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말만 사장님이지 우린 노예"…홈플러스 배송기사의 하루

산업 / 김대한 / 2021-05-25 17:52:00
벽에 엉덩이와 팔꿈치가 수시로 부딪혀
20kg 쌀과 생수 두 다발을 수레에 싣고 달려
화장실 못 가 물 섭취 강제금지…탈수증상까지
일하다 쓰러져 뇌사상태에 빠진 홈플러스 배송기사 A(49) 씨가 26일 세상과 영원히 작별한다. 장기를 기증하고 장례식을 거쳐 영면에 든다.

쓰러지기 전 A 씨는 동료 기사들에게 배송 환경이 바뀌어 힘들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고 한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기자가 직접 배송에 뛰어들었다. 힘들겠지만 감당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기자는 키 178㎝, 몸무게 75㎏로, 운동을 꾸준히 해온 나름 '근육질'이다. 

▲ 20kg 쌀가마를 둘러업고 5층 빌라로 향하는 김대한 기자. '배송 사수'가 찍어줬다.

 
"9시 30분까지 오세요. 10시에는 출발해야 합니다."

배송 사수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9시 30분. 다소 여유로운 출근 시간에 불안보단 긍정적인 마음이 앞섰다. 그때까지만 해도 12시간 뒤에나 업무가 종료될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홈플러스 본사인 강서점에 9시 10분에 도착했다. 간단한 통성명도 없이 첫 지시를 받았다. 지시는 "1차로 열세 집을 방문하니 물품을 트럭에 적재하라"다. 쌓여있는 바구니는 귀여울 정도로 작게 느껴졌다. 이렇게 2차(13곳), 3차(12곳)를 세 번만 반복하면 된다고 한다. 오늘은 무료배송과 같은 이벤트가 없는 기간이라 물동량이 적다.

'할 만하겠네'라는 생각이 스칠 때쯤, '마킹(marking)' 업무를 받았다. 바구니에 옮겨 담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배송 물품의 숫자를 확실하게 확인해 바코드가 담긴 스티커에 개수를 크게 적는다. 마킹으로 개수를 확실하게 적어두지 않아 배송에 문제가 발생할 시 모든 변상은 개인사업자인 마트 배송기사가 져야 한다.

변상으로 돈을 물어내야 하는 상황은 견디기 힘든 일일 터. 비장한 각오로 마킹 작업을 끝내고, 서둘러 트럭에 탑승했다. 하루 함께 탑승한 이곳에선 담배 찌든 내가 난다. 흡연할 시간이 아예 없기 때문으로 짐작했다. 트럭 안에는 쓰레기통도 없다. 비닐봉지를 변속기 손잡이에 대강 감싸 처리한다. '정신없는 하루'를 예감케 하는 복선이었던 셈이다.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10시 30분이 돼서야 1차 배송을 출발했다. 고객의 주소와 요청 사항이 담긴 사내 시스템 앱을 사수가 확인한다. 그 주소를 확인하고 '내비'를 찍으려는 순간 "그렇게 하면 밤 12시에도 끝낼 수 없다"는 핀잔이 귓전을 때렸다.

결국 구역의 위치를 훤히 아는 사수의 도움을 받았다. 운전을 직접 해보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는데 골목골목 비탈진 곳을 들어가니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번쩍 들었다.

첫 배송지는 주차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트럭 안의 물품을 빼내다가 낡고 허름한 벽에 엉덩이와 팔꿈치가 수시로 부딪혔다. 그런데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보호해야 할 것은 내 몸이 아니라 'fresh'라고 적힌 달걀이다. '고객클레임'은 마트 배송기사에게 가장 큰 사고다. 모든 책임을 직접 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수는 배송 실수로 '쌍욕'을 들은 적도 있다고 했다.

배송 실수에 대한 담소를 나눈 탓일까. 두 번째 집으로 향하던 중 양배추 반쪽을 빼먹어 다시 3km가량을 되돌아갔다. 가장 억울한 건 그 구역은 바로 옆 동에도 배송을 해야 하는 곳이지만, 한 번에 일을 처리할 수 없다. 고객이 설정한 시간이 아니기에 나중에 다시 와야 한다. 홈플러스 배송기사는 반드시 고객이 설정한 시간에만 배송할 수 있다.

그렇게 13군데를 다니다 보니 어느새 12시 30분. 마지막 타임에는 긴박한 시간에 쫓기며 20kg 쌀과 생수 두 다발을 수레에 싣고 달렸다. 미리 포장된 물품이라면 한결 편했을 것 같은데, 트럭에 내려서 포장을 새로 마무리해야 했다.

사소하지만, 이 과정이 여간 까다롭고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점심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급한 마음과 달리 사소한 일들이 시간을 잡아먹었다. 

오후 1시가 다 돼서 다시 물류창고로 향했다. 차 중간에 내려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편의점. 사수가 머뭇거리며 내가 사주겠다는 말을 뒤로 한 채 달려갔다.

이온 음료를 집어 벌컥벌컥 갈증을 달랬다. 해가 뜨거워질수록 밥 생각은 없고, 물만 찾게 된다. 사수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그렇게 물을 많이 마시면 오후에 일을 못 할 텐데요"라고 했다. 그러나 물을 마시지 않으면 일을 아예 못할 것 같았다. 차라리 화장실을 참자는 생각으로 물로 배를 채웠다.

사수는 사비를 들여 5000원짜리 백반으로 끼니를 때웠다. 기진맥진해 식욕이 없는 나는 전혀 생각이 없어 트럭에서 휴식을 취했다. 고작 하루 일하는 나는 끼니를 생략해도 되지만, 앞으로 족히 8시간을 배송해야하는 사수는 조금이라도 배를 채워야한다. 그마저도 저녁 먹을 시간은 없기 때문이다.

2시쯤 다시 2차 배송을 시작했다. 해는 갈수록 뜨거워졌다. 2차 배송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은 냉동·냉장 용품 칸에서 필요한 물품을 꺼내는 일이다. 이 고요한 5초가 유일하게 시원하게 쉴 수 있는 휴식 시간이다.

머무를 시간이 없다. 이후 비냉동·냉장 물품을 꺼내 하나로 모은다. 부피가 작은 물건들은 홈플러스 봉지로 감싸고 생수 다발과 같은 큰 물품은 수레에 싣는다. 모든 물품에 대한 재포장을 마치고 요청 사항에 따라 직접 배송 물품을 전하기도 하며, 문 앞에 두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그마저도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를 만나면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하다.

▲ 생수 두 다발과 재포장한 바구니는 손수레에 싣고 옮긴다. [김대한 기자]

실제 2차 배송 중 만난 가장 고난도 배송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빌라였다. 다행히 쌀 한 가마만 배달했다. 사수에게는 도움을 받지 않겠다고 외치며 자신 있게 한 걸음씩 걸어 올라갔다. 중간중간 손잡이에 쌀가마를 내려다 놓고 다시 둘러업기를 수없이 반복하여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마저도 사진 찍을 스마트폰을 두고와 빈손으로 다시 올라갔다.

오후 4시가 돼도 땀은 멈추지 않았다. 땀이 많이 난 탓인지 화장실은 생각보다 참을만했다. 트럭 속 미약한 에어컨 바람은 흐르는 땀을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사수는 유류비를 아끼기 위해 원래 틀지 않는단다. 아낄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아껴야 월에 200만 원이라도 손에 쥘 수 있다고 했다.

다른 마트 배송기사들은 9시 30분까지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식자재를 운반하는 일까지 '투잡'을 뛰어야 생계가 가능하다고 한다. 반절 이상의 마트 배송기사들은 이미 '투잡'을 뛰며 한계를 극복 중이다.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니 어느덧 3차 배송이다. 다시 물품을 실어야 한다. 저녁은 점심처럼 먹을 시간도 없다. 차에서 쉬고 있으라는 사수의 말에 반사적으로 '감사하다'는 말부터 나왔다. 배송의 가장 핵심인 운전과 물품을 싣는 일을 사수가 다 해줬음에도 기진맥진이다. 6시쯤이 되니 한 끼도 먹지 않은 입에서는 단내가 났고 어지럼증이 일었다.

3차 배송도 다를 것은 없다. 위험하고 성가신 일이 대부분이다. 촉박한 시간에서도 트럭을 몰면서 계속 스마트폰을 확인해야 한다. 고객 요청사항과 동선 등 체크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배송하는 경우가 확연히 줄면서 배송 대부분 사진 찍는 일에 시간을 써야 한다.

2곳쯤을 남겨놨을까. 대저택에 생수를 배송했다. 사수에게 비스듬히 생수 한 다발을 받다가 중지 살이 짓눌렸다. 사진을 찍어야 하다 보니 장갑을 벗는 일이 반복됐고 첫 번째 배송이후론 아예 트럭 안에 장갑을 팽개쳐놨다. 그렇게 생수 한 다발 배달에도 온몸을 써야 했다. 고객은 무심히 "두고 가라"고 했다. 힘없이 차량에 올랐다.

이때부터 탈수증상이 왔다. 헛구역질이 반복됐다. 입고 있던 조끼를 찢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화장실을 못 가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지칠 때로 지쳐버린 상황에서 저녁에는 몰려드는 차로 재포장을 해야 하는 준비 시간을 더 줄여야 한다. 밀려오는 차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모든 배송이 끝나고 9시쯤 돌아가는 차 안에서 다시 허겁지겁 이온 음료를 마셨다. 이후 물류창고로 복귀하는 20분. 조심스레 A 씨의 이야기를 꺼냈다. A 씨와 같은 세대인 사수는 스무 살 무렵 이 일을 시작했다. 몇 십 년이 지나도 바뀌는 게 없었던 탓인지, 목소리에 무력감이 역력했다. 

"죽은 사람만 죄인이죠. 다 우리 책임이라는데…말만 사장님이지 우리는 그냥 노예예요. 시키는 대로 하다 죽는…" 사수는 비슷한 나이에 남 일 같지 않다며 한숨지었다. 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멋쩍게 마지막 질문을 건넸다. "퇴근하시고 바로 주무셔야겠네요. 어떻게 버티셔요?" "삶에 낙이 어딨어요. 딸 하나 보고 살아요."

UPI뉴스 / 김대한 기자 kimkorea@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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