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로 잇는 남과 북, "우리는 만나야 한다!"

문화 / 조용호 / 2020-09-29 16:39:55
판소리영화 '소리꾼' 재개봉하는 조정래 감독
북한 촬영 풍광 삽입하고 삭제된 분량 재편집
고통받는 백성들의 한과 흥이 판소리로 승화
"한민족의 천재적인 창의력 통합할 리더십 절실"

코로나 시절에도 한가위는 온다. 수확물을 거두어 하늘과 조상에게 감사의 예를 표하는 전래 명절이다. 이 시기는 우리가 오래 간직해온 것들을 돌아보는 때이기도 하다. 백성들의 한과 신명을 노래로 담아냈던 판소리가 어떻게 생겨나서 전파됐는지 대중의 눈높이에서 친절하게 전달하는 영화가 있다. 지난 7월 개봉했지만 코로나 한파에 시달리다가 오는 11월 북한의 풍광까지 담아 재편집해 새롭게 개봉하는 영화 '소리꾼'이 그것이다. 우리 소리에 빠져 판소리 고법(鼓法)까지 이수하면서 청년시절부터 꿈꾸었던 판소리 영화를 완성한 조정래(47) 감독을 만났다.

▲젊은 시절부터 품어온 판소리 영화 '소리꾼'을 만든 조정래 감독. 삭제된 장면들을 보완하고 북한의 풍광까지 담아 재개봉할 예정인 그는 "판소리의 기교를 빼고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문재원 기자]


'소리꾼'은 조 감독이 대학시절부터 구상했던 시나리오를 발전시킨 것으로, 판소리가 생겨나고 정착할 무렵인 영조 10년을 배경으로 사라진 아내를 찾아 나선 소리꾼과 그의 딸 이야기를 펼쳐낸다. 심청가를 축으로 춘향가의 서사를 섞어서 판소리는 물론 민요까지 풍성하게 녹여낸다. 소리꾼의 이름은 심청가의 '학규'(이봉근)요 아내는 '간난이'(이유리), 딸은 '청'(김하연)이다.

 

심청가에서는 아비가 눈이 멀었지만, 이 영화에는 딸 청이가 앞을 보지 못한다. 인신매매단 '자매(自賣)조직'에 간난이가 납치되자 학규와 청이는 심청 이야기를 지어 부르며 아내를 찾아 유랑한다. 중앙의 권력과 결탁한 자매조직이 백성들을 괴롭히고 약탈하는 과정을 배경으로, 민초들의 한을 천민 광대가 바닥에서 노래를 부르며 위로하는 판이다. 이 과정에 대봉(박철민)과 몰락양반(김동완) 등이 가세해 에피소드를 만들어간다. 영화의 절정에 이르러 심봉사가 눈 뜨는 대목을 연결시키면서 청이도 눈을 뜨게 하고, 춘향가의 서사를 가져와 통쾌한 마무리로 이어가면서 판소리는 어렵고 따분하다는 선입견을 물리친다.

 

-북한의 풍광을 담은 촬영 분을 담아 다시 개봉한다니 반갑다. 어떻게 된 일인가.

"2018년 11월 평양에서 열린 '세계 해외동포 기업인 대회'에 참석해 한(조선)반도가 함께 만드는 민족음악영화 '소리꾼' 제작을 처음 합의했다. 북쪽의 남포, 백두고원, 칠보산, 해금강과 내금강,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등지에서 촬영을 진행하며 북측 영화음악기관과 OST도 협업하는 계획을 세웠다. 베이징에서 두 차례 협의를 진행하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파국으로 끝나면서 우리 협의도 중지된 상태다. 러닝타임 제약 때문에 빠졌던 장면들을 다시 삽입하고, 북측과 공동제작을 협의하다 중단됐지만 이미 촬영한 북녘 풍경을 살려 재편집했다. 10분 정도 더 늘어난 분량이다. "

 

-여러 악재 때문에 남북 영화 협력이 진전되지 못해 안타깝다.

"재개봉할 영화의 티저포스터 중심 카피는 '분단된 민족의 하나됨을 염원하며!' '우리는 만나야 한다!'이다. 평양 인근과 북쪽의 강원도를 포함해 20여 곳 정도, 저는 가지 못했지만 스텝들이 북쪽 전역을 다니며 촬영을 진행했다. 7월에 개봉한 영화에서는 제작 관계자들이 역풍을 우려해 북쪽 영상을 다 뺐다. 이번 재개봉판에는 이 영상들을 공개하고, 삭제했던 장면들도 보충할 예정이다."

▲2018년 11월 평양에 가서 북측 영화인들과 소리꾼 공동제작을 협의한 조정래(왼쪽) 감독. [조정래 제공]


-재개봉 영화에 북쪽 풍광을 삽입해 밀어붙이는 배경은 무엇인가
.

"남북관계 분위기와 상관없이 기획한대로 밀어붙이기로 한 건, 통일을 간절히 염원하는 한 사람으로서 한반도에 빨리 평화가 정착돼야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다는 신념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세계 경제가 무너져 회복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텐데,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북측과 협력해야 한다. 다른 분야는 어려울지 몰라도 영화는 서로 협력하기가 수월하다고 북측을 설득했다. 평양과 서울에서 동시 상영회를 하면서 양쪽 지도자가 와서 영화를 보고, 북의 배우와 '옳소꾼'(엑스트라)들도 같이 참여시키자고 했다. 영화에서 부녀가 조선 팔도를 돌면서 판소리를 부르며 납치된 아내를 찾아다니는 것처럼, 북의 전역을 돌면서 영화도 상영하자고 했다. 이번 영화에 소리꾼 일행과 함께 떠도는 장돌뱅이(김병춘)가 북의 사투리를 쓰게 만든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국내 최초의 판소리 뮤지컬 영화를 표방하고 있는데, 일반 극영화와도 조금 다르고 완전한 음악영화도 아닌 것 같다. 어디에 방점을 찍었는가.

"뮤지컬 영화라는 표현은 썼지만 판타지 안에 뮤지컬 형식을 띠고 있을 뿐 현실은 정극으로 접근했다. 판소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쫓아가면서 오늘날과 그리 다르지 않은 백성들의 신산한 삶을 다루고 있다. 이 백성들이 주도해서 만든 게 판소리다. 엘리트 층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아주 기저에서부터 형성된 거다. 어떤 형식이든 상관없는데, 판타지 속에 백성들의 현실과 바람을 투영했다. 판타지가 현실보다 더 현실 같기도 하다. 판타지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엄청나게 참혹한 현실과 당대의 사회상이 있다. 뮤지컬 영화라기보다 우리 음악이 다채롭게 들어가 있는데 사람들이 이질적으로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중심축인 '심청가'나 '춘향가'도 편곡을 한 부분이 눈에 띄고 창작한 판소리도 넣은 것 같은데, 국악 대중화 차원에서 눈높이를 맞춘 것인가.

"사람들이 판소리를 어렵다고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는 것이다. 한자어가 너무 많아서 그렇다. 대원군 시절 중인층을 적극 끌어들여서 판소리 12바탕을 정리한 신재효 같은 천재들이 나타났는데, 상스러운 말들을 배제한다는 명분으로 유식하게 한자가 많이 들어가게 된 거다. 이번에 영화를 만들면서 소리 길은 같지만 한글화 작업을 많이 했고, 이른바 '성음(聲音) 놀음'을 배제했다."

▲'소리꾼' 장면들. 위로부터 서로 옥에 갇힌 처지에서 애처롭게 아내를 바라보는 소리꾼 학규, 납치된 아내를 찾아 소리를 부르며 떠도는 광대패, 다시 만난 가족과 소리패가 민요를 부르는 엔딩씬. [조정래 제공]


조정래 감독을 우리 소리의 길로 이끈 임권택 감독의 판소리 영화 '서편제'처럼 고난도의 소리를 기대하고 이 영화를 보면 실망할 수도 있다. 조 감독은 목청을 꺾고 기교를 부리는 '성음 놀음'이 어떻게 판소리 초창기 단계에 가능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소리꾼으로 현실에서 호가 난 이봉근에게 최대한 기교를 제거하고 원래 판소리가 지닌 담백한 소리를 내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담백하게 기교를 뺀 소리를 내기가 프로 소리꾼에겐 더 힘든 일이었을 텐데, 다행히 배우가 잘 수용해주었다고 한다. 조 감독은 이봉근이 "기교를 빼고 나면 진심을 더 살려야 하는데 그동안 진심보다 기교에 치우쳤던 것 아닌지 반성했다"면서 "이번 영화를 찍고난 뒤 소리가 더 늘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조 감독의 설명을 듣고 나니 '소리꾼' 영화의 정체성이 명확하게 다가온다. 그는 우리 소리에 대한 편견이 적은 10대들이 이 영화에 더 환호하는 배경도 이런 맥락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소리' 그 자체라고 언급한 적 있다. 춘향가와 심청가를 섞어 특이한 서사를 만들어냈는데 작의는 무엇인가.

"시대상은 어사 박문수 이야기가 나오는 춘향가의 무대이고, 그 안에서 눈이 먼 딸을 위해 만들어나가는 이야기 자체는 심청가인 셈이다. 사실 심청가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소리다. 눈을 떴다고 뜬 게 아니고, 듣지만 듣지 못할 수 있다. 심청가에서 눈을 뜬다는 의미를 저는 육안을 뜬다는 개념보다 심안을 뜨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져 용궁을 통해 부활하는데 이는 환생을 상징하는 것이다. 처음 이야기하지만, 마지막 길 떠나는 장면은 중간에 나오는 판타지의 색 보정과 맞췄다. 마지막 가는 길이 죽어서 천국으로 가는 길일 수도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다. 이번 재개봉판에서는 이런 의도를 좀 더 명확히 하고 싶었다. 저는 이 영화가 평화의 도구가 되기를 강력히 바란다. 가족이, 남과 북이 만나야 한다."   

 

-이 영화는 판소리가 중심이긴 하지만 민요도 많이 나온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민요의 전통이 파괴되고 일본에서 들어온 엔카(演歌) 가락이 가미된 트로트, 이른바 뽕짝이라는 형식이 이즈음 열풍으로 부상하는 현상을 어찌 보는가. 

"저도 트로트를 좋아한다. 지금의 트로트 열풍은 근본적으로 우리 국민들이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천재적 끼와 흥, 한이 민족적 DNA에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넘쳐나는 흥과 끼와 한을 표현하는 수단이 어떤 시절에는 판소리였고, 민요였고, 트로트일 수 있는 거다. 트로트 열풍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지만 다른 장르의 음악은 다 망했다는 건 지나친 확증편향이다. 음악을 포함한 문화는 계속 돌고 도는 것이라서, 과거 자료들이 모두 불타서 없어지면 모를까 인류가 존속하는 한 돌고 돌 것이다."

▲조정래 감독은 "우리 민족의 천재적인 창의력과 흥과 끼는 남북한은 물론 전 세계를 구원할 힘을 지니고 있다"면서 "이를 통합해 이끌어낼 지도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문재원 기자]


경북 청송에서 나고 자라 고등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열성적인 교회 신자로 보수적인 사고를 지녔던 조정래 감독은 대학(중앙대 영화과)에 들어온 첫 해, 광주민중항쟁의 진실에 접하고 새로운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993년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는 운명의 나침반을 다시 바꿔놓았다. 우리 소리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던 그가 서편제를 보고 충격을 받아, 극장에서 나오지 않고 화장실에 숨었다가 수차례 다시 보기도 했다. 이후 그는 소리를 배우다가 판소리 고법(鼓法)까지 이수했다. 국악고등학교 아이들 이야기를 담은 '두레소리'에 이어, 소리패 공연을 다니면서 알게 된 나눔의집 위안부 할머니들 이야기를 '귀향'에 담아내 38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 모았다. 이번에는 다시 그의 오랜 꿈인 판소리 영화를 완성시켜 대중과 만나게 된 것이다.

 

-앞으로 어떤 영화들을 만들고 싶은가.

"다른 사람이 쓴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 존경스럽다. 잘 알지 못해도 제가 겪어서 아는 것들이 다른 것보다 깊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귀향'은 14년 만에 완성한 것이고, '소리꾼'은 24년 동안 품어왔다. 홋카이도에 가서 '귀향'을 상영할 때 아이누 족 이야기를 꼭 만들어달라는 현지인의 간청을 받았다. 2차대전 때 조선 징용자들과 아이누 족은 일본인들이 사람과 짐승 사이의 존재로 취급했다. 비록 제가 만들지는 못해도 아이누 족에 관한 시나리오는 꼭 쓰고 싶고, 대학시절 학생회 활동하면서 접했던 이내창 이철규 김귀정 열사의 의문사도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다."

 

조정래 감독은 소설가 조정래와 동명이어서 오해를 산 적이 없느냐는 질문에 "어린 친구들은 어떻게 '태백산맥'을 쓰면서 영화까지 만드느냐"고 묻기도 한다면서 "대가의 이름과 같아 덕을 보는 편"이라고 웃었다. 그는 "코로나시대에도 K문화가 전 세계에서 각광받고 있는 건 우리가 지독하게 창의적이고 천재적인 흥과 끼를 가진 민족이기 때문에 그렇다"면서 "재난을 당하고 핍박받으면 똘똘 뭉치기도 하지만 개별적으로 너무나 다른 생각을 가진 다양성도 특별하다"고 말미에 말했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큰 에너지인데 이즈음은 진영으로 나뉘어 소모적인 분란을 겪고 있어 안타깝다"면서 "리더십을 가진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노력해서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남북한은 물론 전 세계를 구원할 우리 안의 힘을 끌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정래는 중앙대학교 영화과를 졸업했으며, 2000년 단편영화 '종기'로 데뷔했다. 제53회 대종상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2016)을, 제51회 휴스턴국제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2018)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는 '두레소리'(2011), '파울볼'(2014), '귀향'(2015),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2017), '에움길'(2019), '소리꾼'(2020)이 있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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