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조성 의혹' 덮으려 '위조 문서' 동원하는 HDC현산

산업 / 류순열 / 2020-11-27 15:21:24
비자금 조성 의혹 제기한 UPI뉴스 기사에 "명백한 허위"라며 반박
근거로 제시한 유진투자증권 지급보증문서, '진짜'인지 의문 증폭
문서 발행주체로 되어 있는 대체투자팀은 1년 지난 뒤 신설된 조직
UPI뉴스는 10월12일 HDC현대산업개발(현산)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제기했다. 믿을 만한 금융권 고위 인사 A의 공익제보가 단초였다. A는 "말도 안되는, 이상한 거래다. 짜고 치는 고스톱과 같다"고 했다. 현산이 증권사와 짜고 비자금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A는 확신했다. 현산과 유진투자증권 사이에서 벌어진 10여 차례의 거래를 말하는 것으로, "비자금이 아니라면 설명이 안된다"고 했다. 뒤집어 말하면 비자금을 조성하려다 보니 짜고 치는 기이한 거래가 지속됐다는 얘기다.

UPI뉴스는 A가 제공한 의혹의 뼈대에 10여일간 취재로 구체적 정황증거와 증언 등 살을 붙여〈HDC현대산업개발의 기이한 거래 … 수백억 비자금 조성 의혹〉기사를 내보냈다. 의심의 출발점은 "위험한 투자인데도 금리가 너무 낮다"는 것이었다. 해당 기사에서 기이한 거래 중 하나로 소개한 속초 숙박시설 신축공사 PF대출을 보자. 작년 2월 유진투자증권이 SPC(특수목적법인)를 만들어 후순위 채권을 발행하고 현산이 이 채권 160억 원 어치를 매입한 거래인데, 유진투자증권은 아무런 신용공여도 없이 채권 매각대금의 19%인 30억 원을 주선 수수료로 챙겼다. 반면 현산은 이렇게 위험한 자산에 투자하면서도 연5.5%라는 낮은 금리를 감수했다.

A는 "증권사는 30억 원을 거저 먹은 셈이고, 현산은 회사와 주주이익에 반하는 위험천만한 투자를 한 꼴"이라고 말했다. 누가 봐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거래였다는 거다. "애초 매수자를 정해놓은 '통정거래'로, 그렇게 돈을 빼줄 룸(여유)을 만든 것"이라고 A는 말했다.

비자금은 자연스레 연결되는 추론이다. A는 "증권사가 손쉽게 챙긴 30억 원 중 상당액이 성과급으로 지급된 뒤 이 돈이 다시 현산으로 흘러들어갔을 개연성이 짙다"고 말했다.

기사가 나가자 현산 측은 허위기사라며 강하게 기사삭제와 정정보도를 요구했다. UPI뉴스는 "기사가 명백히 오보인 게 드러나면 마땅히 기사를 내리고 정정보도할 것이다. 기사가 허위라는 근거를 제시해달라"고 요청했다. 우선 "유진투자증권이 지급보증을 한 채권이라고 말씀하니, 그 증거를 보여달라"고, 콕 집어 요구했다.

이틀 후 현산 측은 유진투자증권 '신용공여'의 증거로, 유진투자증권이 현산 재무팀에 보낸 것으로 되어 있는 문서 한 장을 제시했다. 일종의 지급보증 문서로, 증권사가 아무런 신용 공여도 없이 고액 수수료를 챙겼다는 기사 내용을 뒤집는 증거였다. 문서 내용이 사실이라면 기사를 내리고 정정보도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현산 측이 사진 조차 찍지 못하게 한, 해당 문서는 의문 투성이였다. 내용은 "당사(유진투자증권)는 본 건 사채에 대해 투자자 요청시 셀다운(재매각) 혹은 리파이낸싱(재대출)을 통해 상환을 추진하겠다"는 것이지만 '진짜 문서'라고 하기엔 어설펐다.

160억 원에 대한 지급보증 문서인데, 발행 주체는 그저 유진투자증권 대체투자팀으로만 되어 있었다. 한 증권사 임원은 "대표 직인도 없이 160억을 보증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했다. 주체가 대체투자팀인 것도 아이러니다. 해당 사채 업무는 구조화상품팀에서 진행했다. 일은 B가 했는데 엉뚱하게도 책임은 C가 지는 꼴이다.

무엇보다 해당 문서 작성시기로 되어 있는 2019년 2월에 유진투자증권에 대체투자팀이란 조직은 없었다. 대체투자팀은 올해 1월 신설된 조직이다. 대체투자팀이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존재하지도 않았던 1년전으로 돌아가 지급보증 문서를 발행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이런 이유로 이 문서가 진짜 문서인지 믿을 수 없으니, 추가 근거를 제시해달라고 요청했으나 현산은 한 달 가까이 묵묵부답이었다. UPI뉴스가 문서 위조 의문을 제기하자 그제서야 "당사는 문서위조한 적 없다. 해당 문서는 유진투자증권이 작성한 것"(윤보은 법무감사팀장)이라고 답했을 뿐이다. 

위조했다면 증권사가 했다는 얘기인데, 그렇게 책임 전가로 넘어갈 일인가. 현산은 문서의 진위를 확인할 능력도, 책임도 없다는 말인가. 유진 측은 "우리가 확인해준 문서인 것은 맞는다"고는 했다. 그러나 '진짜 문서'가 맞는지 의심케 하는, 해당 문서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일체 답하지 않았다.

언론이 공익제보를 받아 취재를 거쳐 제기한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면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 오보임을 밝히면 될 일이다. 그런데 왜 현산은 진위가 확인되지도 않은 문서를 들이대며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 하는가. 재벌 기업 치고는 행태가 참으로 비겁하고 치졸하다. 제기된 의심에 대해 "명백히 허위"라고만 하는 증권사 역시 가관이기는 마찬가지다. 금융업의 본질은 신뢰라고 했다. 해법은 간단하다. 근거를 제시하라.

UPI뉴스 / 류순열 편집국장 ryoos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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