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마감을 앞둔 모든 이에게 바치는 헌사

문화 / 조용호 / 2021-02-26 11:51:03
일본 작가 30명 마감 분투기 '작가의 마감'
쓰는 고통은 비슷하지만 극복하는 과정은 달라
고통을 부인하지 않되 엄살도 피우지 않는 태도
"나에게 종교가 있다면 그저 꾸준히 쓰는 것"

"몇 번을 고쳐 써도 소용없었다. 결국 쓰던 원고를 찢어버려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금세 20일이 되었고 또 사나흘이 흘렀다. 3월 이후로 여기저기에 밀린 숙박비를 떠올리면 갑자기 심장이 경종을 울리듯 요동치니, 밤마다 그 미완성 원고를 붙잡고 마치 무대 위 주베에(일본 전통인형극 주인공)처럼 번민하며 피를 토한다. 창 밖으로 등대 불빛을 올려다보며 진실로 등대지기를 부러워한다."

 

일본 소설가 마키노 신이치(1896~1936)는 마감을 앞두고 심장이 경종 울리듯 요동치는 고통을 겪다가 어머니가 고향에서 보내온 등기우편에 허물어진다. 어머니는 가난한 아들에게 손자 학자금으로 쓰라고 100엔을 봉투에 넣어 보내온 것인데, 작가인 아들은 급한 돈이 해결되자 '절벽으로 뛰어 올라가 우스꽝스러운 미완성 원고를 발기발기 찢어 눈처럼 하늘로 날려 보내고' 내려온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글을 쓰는 사이 다음 마감일이 다가오고 슬슬 심장이 경종을 울리려 할 때, 때마침 고향의 어머니로부터 송금환이 도착하자 또다시 미완성 원고를 찢어버리고 홧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아들을 마감의 고통에서 구원해준 은인인가, 훼방꾼인가. 아들은 어쩌다 작가의 길로 접어들어 저토록 고통스러워하는가. 누가 저 고통을 감수하라고 떠밀었는가.  

▲ 일본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왼쪽)와 나쓰메 소세키. 아쿠타가와는 글 쓰는 고통이 "천벌을 받는 것 같다"고 썼다. [정은문고 제공]


일본 작가 30명의 마감 분투기를 모아 편집한 '작가의 마감'(안은미 엮고 옮김·정은문고)에 수록된 이야기 중 하나다. 이 책에는 마감을 대하는 작가의 다양한 태도와 글쓰기의 기쁨과 좌절, 이들을 대하는 편집자의 사정까지 촘촘히 담겨 있다.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1886~1965)가 풀리지 않는 글을 쓰는 모습에는 대저 모든 글 쓰는 자의 태도가 함축돼 있다.

 

"가끔 어떤 대목이 잘 풀리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섰다가 앉았다가 마셨다가 피웠다가를 점점 더 자주 되풀이한다.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나서 5분이나 10분 가만히 원고를 노려보고, 그래도 안 되면 이번에는 차를 마시고 또 노려본다. 그래도 안 풀리면 소변보러 나갔다가 내친김에 정원까지 걸어 다닌 뒤 돌아와 또다시 원고에 매달린다. 꽤 심하게 막힐 때는 원고가 나를 뒤엎어버리는 느낌이라, 후유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드러누워 천장을 응시한 채 반 시간에서 한 시간을 허비한다."

 

글쓰기를 앞에 두고 '딴짓'을 하는 사례는 일본뿐 아니라 국내는 물론 서양 작가들에게서도 공통으로 발견된다. 소설가 박완서는 마감을 코앞에 두고 서랍장에서 옷을 꺼내 일일이 다시 개키거나, 쉼 없이 거실의 화초 이파리를 닦아주고 치운 방바닥을 걸레로 다시 문지르는 일을 반복할 때가 많다고 생전에 진술하기도 했다. 소설가 유메노 규사쿠(1889~1936)는 마흔일곱 살에 뇌출혈로 사망하기 1년 전, 탐정소설 전문지 '프로필'에 술로 마감의 고통을 해결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토로했다.

 

"글을 쓰다 막다른 길에 다다르면 보통은 제일 먼저 술을 마신다. 아니면 마음껏 미쳐 날뛴다. 그렇게 해서 엉겨 붙은 신경 하나하나가 풀리면 동시에 꽉 막혔던 생각도 풀려서 어떤 글이든 술술 쓰리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이런 타개책은 원기가 왕성하고 근력이 센 사람이나 가능한 일. 몇 번이나 죽을 뻔한 겉만 멀쩡한 내겐 맞지 않는 소생법이다."

 

역시 뇌출혈로 마흔아홉 살에 사망한 사카구치 안고(1906~1955)는 "아침결에 신문소설 한 회분을 다 쓰고 났더니 일단 위의 통증은 가라앉았다"면서 "그런데 실은 대폭발 뒤 화산처럼 밖으로 연기는 나지 않아도 화구 밑바닥에서 용암이 빠지직빠지직 무늬를 그리며 가스를 내뿜는 것과 비슷한 상태였다"고 진술한다. 그는 "정말이지 화산을 품에 안고 살아가는 느낌이고, 살얼음 위를 걸어가는 기분"이라며 "몸의 굴절에 조심하지 않으면 갑자기 쿡쿡 아파 올 듯해 더는 책상 앞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쓸 수 없는 날에는 아무리 해도 글이 써지지 않는다. 나는 집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화장실 안이다. 아니, 볼일도 없는데 여긴 뭐 하러 들어왔지. 밖으로 나오다 이번에는 격자문에 머리를 내리친다. '으음, 으음'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따위 글을 써봤자 뭐가 된단 말인가. 그저 노동의 기록에 지나지 않는 것을."


마흔아홉 살에 생을 마감한 요코미쓰 리이치(1898~1947)는 "이따위 글을 써봤자 그저 노동의 기록에 지나지 않는다"고 자조한다. 그저 '노동의 기록'이라니, 참담하다. 일본 국민작가로 추앙받는 나쓰메 소세키(1867~1916)도 글쓰기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는 "내일부터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쓸 작정이지만, 쓰려고 하면 괴로워진다"면서 "누군가에게 대신 써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정도"라고 편집자에게 편지를 썼다. 글쓰기의 고통은 대체로 비슷하지만, 그 고통을 통과하고 극복하는 과정은 작가들마다 다르거니와, 대가의 자세는 새겨둘 만하다. 

 

"창작 쪽은 반드시 써야 한다는 의무가 있으면 펜을 들 마음이 생긴다. 펜을 들면 약간의 감흥이 솟아날 뿐, 대단히 흥미롭지도 않거니와 대단히 고통스럽지도 않다. 쓰기 시작하면 펜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아마 보통 속도이리라. 원고는 한 번에 써내려간 다음 나중에 오탈자를 수정한다. 시간은 밤이든 아침이든 낮이든 별로 상관없지만, 언제가 됐든 펜을 쥔 채 움직이는 만큼 괴롭기는 하다. 다만 나는 쓰기 시작하면 거드름을 피우며 일부러 펜을 늦추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고통을 부인하지 않되, 엄살도 피우지 않는 태도다.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다고, 스스로 도취되어 한 줄 써놓고 거드름을 피우며 일부러 펜을 늦추기까지 하느냐고 호통을 치는 듯하다. 나쓰메 소세키는 오랫동안 신경쇠약과 위궤양에 시달리면서도 마지막까지 펜을 놓치 않다가 마흔아홉 살에 생을 마감했다. 서른아홉 살에 정인과 강물에 투신한 다자이 오사무(1909~1948)도 '의무'에서 도망치지는 않았다.

 

"현재 나는 의무를 위해 살고 있다. 의무가 내 생명을 지탱해주고 있다. 한 개인의 본능으로는 죽어도 좋다. 죽든, 살든, 병들든 그다지 차이는 없다. 하지만 의무는 나를 죽지 않게 한다. 의무는 내게 노력을 명한다. 쉼 없이 더, 더 노력하라고 명한다. 나는 비틀비틀 일어나서 싸운다. 지고 있을 수만은 없다. 단순하다." 

 

이들이 이러한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의연히 글쓰기에 매달리는 근본 이유는 자명하다. 고통 끝에 완성한 그 글이 자신에게 주는 감흥도 크지만, 글이 진척될 때, 잘 풀려나갈 때 느끼는 황홀감은 어느 것과도 견주기 힘들다. 다야마 카타이(1872~1930)의 진술은 그 황홀을 웅변한다.

 

"갑자기 한밤중에 흥이 솟는다. 나는 홀로 일어나 펜을 잡는다. 펜이 손과 마음과 함께 달린다. 그 기쁨! 그 강함! 또 그 즐거움! 순식간에 두 장, 세 장, 네 장, 다섯 장을 써 내려간다. 아까 괴로운 직업이라고 말한 푸념은 어느새 잊어버린다. 옛날 문하생 시절로 마음이 되돌아가 있다. 어두운 램프 아래서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채 글쓰기에 몰두하던…… 문단도 없고 T군도 없고 세간도 없다. 그저 펜과 종이와 내 마음이 함께 움직일 뿐이다."

▲ 일본 근대 여성작가 '하야시 후미코'(오른쪽)와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 하야시 후미코는 "악평을 들으면 넋이 홀라당 나가서 썩은 생선처럼 이삼일 이불을 덮어쓰고 자버린다"고 썼다. [정은문고 제공]


아쿠타가와 류노스케(1892~1927)는 "다 쓰고 나면 언제나 녹초가 되고 쓰는 일 만큼은 당분간 거절하자고 마음먹지만, 일주일쯤 아무것도 안 쓰고 있으면 적적해서 견딜 수 없고 뭔가 쓰고 싶다"면서 "그리하여 또 앞의 순서를 되풀이하는데 이래서는 죽을 때까지 천벌을 받을 성 싶다"고 진술한다. 그는 '천벌'을 자청하는 작가이지만, 그 벌을 받는 과정은 장렬하다. 편집자 무로 사이세이는 "아쿠타가와의 원고는 잇대어 붙인 부분, 글자를 고치거나 지우거나 끼워 넣은 흔적으로 가득해서 원고지 위에서 싸움이라도 벌인 것처럼 장렬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면서 "붓 가는 대로 술술 써 내려가지 못한 탓에 몇 장이나 고쳐 쓴 부분도 있었고, 잘못 쓴 원고는 완성된 원고보다 매수가 훨씬 많았다"고 전했다. 

 

마감을 앞둔 고통은 비단 글 쓰는 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한을 정한 모든 일에 적용된다. 흔연하게 마감을 기다리는 이들도 있겠지만 조금이라도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애면글면 마음을 졸이는 이들이 더 많다. 더욱이 그 일이 자신이 좋아서 달려든 것이라면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저주의 대상은 자신밖에 없다. 마감 스트레스를 극복하면서 슬기롭게 나아가는 왕도는 없을까.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여성작가 하야시 후미코(1903~1951)는 "나에게 종교가 있다면 그저 꾸준히 쓰는 것"이라고 썼다.

 

"때론 먼지 털 듯 매서운 악평을 들으면 괴롭기 그지없다. 남보다 갑절로 자극에 약한 나는 넋이 홀라당 나가서 썩은 생선처럼 이삼일 이불을 덮어쓰고 자버린다. 작품이 좋지 않아서다. 자신이 제일 잘 알기에 한동안 갈 길을 잃는다. 하지만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아등바등 뭔가를 쓰기 시작한다. 나에게 종교가 있다면, 그저 꾸준히 쓰는 것이다. 삼매경에 빠져 있는 기분이다. 좋아하는 말은 아니지만 나는 결국 '만년 문학소녀'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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