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우표, 체제선전에서 외화벌이 수단으로

정치 / 김당 / 2021-03-05 15:49:16
[평양 톺아보기] 16. 북한 우표 발행의 '흑역사'
노동당 선전선동부 출판지도과→외국문출판사→조선우표사
냉전 시기 외국우표 위조해 '침투'…외화벌이로 우표발행 남발

북한에서 우표는 체제 선전과 외화벌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수단이다.

 

▲ 지난 2월 20일 조선우표사가 발행한 제8차 당대회 기념 우표 [조선우표사 홈페이지 캡처]


예를 들어 북한은 해마다 6월 25일부터 정전협정체결일인 7월 27일까지를 반미 공동투쟁기간으로 정하고, 이를 기념하는 '반미 우표'를 발행해왔다. 다만, 2018년부터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북미정상회담 분위기를 고려해 '반미 우표'를 거둬들였다.

 

북한에서 우표를 독점 발행·유통하는 조선우표사가 홈페이지에 공시한 '2021년 우표발행계획'에 따르면, 북한은 올해 18회 54종의 우표를 발행할 예정이다. 이 우표발행계획 목록에는 '반미 우표'가 없다.

 

하지만 북한이 2018년에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반미 우표를 갑자기 거둬들였듯이,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기조가 정해지면 반미 우표를 갑자기 발행할 수도 있어 예측 불허다. 2021년 우표발행계획에도 하단에 '이 계획은 변경될 수 있다'고 표기돼 있다.

 

▲ 북한에서 우표를 독점 발행·유통하는 조선우표사가 공시한 '2021년 우표발행계획'에 따르면, 북한은 올해 18회 54종의 우표를 발행할 예정이다. 하단에 '이 계획은 변경될 수 있다'고 표기돼 있다. [조선우표사 홈페이지 캡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겸 노동당 총비서의 여동생 김여정은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밀려났지만 여전히 선전선동 업무를 관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미 우표' 발행은 김여정 마음 먹기에 달린 셈이다.

 

알다시피, 북한 사회를 움직이는 양대 축은 노동당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이다. 조직지도부는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관장한다는 명분 아래 군을 포함한 전 사회를 장악·통제하고 고위층에 대한 인사·검열 권한을 갖는다.

 

선전선동부는 수령의 유일사상 체계를 수립한다는 명분으로 전 사회의 사상 생활 지도를 담당한다. 예를 들어 해외공관의 외교관들의 사상 검열은 물론, 심지어 유치원 아이들의 공연 내용도 사전에 당 선전선동부의 검열을 받아야 한다.

 

내각의 문화성 산하의 신문·방송·출판 관련 조직은 모두 선전선동부 직할이다. 주체사상에 대한 소개 자료를 외국어로 출판하는 외국문출판사 역시 선전선동부 출판지도과가 '지도'하는 산하기관이다.

 

해외에 북한 우표를 팔아 주체사상을 해외에 선전하면서 외화를 버는 조선우표사는 외국문출판사의 하부기관이다. 당 선전선동부에서 잔뼈가 굵은 김정일은 외국문출판사가 우표를 찍으면 조선우표사가 판매하는 체계를 세웠다.

 

냉전 시대의 치열한 외교전에서 우표와 우편을 체제 선전에 활용해온 북한의 우편 공작은 역사적 뿌리가 깊다. 한국 정부 역시 북한의 우표 또는 우편을 활용한 공작에 대해 '침투'라는 표현을 써가며 대응해왔다.

 

냉전 시기 북한은 전방지역에서 이른바 삐라를 살포하고 남한의 후방지역에는 제3국을 통한 체제선전 우편물로 심리전을 펼쳤다.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와 중앙정보부 보안과는 우편·영화·불온 간행물 검열이 주 업무였다.

 

▲ '대한민국 외교사료 해제집 Ⅳ'(1966~1967년)의 '북한의 프랑스 침투'라는 제목의 정보보고. 1966년 외교부 구주과에서 생산한 문건에 따르면, 북한은 당시 프랑스 정부 발행 우표 5만매를 위조해 체제선전물을 남한에 보내는 데 활용했다.  [외교사료 해제집 캡처]


비밀에서 해제된 '대한민국 외교사료 해제집 Ⅳ'(1966~1967년)에 보면, 외교부 구주과에서 생산한 '북한의 프랑스 침투'라는 제목의 정보보고가 눈에 띈다.

 

프랑스의 한 일간지 보도를 인용한 이 정보보고에 따르면, 북한은 남한에 체제선전물을 우송하는 데 사용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 발행 우표 5만장을 위조했다. 북한 우편물을 프랑스에서 보낸 우편물로 위장하기 위해서이다.

 

심지어 북한은 그 위조우표를 프랑스에 체류하는 극소수의 북한 학생에게 장학금 대신으로 주었다. 유학생들더러 요령껏 위조우표를 팔아서 생활비에 보태라는 거였다.

 

북한은 소련과 동구권의 몰락으로 사회주의 진영의 경제협력체제가 붕괴된 가운데 90년대 중후반 자연재해까지 겹쳐 체제 붕괴 위기에 처하자 외화벌이가 되는 것이라면 모든 것을 팔았다. 우표는 생산 비용이 별로 들지 않으면서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안정적 수입원이었다.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출신의 태영호 의원(서울 강남갑)이 쓴 책 〈3층 서기실의 암호〉에는 '고난의 행군' 시절인 1997년 당시 조선우표사가 외화벌이를 위해 무리하게 우표 독점판매권을 남발했다가 중앙당 선전선동부의 지시를 받고 분쟁 해결에 나선 사례가 실려 있다.

 

조선우표사는 당시 외화벌이를 위해 스위스 로잔의 우표회사와 유럽 독점판매 계약을 맺고 무려 120톤을 팔아 놓고서도, 상부의 닦달을 못 이겨 덴마크 우표회사에도 독점판매권을 주기로 약속하고 4톤을 발송했다가 "필요없으니 가져가라"는 덴마크의 측의 항의로 사달이 난 것이다.

 

▲ 오는 3월 24일에 발매할 예정이라고 발행 통보한 북한의 토착 동물 시리즈 기념우표 4종 [조선우표사 홈페이지 캡처]


조선우표사의 '2021년 우표발행계획'을 보면, 북한 우표는 크게 △체제선전물 △역사유물·관광 △동·식물, 천연기념물로 분류할 수 있다. 체제선전물은 '내수용'이고, 다른 기념우표는 외화벌이용이다.

 

북한은 올해 현재 새해 기념우표(1월 1일)부터 평양골프장 시리즈(2월 25일)까지 6회 발행했다.

 

2월에는 '위대한 지도자 김정일 동지 탄생 79주년 기념우표'(2월 16일), 조선노동당 제8차 총회(2월 20일) 등 일정상 반드시 챙겨야 하는 체제선전물과 함께 관광홍보를 위한 평양골프장 시리즈(2월 25일)가 발매되었다.

 

3월에 발매 예정인 우표는 북한의 천연기념물 3종(3월 10일)과 토착 동물 4종(3월 24일)으로 체제선전과는 무관한 중국·일본 등 해외의 우표 수집가들을 겨냥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일본 교토통신은 코로나19로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북한이 일본인을 상대로 기념우표를 팔도록 일본 여행대리점에 요청하는 등 북한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일본인들을 상대로 북한 우표 판매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 일본에서 한화로 22만원에 판매되는 것으로 알려진 '원산 국제친선 항공축전' 기념우표. 조선우표사 홈페이지의 우표 카탈로그 목록에는 '원산 국제친선 항공축전' 기념우표 시트의 가격이 300원(3달러)로 책정돼 있다. '재고 없음'을 구실로 액면가의 60배 넘는 폭리를 취하는 셈이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기념우표 중에는 2016년 9월 북한 원산에서 열린 에어쇼인 '원산 국제친선 항공축전' 기념우표 시트(제작 후 개별 우표로 분리되지 않은 상태의 세트)도 포함돼 있는데 이 기념우표는 2만엔(한화 22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조선우표사 홈페이지의 우표 카탈로그 목록에는 '원산 국제친선 항공축전' 기념우표 시트의 가격이 300원(3달러)로 책정돼 있다. 다만 카탈로그에는 '재고 없음'으로 돼 있다. '재고 없음'을 구실로 액면가의 60배 넘는 폭리를 취하는 셈이다.

 

하지만 일본 역시 독자적 대북 제재에 따라 북한 물품의 수입이나 북한으로의 송금이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어, 북한이 우표를 팔더라도 일본 돈(엔화)을 북한으로 송금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한 실정이다.

U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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