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비로소 내 삶의 마지막 숙제를 마쳤다"

문화 / 조용호 / 2021-06-04 11:23:21
8년 만에 신작 장편 '숨' 펴낸 소설가 송기원
'더러운 피' 물려준 아비의 죽은 딸을 향한 여정
명상을 통해 어두운 내면을 직시하며 '무아' 탐색
"그이들 깊은 곳에 못 박힌 고통까지 녹아나게 되기를"

죽음을 앞둔 딸을 일 년 동안 홀로 병실에서 간호한 아빠가 있다. 아빠는 딸에게 죽는 순간, 그 단말마의 고통과 마주할 때, 결코 혼자 힘들게 보내진 않겠다고 약속했다. 겨울 햇살이 병실에 밝게 비치던 오후 막막한 시간을 견디기 위해 책을 읽고 있을 때 간호사가 들어와 딸의 이름을 불렀다. 딸 대신 아빠는 '좀 깊이 잠들었나 보다'고 대답했다. 간호사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불현듯 딸의 코끝에 손을 가져다댄 뒤 놀라서 뛰쳐나가 의사를 불렀다. 아빠는 바로 손만 뻗으면 닿는 거리에서 딸이 마지막 고비를 넘기는 단말마의 찰나를 놓치고 말았다. '그 솜털보다 더 가늘고 짧은 찰나를.'

▲죽은 딸을 명상을 통해 다시 만나 '무아'의 상태로 돌려보내는 신작을 펴낸 소설가 송기원. 그는 "딸을 보낸 뒤 명상이 아니었으면 죽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부희령 제공]

 

탐미적인 문체에 삶의 내력을 녹여온 소설가 송기원(74)이 8년 만에 펴낸 장편 '숨'(마음서재)은 딸을 보낸 아빠의 기록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승에 부재하는 딸을 다시 만나 헤어지는 과정을 치열한 명상 수련을 매개로 보여주는 소설이다. 딸의 유해를 품고 남쪽을 돌며 곳곳에 뿌린 뒤 이후 시간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작가는 동남아 오지의 명상센터를 찾아 자신의 깊숙한 안쪽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딸의 마지막 단계는 '섬망'이었고, 의식의 경계에 놓인 그 상태에 들어야 다시 딸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상태를 재현하기 위해 그는 명상센터로 갔다. 

 

명상홀에서 어두운 정적에 가라앉아 있을 때 깊은 곳에서 한 문장이 떠올랐다. '내 피는 더럽다.'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유서의 첫 문장으로 썼던 문장이기도 했다. 그가 일찍이 단편 '아름다운 얼굴'을 빌려 자전적으로 묘사한 성장환경은 시골 장터 장돌뱅이의 아들로 태어나 삶의 밑바닥을 흘러 다녔던 쓸쓸한 세월이다. 생부가 따로 있지만 의부 밑에서 자랐고, 누이와 부모가 없는 집에서 겨울 내내 외로움에 떨어야 했다. 생부는 술에 취한 채 철길을 베고 누웠다가 세상을 떴고, 어머니는 그가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감옥에 있을 때 목을 맸다. 아버지는 달라도 한 배에서 태어난 서러운 누이는 간암으로 세상을 떴고, 생전에 한번만이라도 그를 보기를 소원하던 의부 또한 이승을 떠났다. 

 

그는 오래 전 썼던 그 문장을 붙들고 고백한다. '문학은 내가 여전히 더러운 피를 간직한 채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와도 같았다. 나는 더러운 피라는 직설적인 어법 대신에 탐미주의라거나 퇴폐주의, 반도덕주의, 그리고 위악주의라는 간접적인 어법으로 내가 짊어진 짐의 무게를 이데올로기화했다.' 태생의 조건을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바에야 '더러운 피'라고 자조할 이유는 없지만, 그는 더러운 피라는 자학을 토대로 '나쁜 짓'을 한 '괴물'로 나아갔다고 성찰한다. 그 더러운 피가 딸까지 감염시켜 제대로 생을 마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통절한 눈물을 흘린다. 이처럼 무거운 마음의 짐을 지고 명상을 시작하는 작가의 구체적인 마음 수련 과정이 진행되고, 또 한편에서는 명상의 내면에 찾아온 딸의 목소리가 교차하는 구성이다. 대낮 명상홀에서 만난 딸은 말한다.

 

'사생아로 태어났다는 점을 감안해도 아빠의 자기연민은 너무 심했어. 물론 아빠는 자기에 대한 혐오나 증오, 자학 같은 것들도 크다고 여기겠지만, 그런 것들은 결코 아빠의 자기연민을 넘어설 수는 없어. 결국 아빠는 그런 자기연민 때문에 자신은 물론 가까운 사람들마저 모두 망치게 한 거야. …자기연민쟁이가 되기 전인 스무 살 무렵의 아빠에게 문학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지. 그 나이에 아빠는 벌써 더러운 피라는 알몸뚱이를 세상에 직접 드러내는 대신에, 문학으로 위장하는 법을 배웠던 거야.…문학에서도 아빠는 더도 덜도 아닌, 그저 흉내만 내는 약삭빠른 사기꾼이었던 거야."

 

딸의 질타는 신랄하다. 아빠를 비판하면서도 딸은 아빠와 닮은 기질을 지닌 자신을 의식하면서 강인해지려고 노력했다. 딸의 목소리로 이어지는 서사를 빼면 이 소설은 딸을 향해 나아가는 명상 수행서로 읽힐 수도 있다. 1990년대부터 국선도를 비롯해 단전호흡, 요가, 명상을 수련해온 작가이기에 딸이 마지막에 이른 '섬망' 상태에 명상을 통해 접근하려는 치열한 과정은 생생한 현장감을 부여한다. '사마타 위빠사나'에서 시작해 '아나빠나 사띠' '니밋따' '색계 사선정'을 거쳐 '죽음에 대한 명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명상에 문외한인 이들도 함께 집중할 수 있을 만큼 몰입도가 높다.

 

"일 년 동안 딸과 같이 있으면서 정작 딸이 세상을 떠날 때는 몰랐으니까 충격을 받았죠. 딸이 죽고 나니까 정말 명상센터라도 가지 않으면 못 살아남을 거 같았어요. 그 겨울 내내 딸의 유해를 조금씩 버리면서 나도 죽어버려야겠다고 생각을 했었죠. 초고를 일찍 써놓고 고칠 생각도 안 하고 발표도 안 하려고 했어요. 이제 슬슬 생을 정리해야겠는데 이걸 놔두고 죽어버리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서 재작년부터 손보기 시작했습니다. 초고를 쓸 때는 이 아이에게 빙의가 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함부로 써버렸는데, 가족들이 크게 상처받아 잘못하면 살아남은 사람도 죽이겠다 싶더라구요." 

 

딸이 삼십대 중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지 10여 년. 이 소설 초고는 5년 전 딸에게 '빙의'된 것 같은 상태에서 딸의 목소리로 써내려갔다. 딸은 아빠뿐 아니라 다른 가족에게도 아픈 말을 많이 했는데, 이를 접한 이들이 너무 힘들어 해서 그는 다른 가족은 배제하고 자신과 딸만 소설에 등장시켰다. 이 부분 말고는 명상 전 과정을 포함해 딸과 아빠의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라고, 해남 '백련재'에 머물고 있는 그가 전화기 너머에서 말했다. 그는 '백련재' 소식지에 '비로소 내 삶의 마지막 숙제를 마쳤다'고 썼다.

 

들숨날숨을 관찰하며 선정(禪靜)에 들어 빛 덩어리를 보고, 그 빛으로 자신 안을 깊숙이 비추며 내면을 들여다보는 명상의 과정은 단순하지 않다. 미얀마 명상센터에서 작가는 명상 수련의 마지막 단계까지 나아갔는데, 10년 이상 그곳에서 수련을 해온 이들도 그이처럼 성공한 사례는 많지 않았다. 그는 명상센터까지 찾아가 어렵게 수행을 하지 않고도 쉽게 그 과정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제 소설은 더 이상 쓰지 않을 생각이지만, 그 방법을 전하는 이야기를 찾게 된다면 하나쯤은 더 쓸 수도 있겠다고 여지를 남겼다.

 

박규리 시인은 '이 책은 살아서 두 눈 부릅뜬 채 중음(中陰·사람이 죽은 뒤 다음생의 몸을 받아 날 때까지의 영혼 상태)의 딸과 함께 그 아득한 바르도를 찬연하게 건넌 한 아비의 지극한 천도재'라고 책 뒤에 썼다. 아빠는 딸을 잘 보냈을까. 그는 "내 의식 속에 있으니 보내고 안 보내고는 없다"면서 "영혼이 있다면 그 아이와 무아(無我) 속에서 서로 헤어지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소설 말미에 딸은 묻는다. '나는 어디에 무엇으로 사라진 것일까? 무게 0그램, 부피 0제곱밀리미터로 더 이상 감각도 없이, 더 이상 존재의 부재도 없이, 더 이상 실존의 흔적도 없이. 혹시 아빠의 선정 속에 스며들어 나 또한 무아의 흐름이 된 것은 아닐까?'

▲송기원은 "명상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마지막으로 하나 더 쓸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여지를 남겼다. [김이정 제공]


송기원은 "나는 명상이 아니었으면 완전히 술에 빠져서 내가 좋아했던 퇴폐적이고 탐미적인 세계에 들어가 죽지 않았을까 싶다"면서 "고통을 바라보다가 고통과 하나가 되어버리는 상태, 고통과 친해지는 상태가 선정에 드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아편 같은 마약류 약물 역할이 고통을 없애는 게 아니라 고통과 친해지게 만드는 역할인데 명상 또한 그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는 독자 한두 명이라도 마음속에 박힌 못을 이 소설을 통해 녹여낼 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이 소설이 문학적인 한계를 넘어 수행서처럼 나아가도 괘념치 않았다고 말했다. 검고 검은 순흑의 '무아' 속으로 딸을 떠나보낸 아비의 고행이 누군가의 캄캄한 동굴도 밝힐 수 있기를!


'아비보다 먼저 딸이 이승을 떠나고, 그렇게 집을 떠나 부유하듯 돌아다닌 시간이 10년 가까이 된다. 더 이상 글을 쓰리라는 작정도 없이 절필 비슷하게 지낸 것도 같은 시간이다. 그런데 쑥스럽게도 '작가의 말'을 쓰고 있다. 나름대로는 이승에서 마지막 업을 지우는 일이라고 변명한다. …인연이 되어 책을 펼치는 이들이 있다면, 한두 번이 아니라 열 번, 백 번을 펼쳐서 그이들 깊은 곳에 못 박힌 고통까지 녹아나게 되기를.'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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