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jpg] 김정은의 '혹'과 의혹 사이

정치 / 김당 / 2021-04-30 11:25:38
김정은의 "'고난의 행군' 결심" 메시지에 묻힌 이미지 분석해보니
세포비서대회에서 드러난 김정은 '혹'…'김일성 닮은꼴 성형' 의혹도
김일성 '혹'은 선전선동부서 통제…김정은 '혹'은 의도적 노출∙관리?

 

북한 주민들은 최고 지도자가 나오는 사진을 '1호 사진'이라고 부릅니다. '1호 사진' 속에는 최고 지도자의 '심기'뿐만 아니라 '권력 서열' 그리고 '정책의 우선순위' 등 많은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김정은 집권 10년째를 맞이해 [김정은.jpg]라는 연재로 이미지 분석을 통한 김정은 다면 평가를 시도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겸 노동당 총비서는 지난 6~8일 사흘 동안 열린 노동당 제6차 세포비서대회에서 최고지도자로서 중요한 메시지와 이미지를 남겼다.

▲ 4월 8일 조선노동당 제6차 세포비서대회에서 폐회사를 하는 김정은 총비서. 파란색 원 안에 툭 불거진 부분이 혹처럼 눈에 띈다. [조선중앙통신 캡처] 


김정은 총비서는 세포비서대회에 직접 참가해 첫날 대회 개회사에 이어 마지막날 대회의 '강령적인 결론'과 함께 폐회사를 했다. 노동신문에 실린 '혁명활동보도' 사진은 △개회사 관련 8장 △강령적인 결론 관련 13장 △폐회사 관련 9장 △결론 관련 7장 등 총 37장이다.

 

이 가운데서 김정은 총비서를 비교적 근거리에서 찍은 사진은 11장이다. UPI뉴스는 김정은이 폐회사에서 밝힌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 결심" 메시지를 분석하는 한편으로 메시지에 묻힌 이미지에도 주목했다.

 

세포비서대회는 당의 최말단 조직 책임자인 세포비서 단위의 회의체이다. 김 총비서는 이번 대회의 '강령적인 결론'에서 세포사업을 총화하고, 세포 강화를 위한 10대 과업과 세포비서들이 견지해야 할 12가지 기본품성을 제시했다.

 

특히 폐회사에서 밝힌 "'고난의 행군' 결심" 메시지는 북한이 단기적으로 코로나19와 대북제재 국면을 벗어나기 힘든 만큼 '내핍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고 '내부의 결속력' 강화하기 위한 결심을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1만여명의 참가자들은 대회가 끝나고도 9~11일 사흘 동안 김일성·김정일주의 공고화를 위한 강습 등을 받았다. 당의 최말단 조직 책임자인 세포비서들부터 사상무장을 통한 주민통제 강화에 나서도록 독려하기 위한 조처이다.

 

김정은 총비서는 폐회사에서 "이번 대회는 전당의 세포비서들에게 명확한 행동지침을 새겨준 의의 깊은 대회로 주체의 당건설사에 뚜렷이 기록될 것"이라며 이렇게 의미를 부여했다.

 

"조선로동당 제6차 세포비서대회의 기본사상은 모든 당세포를 인간적으로 굳게 단합된 건강하고 혈기왕성한 세포로 만들자는 것입니다."(노동신문, 4월 9일)

 

▲  김정은 총비서의 앞목과 뒷목의 살을 비교하면 이 혹은 접힌 살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조선중앙통신 캡처] 


그런데 세포비서대회에 참석한 김정은 총비서를 비교적 근거리에서 찍은 사진들을 분석한 결과, 김정은 뒤통수의 일부가 지방종의 일종인 '혹'처럼 툭 불거진 것으로 나타나 눈길을 끈다. 특히 앞목의 두겹으로 '접힌 살'과 비교하면 뒤통수의 혹은 목덜미살의 위에 있어 접힌 살과는 다른 양태를 보인다.

 

김정은의 혹이 의혹으로 처음 불거진 것은 2015년 10월 국회 정보위의 국가정보원 국정감사 때부터다. 당시 김 위원장의 뒷목에 생긴 혹과 관련 건강 이상설이 불거졌으나 "확인된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태영호 의원이 2016년 8월 한국으로 망명한 직후 열린 국회 정보위에서는 망명 배경과 김정은의 폭압정치에 대한 문답이 오갔는데, 당시 태영호 전 공사는 이런 취지로 말했다.

 

"김정은은 어린 시절을 스위스에서 보내 북한에서 기반이 전혀 없다. 그래서 자신을 과대포장하고 김일성 흉내내기를 한다. 하지만 정작 김일성과 같이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기 때문에 기반잡기가 잘 안된다. 그래서 폭압정치를 하는 것이다."

 

북한이탈주민들을 중심으로 제기된 또 다른 의혹은 김일성 주석과 닮은꼴 외모 연출을 위해 성형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즉, 김정일 위원장의 혼외 자식이어서 조부인 김일성 주석과 생전에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는 김정은이 북한 주민들에게 닮은꼴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혹까지 성형한 것이라는 의혹이다. 의사들에 따르면 혹을 붙이는 성형은 어렵지 않은 시술이다.

 

▲ 40대 김일성의 혹과 김정은 비교 [조선중앙통신 캡처]


이런 의혹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공교롭게도 김정은의 혹이 김일성 주석의 혹이 있던 위치까지도 정확히 일치한 데 따른 것이다. 지방종의 일종인 혹이 부모와 자식 간에 유전되거나 조부모와 손자 간에 격세유전 될 수는 있어도 발생 위치까지도 똑 같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또 다른 근거는 건강 이상설이 불거질 것을 우려해 혹이 찍힌 사진을 통제했던 김일성 주석 때와 달리 북한 당국이 김정은의 혹이 찍힌 사진에 대해서는 엄격히 통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김일성의 경우 생전에 외빈과 찍은 사진이나 외신 사진이 아니면 오른쪽에서 찍은 프로필 사진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반해 김정은의 경우 왼쪽에서 찍은 사진이 더 많지만 북한 주민들이 밑줄 치며 읽는 노동신문에서도 오른쪽에서 찍은 프로필 사진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즉, 김정은의 혹을 드러내 놓고 홍보하진 않지만 엄격하게 통제하지도 않음으로써 '심지어 혹까지 닮았다'는 입소문이 나도록 '고도의 연출'을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동신문에 공개된 '혁명활동보도' 사진을 보면, 개회사를 하는 장면과 강령적인 결론을 하는 장면, 그리고 폐회사를 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들 중에서 각각 1장씩의 오른쪽면 프로필 사진을 찾을 수 있다. 사이즈의 차이는 있지만 세 사진에서는 모두 뒷목의 귀 높이 부문에 '툭 불거진' 혹이 발견된다.

 

▲ 왼쪽부터 2015년, 2020년, 2021년 1월(8차 당대회)과 4월(세포비서대회)에 찍힌 김정은의 뒤통수 혹 부분 [노동신문 캡처]


특히 8일 세포비서대회 폐회사를 하는 프로필 사진을 과거 사진들(위 사진 4장 참조)과 비교하면, 김정은 뒤통수의 불거진 부위가 '혈기왕성한 세포'로 툭 튀어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견도 있다. 사진을 찍는 각도에 따라 접힌 살의 부위와 크기가 다르게 보이는 것이지, 사진만으로는 혹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최고지도자 관련 보도를 엄격히 통제하는 북한 체제의 특성상 관련 의혹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김일성 집권 시절 북한의 선전선동부는 '최고존엄'의 혹이 보이지 않도록 김일성의 정면과 왼쪽 측면만 촬영하도록 해 일반 주민들은 혹이 있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

 

1975년 3월 북한군 12사단 707GP(초소)장으로 복무하다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순한 유대윤 소위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김일성이 아들 김정일을 후계자로 승인했다는데 사실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북한군은 '김정일 말씀' 노트를 따로 만들어 학습을 하고 북한 주민은 (후계자 승인을) 모두 알고 있다. 이것은 최근 북한 주민들 사이에 김일성의 목뒤에 혹이 있다는 소문이 알려져 김정일을 후계자로 뽑은 것으로 안다."

 

즉, 1970년대 중반에 '최고존엄'의 뒤통수에 혹이 있다는 소문이 알려졌고, 이를 계기로 김일성 건강 이상설이 돌자 후계자를 선임했다는 것이다.

 

북한의 관영매체에서는 볼 수 없지만, 김 주석이 해외 순방을 하거나 평양을 찾은 외국 수반을 만나는 장면을 찍은 외국 언론의 사진을 통해 드러난 김일성의 혹은 이미 '공개된 비밀'이었다.

 

1958년 중국을 방문한 김일성 수상(당시 46세)이 마오쩌둥(毛澤東) 주석과 만나는 사진을 보면, 김일성의 혹은 목덜미살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작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20년 뒤인 1978년 5월 중국 화궈펑(華國鋒) 주석의 방북시 찍힌 김일성(당시 66세)의 혹은 이미 계란 크기로 커졌음을 보여준다.

 

▲ 1978년 5월 당시 화궈펑(華國鋒) 중국 주석의 방북과 관련 김일성 주석의 '계란 크기의 혹'에 대한 보도한 일본 교토통신을 인용보도한 기사(왼쪽)와 당시 북한이 발매한 방북 기념 우표. 우표 사진에는 혹이 없다.


그런데 당시 화궈펑 주석의 방북을 기념해 발매한 북한 우표에는 김일성 주석의 오른쪽 측면 사진이 실려 있지만 혹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북한 주민들에게 김일성의 혹을 공개하는 것은 여전히 '불경스러운 일'에 속했던 것이다.

 

당시 일본 교토통신 보도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화궈펑의 방북 시간에 김일성 사진 28장을 실었는데, 그중 신화사통신 기자가 찍은 사진 3장만 김일성의 오른쪽 측면 사진이고 나머지 25장은 모두 정면이나 왼쪽 측면 사진이었다. 이 가운데서 오른쪽 측면을 찍은 사진 1장에 계란 크기의 혹이 선명하게 찍혀 화제가 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김일성의 뒤통수 혹이 악성 종양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김일성 혹은 서방 언론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실제로 79년 10월 〈뉴스위크〉 도쿄지국장은 평양에 2주 체류하면서 취재해 김일성의 혹에 대해 절제(切除) 시술이 가능한 종양이지만 초기에 시기를 놓쳐 방치하는 통에 이제는 시술의 위험 부담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 김일성이 40대 후반에 중국울 방문해 마오쩌둥(毛澤東) 주석과 만나는 사진(맨위)을 보면, 혹이 목덜미살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작았다.하지만 80세인 1992년 2월 남북고위급회담 남측 수석대표(정원식 국무총리)를 접견하는 사진을 보면, 마치 '혹부리 영감'의 혹처럼 흉물스럽게 커진 것을 알 수 있다. [공동사진기자단]


하지만 김일성이 1992년 2월 남북고위급회담 남측 수석대표였던 정원식 국무총리를 접견하는 사진을 보면, 계란 크기였던 혹이 마치 '혹부리 영감'의 혹처럼 흉물스럽게 커진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80세였던 김일성은 2년 뒤에 사망했다.

 

국정원측은 30일 김정은의 혹에 대해 확인을 요청하자 "정보사항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며 "특히 김정은의 신상에 대해서는 더 그렇다"고 답했다. 

 
김정은의 '혹'처럼 보이는 부위가 '접힌 살'이건 '자연산'이건 또는 성형시술의 결과이건, 할아버지와 같은 지방종이라면 건강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속담에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이고 돌아온다"는 말이 있다. 또 '혹부리 영감' 구전동화에는 욕심쟁이 혹부리 영감이 도깨비한테 혹 떼려 갔다가 남의 혹까지 붙여 턱에 주렁주렁 매달린 '쌍혹부리 영감'이 된 이야기도 있다.

 

김정은의 불거진 '혹'이 단지 '접힌 살'인지, '혈기왕성한 세포' 활동에 의한 '자연산'인지 아니면 '인조 성형'인지, 혹은 괜한 혹을 붙여 의혹을 더 확산시키는 것은 아닌지는 김일성의 혹처럼 시간이 증명해 줄 것으로 보인다.

 
U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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