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상실과 회한의 세상에 대한 따스한 '말 걸기'

문화 / 조용호 / 2020-12-11 15:16:28
최윤, 8년 전부터 집필한 단편들 모아 소설집 '동행' 펴내
달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울음소리에 공명하고
애틋한 존재를 상실한 이들을 위무하며 외치는 '다시!'
"나는 여전히 그저 한 가지, 말 걸기를 멈추지 못한다"

"너무도 구슬퍼 듣는 사람도 흐느끼게 만들 수 있는 울음소리가 왜 그렇게 길게 깊게 그녀의 잠든 심장을 두들겼던 것일까. …울음소리는 낮았으며 어떤 말로도 표현이 되지 않아 울음의 경지로 가버린 그런 애통에 가까웠다. 어떤 말로도 그 무엇으로도 위로될 것 같지 않은 슬픈 삶의 사건 앞에서 한 여인이 토해내는 좌절의 울음."

 

사람은 어떤 때 울까. 그냥 우는 울음 말고 저런 울음, 어떤 말로도 표현되지 않아 울게 되는 애통한 울음. 그런 울음은 전염력도 높아서 속 깊은 곳에서 덩달아 울음이 올라오기도 한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1988)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온 이래 과작 행보를 이어온 최윤(67)이 오랜만에 소설집 '동행'(문학과지성사)을 펴냈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 '울음소리'에 등장하는 여성 화자는 겨우 50을 몇 달 앞두고 은퇴했다. 남편도 아이도 없는 그녀는 집 뒤 산을 산책하다가 정자에서 길게 우는 저 울음소리를 들었다.

▲ 오랜만에 단편들을 묶어낸 소설가 최윤. 30여년 동안 서강대 불문과에서 불문학자로 살다가 지난해 정년을 맞은 그는 "소설과 마침내 친해졌다"면서 "꽤 긴 시간 같이 걸었다"고 썼다. [서은영 사진·문학과지성사 제공]


그 울음소리는 '그녀가 만난 울음의 질 중에 어쩌면 가장 짙고 농밀한 소리의 질을 지닌' 소리여서 '특수 제작된 녹음기가 아니고서는 이 소리를 재생해 들려줄 수는' 없는 '요령부득의 내면의 소리'였다. 가까이서 보니 울음의 주인공은 목에 명찰을 걸고 있는 '미친 여자'였고, 게다가 주소를 보니 이웃이었다. 연락처에 전화를 걸어보니 병원에서도 감당이 안 돼 자매들이 돌아가면서 그녀를 보살피는 중이라고 했다. 그 '아픈 언니'는 심야에도 아파트 단지에서 그렇게 울어 주민들이 몰려드는데, 그녀도 그 울음소리를 밤에 따라가다 소리를 죽이고 울었다. 이웃들은 금방 저 울음이 끝날 것이니 돌아가라는, '갑자기 나타나 바닥에 앉아 울던 그녀'가 보호자인 줄 알고 해산했다.

 

그녀는 왜 따라 울었을까. 타인의 애통을 대신 서러워해주는 곡비(哭婢)의 운명이라도 타고난 것일까. '손수건'에 등장하는 여성은 자발적으로 모르는 남자 뒤를 따라 낯선 그이의 방에 들어가 남자가 건네준 손수건을 흥건히 적실 정도로 하염없이 울었던 적도 있다. 이 여성은 열한 살 때 같은 동네, 같은 반 친구로 만나 결혼 약속을 하고, 38세에 가까스로 결혼해 30년째 같이 살아온 N과 헤어졌다. 스토커로 의심되는 남자가 집요하게 여성에 전화를 걸고 편지를 보내자 N은 반신반의하다 끝내 여자를 의심하면서 '찾으려고 애쓰지 마'라는 쪽지를 남기고 사라진다. 

"뜬금없이 N의 목소리가 환청으로 아주 가까이에서 들린다. '사랑해, 사랑해. 영원히!' 어떤 상황에서 그는 이런 담대하고도 불가능한, 초인간적인 선포를 한 것인가. 어떤 순간적인 쾌락이, 어떤 근원적인 불안이 N으로 하여금 이런 단말마적인 고백을 쏟아내게 했을까. 감정적으로는 바짝 메말라 있었음에도 내 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 한 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영원이 무엇인지 영원히 경험하지 못할, 설령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이제는 깨져버린 그 한계에, 겨우 30년의 공생에 대해 영원을 논한 우리의 순진함에 나는 한 방울 눈물을 바쳤다."

 

'영원'에 대한 환상이 깨져버린 허무가 이때는 여성의 눈물샘을 자극했지만, 낯선 남자의 방에서 울었던 울음은 무방비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인 위안을 얻고 싶은 무의식이 심층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낯선 남자는 여자의 어깨를 가만히 두드려주고 말없이 울음소리를 들어주었으며 자신의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여자는 어느 순간 눈물을 그치고 그 방을 나왔는데, 후일 다시 찾아보려니 어디가 어디인지 몰라 영원히 그 '환대의 방'을 찾지 못했다.


'울음소리'의 여성은 어린 시절 심하게 왕따를 당하던 J를 방관만 하던 기억이 떠올라 따라 울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다행히도 J는 '아주 멀고 가난한 나라에 가서 남편과 함께 의사로 일하고' 있었고, 그때만 해도 그녀는 그 소식을 '오래전에 누군가에게 건성으로 듣고, 결연히 잊고 있었'는데, 숲속의 그 울음이 저 심층에 가라앉은 회한을 끌어올린 것이다. 그녀는 이제 다짐한다. 숲에서 그 여자를 만나면 "그녀와 같이 숲을 내려와 그녀의 동생이 사는 집까지 바래다 줄 것"이며 "여인만큼 천천히 걷는 것을 배울 것"이고 "여인이 멈추면 그녀도 멈추어 기다려주리라"고.

 

아무리 울어도, 그 울음을 다독여주어도 회복되지 않는 '상실'은 어찌할까. 표제작 '동행'의 부부가 사는 아파트는 살림살이가 거의 없는, '겨우' 필요한 몇 가지만 있는 황량한 빈 공간에 가깝다. 그들은 기실 '겨우' 살아가고 있는 형편이다. 초등학교 5학년짜리 아들이 어느날 베란다 너머로 투신해 사라졌다. 엄마는 해외에서 무용 공연을 하고 있었고, 동시통역가인 아버지는 자신의 방에서 이어폰을 낀 채 작업 중이었다. 아들은 아버지 방문을 열고 '잘 자'라고 말했고, 아버지는 아들의 방에 들어가 굿나잇 인사를 했다. 그날 아버지는 "그저 '퍽' 소리가 났던 것 같고, 사람들이 내지르는 소리가 심상치 않아 베란다로 다가갔다"고 했다. 학교를 찾아 아들의 친구와 선생을 만나 오래 이유를 찾았지만 무망했다. 경찰은 부모도 의심했지만 그들의 '무죄'와 '자살 확인'은 그들을 더 깊은 허무로 내던졌을 따름이다.

 

이 상황에 미국에 산다는 동창이 아들 지훈과 같은 또래의 딸 J를 데리고 나타나 하룻밤 잔 뒤 딸만 남겨둔 채 사라진다. 아내는 J의 등장으로 인해 마술에라도 걸린 것처럼 에너지로 채우고 몸 안의 발전기를 돌리기 시작한다. 아들이 즐겨 먹던 음식을 하고, 그 아이를 데리고 무용 공연을 보러간다. 입을 닫고 있던 그 아이가 시간이 흐르자 갑자기 욕을 하기 시작하고, 끝내 또래 아이들을 데려와 강도짓을 한 뒤 그녀의 허벅지에 칼까지 꽂고 사라졌지만, 아내는 오히려 평화를 찾는다. 후일 성인이 되어 마술사로 나타난 그 아이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마술을 하는 장면을 부부는 지켜본다. 따지고 보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아슬아슬한 마술일지 모른다. J라는 아이는 어린 시절 존재 자체로 부부에게 마술을 부린 셈이다.  

 

'상실'은 계속 변주된다. '서울 퍼즐-잠수교의 포효하는 남자'에서는 사랑하는 동생이 어느날 실종된다. 편도 티켓을 끊고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떠났던 그 동생은 먼 대륙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소수 언어를 말할 줄 아는 유일한 사람이 돼 있었다. 그는 만 명 정도로 추정되는 소수 종족인 바싸리 족의 언어를 채집하기 위해 지프차를 몰고 가던 중 소 떼에 부딪쳐 죽었다. 동생이 보내준 소수 종족의 언어들을 한강변을 달리면서 듣곤 했던 형은 말미에 그 뜻을 헤아린다. 깊은 곳에서 울리는 목소리, '다시, 다시!'라는 말을.

 

'분홍색 상의를 입은 여자'의 K는 유명 사진작가로 잘 나가다가 소리 없이 사라졌지만, 어느날 '하강과 실추의 드라마 온몸에 싣고' 나에게 온다. 나는 K에게 그 드라마에 대해 묻지 않았고, K는 결국 다른 세상으로 실종된다. '애도'에 나오는 K도 결혼 3년째 되는 어느 날, 공책에 '실종 신고 하지 마'라는 한 문장을 써놓고 사라진다. 집까지 몰래 팔아 챙겨 떠났던 그는 객지를 떠돌다가 그녀가 있는 C시로 돌아와 노숙하다 사망했다. 이들의 '상실'은 비극이지만, 그 저변에는 회복에 대한 작가의 따스한 바람도 희미하게 깔려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의 K는 둘 다 돌아와서 죽었으니, 결국 '나'에게로 실종된 셈이다.

▲ 최윤의 이번 소설집은 상실을 받아들이고 위무하며 대처하는 태도를 여러 양상으로 변주한다. [서은영 사진·문학과지성사 제공]


올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인 '소유의 문법'은 위 단편들과는 다른 결이다. 자폐 경향과 발달장애를 겪고 있는 딸 '동아'는 수시로 고함을 질러 한적한 공간이 필요했다. 부부의 사연을 알고나 있었던 것처럼 유명한 조각가 은사인 P가 경치가 빼어난 외곽의 산 계곡에 소유한 집 두 채 중 하나를 빌려준다. 그 마을에 가보니 이미 은사의 집 한 채에는 장 대니얼이라는 제자가 살고 있었고, 그 집에서 바라보는 경관은 황홀할 정도로 미의 극치를 연출했다. 장은 마을 사람들과 합세해 그 집을 은사로부터 빼앗을 소송을 도모하며 나도 합세할 것을 요구하지만 거절한다. 결국 어느날 동아가 밤에 고함을 치는 바람에 내려왔다가 그 계곡 마을이 폭우로 휩쓸려가는 광경을 목도한다. 노아의 방주는 지금 이곳에도 필요하다. 작중 화자의 입을 빌려 "고독과 미에 대한 무지와 욕망과 질투가 뒤섞여 빚어낸 '소유의 불행한 문법'"을 탄했다. 

 

이밖에도 터널에서 빠져나오는 법을 말하는 '옐로', 뜻밖의 메시지 한 줄이 잔잔하게 가슴을 덥히는 '숨바꼭질'을 포함해 이번 소설집에는 모두 9편이 수록됐다. 서강대 불문과에서 30여 년 동안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해 8월 정년을 맞은 최윤(본명 최현무)은 "소설과 마침내 친해졌다"면서 "꽤 긴 시간 같이 걸었다"고 썼다. 지난해에는 8년 만에 장편 '파랑 대문'을 펴냈고 이번에는 2012년부터 집필한 단편들을 모아 방출했으니, 이제 소설에만 전념할 수 있는 시간 속에서 새롭게 고일 그의 작품들이 기대된다. 최윤은 세상에 대한 '말 걸기'를 이렇게 다짐한다.

 

"멈추건, 가건 나는 여전히/ 선해지기를 기대하는/ 세상에 대해,/ 천상의 위로와 애무가 필요한/ 이 세대에 대해,/ 그저 한 가지,/ 말 걸기를 멈추지 못한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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