를 했다. 그래야 같은 노을, 들판을 보면서도 묘사가 반복되지 않고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는 "창작이란 자신의 심장을 향해 총을 쏘는 일"이고 "그 총알이 자신을 뚫고 나가도 죽지 않고 살아내야 한다"고 했다. 이 과정을 극복하는 건 치열한 노력밖에 없다고 했다.

-개정 작업은 어떻게 진행했는가.

"김초혜 시인이 먼저 보고 지적해놓은 걸 죽 보면서 더할 것 더하고 고칠 것 고치는 과정을 거쳤다. 32권의 한 문장 한 문장을 다 읽느라 눈병까지 생겼다. 사건은 변한 게 없고 문장 중심으로 보완하고 다듬었다. 다시 보길 잘했다. 처음 구상할 때 쓰고 싶었는데 그때는 과하다 싶어 자제했지만 다시 보니 처음 생각한 게 맞는 부분들이 보였다."

▲조정래는 하나의 문장을 머릿속에서 세 번 고친 뒤 원고지에 옮긴다고 했다. 등단 50주년을 맞아 출판사에서 모은 다양한 독자의 질문에 대한 답을 정리하는 중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그는 '태백산맥' 마지막 부분에 손승호가 계곡에서 물을 마시다 총에 맞아 죽는 장면을 예로 들었다. 지리산 피아골에 가면 물이 돌면서 흘러내려가는데, 낙엽 같은 사물은 떠내려가지 못하고 빙빙 돌 수밖에 없다. 손승호가 죽는 장면에서 그냥 물에 빠져 피가 번져나갔다고만 썼는데, 그리 쓰면 처절감이 없어 이번에는 다시 처음 생각했던 문장을 덧붙였다.

'물에 둥둥 뜬 시체는 물결을 따라 느리게 맴돌이질을 하기 시작했다.'

좌우의 처절한 복수 속에서 희생된 이들이 철삿줄에 묶인 채 파묻혀 유족들이 통곡 속에서 부패한 가족을 찾아 땅을 파헤치는 비극적인 장면들 같은 경우는 사진을 찍듯이 냉정하게 묘사했다. 그 장면의 비극성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선 감정을 최대한 자제한 채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조정래의 모든 초고는 아내 김초혜 시인의 손을 거쳐 출판사로 넘어간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김 시인이 대하3부작을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김 시인의 끊임없는 '지적'에 지친 조정래가 화가 나서 60장이 넘는 원고를 찢어버린 적도 두 번 있었다. 찢어진 원고를 모두 주워 짝을 맞춘 뒤 일일이 테이프로 다시 붙인 것도 김 시인이었다. 그 원고를 쓰느라 고생하는 것을 곁에 지켜보았기에 버릴 수 없었다고 했다. 김 시인은 "조 선생은 과장법을 자주 쓰는데, 그걸 지적하면 날 보고 의성어 의태어에 무지하다고 반박한다"면서 "결혼 생활 54년 동안 조 선생의 단 한 문장도 잘 썼다고 말해 본 적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태백산맥'을 보면서 눈시울이 붉어질 때가 있고 그때마다 이런 표현은 너무 잘 썼다, 이런 구성은 참 잘했다고 했다"면서 "노인네가 하도 열심히 읽다 보니 안과에 갈 정도였는데 한 번 잡으면 놓을 수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곁에서 이 말을 듣던 조정래는 "이번 개정판의 가장 큰 보람은 아내에게 작가로서 인정받았다는 것"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오대산 집필실 '세심헌' 추녀 아래 선 조정래.

 

-아쉬운 부분은 없었는가.


"다행히 잘못된 건 보이지 않았다. '태백산맥'이 용공서적으로 고발당했을 당시 검찰 수사관이 평론가 12명이 빨갱이 소설이라고 협조했다는 근거를 가지고 수사한다고 했다. 그때의 좌절감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누가 그렇게 협조했는지 기록이 다 공개된다. '태백산맥'이 무혐의를 받았다는 의미는 반공법이 무력화될 정도로,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한국사회에 미쳤다는 방증이다. 정치적 대립과 충돌 국면에서는 문화적으로 접근해서 해결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작가들이 기본적으로 사명감을 절실하게 느껴야 한다. 소설은 인생 이야기인데, 인생은 역사를 포괄하지 않고서는 기술할 수 없다. 역사와 사회의식이 없으면 인간애도 생기지 않고 감동도 없다. 사적인 이야기에만 매몰되면서 쓸 거리가 고갈됐다고 하는 건 작가가 독자들을 스스로 발로 차는 행위이다."

 

조정래는 '태백산맥'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반공주의를 정면으로 돌파하면서 인간주의를 선언한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고발당했는데, 태백산맥에는 사회주의자 빨치산들도 인간이었다는 대목을 여러 가지 장치로 드러내는 장면이 적어도 60~70번은 나온다고 부연했다. 엄혹한 시절이었기에 상징과 은유와 생략을 통해 오히려 더 높은 문학성을 지향하게 된 셈이다.

-소설가로 50년을 살아오면서 여전히 작품들을 생산하는 왕성한 현역으로 남아 있는 건 한국 작단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등단 50주년은 그냥 개정판만 내고 지나가는가.

"특별한 기념은 하지 않기로 했지만, 독자들에게 받은 질문들을 선별해 일일이 답을 하는 '등단 50주년 기념 독자와의 대화'를 단행본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문학 일반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중국과 일본 문제, 친일파 척결, 남북문제 등 다양한 질문들이 출판사를 통해 들어와 있다. 이 중에서 다시 선별해 답을 쓰고 있는 중이다. 예컨대 친일파 척결 질문에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반민특위'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썼다. 친일인명사전에 명시된 죄상에 따라 재판을 하고 그 기록을 남겨야지, 그러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다. 이미 전례를 남긴 독일 프랑스 이스라엘처럼 순리를 따라가는 게 국가와 사회의 정의를 세우는 길이다."

▲조정래는 "'반야심경'을 삼천 번 붓글씨로 쓰면서 존재와 영혼에 관한 소설을 써나갈 계획"이라며 "도중에 하늘에서 오라고 손짓하면 웃으면서 가는 게 인생의 순리"라고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오대산 자락에 마련된 새 집필 공간에서 쓰게 될 작품은 어떤 것인가.

"3년 후까지 실존적인 문제를 다룬 소설을 3권으로 내고, 인간 영혼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품을 다시 3권으로 6년 후에 마무리 할 예정이다. 김초혜 시인은 미리 계획을 발설하고 장담하지 말라고 하는데, 다 실천하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늘에서 오라고 손짓하면 웃으면서 가는 게 인생의 순리 아닌가. 월정사 아래 이곳 집필 공간은 현실의 문제를 다루던 영혼에서 완전히 벗어나 저 두 소설을 쓰기에 아주 적합한 공간이다."


조정래는 소설 집필과 함께 불교 최고의 가르침이 응집된 경전이라고 생각하는 '반야심경'을 붓글씨로 3000번 쓸 작정이다. 반야심경 260자에 없을 무(無)자가 20여 차례 나오는 경전을 하루에 한 번씩 10년 걸려 쓰는 과정에서 영혼에 관한 소설도 빚어낼 예정이다. 그는 대처승이었던 부친 조종현(1906~1989) 시인의 아들로 순천 선암사에서 태어나 4살까지 절에서 살았으니, 74년 만에 다시 부처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했다. 그의 등을 에워싸듯 도열한 창 너머 오대산 소나무들에 내리는 비는 쉬 그치지 않았다.

오대산(평창)=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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