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범구 칼럼]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상한 나라

정치 / 허범구 / 2021-03-25 16:53:23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3일 코로나19 백신을 맞았다. 24일 접종 장면이 공개되자 논란이 일었다. '백신을 바꿔치기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질병관리청은 허위라며 즉각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접종 상황을 보면 오해할 소지가 있다. 간호사가 주삿바늘에서 '캡(덮개)'을 벗겼는데 칸막이 뒤로 갔다온 뒤 캡을 또 제거했기 때문이다.

"백신이 아니라 영양제 주사." "사실이라면 탄핵감." 접종 영상과 함께 갖가지 억측이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 돌았다. 질병청은 "오염을 막기 위해 바늘에 다시 캡을 끼웠다 벗겼다"고 해명했다.

바꿔치기 소란은 해프닝일 가능성이 높다. 음모론적이고 무책임한 극성 네티즌이 주범으로 지목된다. 그렇다고 정부는 떳떳할까.

이번 논란은 대통령이 불신받는 현실을 들춰내 뒷맛이 쓰다. 특히 불신 내용이 고약하다. 국민 수호가 1차 책무인 대통령이 국민을 속이다니. 그것도 자신의 건강을 위해. 이는 떠올리기 조차 힘들고 싫은 가정이다.

그런데 실제로 의혹이 생기고 삽시간에 번졌다. 백신 접종을 담당한 보건소와 간호사는 '양심선언 하라'는 협박 전화·문자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번도 경험 못한 이상한 현상이다. 경찰은 25일 내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K방역'에 열올리다 백신 확보에 뒤졌다. 또 첫 접종 백신이 하필 아스트라제네카(AZ)였다. 안전성, 특히 고령층에 대한 접종 효과가 의심받는 백신이다. 야권은 문 대통령이 '1호 접종자'가 돼야한다고 요구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처럼 국가지도자가 먼저 접종해 국민을 안심시켜야한다는 이유에서다.

문 대통령은 그러나 정부가 정한 우선 순위를 따랐다. 새치기 등 특혜 시비를 피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현정부 들어 공정성이 자주 도마에 오른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을 법하다.

문 대통령이 1호 접종을 했다면 어땠을까. 정부가 진작 화이자, 모더나 백신 확보를 서둘렀다면. 그랬다면 AZ 백신 접종 주사 바꿔치기 같은 황당한 의혹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불신은 백신에만 국한한 걸까. 의문이 꼬리를 문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4일(현지시간) 한국의 백신 접종 속도가 늦어 경제가 적지 않은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방역 모델로 꼽혔던 한국이 서방 국가를 부러워하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반도체·휴대폰 세계 1위 기업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 복막염으로 응급수술을 받았다. 충수(맹장)가 터져 복막염으로 번졌다. 수술이 늦어지면서 복막 안으로 이물질이 퍼져 대장 일부도 잘라냈다고 한다. 대한민국 최고 부자가 제때 치료를 못 받아 화를 키운 셈이다. 

이 부회장은 고열 증상을 보이며 며칠간 극심한 복통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교도관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혼자 앓았다고 한다. "특별 대우를 받기 싫다"며 참았다는 전언이다.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 자신에 쏠린 비판적, 비우호적 시선을 의식했을 것으로 보인다.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되는 국내 최대 기업 오너. 특히 재판 중인 상황에서 특혜 시비가 이는게 두려웠을 것이다. 통상의 대우조차 꺼릴 수 밖에 없는게 이 부회장 처지다.

여권 일각에는 강경파를 중심으로 반삼성 기조가 엄존한다. 문재인정부 출범 초기엔 삼성을 국민기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가 적잖게 돌았다. 박근혜정부의 국정농단에 삼성이 발을 담궈 자초한 측면이 있다. 삼성을 쪼개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과격한 발상도 없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내몸이 내몸이 아닐 것이다.   

불신받는 대통령과 맹장터진 최고부자. 두 번 경험하지 못할 사례들이다.  

4·7 서울시장 보선을 앞두고서도 희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지층 결집을 겨냥해 '박원순 재평가'를 거듭 주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사자인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가 "도움이 안되니 입 좀 다물라"며 자제를 거듭 요청했는데도 외면당했다. 급기야 이날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까지 나서 경고했다. "박 후보 생각을 존중하는 것이 옳다. 신중했으면 한다."

국방부는 오는 26일 열리는 천안함 폭침 11주기 '서해수호의 날' 추모식에 정치인 참석을 금지해 반발을 샀다. 4·7 선거를 이유로 내세웠는데, "추모와 정치가 무슨 상관이냐"는 항의를 받았다.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과 하태경 의원은 참석 불가 통보를 받고 "이게 나라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국민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실시간 포착하고도 침묵했다가 외신 보도가 나오자 확인하는게 우리 군의 실상이다.

곳곳에서 이해 못할 일들이 잇따르는 것은 상식과 원칙이 흔들리는 탓이 크다. 내로남불, 이중잣대 등이 난무하면서 공정과 신뢰가 훼손되고 있다. 여권 강경파가 주도하는 일방적 국정운영이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적잖다. 

상식과 법치를 외치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약진하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윤 전 총장은 최근 죽마고우를 만나 "문 대통령은 주변의 강경파 인사들에 둘러싸여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강경파 측근들과 생각이 다르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고 한다. 윤 전 총장 말이 맞다면 문 대통령의 탈강경파가 국정 정상화의 지름길이다.

▲ 허범구 정치에디터

UPI뉴스 / 허범구 정치에디터 hbk1004@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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