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도로 없이 헬멧만 씌우면 끝?…길 잃은 '전동킥보드法'

산업 / 김혜란 / 2021-05-04 17:01:58
자전거도로 턱없이 부족, 거친 표면도 킥보드에 부적합
해외선 개인소지 금지…안전 위해 바퀴 크기까지 규제
오는 13일 시행되는 '전동킥보드법(法)' 적용을 앞두고 '안전 역주행'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안전헬멧 착용과 면허 소지를 법제화하면서 주행자의 의무는 강화했지만, 정작 이들이 안전하게 다닐만한 도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70만 대로 추산되는 전동킥보드가 갈 곳이 없어 개정 도로교통법이 안전규정만 강화한 '궁여지책'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업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 국내 자전거도로 설치 지침 관련 이미지 [서울시 제공]

전용도로 없는 전동킥보드, 차도 달리다 범칙금 낸다

서울에서만 공유킥보드는 5만 대가 달리고 있다. 따릉이 보급대수(4만 대)보다 많다. '킥라니(킥보드+고라니)'라는 도로의 불청객이라고만 볼수 없다. 이제 어엿한 교통수단이다.

개정된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전동킥보드는 자전거전용도로나 차도로만 달릴 수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전국 전체 도로 대비 자전거도로 설치 비율은 약 17.6%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요철이 심하고, 도로 사이 경계나 높낮이 차이 등 '단차'가 있는 곳이 많기 때문에 전동킥보드가 주행하기에는 적합한 환경이 아니다.

전동킥보드 사용자가 도로 사정이 더 나은 차도를 달리다간 범칙금을 물게 될 수 있다. 자전거도로가 있는데도 차도를 달리는 건 도로교통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자전거도로 주행이 위험한 이유

이재영 대전세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전거보다 바퀴가 상대적으로 작은 전동킥보드의 경우 거친 표면을 달릴 경우 충격을 심하게 받는 등 운행에 부적합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자전거도로는 자전거 주행자가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시인성(視認性), 자전거의 안장 높이 등을 고려해 설치된 공공시설이다. 이런 상황에서 '스펙'이 전혀 다른 전동킥보드가 자전거도로의 새 주인이 되기에는 무리가 있다.

사람이 앉아서 달리는 자전거와 달리 킥보드는 서서 움직이기 때문에 주행자가 뒤에서 오는 다른 물체를 확인할 수 있는 '시거'(視距)의 길이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게 이 선임위원의 설명이다. 자전거는 이 길이가 1.5m인 데 비쳐 전동킥보드는 1.7m 이상은 되어야 안전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

▲ 기존 차로를 활용한 개인형 이동장치 전용도로의 모습 [경기도 제공]

이를 고려해 경기도는 킥보드 전용 도로 조성 등의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주요국들은 자전거도로에 따로 선을 그어 전동킥보드용 레인을 따로 마련했다.

전동킥보드 산업 성숙 막는 갈팡질팡 국내법

전동킥보드 산업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화석연료를 쓰지 않는 친환경 모빌리티 열풍에 더불어 코로나19로 '개인형 이동수단'이 급부상한 덕이다. 배달, 대리업에 이어 물류까지 무한 확장 중인 가운데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대기업도 미래 먹거리로 점찍었다.

공유킥보드 스타트업 '스윙(SWING)'은 75억 원 투자 유치에 성공했고, 지난 2월에는 또 다른 스타트업 '디어'가 투자 유치를 받기도 했다.

2018년 '씽씽'을 시작으로 국내 공유킥보드 사업은 4년 차에 접어들고 있지만 관련법은 개정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다시 새로운 개정법이 나오는 등 많은 부침이 있었다.

지난해 국회는 전동킥보드를 자전거 도로로 다니게 하겠다는 목적으로 도로교통법을 개정했다. 이런 과정에서 전동킥보드가 자전거와 같은 개인형 이동장치로 묶이며 법적인 지위가 모호해지다 보니 오히려 이용 연령 제한이 만 16세 이상에서 만 13세 이상으로 낮아지고, 운전면허 소지 의무, 헬멧 미착용 처벌 조항 등이 사라졌다.

이에 '안전 논란'으로 역풍을 맞자 국회는 도로교통법 개정안 시행 바로 전날인 지난해 12월 9일 또다시 법을 바꿔 전동킥보드 관련 규제를 되돌렸다.

이렇듯 법 개정 이후 본격 시행까지 수개월이 소요되는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면서 지난해 12월 10일부터 또 다른 개정안이 시행되는 오는 13일까지 규제 공백이 생겼다.

우여곡절 끝에 시행되는 새 법은 △무면허 및 과로·약물복용 운전(범칙금 10만 원) △동승자 탑승(범칙금 4만 원) △안전모미착용(범칙금 2만 원) △어린이 운전(보호자에게 10만 원 과태료 부과) 등 위반행위에 대한 처벌규정을 담았다.

▲ '뉴런모빌리티' 관계자가 헬멧을 착용하고 전동킥보드를 타고 있다. [뉴런모빌리티 제공]

"헬멧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

해외의 경우 청소년에게는 헬멧 착용을 의무화했지만, 성인은 그렇지 않다. 프랑스 등 주요국의 입장은 개인의 책임을 법으로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프랑스서 미성년은 야광조끼를 입어야 하고, 독일 청소년은 공공도를 달릴 수 없는 등 세부적인 지침을 마련했다.

한국의 전동킥보드 법이 '땜질식 처방'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안전모 착용만 강조하면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만한 근본적인 대처방안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공유·개인 킥보드에 대한 경계가 없다. 영국은 개인소유의 전동킥보드 사용은 금지이며, 싱가포르는 등록제를 통해 기기를 관리한다.

국내법상 개인형 이동장치는 최고속도 25km/h 미만으로 제한되는데 공유킥보드는 출력 제한 등을 둬 과속을 방지할 수 있지만 개인 소유의 기기의 불법개조 등을 막을 방도가 없다.

'시속 90km 달리다 충돌' 등 언론을 통해 보도된 사고의 경우 개인 소지의 불법 개조 기기와 관련이 있었다.

독일의 에너지 정책 재단인 아고라 페어케어스벤데는 안전모가 전동킥보드 사고의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전동킥보드와 관련한 사고는 대부분 자동차와 관련 있으며 사실상 교통 통행량과 일반 승용차가 많은 것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막연한 의심 거두고 종합적인 대책 마련해야 

차두원 차두원모빌리티연구소 소장은 "국내 사고 통계 데이터는 개인 소유와 공유가 한 데 뒤섞여 있어 전동킥보드의 위험성이 과장되는 측면이 있다"며 "실제로 전동킥보드 사고율은 자전거와 비슷하다는 해외 자료도 있다"고 말했다.

기기 자체의 안전 이슈도 중요한 부분이다. 전문가들은 전동킥보드의 크기가 안전과 직결된다고 주장한다. 이에 미국 애틀랜타시는 공유 모빌리티 사업 운용을 위해서는 전동킥보드 바퀴 사이즈가 9인치 이상이 되도록 제한을 뒀다. 서울에서만 1만 대 넘게 서비스하는 등 상당한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라임'의 경우 9인치보다 작은 모델도 있기 때문에 일찌감치 애틀랜타에서의 사업을 접기도 했다.

차 소장은 "우리나라도 한때 경찰청을 중심으로 공유전동킥보드 바퀴 사이즈 10인치 이상 모델만을 허용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었다가 묻혔다"며 "주행도로와 같은 공간, 기기 자체에 대한 안전 등 종합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UPI뉴스 / 김혜란 기자 khr@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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