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공문서에 등장한 이해하기 어려운 '혼합어'

사회 / 김들풀 / 2020-10-29 13:59:16
[우리말 바르게] ⑧ 영어 섞인 혼합어 남용하는 공공언어
정체불명 혼합어 사용…국민과 소통 어려워
한글은 우수하다. 일찍이 벽안의 이방인이 알아봤다. 미국인 호머 헐버트가 뉴욕 트리뷴을 통해 한글의 우수성을 알린 게 1889년이다. 헐버트는 "한글은 완벽한 문자"라고 극찬했다. "최소 문자로 최대 표현력을 갖는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한글의 주인'은 그 가치를 망각하고 사는 듯하다. 바른 한글 사용을 선도해야 할 정부부터 그러하다. 정부부처의 공공문서엔 오염된 언어 투성이다. '공문서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우리말을 사용해야 한다'는 국어기본법을 정부가 앞장서 위반하는 꼴이다. 이런 행태가 국민과의 소통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음은 물론이다.

UPI뉴스는 43개 정부 부처의 공공언어 실태를 취재, 분석해 기획보도 [우리말 바르게]를 연재한다.
▲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이 남긴 유명한 휘호 '한글이 목숨'. [출처: 이대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마이스터고, 모태펀드, 바이오의약품, 앵커기업, 특허심사하이웨이, 패키지화, 턴키방식, 임금피크제"

뜻을 알기 어려운 이 용어들은 정부 공문서에 나온 외국어와 한국어를 섞어 쓴 혼합어다.

'2020년 공공문서 사용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43개 정부 부처 대부분 혼합어를 사용했다. 혼합어를 많이 쓴 기관은 ' 문화체육관광부, 새만금개발청, 기획재정부'순으로 33개 기관이 사용했다. 반면, 아예 쓰지 않은 기관은 '통일부, 여성가족부, 관세청' 등 10개 기관이다.

해당 보고서는 UPI뉴스와 한국어인공지능학회가 함께 정부 부처·청·위원회 43곳 주요 문서를 수집해 조사, 분석한 공공언어 실태 조사 보고서다. 수집한 문서를 한국어인공지능학회가 개발한 한국어 사용성 평가 자동화 도구 '한글누리미'로 로마자와 한자, 외국어 등 국어기본법 위반과 어려운 낱말 사용 등을 자동 평가했다. 또 평가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국어 전문가들의 검수 과정을 거쳤다.


언어 종류가 다른 언어가 결합해 이루어진 혼합어는 어느 나라나 존재한다. 문화가 겹쳐지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혼합어는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특히 비교적 순탄하게 민족 국가를 이루지 못한 나라는 식민지라는 역사 속에서 식민 모국 언어에 동화되어 버리거나 다양한 혼합어가 만들어졌다.

국가 독립 후 자신의 언어가 아직 살아 있었던 나라의 경우는 바로 모국어를 복원했다. 남북한과 베트남 등이 그 예다. 아주 극단적인 경우 이미 사라져버린 옛날의 언어를 문헌 연구를 통해 소생시키기도 했는데 이스라엘이 좋은 예다.

우리말도 일제강점기라는 혹독한 시련 아래 일본어가 새로운 지식을 전하는 학습 언어로 군림하고 일상에서도 쓰이는 생활어가 됐다. 그 후 우리말들이 한자어로 바뀌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에는 우리말 순화 노력 끝에 우리 언어 감각에 맞지 않는 일본식 한자어가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지금은 영어를 중심으로 한 서구 알파벳이 슬그머니 비집고 들어왔다.

오늘날 세계화, 국제화라는 핑계로 우리말이 왜곡되거나 변질하고, 천대받고 있는 것이다. 서슬퍼런 일제강점기에서도 "한글이 목숨이다"라며 우리말을 지켜낸 외솔 최현배 선생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다.

'교과서 어휘의 우리말 순화 연구' 보고서 연구에 참여한 박용규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 회장(고려대 사학과 박사)은 "정부가 나서서 어릴 때부터 일상생활에서 우리말과 우리 문화 주체성을 잃지 않도록 교육과정을 마련해야 하는데도 이미 국립국어원에서 다듬어 놓은 외래어 순화어조차 정부가 지키지 않는다면 어쩌자는 것이냐"고 개탄했다.

UPI뉴스 / 김들풀 IT과학 전문기자 itnews@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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