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쉴 수가 없다"…홈플러스 배송기사에게 권리는 '허울'

산업 / 김대한 / 2021-05-26 15:36:56
쉬려면 용차비 내야…하루 20만 원 '훌쩍'
그렇게 일해도 손에 쥐는 건 월 200만 남짓
일반 개인사업자들은 권리와 책임을 동시에 갖는다. 마트 배송기사의 형편은 다르다. 책임은 피할 수 없는데 권리는 누릴 수 없다. 책임이 현실이라면 권리는 허울이다.

마트 배송기사들은 한 달에 4번, 마트의 강제휴무 때만 쉴 수 있다. 아프다고 쉴 수도 없다. 정해진 시간 외에 쉬려면 용차비를 내야 한다. 하루에 최소 20만 원 이상을 내야 쉴 수 있다. 그마저도 대신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다. 부르는 게 값이다.

쉴 수 없는데, 병원 갈 일은 많다. 중량물 배송으로 근골격계질환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다. 고객 요청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운전대를 잡는 일이 빈번해 교통사고도 종종 발생한다.

▲ 일하다 쓰러져 뇌사상태에 빠진 배송기사 A 씨는 26일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과 작별한다. 사진은 A 씨 관련 회사 책임을 촉구하는 홈플러스 노조의 시위 장면. [마트산업노조 온라인배송지회 제공]

그렇게 아픈 것도 참아가며 한 달 꼬박 일해서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400만 원 남짓. 얼핏 큰돈처럼 보이지만, 차 떼고 포 떼고 나면 200만 원 남짓으로 줄어든다. 반토막이다. 운송을 위해 본사 하청 물류센터로부터 구입한 트럭 비용, 그에 따른 보험료, 유류비 등은 따로 내야 한다. 대형마트 온라인 배송기사는 대형마트가 아닌 중간의 운송사와 위탁계약을 한 개인사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마트 배송에 필요한 트럭을 홈플러스 하청 물류회사로부터 구입한다. 500만 원을 선지불하고, 나머지는 물류회사를 통해 할부로 트럭값을 갚는 셈이다. 트럭 비용으로 파생되는 고정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렇게 돈을 갚아도 10년이 지나면 트럭을 새로 구매해야 한다. 낡은 트럭은 배송에 쓸 수 없다는 게 본사 지침이다. 돈을 벌어도 버는 게 아닌 악순환의 반복이다.

사장님처럼 자유롭게 배송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달 650개를 강제로 배송해야 한다. 주문량이 많으면 당연히 더 일해야 한다. 지난해 마트노조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온라인배송노동자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11시간으로 주 66시간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부터는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며 마트 배송노동자들의 노동강도도 높아졌다. 대형마트는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온라인 서비스를 강화하면서도 산재 등 이들을 보호할 안전장치는 마련해두지 않았다. 현재 마트 배송기사는 개인사업자로 노동관계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 산재사고나, 부당계약에 대해 사용자 책임을 묻기가 어렵다.

서비스연맹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유통·물류산업 노동의 변화와 대응' 보고서에는 대형마트(홈플러스·이마트·쓱닷컴) 배송기사 64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가 나와 있다. 응답자 중 95%는 '코로나19 이후 배송물량이 증가했다'고 답했다.

근무 환경 개선을 요구할 수도 없다. 마트 배송기사가 노조에 가입하면, 다른 물류회사로 취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급성심근경색으로 숨진 롯데마트 배송기사(당시 65세)도 산재 보험이 없었다.

배송 시스템은 10년째 제자리걸음이다. 되레 늘어나는 주문량과 모호해지는 법의 영역에서 삶은 더욱더 고달프다.

홈플러스의 경우 지난 3월부터 하루 20대가 배송하던 지역을 16대가 모두 총괄해 운영했다. 자연히 한 명의 노동자가 감당해야 하는 배송 권역과 물량이 넓어졌다. 20명이 일하던 물량과 권역을 16명 처리하게 됐다. 4명의 여유가 생겨 월 휴일이 조금 늘었지만, 쉬는 것에 대한 선택권은 없다. 무작위로 주사위를 굴려 정해진 날에만 가능하다.

20명이 하던 것을 16명이 맡게 됐으니, 업무강도는 당연히 세졌다. 모르는 구역까지 책임져야 하고 배송 물량도 더 늘었다. 26일 세상과 영원히 작별하는 A(49) 씨도 그런 환경에서 일하다 쓰러져 뇌사상태에 빠졌다.

"여기서 일하다 죽으면 누구한테도 하소연할 수 없어요. 오직 다 내 책임일 뿐입니다. 책임질 때만 사장이고 주어진 일만 처리하는 우리는 신개념 노예죠." A 씨 동료 기사의 목소리는 처연하면서도 단호했다.

UPI뉴스 / 김대한 기자 kimkorea@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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