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앳된 기적을 울리고 차체가 건드렁 한다"

문화 / 조용호 / 2020-08-04 17:47:56
'서울에서 원산까지 경원선 따라 산문 여행'
경성~원산 35개 역에 얽힌 산문 모음집
미리 가보는 통일시대 머릿속 여행안내서
"어둠을 달리는 현대문명의 괴물, 우울열차"

'경원선에서 이곳을 지날 때가 가장 유쾌하다. 돌돌 구르고 샘이 솟아오르며 흰 거품을 담뿍 내뿜고 굽이굽이 흘러내리는 이 산협의 물줄기, 각양각색의 고산식물이 한데 엉켜 깊은 총림의 느낌이 있는 산, 여름이면 이곳이 즐거움이련만 겨울 더욱이 밤 풍경의 운치는 야속스럽게 모두 얼었다. 이곳도 치운 밤 얼지 않으려 고요히 고요히 잠들어 오직 덜커덩 덜커덩 나그네의 발자국 소리만이 코 고는 소리와 아울러 이 협(峽)의 호흡을 맞춰준다.'

 

경성에서 원산에 이르는 경원선의 추가령지구대 협곡에는 '삼방협'이라는 역이 있다. 이곳을 지나가는 열차의 나그네는 기차의 덜커덩거리는 소음을 발자국 소리 삼아 객수를 달랜다. 1940년 4월, '삼천리'에 게재된 이은휘의 '밤차'라는 산문의 일부다. 삼방협을 지나면 '고산'이라는 역이 나오는데,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신민요 '신고산타령'의 고장이다.

▲1930년대 중반 한반도 및 만주 철도 지도(왼쪽)와 경원선 노선도. [예옥 제공]



'어랑어랑 어허야 어어야 데헤야 내 사랑아 / 신고산이 우르릉 함흥차 가는 소리에 / 구고산 큰애기 밤봇짐만 싸누나 // 삼수갑산 머루다래는 얼크러설크러졌는데 / 나는 언제 임을 마나 얼크러설크러지느냐 // 어랑어랑 어허야 어어야 데헤야 내 사랑아'

 

구체적인 지명을 떠올리며 가사를 해석하지 않는다면 신고산이란, 분단 이후 70여년이 흘러가는 이즈음에는 고생길이 훤한 험난한 산에 대한 상징적 은유로 해석할 수도 있다. 첩첩산골에 기찻길이 뚫리고, 산골 마을을 우르릉 울리는 기차 소리에 산골 처녀들 마음이 뒤숭숭하지 않을 리 없다. 신고산 기차 소리에 구고산 큰애기들이 봇짐을 싸 밤에 몰래 함흥 원산이나 경성으로 일거리를 찾아 떠나는 세태를 민요는 저리 풍자했을 것이다. 그 구체적인 현장이 경원선의 고산 역 부근이다. 경성에서 오전 8시 경원선 열차를 타면 오후 1시 반 신고산 역에 도착하던 시절이다. 고산을 지나면 석왕사 역도 나온다.

 

'이십 년 전 하기 휴가에 연인과 같이 석왕사 보문암에서 한여름을 지난 일이 있다. 여름의 피서객을 부르는 곳이 경원선에서 삼방, 석왕, 원산에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고 또 석왕사가 어떠하다는 것을 이제 내가 이십 년 전 소견을 말할 자격이 없는 줄로 안다. …점심시간에 잠깐씩 극락에 산보를 하는데 극락 산보는 다른 것이 아니고 추위를 녹이기 위해서 한잠 자기도 하고 혹은 연인의 무릎을 베고 머리 이도 잡는 것이다. …하루는 이를 잡다가 유람객에 발각된 일이 있는데, 이십 처녀의 이 잡는 꼴을 외간 남자에게 들킨 것만은 아무리 시원한 석왕사 개울물이라도 화끈한 얼굴을 식혀줄 수 없었다.'

 

박순천(1898~1983) 여사가 1938년 8월 16일자 동아일보에 기고한 석왕사 휴가담이다. 박 여사의 회고에 기대지 않더라도 과연 경원선 최고의 휴양지는 산악지역은 삼방협이요, 바다 쪽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원산의 명사십리였다. 원산을 앞둔 안변 역에 이르러 농촌소설 작가로 호가 높은 소설가 이무영(1908~1960)은 '우울열차'(동아일보 1938.6.12.)에서 원산을 앞두고 안변 역에 내리면서 이렇게 소회를 전한다.

 

'천에 가까운 사람을 싣고 어둠을 달리는 이 현대문명의 괴물을 가리켜 '우울열차'라고 한다면 불평할 사람이 혹 있을까? 차가 눈꼽 낀 눈을 부빈 것은 석왕사 근방이리라. 남산 역을 지나서 나도 눈꼽을 뜯고 부리나케 행장을 수습했다. 행장이라야 보다 둔 화문(和文) 잡지 두 권에 담배, 파이프, 이것뿐이다. …삑! 이윽고 앳된 기적을 울리고 차체가 건드렁 한다.'

▲동경성(청량리)과 원산역 전경, 원산 송도원 해수욕장(왼쪽)과 구본웅이 그린 경원선 삽화(위에서부터). [예옥 제공]


기차가 승객들을 내려놓고 출발할 때 기우뚱, 흔들리는 모습을 '차체가 건드렁한다'고 표현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현대문명의 '괴물'이 우울하게 다가온 건 식민지시절의 바탕색이 그러하니 어찌할 수 없는 정서였을 것이다. 원산의 명사십리 해수욕장에 가려면 '갈마'역에서 내리는 것이 수월했던 모양이다. 만해 한용운(1879~1944)은 산에서 거주하는 승려인데도 해수욕을 유난히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만해는 1933년 '삼천리'에 기고한 '명사십리'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지도 않고 나체로 바닷물에 성큼 들어간 사연을 고백한다.

 

'해안의 남쪽에는 서양인의 별장 수십 호가 있는데 해수욕의 절기에는 조선 내에 있는 서양인은 물론 일본, 상해, 북평(北平) 등지에 있는 서양인들까지 와서 피서를 한다 하니 그로 미루어 보더라도 명사십리가 얼마나 한 명구(名區)인 것을 알 수 있다. …목적이 해수욕인지라 옷을 벗고 바다로 들어갔다. 그 상쾌한 것은 말로 형언할 바 아니다. 얼마든지 오래 하고 싶었지만 욕의(浴衣)를 입지 아니한지라 나체로 입욕함은 욕장의 예의상 불가함으로 땀만 대강 씻고 나와서 모래 위에 앉았다가 들어오니 김 군은 욕의 기타를 사가지고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문학을 연구하는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서울에서 원산까지 경원선 따라 산문여행'(예옥)을 엮어냈다. '명사십리에 해당화 필 무렵'이라는 부제를 거느린 이 단행본은 경성에서부터 원산에 이르는 35개 역마다 얽힌 문필가들의 산문과 그곳의 문화 지리적 특성을 나열한 책이다. 분단으로 인해 남북을 잇는 상상력이 고갈되고 단절된 마당에 옛 철도 지도를 앞에 두고 시간여행을 떠나는 것은 미구에 닥칠 통일된 한반도를 떠올리는 의미 있는 일이다.

 

방 교수는 "이광수 김동인 등을 연구하다보니 북한 도시들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각 지역의 문화적 전통과 작가의 작품들을 연결해서 연구하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을 했다"면서 "한반도 평화통일의 시각에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터에 경원선 경의선에 관심을 가지고 일제강점기 철로를 중심으로 생성되는 지역의 문화 특성을 연구했다"고 밝혔다. 그는 "일제 강점기 잡지들을 들여다보니 철로 역마다 역 중심 수필과 설명 글, 이야깃거리가 그냥 묻혀 있는 게 안타까웠다"면서 "북한 지역 문학과 문화 연구와 함께 이 글들을 시민들의 관심권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이 책을 엮어냈다"고 덧붙였다.



"조선 조정에서 구한말에 계획을 세워서 회사를 설립하고 철로를 건설하게 하는데 예산 문제 때문에 지지부진 하는 사이에 일본이 무단으로 불법 점거해 날림으로 건설한 과정이 드러납니다. 우리가 건설하려던 것을 일제가 폭력적으로 침탈해 좌절되고 이권이 넘어가면서 일본 식으로 변모된 것이지, 우리가 안일하게 있었던 게 아닙니다. 철로사를 보면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로 넘어가는 시대에 대한 우리의 주체적인 시각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방 교수에게 경원선은 이광수 문학의 답사길이기도 했다. 이광수가 방인근과 함께 잡지 '조선문단'을 기획한 곳이 석왕사인데, 이 산문집에도 석왕사 산문이 들어 있다. 이광수 장편소설 '흙'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곳이 경원선의 '검불랑'이다. 철원 평강의 용암 대지에서 흘러내린 검붉은 모래 때문에 붙여진 지명인 '검불랑'(劍拂浪)은 이광수가 '흙'의 개척정신이 이어질 무대로 상정한 곳이다.

 

'나는 몇 해를 지난 뒤에 '흙'의 후편을 쓸 날이 올 것을 믿습니다. 살여울 동네가 어떻게 훌륭한 동네가 되는가를 지키고 있다가 그것을 여러분께 보고하려 합니다. 나는 살여울이 참으로 재물과 문화가 넉넉히 가진 동네가 되기를 바랍니다. 동시에 김갑진이가 새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검불랑이 살여울과 같이 잘 되고 온 조선에 수 없는 살여울과 검불랑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믿습니다.'('흙'을 쓰고 나서, 이광수, '삼천리' 5권9호, 1933년 9월)

 

▲경원선 산문여행에 이어 경의선 관련 산문집도 엮어낼 예정인 한국문학 연구자 방민호 교수. 그는 10여 년 전 청계천 헌책방에서 일제강점기 철도 지도를 입수한 뒤 남북을 잇는 철도에 문화와 문학을 입혀낼 계획을 세웠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1911년 용산~의정부 구간을 시작으로 건설된 경원선은 1914년 원산까지 개통, 1941년 현재 35개 역을 거느렸다. '매일신보' 1914년 8월18일자는 '전통(全通)된 경원선에 제1발의 기적소리'라는 제목 아래 경원선 개통 소식을 전한다. 이번 산문집은 각 역마다 연관된 신문 기사를 찾아내 삽입하고 인근 지역의 특성을 게재해 현장성과 흥미를 배가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까지 발목을 잡는 분단시대, 경성을 출발해 '하늘 아래 첫 동리'라 일컫는 검불랑을 지나 삼방협, 고산, 석왕사, 안변을 거쳐 원산을 앞두고 갈마에서 내려 명사십리로 떠나는 올 여름 피서를 머릿속으로나마 그려보자면, 이 산문집은 유용한 길잡이로 삼을 만하다. 지금은 길이 막힌 석왕사 역 기찻길에서 '일 공민(公民)'은 이렇게 적었다.

 

'기차가 철원에서 검불랑을 지나 올 때 한편 터널에서 꼬리가 빠지기 전에 머리가 또 다른 터널을 찾아들어가서 한 골을 지나면 다음 골은 점점 더 깊고 한 산을 지나면 다른 산은 점점 더 높아진다. 순간의 암흑에서 찰나의 명계를 통과할 때에 나의 의식은 더욱 명민하더이다. 심곡에서 천고의 불평을 품은 유수는 층암에서 뛰어내리고 조약돌에 부딪혀 부서지며 깨지면서 자유의 대해로 질주하고 침묵과 적요를 생명 삼아 우뚝우뚝 허울 좋게 일어선 녹수는 바람을 만날 때마다 노호하고 질타하여 공기의 유동하는 폭력을 대항하니 자연과 자연의 무의식한 전투는 영원에 긍(亘)하여 평등을 요구하는 것이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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