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리포트] 신중론보다 속도전…선거 전 백신 개발에 정치생명 건 트럼프

국제 / 공완섭 / 2020-08-07 14:46:35
최종 임상시험 착수…연내 시판 가능성 높여
트럼프 정부, 선거 전 개발해 '판세 역전' 의도
일각에선 성급한 백신 출시 부작용 우려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있는 브리검앤드위민스병원. 이 병원은 지난 5일(현지시간)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 임상시험에 착수했다. 백신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제약사 모더나와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주도로 마지막 단계인 3상 임상시험에 착수한 것이다.

이날 디트로이트에 있는 헨리포드병원도 같은 시험에 들어갔다. 백신주사를 맞은 빅터 맥파든(64)은 디트로이트뉴스와 인터뷰에서 "백신개발을 위해서라면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부터 시작한 임상 3상 시험이 미 전역에서 본격 착수됐다. 앞으로 3개월간 실시될 이 시험 대상은 3만여 명. 지금까지 부작용과 적정용량에 관한 2단계 실험은 마친 상태다. 이번 3단계 시험만 끝나면 양산체제에 들어가게 된다. 시험은 매사추세츠, 미시간, 텍사스, 캘리포니아 등 코로나19 환자가 많이 발생한 87개 지역에서 진행된다.

▲전국건강협회 프랜시스 콜린스 박사가 지난 7월 2일 미 의회에 참석, 코로나19 바이러스 모형을 들고 백신 개발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Photo by Saul Loeb/UPI]

이 시험은 보건당국이 내년 1월 19일까지 3억 회 분량의 백신을 개발하겠다는 초고속작전(Operation Warp Speed)에 따라 진행되는 프로젝트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백신개발에 정권의 운명을 걸었다. 코로나19 최대 피해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백신개발이 선거 판세를 바꿀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총대를 멘 이는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이다. 백악관 코로나19 TF 멤버이기도 한 그는 백신 출시 시기를 당초 올해 말 또는 내년 초로 잡았었다. 초고속 작전도 그 스케줄에 맞춰진 것이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지난달 백신이 이르면 9월, 또는 초겨울에도 나올 수 있다며 시기를 당겨 잡았다.

모더나 측도 이에 화답하듯 3단계 실험이 9월 말께 끝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선거 전에 백신을 내놓으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 때문으로 보인다.

파우치 박사는 한 차례 더 무리수를 두었다. 지난달 29일 "백신효과가 80~90% 보장되면 좋지만 50~60%만 돼도 괜찮다"며 수위를 한껏 낮춘 것이다. 심지어 그는 "한 시즌만 넘겨도 백신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은 수백억 달러 규모의 백신 시장에 제약사들이 앞다투어 뛰어든 건 너무 당연한 현상이다. 모더나와 옥스퍼드, 노바백스, 화이자, 존슨앤드존슨 등이 선두에 나섰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최종단계 실험을 진행 중인 백신은 모더나, 옥스포드대/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 중인 두 가지 백신 외에도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앤테크가 공동 개발한 제품과 시노팜, 시노바 바이오테크 등 두 중국 회사가 각각 개발 완료한 제품 등 모두 세 가지 제품이 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SK바이오사이언스, 인도의 세럼연구소 등도 백신개발 경쟁에 가세했다.

백신 개발은 곧 대박이다. 모더나는 백신개발 소식이 전해진 이후 올해 주가가 300%나 뛰었다. 노바백스도 정부의 백신 주문과 투자 소식이 전해지면서 주가가 30%나 뛰기도 했다. 개발 초기부터 이런 정도이니 개발에 성공하면 돈방석에 앉는 것이다.

하지만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개발비용 때문에 민간기업이 대책 없이 뛰어드는 건 도박이나 다름없다. 이번에도 연방 정부가 스폰서를 자처하고 나섰다. 정부가 수십억 달러어치의 백신을 미리 발주해 줌으로써 기업들의 위험을 덜어 주고, 충분한 물량을 확보해 두는 이른바 입도선매 작전을 펴고 있는 것이다.

미 보건후생부와 국방부는 매릴랜드에 있는 노바백스사가 개발 중인 백신 1억 회 분량 16억 달러어치를 미리 주문했다. 시제품이 개발되면 응급용, 또는 백신 홍보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이 회사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빌앤드멜린다게이츠재단이 일찌감치 개발 가능성이 높은 회사로 점찍었던 중견기업이다.

미 보건부는 존슨앤드존슨에도 1억 회 분량, 10억 달러 이상을 주문해 놓은 상태다. 개발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2억 회 분량을 더 발주한다는 계획이다. 이 회사는 내년까지 각국에 10억 회 분량을 공급할 계획을 세워 두고 있다. 정부는 이밖에도 사노피, 글락소스미스클라인에도 1억 회 분량, 21억 달러어치, 화이자와 바이오테크 계열사 바이오앤테크사에 1억 회 분량 19억5000만 달러어치를 발주했다.

하지만 이처럼 다급하게 밀어붙이는 미 정부의 백신개발 속도에 제동을 거는 학자들도 만만찮다. 일부 전문가들은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식품의약국(FDA)이 정치적으로 성급하게 승인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또 성급하게 백신을 내놓을 경우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쓰기 등이 무너질 우려도 제기됐다. 워싱턴대 바이오테크놀로지 연구소 마이클 킨치 박사는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백신을 내놓으면 오히려 팬데믹을 악화시킬 수 있다" 고 경고했다.

그러나 존스홉킨스대 생의학·공학과 스티븐 잘스버그 교수는 "대량 생산 체제에 들어가려면 충분한 시험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어느 회사 제품이든 가장 먼저 나온 백신 시험에 응해야 할 것" 이라며 임상시험에 적극 참여할 것을 강조했다.

요컨대,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완벽하게 검증된 백신, 즉 백신의 품질보다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선거가 채 3개월도 남지 않았는데 하루에도 수만 명씩 감염자가 늘어가는 다급한 미국의 입장에선 신중론보다는 속도전에 더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UPI뉴스 / 공완섭 재미언론인 wanseob.k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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