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옥 "김재규는 국민희생 막고 독재사슬 끊은 애국자"

사회 / 주영민 / 2020-05-28 20:49:57
10·26 사건 김재규 재심 청구로 새 국면
당시 변호인 강신옥, "내란 목적 아니다"
"박정희가 한 짓은 히틀러와 다르지 않아"
▲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 ⟨UPI뉴스⟩에서 인터뷰하는 강신옥 전 의원. [정병혁 기자]


대담=류순열 편집국장

1979년 10월26일 저녁 궁정동 안가(安家)에서 총성이 울렸다. '유신독재'의 종말을 알리는 총성이었다.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방아쇠를 당겼고, 대통령 박정희가 사망했다. 7개월 뒤(1980년 5월24일) 김재규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내란죄'라는 중대범죄자에 대한 법의 심판이었다.


내란을 목적으로 최고권력자를 죽인 살인자냐, 국민희생을 막고 독재의 사슬을 끊은 혁명가냐. 40여년이 흐른 지금 다시 뜨거운 화두가 우리 사회에 던져졌다. 지난 26일 유족의 재심 청구로 무덤 속 김재규에 대한 재평가 이슈가 공론화한 것이다.

유족과 변호인단은 '내란죄'를 부정한다. "살해 동기는 내란 목적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회복이었다"는 주장이다. 사법적 결론을 뛰어넘어 역사 재평가로 이어질 중대 심판이 열리게 된 것이다. 

재심 청구가 어느날 갑자기 이뤄진 것은 아니다. 평생의 과업으로 매달린 이가 있었다. 강신옥(84) 전 의원이다. 그는 사건 당시 김재규 변호인을 맡았고 이후 '김재규 재평가'는 그에게 숙명이 되었다.  

강 전 의원은 ‹UPI뉴스›와의 인터뷰에서 10·26사건에 대해 "정의로운 일이었다. 히틀러를 죽인 것과 같은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재규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며 독재와 유신의 사슬을 끊어준 사람"이라는 것이다. 

강 전 의원 인터뷰는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 ‹UPI뉴스›에서 한 시간 가량 진행됐다. 강 전 의원은 "법상 재심 가능성이 크지 않을 수 있고, 기간도 10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면서 "역사적으로 재평가되도록 하는 게 내 필생의 과제이자 마지막 소원"이라고 말했다. 


—김재규 변호는 어떻게 맡게 됐나

"처음엔 박선호 변호인이었다. 가족들이 선임했다. 그런데 당시 김수환 추기경이 김재규 재판에 관심이 있었고 내게 변호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나를 비롯해 인권 변호사 황인철, 홍성우, 이돈명, 조준희 다섯이 맡게 됐지. 자원한 변호사도 열댓명 됐고." 박선호는 당시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으로 10·26 사건에서 중요 역할을 수행했다.

—쉽지 않았을 텐데

"두려웠지. 그러나 우린 용기가 있었다. 정의로운 일이었고 무엇보다 김재규와 같은 생각이었다. 박정희는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히틀러를 죽인 것과 같은 거다. 물론 경제적으로 잘살게 된 면도 있지만, 박정희가 한 짓은 히틀러가 한 것과 다르지 않다. 처음부터 고초를 겪을 수 있다는 각오로 시작했다. 나는 이미 민청학련 사건을 변호하다 잡혀들어가서 7개월 형무소에도 있었다. 그때 김지하도 변호했고. (김지하는 요즘 많이 변한 것 같던데) 정신건강이 나쁜 거다. 총기를 잃은 거지."

—당시 협박이나 신변의 위협은 없었나

"왜 없어. 전화해서 그만두라고 협박하고, 보안사에 내 선배인 어느 장군이 '그만둬라', '앞으로 좋지 않다' 이런 식으로 협박하곤 했다. 당시 항상 위협을 느끼며 지냈다. 나는 김재규가 대법원에서 사형선고 받는 날 지하실에 끌려갔다. 그래서 김재규가 사형되는 것도 보지 못했어."

—최후진술을 보면 신념을 갖고 한 거사이던데, 거사후 계획은 없었던 건가

"확신을 갖고 한 일이지만, 이후 계획은 구체적으로 없었다. 국민 희생을 막고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감행한 거사니까 국민이 평가해줄 거라 생각한 거다. 김재규의 최후 진술은 변호인이 써준 게 아니다. 원고도 없이 김재규 스스로 한 변론이었다. 김재규가 30분간 말로 한 것을 내가 외부에 알렸다. 당시 군부는 김재규를 집권욕을 가진 이로 몰아붙였다. 그러나 김재규는 박정희를 죽이고 권력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집권욕 보다는 애국심이 강한 인물이었다."

—결국 전두환 군부세력이 권력을 차지했다. 죽 쒀 개 준 꼴 아닌가

" 그렇지. 그런데 김대중과 김영삼 두 지도자가 대통령이 될 욕심에 10·26혁명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고 구명도 하지 못했다. 지식인들도 나약했고. 그러나 '(김재규가) 왜 완벽하게 하지 못했냐',' 전두환에게 정권 바치고' 이렇게 비판하는 지식인들은 경멸한다. 대통령을 죽인다는 게 보통일인가. 큰 각오가 있어야 한다. 그 큰 용기를 훌륭하다고 평가해줘야지."


—당시 신군부는 왜 자살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했다는데

"당시 신군부 실세는 김재규를 향해 '왜 박대통령을 죽이고 자결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듯이 말했다. 김재규는 뒤처리할 수 있는 이는 자신뿐이라고 말했다. '설거지'를 하고 자결할 생각이라고 말했었다. 훗날 국회 5공 청문회 때 장세동(전두환의 심복)을 심문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김재규와 전두환 가운데 누가 더 훌륭한가'라고 물었다. 장세동은 '한사람은 대통령을 죽이고 한 사람은 대통령을 지낸 분'이라는 의도로 말했다. 그래서 나는 '자결해야할 사람은 김재규가 아니라 전두환'이라고 했다. 전두환은 김재규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다. 아주 나쁜 놈이다."

—변론 당시 에피소드가 있다면

"김재규는 4차 공판에서 '내 혁명이 정당하기 때문에 변명하는 변호사는 필요가 없다'며 변호사를 거부했다. 가족들이 협박받았기 때문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당시 부인은 물론 남동생도 붙잡혀서 고문을 받고 그랬다. 또 김재규는 수감 중 나와의 면회에서 박정희의 여자관계도 상세하게 공개했다. 수백명이었다. 김재규는 박정희의 도덕적 타락을 지적했다. 애국심보다 집권욕이 강했다. 이것이 박정희가 비극으로 끝난 이유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악연도 있다고 하던데

"2002년 대선 때 나는 정몽준의 대선 기획단장이었다. 당시 정몽준은 박근혜를 영입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나와 정몽준, 박근혜가 테니스를 친 적도 있다. 당시 A라는 유명 여자 연예인이 이혼을 했다. 한 여성지 여기자가 나를 찾아와 "A 연예인이 이혼을 했는데 박정희와 연관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김재규와 가진 면회노트를 꺼내 김재규가 말한, 박정희와 관계한 여성 명단 가운데 A라는 여성이 끼어 있는지를 살펴봤다. 없었다. 이 여기자에게 김재규 면담 노트를 보여줬더니 돌아가서 "강신옥 변호사 입열다"는 제목 하에 박정희의 여자 리스트에 대한 기사를 썼다. 이 기사를 본 정몽준은 나에게 '박근혜에게 사과하라'고 수차에 걸쳐 요구했다. 나는 '뭘, 사과하느냐?'고 말했다. 결국 스스로 정몽준 캠프를 떠나는 결정을 내렸다. 그때 명예롭게 나왔다. 나와 박근혜의 악연의 시작이었다."

—TK(대구·경북) 출신이신데, 이런 일 하시는 게 놀랍다

"주변에 태극기 집회 나가는 이들이 많지. 그래도 나를 아니까, 같이 가잔 소리는 안해."


—늘 정의를 말씀하시는데, 정의가 밥 먹여주나. 손해볼 일도 많을 텐데

"법조인이 될 때부터, 정치에 입문하면서도 언제나 정의의 편에 서겠다고 다짐했어. 내 인생관이지." 
강 전 의원의 사무실엔 '영원히 정의의 편에'라는 휘호가 항상 걸려 있다.



—일제강점기였다면 독립운동 하셨겠다

"틀림 없이 그랬을 것이다."


—41년 만의 재심 청구인데, 전망은 

"사법 제도상으로는 가능성이 크지 않을 수 있다. 기간도 10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객관적으로 내란목적은 아니다. 나라를 위해 야수의 심정으로 대통령을, 유신의 심장을 쏜 것이다. 대통령 한 사람을 죽인 것이지, 내란은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국민 희생을 막고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한 애국자다. 역사적으로 재평가되도록 하는 게 내 필생의 과제이자 마지막 소원이다. 사육신도 250년 지나 명예를 회복했다."

▲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 ⟨UPI뉴스⟩에서 인터뷰하는 강신옥 전 의원. [정병혁 기자]

◆ 강신옥은…

△ 1936년 경상북도 영주시 출생 △ 경북고,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조지워싱턴대 비교법학 석사 수료 △제10회 행정고시, 11회 사법고시 합격 △ 제13·14대 국회의원 △ 제16대 대통령 선거 정몽준 국민통합21 창당준비위원 △법무법인 일원송헌 대표변호사 △강신옥 법률사무소 변호사


◆ 김재규 최후진술 핵심내용


여러분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여야 합니다. 이것은 내가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만, 건국의 이념이요, 우리의 국시입니다.

수없이 많은 국민들이 희생을 치르고 전체 국민이 수난을 당하고 지켜 온 자유민주주의입니다. 무슨 이유로든 이것은 말살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72년 유신과 더불어 까닭없이 말살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하여 유신체제는 국민을 위한 체제가 아니리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종신 대통령 자리를 보장하기 위한 체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나는 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대통령이라도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의무와 책임은 있어도 이것을 말살할 권한은 누구로부터 받을 수도 없고 절대 있을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에는 모순의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특히 체제에 대한 반대의 소리가 높아지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라는 소리가 높아지자 긴급 조치 9호가 75년에 발동되어 수많은 사람이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러나 이 불은 꺼지지 않고 탔고 번져 갔습니다.

저의 10월 26일 혁명의 목적을 말씀드리자면 다섯 가지입니다.

첫 번째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이 나라 국민들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입니다.

또 세 번째는 우리 나라를 적화로부터 방지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혈맹의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가 건국이래 가장 나쁜 상태이므로 이 관계를 완전히 회복해서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국방을 위시해서 외교 경제까지 보다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서 국익을 도모하자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 국제적으로 우리가 독재 국가로서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씻고 이 나라 국민과 국가가 국제 사회에서 명예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가 저의 혁명의 목적이었습니다. 이 목적은 10.26혁명 결행 성공과 더불어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해결이 보장되었습니다.

심판장님, 심판관님, 여러 날 계속되는 재판에 매우 피곤하시겠습니다. 또 오늘 제가 이 장황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경청해주시니, 마지막 이 세상을 하직하고 가더라도 여러분에 대한 고마움은 간직하고 가겠습니다.

나는 오늘 마지막으로 이 나라에 자유민주주의를 회복시켜 놓았다, 20∼25년 앞당겨놨다하는 자부, 이것은 누구의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이 자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대한민국에 자유민주주의가 만만세가 되도록 기원하고 또 10월 26일 민주회복 국민혁명이 만만세가 되도록 저는 기원합니다.

다만 내가 이 세상을 빨리 하직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가 이 나라에 만발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가는 그 여한이 한량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이 기약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못보았다 뿐이지 틀림없이 오기 때문에 나는 웃으면서 갈 수 있습니다.
UPI뉴스 / 정리=주영민 기자 cym@upinews.kr, 사진=정병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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