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희망은 제대로 현실을 직시할 때 생겨납니다"

문화 / 조용호 / 2021-02-02 16:56:01
장편 '뻐꾸기, 날다' 펴낸 소설가 고광률
정치인과 자본가의 야합과 배신, 치밀한 복수극
"대다수 정치인은 밥을 똥과 섞어 더럽히고,
그 속을 뒤져 밥알을 찾아 먹는다"

소설가 고광률(59)이 한국사회 정치인의 민낯과 먹이사슬 구조의 인간 군상을 정밀하게 들여다본 장편 '뻐꾸기, 날다'(강)를 펴냈다. 정치인과 자본가가 어떻게 야합하고 배신하는지, 그 과정에서 지식인 언론인 경찰 검찰 금융인과 아파트 경비원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또 어떻게 면종복배하고 구차하게 떡고물을 챙기는지 신랄하게 드러낸다.

▲정치판의 이합집산과 배신을 치밀한 복수극 형태의 스릴러로 그려낸 소설가 고광률.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소설은 보험사기조사전담요원인 허동우의 복수극 형식으로 전개된다. 허동우의 부친인 허남두 저축은행 회장은 위장 교통사고로 모살당했다. 이 모살의 주범은 전 도지사이자 지역에서 만든 신당 대표를 역임한 정치인 백대길. 이 사람 휘하의 다양한 인물들 역시 백대길과 함께 부침을 하며 서로 이익을 챙기기 위해 이전투구를 벌인다. 백대길의 동지이자 수족인 안우용은 딸이 납치당하자 동분서주하다가 백대길 운전기사를 죽였다는 자책감에 자살한다. 백대길은 불륜으로 낳은 딸을 버린, 부하에게 탁란을 시킨 파렴치한 놈이었다. 아이가 고아원에서 적응를 하지 못해 언어장애에 걸리자, 보다 못한 안우용이 데려다가 자신의 양녀로 길렀다. 백대길은 반신불수가 됐고, 조폭 조왕구는 살해당하며, 지식인 강중평은 사회적으로 추락하고, 무기거래업자 나삼추는 전 재산을 잃고 수배자가 된다. 이 복수를 진행하는 허동우의 계획은 치밀하다.

 

1987년 '호서문학'에 단편 '어둠의 끝'을, 1991년 17인 실천문학 신작소설집에 단편 '통증'을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을 걸어온 고광률은 그동안 소설집 '어떤 복수' '조광조, 너 그럴 줄 알았지', 장편 '오래된 뿔' '시일야방성대학' 등을 펴냈다. 이번 소설은 그가 지역에서 정치인의 선거전략팀 일원으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사회 정치판 복마전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이번 소설에서는 정치에 포커스를 맞춘 것 같다. 한국사회에서 정치인의 책임이 막중한 이유는 무엇인가.

"정치 권력에 대해서는 잘못 하면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자본이나 문화 권력 같은 건 책임을 묻기에 한계가 있다. 선악의 가치관을 뒤섞어놓고, 잘못돼도 끝까지 버티면 된다는 식으로 가치관을 무너뜨리고 잘못된 판단을 하게 만드는 게 제일 위험하다. 본디 절대선이나 절대악은 없지만, 정치인들은 선한 것을 찾아가야 하는데, 당리당략도 아니고 나에게 이익이 되느냐 아니냐, 그걸 가지고 나라까지 상품화시키고 팔아먹는다. 그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세상에 대한 나의 분노와 불화의 원인이 다 거기에 있다. 서로 생각해주면서 살아야 하는데, 글로벌 자본주의 체계 속에서 욕망을 제어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긴 하지만 욕망이 좀 제어가 돼야 하는데, 그 역할을 정치권력이 담당해야 하는데 오히려 조장하고 이용한다."

 

'뻐꾸기, 날다'는 고광률이 7년에 걸친 공부와 취재를 거쳐 200자원고지 2300장 가량 썼다가 600장을 줄여 출간했지만, 여전히 550쪽이 넘는 벽돌책이다. 부피가 부담스러워도 손에 잡으면 쉽게 몰입할 수 있다. 생생한 디테일과 냉정한 묘사가 소설가 고원정의 표현처럼 '독한 리얼리스트'의 면모를 보여준다.

 

-사회 부조리에 대한 분노를 다룬, 그동안 써 온 소설들과 이번 작품은 어떤 차별성을 지니는가.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 토지 화폐를 상품화한 거 아닌가. 사실 이런 것들을 잘 관리해야 하는 게 정치권력인데, 정치권력 자체가 상품화돼버렸다. 불량상품을 내놓고 폭탄세일하고 사기상품을 파는 식이다. 그 상품을 구매하는 유권자들이 잘 들여다보아야 하는데 안타깝다. 권력이란 가난하고 없이 살고 몰라서 핍박받는 사람들을 제도적으로 구해주려고 부여한 힘이다. 입신출세하고 양명한다는 게 결국 그런 과정에 복무하는 건데, 우리가 배우기를 잘못 배웠다. 정치권력이 상품화되면서 너무 잘못된 방향으로 가니까, 요런 이야기를 독자들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써보고 싶었다."

 

-이 소설은 권력과 부를 틀어쥔 자들이 자기들끼리의 이해를 위해 어떻게 이합집산하고, 또 보복하는지 얘기한다. 그들은 사적 복수마저도 공공의 자산과 없는 자들의 피로써 한다고 썼다. 물론 없는 자에게는 어떤 대가도 의미도 주어지지 않는다고.  너무 지나치게 이분법으로 몰아가는 건 아닌가?

"그게 현실이다. 사실 소설에서 묘사한 거보다도 여야를 떠나서 작금 정치가 악의 요소를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는 그들 중에서 누군가를 선택해야 하는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트럼프에서 보듯 전 세계적인 흐름 같기도 한데, 세계가 그럭저럭 움직일 수 있는 건 그나마 정신이 제대로 박힌 지도자들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증오와 대립구도의 선악의 틀을 짜서 국민들을 이간시키고, 그 틈에서 이권만 챙기는 것이다. 국익도 없다.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면 친일 친미도 서슴지 않는 게 현실 아닌가. 정치권력자들이 만든 아수라의 세상에서 정의가 무엇이고 진실이 무엇인지는 이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거물들은 거물들이라서 치열하게 암투를 벌이고 잔챙이들은 잔챙이들이라서 처절하게 진흙탕에서 나뒹군다.' 너무 비관적인 건 아닌가. 희망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현실적인 문제들을 정확히 알았을 때, 그 문제점을 느꼈을 때야말로 희망이 생긴다. 박근혜 이명박 정부를 욕하지만 우리가 뽑은 이들이니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 다수결로 결정되는 민주주의에도 맹점은 있다. 가짜뉴스를 믿는 이들을 이해한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말하고 듣는 걸 탓할 수만은 없다. 문제는 팩트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과 태도를 기르는 것이다. 희망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판단하는 분별력과 통찰력을 길러야 된다. 그런 맥락에서 정치라는 게 지저분하다고 해도 방기해버릴 수 없다. 그러면 그야말로 희망은 없다."

▲근년 들어 왕성한 창작열을 자랑하는 고광률은 이미 다음 장편도 완성해놓았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밥이 똥인데, 똥이 더럽다고 해서 밥을 안 먹고 살 수는 없다. 대다수 정치인은 밥을 똥과 섞어서 더럽히고는 그 속을 뒤져 밥알을 찾아 먹는다. 우리가 똥 묻은 정치인을 더럽다고 함부로 대하거나 무시하면 안 되는 이유이다.' 그가 소설 말미에 붙인 작가의 말이다. 

고광률은 다음 장편도 이미 집필해놓았다. 코로나 국면 목사들의 행태를 그린 '성자의 행진'(가제)이 그것인데, 유독 교회들에서 집단감염 사태가 이어지는 이즈음에 종교인들의 행태에 현미경을 들이댄 셈이다. 대전대 교직원으로  근무하며 하루 8시간 자고 8시간은 일하며 나머지는 소설에만 전념한다는 그는 "이즈음이 제일 행복하다"며 웃었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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