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직설] 이준석은 세대교체 민심 여는 병따개

오피니언 / UPI뉴스 / 2021-06-02 11:47:54
"지금 세대의 사람들은 모세가 사막으로 이끈 유대인과 마찬가지다. 이 세대는 새로운 세상을 정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몰락해야만 한다. 그래서 이 세상에 알맞게 성장한 새로운 인간들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칼 마르크스의 말이다. 패러다임 전환과 관련해 인용되곤 하는 명언이다. 모세의 주도로 이집트에서 탈출한 유대인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르지 못한 채 사막에서 40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사막을 벗어날 수 있었던 사람들은 그들의 후세대였다. 수백년간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한 유대인들의 몸에 밴 노예근성을 지우기 위한 신의 뜻이었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성공한다 해도 이후 세상을 주도하는 이들은 기존의 부르주아 근성에 오염되지 않은 새로운 세대여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을 게다. 물론 그의 꿈은 실현되지 않았다. 미국 역사가 바바라 터크먼이 갈파했듯이, 모든 성공한 혁명은 조만간 자신이 몰아냈던 폭군의 옷을 입기 마련이다. 어떤 혁명이건 우리는 역사에서 수많은 '혁명가 폭군'을 많이 보아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교훈은 여전히 살아 있다.

패러다임은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이론적 틀을 말한다. 이 틀은 논리와 이성으로 바뀌는 게 아니다. 특정 틀이 지배하던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모두 죽거나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세대가 주도하는 가운데 새로운 사고의 틀을 세우는 게 가능해진다. 패러다임 전환은 단순한 세대교체가 아니다. 새로운 사고의 틀과 비전을 전제로 한 세대교체다.

최근 뜨거운 화제로 부상한 '이준석 돌풍'을 둘러싼 논쟁은 한국 정치의 패러다임 전환 가능성에 대한 논쟁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패러다임 논의의 본고장인 과학계와 달리 정치 분야에서의 패러다임 전환을 좀 느슨한 의미로 쓴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준석 돌풍'에 대해 느끼고 있는 '충격'은 패러다임 전환에 준하는 시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물론 이는 한국 정치의 기본 행동양식이 바뀌기를 바라는 '희망적 사고'일 수도 있겠지만, 희망하는 게 무슨 죄는 아니잖은가.

학계에선 특정한 역사적 시기를 체제로 파악하는 한 흐름이 있는데, 그간 가장 많이 논의된 게 '87년 체제'이며 더불어 '48년 체제' '61년 체제' '97년 체제'라는 개념이 제시됐다. 다 그 나름의 의미가 있는 작명이지만, 거시적인 사회체제가 아니라 정치의 기본 행동양식으로 좁혀서 보자면 우리는 여전히 '61년 체제'에 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라고 했던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책을 탐독했던 마오쩌둥은 "정치는 다른 수단으로 행하는 전쟁"이라고 했다. 그는 "정치는 무혈의 전쟁이요, 전쟁은 유혈의 정치"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이건 거짓말이 되고 말았다. 그에게 정치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죽인 유혈의 전쟁이었으니 말이다.

무혈이냐 유혈이냐 하는 차이만 있을 뿐, 정치를 전쟁으로 보는 마오쩌둥의 시각은 비극적이게도 오늘날의 정치마저 지배하고 있는 패러다임이다. '61년 체제'는 정치를 전쟁으로 보는 전형적인 정치체제다.

박정희와 전두환은 전쟁하듯이 반대자들을 탄압했으며, 유혈의 전쟁마저 저질렀다. 민주화 이후 유혈 전쟁은 사라졌지만, 법과 담론에 의한 무혈 전쟁은 계속되었다. 민주화세력의 경우 정치는 반(反)독재투쟁의 후속 작업으로 이해되었으며, 이런 정치관에 가장 투철한 정권이 바로 현 문재인 정권이다.

586 운동권 투사들이 핵심을 구성한 문 정권에게 전체 국익을 도모하는 미래지향성과 협치에 집중하자는 요청은 '적폐청산'이라는 정의에 반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야당의 행태 역시 정치를 전쟁으로 보는 같은 패러다임에 갇혀 있기 때문에, 양쪽의 갈등과 투쟁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정치는 민생과는 무관한 '혐오산업'으로 전락하는 결과를 초래한 게 지금까지의 현실이었다.

3000년 전의 유대인에게 '노예근성'이 문제였다면, 오늘날의 한국 정치인들에겐 '전쟁 모드'라고 하는 체질과 멘탈리티가 문제다. 물론 민주화운동가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억울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정의를 위해 싸우면서 갖게 된 체질이 문제라니, 어찌 억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무명으로 싸웠던 다른 586 동지들이 아무런 보상도 없이 조용히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반면 586 정치인들은 입신양명(立身揚名)의 기준으로 볼 때에 출세한 사람들이 되었으니 무작정 억울하다고 할 것만은 아니다.

'전쟁 모드' 체질과 멘탈리티가 없는 새로운 세대로의 교체, 이게 한국 정치의 제1의 과제다. 이준석이 36세로 나이만 젊을 뿐 과연 그런 체질과 멘탈리티로부터 자유로우냐 하는 데엔 이견이 많다. 30년 가까이 국민의힘과 그 전신 정당들에서 일해 온 한 인사는 최근 SNS에 "이준석이 출세지향적이고 관종같은 부류인데도 1등이라니 다 바꾸라는 모양이다"라고 썼다.(중앙일보 이가영 칼럼) 무슨 뜻으로 한 말이건, 일리가 있는 말씀이다. 그런데 '출세지향성'이나 '관종'은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갖고 있는 공통된 속성이지, 이준석만의 특성은 아니다. 중요한 건 다 바꾸라는, 특히 세대 교체를 원하는 민심일 게다.

정치판의 고령화, 너무 심각하다. 21대 국회의원 300명의 평균 연령은 54.9세다. 50대 이상이 249명(83.0%)이며, 20대는 2명, 30대는 11명, 40대는 38명에 지나지 않는다. 20~40대의 유권자 비율은 53.7%임에도 이 연령대의 의원은 그 3분의1도 채 안 되는 17.0%에 불과한 것이다. 40세 이상만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는 규제 자체가 그런 고령화와 맞물려 있는 시대착오적인 장유유서(長幼有序) 이데올로기다.

새로운 체질을 가진 세대로의 교체를 원하는 민심은 오래전부터 한국사회라는 병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병따개가 없어서 갇혀 있었을 뿐이다. 이준석의 병따개 역할은 그간 일부 문제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보아 꽤 훌륭했다. 이준석은 "세대교체를 뛰어넘는 큰 체질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준석은 실패할 수 있다. 국민의힘 대표가 된다 해도 이후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결코 실패할 수 없는 건 집단적으로 과거의 경험과 사고에 사로잡혀 한치의 진보도 이루지 못한 채 싸움질만 하는 현재의 정치 패러다임을 갈아 엎을 수 있는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민심이다. 한국인은 '위험 감수'를 겁내지 않는 국민이다. 젊은 세대의 한계와 문제를 아무리 열심히 지적해도 소용 없다. 선배 세대는 그보다 훨씬 큰 한계와 문제를 안고 있다는 걸 질리도록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준석 돌풍'의 의미는 성패와 무관하게 바로 이 사실을 드라마틱하게 확인해줬다는 데에 있는 게 아닐까?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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