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가짜 존재증명의 가로등 아래 부나방처럼 몰려드는 사람들"

문화 / 조용호 / 2021-02-08 16:43:28
움베르토 에코 유작 에세이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신이라는 '위대한 증인'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타인의 눈'
'유동사회'에서 인정 받기 위한 유일한 방법 '드러내기' 강박
"증오의 환희는 크지만 보편적 사랑은 인간 체질에서 벗어나"

인간은 누군가 자신을 알아봐주지 않으면 살아갈 동력을 찾기 힘든 존재인가. 트위터나 페이스북 혹은 인스타그램 같은 실시간 소통 사회적네트워크를 누리는 이즈음 사회에서는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좋아요'에 연연하고 댓글에 일희일비하며 하루라도 사이버 세상의 관계를 점검하지 않으면 홀로 유폐된 듯한 공허와 고립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이 같은 시스템이 없었던 옛날에는 어떠했을까.

▲기호학자, 미학자, 소설가로 살다간 천재 저술가 움베르토 에코. 그는 유작 에세이에서 인터넷시대 현대인의 다양한 모습을 집중 성찰했다. [열린책들 제공] 


기호학자이자 미학자, '장미의 이름'의 작가 움베르토 에코(1932~2016)는 "옛날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건 항상 자신을 지켜보고, 자신의 모든 행동과 생각을 읽고, 자신을 이해하고, 또 필요할 땐 벌까지 내릴 수 있는 존재가 최소한 하나는 있다고 확신했다"고 말한다. 그의 유작 에세이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박종대 옮김·열린책들) 중 '신은 안다, 내가 바보라는 걸'에 나오는 대목이다.

 

"자식들에게 버림받은 병든 할머니는 말한다. '이 괴로운 마음을 신은 알 거야.' 부당하게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렇게 스스로 위안한다. '신은 내가 죄가 없다는 걸 알 거야.' 어머니는 배은망덕한 아들에게 말한다.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신은 알 거야.' 버림받은 애인은 이렇게 소리친다. '신은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 알 거야.' 운명의 시련에 빠져 고통받고 있지만 아무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이렇게 한탄한다. '내가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는 신만이 알 거야.' 이처럼 신은 모르는 것이 없고, 날카롭고 정의로운 눈으로 김빠지고 진부하기 짝이 없는 삶에도 하나의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로서 인간들에 의해 거듭 소환된다."

 

에코가 말하는 '신'은 하나님이나 부처뿐 아니라, 밀림 속 부족의 샤먼이기도 하고 우리네 부엌의 조왕신이나 성주신일 수도 있다. 자연에 전적으로 목숨을 의지하고 살았던 옛날에는 '신' 없이는 정신적으로 살아내기 어려웠다. 중세를 지나 과학시대에 접어들어 빛의 속도로 소통하는 초연결시대, 중심을 잃고 표류하는 '유동사회'에서 그 신이 설 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에코는 신이라는 '위대한 증인'이 사라지거나 쫓겨나고 나면 뭐가 남느냐고 묻는다.

 

"사회의 눈, 타인의 눈이 남는다. 사람들은 남들에게 잊히지 않기 위해, 이 사회에서 익명의 블랙홀에 빠지지 않기 위해 속옷만 입은 채로 술집 테이블 위에서 춤을 추는 얼간이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모두 남의 눈을 의식한 행동이다. 텔레비전 출연은 저 초월적인 존재를 대신하는, 전체적으로 고마운 유일한 대용품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텔레비전이라는, 현실과 다른 피안의 세계에 들어가 있고 그 피안에서 남들에게 자신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 지상의 피안에서는 모두가 우리를 본다. 우리 자신도 여기 아래에 있다. 비록 재빨리 사라지는 덧없는 순간이지만 이때만큼은 불멸의 느낌을 즐기고, 그와 동시에 지상의 우리 집에서 천국으로의 비상을 축하받을 가능성이 열린다. 생각해보라. 그게 얼마나 황홀한 일일지!"

 

에코는 다만 사람들이 '알아본다'는 의미를 착각하고 있다고 부연한다. 누군가 카페에서 우리를 보고 텔레비전에 나온 거 봤다고 알은체 하는 것은 단순히 얼굴을 알아봤다는 것이지, '너'를 알아준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차피 자신을 제대로 알아봐줄 수 있는 절대적 존재가 없다면, 피상적일망정 텔레비전이나 SNS에서 인정받는 것만으로도 대리만족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외로움과 불안감을 상쇄하기 위해 '가짜 존재증명'의 가로등 아래 오늘도 부나방처럼 모여든다.

 

에코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제로 우리에게 '사생활'이라는 게 있는가 의문이 든다고 말한다. 정체성 위기와 가치 혼란 속에서 방향타가 되어줄 기준점을 상실한 '유동사회'에서 사회적 인정을 받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되었는지 모른다고 분석한다. 그가 이탈리아의 예로 드는 '드러내기 강박증' 사례는 한국의 상황과 전혀 다르지 않다.

"과거에는 남들 이목 때문에 가정 내 싸움을 꼭꼭 숨겼던 부부도 이제는 흔쾌히 쓰레기 같은 방송에 나와 관객들의 박수갈채 속에서 어떤 때는 바람을 피운 역할로, 어떤 때는 파트너에게 배신당한 역할로 자신을 드러낸다. 버스나 기차에서도 사람들은 핸드폰으로 큰 소리로 통화하면서 남들이야 듣든 말든 자신의 가정사를 미주알고주알 털어놓고, 자신의 세금 신고를 대행해 주는 세무사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소상히 이야기하기도 한다. 심지어 쫓기는 범죄자들도 예전처럼 사회적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시골로 도망가 숨는 것이 아니라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 앞에 나타나길 좋아한다. 모두에게 무시당하는 성실한 사람보다는 세상 사람이 모두 알아보는 도둑이 되고 싶은 것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하지 않은 에코는 어느 주부가 자신과 트위터에서 생각을 주고받았다며 고맙다고 인사하자 난감해한다. 누군가 자신의 이름으로 가짜 계정을 만들어 활약한 것이다. 그는 "트위터는 시골 마을이나 도시 외곽에 대형 TV 화면을 갖다 놓고 스포츠 경기를 틀어 주는 술집과 비슷하다"면서 "온갖 인간 군상이 다 모여 자기 하고 싶은 말은 내뱉지만 술집에서의 수다는 국제 정치를 바꾸지는 못한다"고 말한다. 파시즘 정권만이 술집에서 오가는 수다로 정치가 바뀔 것을 걱정해 그런 곳에서 정치 이야기를 금지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는 에코도 트위터를 비롯한 사회적네트워크 시스템이 여론에 미치는 영향력을 과소평가한 측면이 보인다. 

 

물론 그가 인터넷 세상의 소통 위력에 한계를 부여한 건 아니다. 그는 "인터넷이 나온 뒤로는 아우슈비츠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면서 "중국 당국과 인터넷 싸움에서 패자는 중국 당국이 될 수밖에 없다"고 예측한다. 이미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등을 금지한 중국 당국이 새롭게 등장한 형태의 토론방 '클럽하우스'는 언제까지 용인할지 관심거리다. 아직까지는 중국 당국이 인터넷 싸움에서 패자인 것 같지는 않지만, '클럽하우스'처럼 쉼없이 생겨나는 여러 소통수단을 끝까지 완전히 차단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에코의 날카로운 시각과 풍자 화법은 '늙은이와 젊은이'를 살피는 대목에서도 유감없이 펼쳐진다. 노인의 수가 젊은이를 점점 추월하는 현실에서 일자리가 없는 젊은이들이 다른 방법이 없는 한 은퇴한 부모나 조부모에 손을 벌려야 하는 비극이 다반사로 전개될 것이라고 본다. 에코는 이러한 상황을 해결할 가장 손쉬운 방법은 "젊은이들이 자식 없는 노인들을 죽이는 것"이라면서 "가혹한 일이지만 습관이 되면 괜찮다"고 너스레를 떤다.

 

"'난 예순밖에 안 됐어!' '괜찮아요, 아빠, 우린 영원히 살지 않아요. 학살 수용소를 가는 마지막 여정을 위해 기차역까지 모셔다드릴 게요.' 그런 할아버지를 보고 손자들도 '잘 가요, 할아버지!' 하고 외친다. 노인들이 반발해서 숨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노인 사냥이 시작된다. 밀고자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그 옛날 유대인도 그런 식으로 깔끔하게 처치했는데, 연금 생활자라고 해서 안 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에코의 관심 영역은 다양하다. '사랑과 증오'를 말하면서는 "증오의 환희에 대한 우리의 본능은 각 나라의 지도자들이 국민을 그리로 몰아가기 무척 쉬울 정도로 자연스럽다"면서 "반면에 인간을 보편적 사랑으로 이끄는 것은 나병 환자에게 입을 맞추라는 끔찍한 요구처럼 우리 체질에서 벗어나는 일"이라고 본다. 종교는 물론이고, 고래로 뭇 예술이 '사랑'을 강조한 것은 역설적으로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었을까. 

▲움베르토 에코는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기 위해서, 무엇인가 소통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면서 "글쓰기는 사랑의 행위"라고 말했다. [열린책들 제공]


로마의 시사잡지 '레스프레스'에 2000년부터 췌장암으로 사망한 2016년까지 쓴 55편을 담은 유작 에세이집은 음모와 대중매체, 인종주의의 여러 행태, 철학과 종교 사이, 글을 읽고 쓰는 것, '뻔뻔하고 멍청한 인간부터 황당하고 정신 나간 인간들까지',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에코는 여러 영역을 넘나들면서 방대한 저작을 남긴 비결을 묻자 "기차에서도 화장실에서도 수영을 하면서도 많은 것을 생산해낼 수 있다"면서 "글을 쓰려고 앉기 전에 깊은 행복감을 느낀다"고 생전에 답한 적 있다. 온화하면서 날카로운 이 천재 작가가 유작 에세이에 밝힌 신문에 대한 고언은 각별히 새겨들을 만하다.

 

"어디에나 골 빈 인간들은 어느 정도 존재하게 마련인데, 옛날에는 동네 사람들에 한정해 그들이 황당한 말들을 퍼뜨렸다. 신문은 인터넷의 노예일 때가 많다. 왜냐하면 뉴스뿐 아니라 가끔은 황당한 이야기도 거기서 가져오고, 그로써 가장 큰 경쟁자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빌려주기 때문이다. 결국 신문은 늘 인터넷 뒤를 절뚝거리며 쫓아가기만 한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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