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영 칼럼] 미국에서 경험한 '재산세' 트라우마

오피니언 / 이원영 / 2021-05-12 20:34:57
재산세 못 버티고 집 투자 파산 경험
한국 보유세 선진국 대비 크게 낮아
낮은 보유세 '영끌' 조장하진 않는지
고백하건대 미국에 살 때 집 투기에 동참한 적이 있다. 금융위기를 불러온 부동산 광풍이 한창이던 2000년 대 중반. 강아지 이름을 대도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시절이었으니 너도나도 집사기 대열에 뛰어 들었다. 집을 사면 오를 것이기 때문에 손해볼 일은 없을 것이란 믿음이 작용했다.

당시 집이 한 채 있었음에도 눈 뜨고 앉아 남들 부동산으로 돈 버는 모습을 지켜만 보는 건 나만 뒤처진다는 불안감을 안겼다. 있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새벽 줄을 서서 분양 신청을 했고, '세컨드 하우스'를 차지할 수 있었다. 어차피 투자 목적이었으니 바로 월세를 놓았다. 월세를 받아 대출금을 갚으면 얼추 집을 유지하는 데 부담이 없을 거라 판단했다.

그러던 와중에 금융위기가 터졌다. 자격도 안 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막 빌려준 금융권 부실채권이 곪아터진 것이다. 당장 월세는 나오니 버텨보자는 계산이었지만 더 이상 견딜 여력이 없었다. 재산세 때문이었다.

캘리포니아의 재산세는 지역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지만 평균 1.2% 수준이다. 미 전역으로 보면 낮은 편에 속한다. 당시 집값이 한화로 5억원 수준이었으니 1년 재산세가 600만 원이었다. 매달 고정된 봉급생활을 하는 입장에서 월 50만 원의 추가 지출이 발생한 것이다. 게다가 집값은 계속 떨어질 조짐이었다. 고심 끝에 세컨드 하우스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 수 만달러의 원금과 집을 날린 것이다.

미국에서 집을 살 때 재산세를 감당할 수 있느냐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흘려보냈다. 재산세는 대출금 상환과 함께 집을 사서 보유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다.

예를 들어 10억 원짜리 집을 산다고 가정해보자. 1년 1200만 원, 매월 100만 원씩 재산세를 내야 한다. 재산세를 낼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 감히 집을 살 엄두를 낼 수 있다. 1년에 두번 재산세를 나눠 낼 때마다 목돈을 마련하느라 진땀을 빼던 기억이 생생하다.

한국에 귀국해 형편에 맞는 집을 하나 구입할 때였다. 미국에서의 트라우마 탓인지 재산세가 걱정돼 세무사에 물었더니 "재산세가 부담돼 집을 안 사는 사람 지금까지 한 명도 못 봤다"고 핀잔을 줬다. 그러더니 예정 재산세 가액을 알려주는데 속으로 적잖이 안도했다.

올해 1월 10억 원에 거래된 서울 금천구 롯데캐슬 골드파크 3차(59.9㎡) 아파트가 얼마의 보유세를 내는지 언론에 보도된 예를 봤다. 2020년 공시가격은 4억6200만 원, 공시가격에 공정시장가액비율 60%를 적용한 과세표준 2억7720만 원, 재산세율 0.1~0.25%를 구간별로 계산하면, 재산세는 51만3000원으로 나왔다. 여기에 다른 세금을 포함해 실제 부담하는 보유세는 100만3680원으로 계산됐다.

매월 10만 원도 안 되는 보유세를 내는 셈이니 미국에 비하면 정말 '껌값'인 셈이다. 시가와 공시가가 그렇게 차이가 나는 것도 놀랍다. 미국은 시가의 90% 정도에서 과세기준액이 정해진다.

미국의 재산세가 우리에 비해 상당히 높지만 재산세 많다고 정부 욕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느냐는 자기 책임이란 생각이 보편적이다. 수입이 끊겨 재산세가 부담이 되면 집을 팔고 더 싼 집으로 이사를 가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누구를 탓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부동산 문제가 백약이 무용한 모양새다. 그럼에도 갈 길은 보유세 올리는 길 외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보유세가 부담되면 자연스럽게 자기 경제력에 맞는 집을 고르게 되지 않을까. 무리한 '영끌'이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0.16%란다. 미국 0.90%, 일본 0.52%, OECD 평균 0.53%에 한참 못 미친다. 보유세가 부담되면 은행서 돈 그냥 빌려주겠다고 해도 집 사는 덴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서 매년 재산세 납부할 때 끙끙 앓았던 나로서는 한국의 낮은 보유세가 자신의 경제력보다 더 무리하게 집을 사게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 이원영 국제담당 에디터

UPI뉴스 / 이원영 기자 lw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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