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다만 아기는 살게 하시옵소서"

문화 / 조용호 / 2021-01-22 16:45:15
러시아 알렉세이 바를라모프 장편 '탄생'
조숙아를 낳은 부모의 체험과 간절한 기도
개혁 개방 와중 러시아 현대사 고통도 투사
"또다른 '정인이'의 비극을 방지할 감성 소설"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찬미와 축복보다는 죽음이 더 많이 거론되고 부각되는 이즈음이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감금된 사람들은 깊은 우울감에 빠져들어 쉬 벗어나지 못한다. 생후 16개월 된 아기를 밥을 먹지 않는다고 폭행해 복강 전체가 피로 가득하게 만든 양부모 이야기는 아예 눈을 감게 만든다. 탄생이라는 신비스러운 과정이 없다면 죽음이란 애초에 불가능한 것, 죽음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면 그 시초로 거슬러 올라가 생명의 신비로움을 되새겨 보는 건 어떠한가. 죽음으로 향하는 눈과 귀를 씻고, 생명 본연의 아름다움과 순수를 되새기는 시원으로 눈길을 돌려보는 건 어떠한가. 러시아 고리키문학대학 총장인 소설가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바를라모프(58)의 소설 '탄생'(라리사 피사레바·전성희 옮김, 상상)을 들여다보는 배경이다.

▲러시아 고리키문학대학 총장으로 재직 중인 소설가 알렉세이 바를라모프. 조숙아로 태어난 아기가 살아나는 과정을 그린 장편 '탄생'은 실제로 자신의 아들 출생에 얽힌 일들을 모티브로 삼았다. [상상 제공]   


'성모 마리아여, 당신이 저 아이에게 임하시어 그를 도와주소서. 저 아이는 지금 혼자 있으면 안 됩니다. 저 아이는 혼자 있던 적이 없었고, 혼자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저 아이는 죄가 없고 살아 있는 그 어떤 것보다 깨끗하오니, 저 아이가 당신을 만나서 두려움을 멈추게 하소서. 저 아이는 지금 무서워하고 있지만, 만약 당신이 저 아이에게 임하신다면, 만약 당신이 저 아이를 어루만지신다면, 아이는 안정을 찾을 것입니다. 당신만이 지금 저 아이를 구원하고, 저 아이가 사라지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저를 벌하시되 저 아이에게는 임하소서.'

 

임신 30주 만에 조숙아를 낳은 여자는 성모에게 간절히 기구한다. 당신만이 저 아이를 구원할 수 있다고, 원하시는 대로 저를 벌하시되 저 아이는 혼자 고통 받게 내버려두지 말아달라고 애원한다. 저 기구만큼 어떤 삿된 것도 끼어들지 않은 순수하고 애절한 게 또 있을까. 불임인 줄 알고 포기했던 여자는 서른다섯 살에 첫 임신을 했다. 데면데면한 남자와는 이혼하려고 맘먹은 시점이었다. 남자는 숲으로 들어가서 홀로 시간을 보내며 만족을 찾는 스타일이었다. 숲에서 돌아온 남자에게 아기를 가졌다고 말하자 그는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라고 물었다. 여자는 그렇게 물어본 남편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보수파의 쿠데타를 진압한 옐친이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이 됐지만 반대 세력이 탄핵안을 제출했고, 옐친 정부와 의회 간의 정치적 대립으로 충돌사태가 일어나던 1993년이 배경이다. 2년 전 보수파의 쿠데타 당시에도 거리로 나갔던 남자는 이날도 늦은 밤 시내로 갔다가 돌아와 상황을 전했다. 여자는 겁이 났다. 누가 누구와 싸우고 누가 이기든 아무 상관없었지만, 유리가 깨지고 전기와 물이 끊긴 집들과, 텅 빈 가게들, 행렬들, 사람의 무리, 총격 등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럴 때 출산을 하게 되면 어찌할까 여자는 걱정하며 잠을 이룰 수 없었는데 그 우려는 현실이 됐다. 실제로 이 시점에 러시아에서 조산한 임산부들의 숫자는 늘어났다. 고통을 호소하던 여자는 태아가 기형적으로 자라고 있다는 진단을 받고 입원을 하게 된다. 남자는 태아의 곤경 앞에서 태도가 바뀌기 시작한다.

 

"그는 단 한 번도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은 적은 없었지만, 자신이 국가 운명이나 민주주의 운명 따위에 아무 관심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빌어먹을 다들 어떻게 되든, 독재자가 나타나든, 다른 나라와 전쟁이 일어나든 말든, 그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아이를 위해서 살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희망을 안고 간절하게 아내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녀의 냉담, 무관심, 서먹함 등을 용서할 준비도 되어 있었다. 아내가 건강하고 튼튼한 아들을 낳을 수 있기만 바랄 뿐이었다."

 

여자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서둘러 나오려고 한다. 병원에서는 아이 상태도 복잡한 데다 뒷돈을 찔러주지도 않는 부모의 아이를 다른 병원으로 보내기 위해 구급차를 부른다. 구급차에 전하는 지시서. "조산, 태아 저산소증, 영양실조, 태반기능부전, 태아 횡위, 탯줄 꼬임 2회. 임신 30~31주. 초산. 35세." 응급을 다투는 상황에서 구급차는 두 시간이 넘어서야 당도한다. 모스크바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병원이지만 바퀴벌레들이 자유롭게 활보하는 집중치료실에서 아이는 이제 생사를 넘나드는 터널로 접어든다. 여자가 처음으로 집중치료실에 들어가 '주름진 얼굴과 입, 눈, 코, 손, 놀랍도록 가늘고 긴 발가락과 발톱이 달린 발'을 보았다. 아기 다리 사이로 가늘고 연약한 물줄기가 나오자, 그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다정함에 사로잡힌다. 아이의 따스하고 연약한 오줌이 눈물겨웠다.


'아, 성모님, 성모 마리아님, 주님, 주님, 이 모든 것은 당신입니다. 아직 떠나지 마세요. 저에게 하락되지 않는 동안 이 아이와 좀 더 계세요. 나중에 아이를 당신께 데려가겠습니다. 당신이 구원해주신 거라고 나중에 아이한테 말해주겠습니다. 당신은 이 아이의 수호자입니다. 아이를 당신에게 바치겠으니, 그저 제발 지켜만 주세요.' 

 

여자의 기도에 남자의 기도도 더해진다. 아내를 떠나 숲속 통나무집에서 홀로 지냈던 그는 코냑 한 모금을 마시고 열려 있는 어두운 창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고, 정신없이 속삭이기 시작한다. 

 

'주여, 저에게 어떤 벌이든 내려 주시고, 당신께서 필요하신 햇수만큼 저의 생명을 가져가시고, 저의 건강과 힘을 가져가시고, 그 통나무집을 가져가소서. 모든 것을 가져가시되, 다만 아이는 살게 하시옵소서.'

 

밤에 아파서 깨어나 울기 시작한 아기는 여자가 안아줘도 계속 울어댔다. 남자가 아기를 자기 배에 올려놓자 통증이 금세 가라앉았는지 울음을 그쳤다. 다음 수유를 할 때까지 아기는 그렇게 아빠 배 위에서 곤히 잠들었다.

 

"여자는 남자가 잠들어서 섣불리 몸을 뒤척일까 불안했지만 남자는 자지 않았다. 아이가 집에 왔던 처음 몇 시간 동안 그가 겪은 것은 그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강렬한 충격이었다. 그는 단 한 번도 어머니든 아버지든 아내든, 그 누구든 간에 그토록 미친 듯이 본능적이면서도 동물적인 애정으로 사랑해본 적이 없었다. 이것은 사랑, 혹은 행복이라 지칭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가 경험한 것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개념 가운데 그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 훨씬 깊고 강렬한 것이었다."

 

사랑, 행복이라고도 지칭할 수 없는, 그 어떤 사람의 생각으로도 정의할 수 없는 깊고 강렬한 감정.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깊은 곳에 자리잡은 생명을 대하는 본성일 터이다. 남자는 전국 최고의 병원인데도 불결함, 도난, 뒤죽박죽, 나쁜 것들로 점철된 모습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폭동, 혁명, 개혁, 페레스트로이카, 독재 체제들이 일어나도 다 똑같은 것처럼 여기도 그러하다고. 그는 아이를 바라보며 다짐한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사람들이 러시아를 욕하거나 러시아를 겁대가리 없는 천치라고 부를 때면, 난 여기가 내 나라고, 다시없을 내 조국이라고 언제나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다. 우리가 구차하게 노예처럼 살고 있는 것은 우리의 운명이자 평등과 정의에 홀렸던 세대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대가이다. 그래서 나는 이 빚을 갚을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그건 나한테 아이가 없을 때 얘기다. 아이는 결백하며, 아이가 내 잘못의 대가를 치를 의무는 없다. 아이라도 사람답게 성장하게 하자."

▲'탄생'을 전성희와 함께 한국어로 공동번역한 라리사 피사레바(왼쪽)와 러사아판 표지. [상상 제공]  


알렉세이 바를라모프는 1995년 발표한 이 작품으로 '안티 부커상'을 수상했다. 1987년 단편 '바퀴벌레'로 등단한 그는 이밖에도 '바보' '침몰한 방주' '교회의 돔' 등을 썼고, '알렉세이 톨스토이' '미하일 불가고프' 등의 전기 작가로도 호평을 받았다. 솔제니친상(2006)을 받았고, 한국에서 주관하는 '창원KC국제문학상'(2015)을 수상해 방한하기도 했다. 일본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정신박약자인 아들과 함께한 외로운 싸움을 '개인적 체험'에 기록했듯이, '탄생'도 실제로 바를라모프의 아들 출생에 얽힌 일을 담은 소설이다. 

 

러시아 현대사의 굴곡을 조숙아 탄생과 양육의 과정에 투사하기도 한 이 소설은 아픈 아이를 품은 부모의 생각과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한 점이 돋보인다. 서로 소원했던 부부가 조숙아를 낳아 함께 고통을 나누면서 하나의 지향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도 눈여겨 볼만하다. 바를라모프는 "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삶을 문자로 옮긴 것"이라면서 "그러니 원문이 선명할수록 옮기는 작업이 더 잘된다"고 말했다. 그가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는 말.

 

"어느 러시아 작가가 말하길,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은 같은 언어로 운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웃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일 수 있을 겁니다. 아이를 기다리는 모든 여성 역시 각자 독특하면서 뭔가 유사한 일을 경험하고 있겠지요. 보편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 혈연적인 것과 개성적인 것, 그 관계 안에는 문학이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 삶의 중요한 비밀이 내포되어 있으며, 작가는 그저 자기 얘기를 들려주고 아픔을 치유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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