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다시 살아나는, 애쓰는 마음이 있다"

문화 / 조용호 / 2020-12-04 17:52:34
시 쓰는 소설가 김선재 장편 '노라와 모라'
어린시절 함께 보낸 두 여자의 기억을 따라가며
어두운 생의 터널에서 빛을 향해 머리를 드는
산문서사시 같은 애틋한 문장에 실린 이야기

'노라'는 그날 새가 울었다고 기억한다. 눈꺼풀 사이로 희미한 빛이 스미었고, 새가 울 때마다 세상이 조금씩 환해지는 것 같았다. '모라'의 기억은 전혀 다르다. 그날은 태풍이 지나가던 어느 밤이었고, 비바람이 쉴 새 없이 홑겹의 창문을 때려 개처럼 떨었다. 천둥이 울고 번개가 쳐서 무서웠다. 35년 중 어린시절 7년을 함께 살았던 노라와 모라의 기억은 대부분 서로 다르지만, 새가 울었든 천둥이 쳤든 그날 함께 체온을 느낀 기억만큼은 공통으로 겹친다. 그 기억의 접점이 '다시 살려는 마음'과 '애 쓰는 마음'이 되었다.

▲시적인 문장으로 두 여자의 어린시절 기억을 따라가며 애틋한 삶의 온기를 소설에 담아낸 김선재. 그는 "오래 혼자라고 생각하고 지냈는데 여전히 누군가가 거기 있었다는 그런 실감들이 삶을 지탱해준다"고 말한다. [김선재 제공]


시 쓰는 소설가 김선재의 새 장편 '노라와 모라'(다산북스)는 산문서사시처럼 읽힌다. 버려지고 방치된 성장기를 겪어온 두 여자의 어두운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세상과 인간에게 힘겹게 다가서는 과정을 애틋하게 그려낸다. 서사도 서사지만, 그 이야기를 끌고 가는 문체와 문장이 읽는 이들을 따스하게 감싸고 위무하는 힘을 지닌 소설이다. 이야기 자체에 매몰된 이즈음 작단에서 잔잔한 서사에 스며드는 독서의 매력이 아쉬웠던 독자들이라면 기꺼이 붙들어볼 만하다.

 

노씨 성을 가진 아버지가 딸에게 지어준 외자 이름은 곤륜산에서만 자란다는 돌배나무 '라'(欏)여서, 그 딸 이름은 '노라'가 되었다. 아버지는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쉽게 지어준 이름일지 모르지만, 또 쉽게 살기를 바라는 이름이었을지 모르지만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버지는 몰랐을 거라고 엄마는 말한다. 중국집 주방장으로 일했던 아버지는 어느날 갑자기 심장이 정지돼 죽었고, 엄마는 인쇄소에서 일하는 계부와 재혼했다. 그 계부의 동갑내기 딸이 '모라'였다. 양모라. 가만히 이름만 불러도 음악이 들리는 듯한 그런 이름이라고 노라는 생각했다.

 

인쇄소를 차린 계부는 빚에 몰려 엄마와 헤어졌고, 돈을 빌린 뒤 잠적한 친구를 찾으러 지방을 헤매다 소식이 끊긴다. 노라와 헤어지고, 홀로 방치된 모라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열다섯 살 이후를 보낸다. 그 방치되고 고립된 세월이 흐른 뒤 어느날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아버지의 고독사 소식을 듣는다. 그 소식을 듣고 오래 전 헤어진 노라에게 전화를 걸어 한때 계부였던 아버지의 부음을 전했다. 노라와 모라는 낯선 도시의 버스 터미널에서 만나 화장장을 다녀온 뒤 다시 헤어진다. 이 과정에서 노라와 모라가 서로의 시각으로 유년기 기억과 서로에 대한 느낌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이 소설의 얼개다.

 

"새가 울어. ……그러네. 나도 다시 눈을 감으며 말했다. 눈꺼풀 사이로 스미는 희미한 빛 속에서 또 새가 울었다. 새가 울 때마다 세상이 조금씩 환해지는 것 같았다. ……모라가 손을 뻗어 내 손을 더듬었다. 이제 안심이야. 등에 대고 모라가 그렇게 속삭였다. 모라의 입김이 번지는 등이 간질거렸다. 이불 속이 꿈처럼 따뜻해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새가 우는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다시 함께 잠이 들었다."

 

노라는 채석장 근처의 집 뒷방에 모라와 살았다고 기억한다. 그 방은 사시사철 컴컴한 바람 소리와 축축한 나뭇잎 냄새가 나던 공간이었다. 계부를 화장하고 돌아오면서 노라는 내내 그 방을 생각했다. '새가 울면 기다렸다는 듯 새어들던 여명과 비가 오면 파닥거리며 빗방울을 튕겨내던 잎사귀들, 나무들. 우리는 축축한 바닥에 누워 그 소리를 듣곤 했다'고. 그 소리를 듣던 때는 '한밤 같은 한낮, 혹은 한낮 같은 한밤'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딱 한 번, 노라의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간 적이 있었다. 태풍이 지나가던 어느 밤이었다. 비바람이 쉴 새 없이 홑겹의 창문을 때리고 천둥과 번개가 교대로 어둠을 무너뜨리던 그 요란한 와중에도 잠든 노라의 숨소리는 골랐고 나는 혼자 개처럼 떨며 깨어 있었다. ...그날 나는 노라의 등 뒤에 바짝 붙어 함께, 라는 말에는 등이 있고 어깨가 있고 체온이 있다고 생각하다가 잠들었다."

 

모라는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느낀 건 상대적인 온도였고 절대적인 고요, 혼자가 아니라는 고요하고 따뜻한 실감"이었다고 생각한다. 모라는 "한동안 혼자라는 걸 깨달을 때마다 그 밤의 순간을 떠올리곤 했는데 어쩌면 20여 년 만에 노라에게 연락을 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그 밤의 기억 때문인지 모르겠다"고 진술한다.

 

모라에게 노라는 "내가 먼저 묻고, 먼저 웃어 보여야 마지못해 입을 열거나 찡그린 건지 웃는 건지 모를 표정을 지어 보이던, 새침한 아이"였다. 노라에게 모라는 자신과는 달리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호감을 얻는 아이였다. 모라는 정작 아버지와 더불어 자신보다는 타인의 취향이나 취미를 고려하며 사는 법을 배워야 했던 쓸쓸한 내면을 지닌 아이였다. 노라는 홀로 말한다. '모라에게는 뭐가 있을까. 나에게는 없는 어떤 것. 없는 것을 생각하는 것. 그런 것. 곤륜산에서만 자란다는 배나무 같은 것.'

 

서로 헤어져 잊고 살아간 듯 하지만, 어느날 누군가 자신의 방에 다녀간 흔적을 느끼곤 그 정체가 막연히 노라와 모라였을 것이라고 그들은 느낀다. 노라는 말한다.

 

"꿈속으로 다녀간 누군가를 내내…… 떠올리는 것. 그런 걸 재미라고 생각해 보면 정말 재미있어질까. 그렇다면 나는 요즘 내내 재미에 빠져 있다. 모라를 떠올린다. 다만 나는 한때 하나였던 어떤 시간을 되풀이 생각하며 지내고 있다. ……누군가 다녀갔다고 여기면 마음이 한결 좋아진다. 너무 애쓰지는 말자고, 모라는 내 손바닥에 메일 주소를 적으며 말했다.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더 애쓰게 되는 마음이 있다."

 

아버지를 화장하고 헤어질 때 노라는 모라에게 자신의 손바닥을 내밀면서 메일 주소를 적어달라고 했다. 모라는 노라가 보내준 그 손바닥이 찍힌 사진을 보면서 말한다.

 

"나는 길고 가는 손가락을 쭉 펼친 노라의 손과 몇 개의 곡선과 직선으로 이루어진 내 글씨를 오래 바라본다. 아주 긴 명줄을 가진 그 손바닥은 희고, 작다. 바닥을 기며 자라는 넝쿨이 빛을 향해 고개를 드는 순간이 있다. 웅크리고 있던 어린 새들이 입을 벌려 우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 생겨나는 세계가 있다. 나는 새로 태어난 우리들의 손바닥을 본다. 낯선 사탕을 아껴 먹던 언젠가의 마음이 된다. ……다시 살아나는 마음이 있다"

▲김선재는 "늘 '잘 살고 있을까'라는 주어 없는 문장을 떠올리고는 했다"고 말한다. [다산북스 제공]


'애쓰는 마음'과 '다시 살아나는 마음'이란, 힘겹게 어두운 생의 터널을 지나온 혹은 지나고 있는 존재가 빛을 향해 어렵사리 머리를 드는 애틋한 마음들이다. 코로나 시절 비대면 화법으로 작가에게 그 마음의 구체적인 배경을 물었다.

 

"다시 살아나는 마음은 모라의 목소리입니다. 모라는 어린 시절 버림받았다는 상처 때문에 오랫동안 주체적으로 살기보다 타인의 눈치를 보며 '버려지지 않으려' 애쓰는 삶을 사는데 익숙해진 사람입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안은 없고 바깥만 남은(주체는 없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그들의 호감을 사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로 오래 살았습니다. 그런 모라가 이제 누군가에게 사랑 받으려 애쓰며 살기보다는 스스로의 의지대로 살아도 괜찮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순간을 쓰고 싶었습니다. 다시 살아나는 마음은 그런 의미에서 쓴 문장입니다. 애쓰는 마음, 이건 노라의 문장인데 오랫동안 무심한 태도가 상처받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라 여겨온 노라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누군가를 떠올리게 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둘 다 '그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어떤 자각을 하게 된 즈음의 문장들입니다."

 

김선재는 "나만 아픈 건 아니었다는, 누군가에게는 다소 잔인할 수도 있는 그런 순간이 계기일 수도 있을 거 같다"면서 "오래 혼자라고 생각하고 지냈는데 여전히 누군가가 거기 있었다는 그런 실감들이 생기면 삶이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싶다"고 부연했다. 소설가 김숨은 "누군가와 살고 있거나, 누군가와 살았던 적이 있거나,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은 이의 창가에, 이 소설을 놓아두고 싶다"고 동료의 책 뒤에 헌사를 붙였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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