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특집] "그대의 붉은 가슴이 보입니다"

문화 / 조용호 / 2021-01-01 00:00:03

신축년 한반도를 비추는 황금 햇덩이가 백두의 머리에서 솟아올랐다. 천지 아래 자욱하게 파도처럼 웅성거리는 구름바다 붉게 적시며 미명의 하늘 끝까지 충만한 서기를 쏘아 올린다. 저 밝고 맑은 백두의 황금빛은 창궐하는 역병을 압도하고, 민족의 새로운 앞날을 열어젖힐 상서로운 축복이다. 매년 매일 지치지 않고 뜨고 진다고, 모두 같은 해는 아니다. 흰 소가 끄는 신축년 정월 초하루, 흰 머리 백두대간 우듬지에서 부상하는 저 불덩이는 새롭게 타오르는 횃불이다.



"금강산 비로봉/ 밤하늘의, 사발덩이 같은 물먹은 별/ 마셔보았는가/ 그 밤하늘 마셔보았는가,// 백두의 천지 가에 서 본 일이 있는가/ 전신이 터지게/ 호수 건너편 벽 향해/ 소리쳐본 일이 있는가,// 한라, 그렇다/ 한라도 백록담/ 시로미 밭을 밟고 서서/ 보았는가,/ 천공(天空),/ 천공(天空),// 하늘,/ 하늘 흘러가는/ 하늘 소리를 들었는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외치던 민족시인 신동엽(1930~1969)은 금강과 백두와 한라와 그 봉우리 위로 흐르는 하늘의 소리를 들려준다. 그는 "황폐한 땅에도 아침은 온다,/ 아득한 평야에 새벽이 열리면/ 어디서라 없이 들려오는 가벼운 휘파람 소리,/ 물 길어 오는 아낙의 물동이 가에/ 반도의 아침이 열린다"고 '금강'을 흐르게 했다. 

 

"새해 아침은 불을 껐다 다시 켜듯이/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오십시오/ 답답하고 화나고 두렵고/ 또 얼마나 허전하고 가난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지난밤 제야의 종소리에 묻어둔 꿈도/ 아직 소원을 말해서는 아니 됩니다/ ……/ 낡은 수첩을 새 수첩으로 갈며/ 떨리는 손으로 잊어야 할 슬픈 이름을/ 두 줄로 금긋듯/ 그렇게 당신은 아픈 추억을 지우십시오/ 새해 아침은/ 찬란한 태양을 왕관처럼 쓰고/ 끓어오르는 핏덩이를 쏟아놓으십시오"


남도의 시인 송수권(1940~2016)은 떨리는 가슴으로 저 해를 맞았다. 백두의 머리에 찬란한 왕관처럼 떠오른 저 태양을 끓어오르는 핏덩이처럼 토해내라고 쓴다. 떨리는 손으로 슬픈 이름일랑, 아픈 추억 같은 건 지워버리고 새 수첩에 새 이름과 미래를 쓰자고 쓴다.

 

"너의 사랑은 익어가기 시작한다/ 너의 사랑은/ 삼팔선(三八線) 안에서 받은 모든 굴욕이/ 삼팔선(三八線) 밖에서 받은 모든 굴욕이/ 전혀 정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너는 너의 힘을 다해서 답쌔버릴 것이다 "

 

시인들의 시인으로 군림하는 김수영(1921~1968)은 '육십오년의 새해'에서 삼팔선의 사랑을 말했다. 삼팔선 안과 밖에서 받은 모든 굴욕일랑 너는 너의 힘으로 족쳐버려서, 그리하여 충만하고 농익은 사랑으로 승화되기를 바란다. 김수영의 까마득한 후배 시인 안도현(1961~)은 '삼팔선의 사랑'을 이렇게 숙성시킨다. 


"그대/ 마침내 해가 떠오릅니다/ 원산 청진 경포 울산 앞바다에/ 백두 한라 상상봉에/ 그대의 붉은 가슴이 보입니다/ 우리가 또 껴안고 살아가야 할/ 신천지가 보입니다/……/ 그대와 만나고 싶습니다/ 이제까지 싸움이/ 우리를 이렇게 키워왔듯이/ 피 터지는 사랑 없이는/ 좋은 세상에서 만날 수 없음을 믿습니다/ 사랑으로 하여/ 우리가/ 맑고 뜨거운 해로 떠오르는 날 옵니다"('사랑을 노래함')


새벽부터 천지에 오른 이들이 운해 끝에서 머리를 내민 황금빛을 숙연히 바라본다. 그 해 점점 떠올라 구름 파도 물들이고 하늘로 올라간다. 새 해는 솟았고, 새 미래는 열리기 시작했다. 맹목적인 낙관이 아닌 무거운 희망을 한 조각이라도 붙들려면, 지금 움직여야 한다. 작은 몸짓들이 큰 희망을 일군다. 일어나서 나가라. 나가, 반도의 중천으로 떠오르는 저 해를 가슴으로 영접하라. 


UPI뉴스 /백두산 천지= 글·사진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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