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내게 고독은 꽃만큼이나 달콤했다"

문화 / 조용호 / 2020-12-18 18:08:46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저작들에서 뽑은 '소로의 문장들'
200여년 전 자발적 거리두기 실천한 '고독' 예찬론자
코로나 바이러스 시절 '고립'을 견디는 치유의 말들
"비극은 서로의 침묵을 이해하지 못할 때 시작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사태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내내 강조되다가 연말로 접어들면서는 급기야 거리두기 마지막 3단계까지 거론되는 시점이다. 사람들 속에서 삶의 활력을 찾고 생활의 동력을 확보해온 대다수는 갈수록 고립감을 느끼면서 심각한 우울감까지 토로하는 형국이다. 미국 작가이자 생태주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는 일찍이 자발적인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한 인물이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월든 호숫가에서 2년 동안 오두막을 짓고 생활한 내용을 기록한 '월든'은 고전으로 회자되고 있거니와, 이 대표작을 포함해 그의 다양한 저작들에서 뽑은 내용들을 모아 편집한 '소로의 문장들'(박명숙 엮고 옮김, 마음산책)은 작금의 거리두기 고립감을 해소하는데 유용한 치유의 책이다.

▲미국 작가이자 사상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을 포함한 다양한 저작을 통해 자연을 예찬하며 일찍이 자발적인 거리두기의 삶을 살았다. [마음산책 제공]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는 게 심신에 좋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누군가와 같이 있다 보면 이내 피곤해지고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나는 혼자 있는 게 좋다. 지금껏 나는 고독만큼 함께 있기에 좋은 친구를 만난 적이 없다. 우린 대부분 방 안에 혼자 있을 때보다 밖에서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닐 때 더 외롭다고 느낀다. 사색하거나 일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든지 언제나 혼자다. 고독은 한 사람과 그의 동료들 사이의 거리로 잴 수 있는 게 아니다."

 

소로는 '월든'에서 고독만큼 좋은 친구를 만난 적이 없다고 썼는데 그가 죽기 전까지 꾸준히 썼던 일기에는 보다 진전된 자신의 생각들이 깊이 배어 있다. 그는 "사람들이 사회적 미덕이라고 부르는 동료애란 대개는 꼭 붙어 누운 채 서로의 몸을 덥혀주는 한배의 새끼 돼지들의 미덕에 불과하다"면서 "그것은 술집과 또 다른 곳에 사람들을 모이게 해 무리와 패거리를 이루게 하는데 그것은 미덕이라고 불릴 가치가 없다"고 일기에 적었다. 너무 자폐적인 사고는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면 소로의 다양한 생각들을 더 따라가 보자.

 

소로가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고향 콩코드로 돌아왔을 때, 널리 알려진 사상가이자 시인이었던 랠프 윌도 에머슨(1803~18882)이 그에게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소로에게 일기 쓰기를 권유했고 그때부터 시작된 소로의 일기 쓰기는 그가 죽기 6개월 전까지 24년간 이어져 39권의 노트를 남겼다. 이 일기가 '월든'을 비롯한 다양한 저작의 바탕이 된 것은 물론이다. '소로의 문장들'은 다양한 저작과 편지를 비롯해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일기에서 많은 문장들을 발췌했다.

 

소로에게 고독과 고립을 충분히 보상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자연이었다. 그에게 자연은 종교에 가까운 숭배 대상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종교인 것이 내게는 자연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싶다고 직접 일기에 진술했거니와 겨울 숲을 묘사하면서는 "하느님도 숲보다 건강하진 않다"고 쓴다. 그는 자신을 들판을 누비는 한 마리 꿀벌에 비유했다.

 

"어린 사냥꾼이 덫으로 사냥감 잡는 법을 배우듯, 우린 세상이라는 꽃에서 꿀 모으는 법을 배운다. 이것이 내가 매일 하는 일이다. 나는 꽃을 찾아다니는 꿀벌처럼 분주하다. 이런 용무로 온 들판을 누비고 다닌다. 그러다 나 자신이 꿀과 밀랍으로 무거워졌다고 느낄 때 가장 행복하다. 나는 온종일 자연의 달콤함을 찾아다니는 꿀벌과도 같다. 내 눈을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옮겨 가다보면 꽃들을 수분시켜 귀하고 멋진 품종을 만들어낼지도 모르지 않는가."(1851년 일기)

 

그는 "자연은 천재성과 신성(神性)으로 가득 차 있다"면서 "자연이 빚은 것은 그 어느 것도, 심지어 이슬방울이나 눈송이 하나도 하찮거나 조악하지 않다"고 예찬한다. 자연 속에 살면서 감각을 온전히 유지하는 사람이라면 암담한 우울을 느낄 일은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건강하고 순수한 사람의 귀에는 폭풍우조차 '바람의 신'이 연주하는 음악으로 들린다"면서 "순박하고 용기 있는 사람을 속된 슬픔으로 몰아넣을 권리를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월든'에 썼다.

▲자연을 종교처럼 숭배했던 소로는 산책하면서 보았던 풍경을 다양한 드로잉으로 남겼다. [마음산책 제공]


소로가 월든 호숫가로 가서 오두막을 짓고 2년 동안 홀로 지낸 것은, 그와 함께 고향 콩코드에서 아카데미를 운영하던 젊은 형이 파상풍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 찾아든 극심한 우울을 극복하려는 의지도 개입됐던 것 같다. 그는 이 오두막에서 형과 함께 여행했던 이야기를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의 일주일'이라는 원고로 완성해 오두막 생활을 정리한 후 자비로 출간했다. 1000부를 찍어 700부나 반품을 받아 창고에 쌓아두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지속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원고에 담아냈다. 세기의 고전으로 등극한 '월든'도 그의 사후에서야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내가 숲으로 간 것은 의도적으로 살아보고 싶어서였다.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하고, 인생이 가르치는 것을 배울 수는 없는지를 알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죽음이 닥쳤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음을 깨닫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이란 그토록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또한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체념을 배우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월든')

 

그는 만성적인 체념의 상태야말로 절망의 모습이라고 여겼다. 소로가 극단적인 유폐를 지향했던 건 아니다. 그는 "내 집에는 세 개의 의자가 있는데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 둘은 우정을 위한 것, 셋은 사교를 위한 것"이라고 '월든'에서 말한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도 사교를 즐기고, 열정이 넘치는 사람을 만나면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좀처럼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서 "나는 타고난 은둔자가 아니며, 볼일이 있을 때면 엉덩이가 무거운 주점의 단골손님보다 오래 앉아 있기도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과의 교류에서 비극은 서로의 말을 오해할 때가 아니라 서로의 침묵을 이해하지 못할 때 시작된다. 거기에는 어떤 설명도 있을 수 없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 사랑은 저주나 다름없다."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의 일주일')

 

그는 월든 호숫가의 오두막 시절에도 완벽한 고립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가끔 시내에 나가 친구들과 어울리고 가족들도 만났으며 오두막으로 사람들을 초청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대부분 홀로 지내는 상태를 선호했다. 늘 자발적 거리두기를 병행한 셈이다. 그는 "혼자 있을 때 가장 충만한 삶을 산다"면서 "일주일에 단 하루라도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면, 그 일주일의 가치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면서 "그 때문에 나의 날들이 허비될 뿐만 아니라, 종종 그 손실을 만회하는 데 또 다른 한 주가 걸리기도 하는 것"이라고 일기에 적어놓았다. 그의 '고독' 예찬은 끝이 없다.

 

"내게 고독은 꽃만큼이나 달콤했다. 나는 끝없는 평원에 앉아 고독을 즐겼고, 그것을 깊이 들이마셨다. 내게 고독은 케이프코드에 흔하디흔한 월귤 나무보다 훨씬 가치 있는 약이었고, 난 그것을 오랫동안 그리워했다. …사람들은 내가 은둔 생활을 함으로써 삶을 삭막해지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내가 누리는 고독 속에서 스스로를 위한 비단 거미줄을 짜거나 번데기를 키우고 있다. 그리하여 머지않아 마치 애벌레처럼 보다 높은 사회에 적합한 더 완벽한 존재로 활짝 피어나게 될 것이다." (1857년 일기)


소로처럼 철저하게 고독을 영접하진 못한다 하더라도 코로나로 인해 강제로 유폐된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이즈음의 사람들에겐 위안이 되는 글인 건 사실이다. 소로는 고향 콩코드에 개설한 아카데미에 공부하러 온 아이의 언니를 사랑해 형과 함께 차례로 프러포즈를 했지만 거절당했고, 이후에도 독신으로 살면서 그녀를 마음에 두었다. 그가 추구한 사랑 또한 자연을 닮은 것이었다. 소로는 "모든 자연은 나의 신부"라면서 "누군가에게는 삭막하고 끔찍한 고독을 느끼게 하는 자연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달콤하고 다정하며 상냥한 사교의 장"이라고 일기에 적었다. 

"사랑은 모든 자연이 노래하는 송시의 반복구와도 같다. 새들의 노래는 결혼 축가다. 꽃들의 결혼은 초원을 울긋불긋 물들이거나, 산울타리를 진주와 다이아몬드로 장식한다. 깊은 물속, 높은 창공, 숲과 초원 그리고 땅속 깊은 곳 어디에서든 사랑은 모든 것들의 일이자 삶의 조건이다." (1840년 일기)

 

소로의 문장들을 뽑고 번역한 불문학자 박명숙은 "과잉 소통과 과잉 접속의 시대에 '홀로 있음'과 '따로 또 함께 살아가기'에 대한 자각과 고찰이 깊어지면서 인간 위주로만 돌아가던 세상과 문명을 앞세워 자연을 훼손하고 등한시해온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고 이 책에 의미를 부여했다. "아무래도 집에 머무는 데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것 같다"고 지인에게 편지를 썼던, "나는 잠을 필요로 하는 갓난아기처럼 고독에 대한 엄청난 욕구를 느낀다"고 고백했던 소로의 삶을 흉내 내기는 쉽지 않을 터이지만, 그가 설파한 이런 '만남'에 대한 태도는 코로나바이러스의 고독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우리의 만남이 두 행성의 만남과 같게 하자. 상충하는 영역을 조급하게 뒤섞으려 하지 말고, 미묘한 인력의 영향으로 서로에게 이끌리듯 최대한 가까이 다가갔다가 곧 다시 각자의 궤도를 따라 제각기 길을 가는 행성들의 만남이 되게 하자." (1838.3.14.)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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