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정의 파리통신] "예술 없인 고난 극복 못한다" 프랑스 예술인들 점거 농성

국제 / UPI뉴스 / 2021-03-12 14:56:07
오데옹 극장 점거하며 공연 재개 요청
"왜 문화예술만 못하게 하나" 분노 표출
"오데옹 극장이 점거됐다" 지난 4일 속보가 타전됐다. '오데옹 극장 점거'는 프랑스인들에게 자동적으로 68혁명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적 행위로, 그것은 예술인들이 마침내 결단을 내리고 행동에 나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희생당한 문화', '자격없는 정부' 오데옹 국립극장의 정면에는 정부를 꾸짖는 듯한 문구가 나부끼고 있었다. 이날 수만 명의 예술인과 시민들이 운집했던 공화국 광장에서의 집회 이후, 프랑스 최대 노총인 CGT의 공연예술 분야 노조원들을 중심으로한 영화, 공연, 음악 예술인들은 오데옹 국립극장으로 걸어들어가 점거를 시작했다.

극장엔 마침 기약없는 공연 재개를 기다리며 한 연극팀이 연습을 진행하던 중이었다. 점거 예술인들은 연출가와 극장 관계자들에게 자신들이 들어온 이유를 설명하고, 극장의 2층 라운지에 자리잡았다. 극장 대표는 그들을 내쫓거나, 경찰을 부르지도 않았기에 점거 과정은 평화롭게 이뤄졌다. 극장 측이 그들에게 요구한 것은 실내에서 마스크를 착용해달라는 것 뿐.
지난 4일부터 파리 오데옹국립극장을 점거한 프랑스 예술가들. [목수정 작가]

"우리가 오데옹 극장을 선택한 것은 그것이 가진 상징성 때문이다. 1968년에 이미 예술인들, 학생들은 오데옹 극장을 점거하면서 68혁명에 가담했고, 1996년, 2016년에도 우리는 예술인들이 있어야 할 자리인 이곳을 점거하며 우리의 권리를 요구하고 획득해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극장이 문을 여는 구체적 날짜, 구체적 방법을 제시해 달라는 것이다. 재개될 공연에 필요한 지원을 국가가 보장하라."

"정부가 지난해 초 앵뗴르미땅들(공연예술비정규직)을 위해 발표했던 조치(실업급여 지급 기간 1년 연장)의 재연장을 요구한다. 이 모든 것을 실행할 수 있는 정확한 예산과 구체적 방법을 논하기 위해 문화부 장관과 총리가 함께 하는 문화예술계 국가회의를 제안한다." CGT 공연예술분과 위원장 드니 그라부이의 말이다.

1782년에 설립된 이 유서깊은 극장은 소르본 등 대학들이 밀집된 라탱구역에 자리잡고 있어, 학생과 예술가들이 연대해온 사회적 투쟁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예술인들은 2층 라운지에 꾸린 본부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고, 콘서트를 진행하거나 토론을 벌이며 앞으로의 전략과 대책을 논한다.

매일 오후 2시에는 극장 앞 광장에 이들을 지지하는 예술인들이 모여 아고라식 토론이 진행된다. 시간이 지나며 예술인들 뿐 아니라, 이벤트 업계, 관광업계 등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고 표류하는 다양한 직업군들이 모여들어 서로의 현실을 토로하고, 위로와 응원을 전하는 열린 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경찰도, 극장 측도 더 이상의 외부 인원이 오데옹 극장 내부로 들어와 합류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기에, 이들은 극장 안과 밖에서 창문을 사이에 두고 마이크를 돌려가며 토론을 나누고, 공연을 벌이기도 한다. 1주일이 지나며, 점거 인원은 다소 축소되었지만, 점거는 파리의 콜린· 스트라스부르그 국립극장, 포 시립극장 등 10여 곳으로 번졌다. 국립드라마예술학교의 학생들이 예술가들과 함께 점거의 주역이 되었다. 파리 북역에서, 샤틀레 극장 광장 앞에서도 콘서트와 춤 공연을 진행하며, 시민들에게 예술가들의 투쟁이 진행 중임을 알렸다.

▲1968년 오데옹극장을 점거했던 학생과 예술가들. [UPI]

"백화점, 학교, 기업, 대형 쇼핑몰… 다 열려있지만, 공연장, 영화관, 박물관 등 문화공간만은 지난 11월부터 문을 닫고 있다. 이 정부는 문화를 죽음으로 몰고 있다. 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프랑스인들의 문화적 삶의 질식이다. 나는 음악인이다. 프랑스인들의 일상에 음악적 삶이 다시 스밀 수 있게 해야 한다. 우리도 막무가내로 다시 극장문을 열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야외에서도 공연할 수 있고, 극장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관객수를 제한한 상태에서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구체적 준비와 계획, 예산을 마련해 줘야 가능하다. 날씨가 좋아지면, 본격적으로 곳곳에서 페스티발이 열린다. 프랑스인들의 문화적 삶이 중단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방법을 함께 찾을 것을 우린 요구한다."

점거에 참여하고 있는 음악인 노조 위원장 필립 고티에의 말이다.

"이미 코로나 바이러스와 1년을 살아왔고, 우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삶에서 더 이상 예술과 문화가 배제되어선 안 된다. 인간은 연대하지 않고 고난을 극복할 수 없고, 예술과 문화는 바로 그 연대와 협력을 가능케 해주는 매체다." 점거에 참가중인 한 가수는 이렇게 토로한다.

백신 맞는데 열성을 보이지 않는 국민들을 향해 정부가 벌을 내리기라도 하듯, 시민들을 위한 영혼의 양식을 싹뚝 중단시킨 정부는 좀처럼 그것을 허용할 기미를 내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앉아서 기다리지만은 않을 터이며, 목표를 손에 쥘 때까진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게 이들의 다짐이다.

지난 6일 로즐린 바슐로 문화부 장관이 극장에 다녀갔으나, 두루뭉술한 약속을 반복하는 장관의 태도에 협상은 진척없이 끝났다. "영혼없는 애정 고백은 그만하시고, 이제 애정의 증거물을 보여달라"고 요구한 예술인들은 11일 장 카스텍스 총리, 바슐로 문화부장관을 다시 만났지만, 그들은 2000만 유로(약 270억원)의 추가지원금(지난해, 3000만 유로가 지원된 바 있다)과 예술인들이 요구하는 실업급여 지급 기간 연장 '검토'를 약속했을 뿐이다.

참고로, 정부는 지난해 8월 미디어(방송, 언론) 분야에 재난지원금 200억유로(약 27조)를 지원했던 바 있다. 빵을 요구하는 예술인들에게 부스러기를 제시하며, 프랑스인들의 문화적 삶의 사막화에 대한 어떤 고민도 나누지 않는 총리는 예술인들에게 투쟁에 더 강력한 의지를 부추겼을 뿐이다. 

▲ 목수정 작가


목수정 (재불작가·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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