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통 터지고 억울한 현실의 대안…드라마 속 '사적 응징'

연예 / 김지원 / 2021-06-10 11:10:19
사적응징 캐릭터 흥행, 이전과 달리 단순 '권선징악' 결말 아냐
"국민 사적응징 드라마에 열광할수록 국가는 반성해야 한다"
'국민 변화 욕구'…입법과 합리적 틀 안에서 반영해야 할 시점
"겨우 징역 6년이라고? 이게 나라냐", "판사가 당해도 살해 의도는 없었다고 할 건가".

잔인한 사건과 그 범죄를 저지른 자의 형량을 다룬 기사. 기사마다 분통을 터뜨리는 댓글이 넘쳐난다. 모두 법이 '솜방망이'라고 한다. 국민 법 감정과 실제 형량 간 괴리를 극명히 보여준다. 더 과격한 댓글도 볼 수 있다.

"만약 내가 피해자라면, 차라리 스스로 복수하고 징역 산다"

이런 정서를 반영한 것일까. 최근 '사적 해결'을 하는 드라마가 연이어 등장했으며 높은 시청률로 종영했다. '나쁜 놈에겐 더 나쁜 놈으로'라는 이탈리아 마피아 '빈센조'. 전화 한 통이면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해 복수를 완성해주는 복수대행극을 그린 '모범택시'까지. 이들은 '악을 악으로 갚고', '복수이자 정의실현'으로 사법체계의 공백을 스스로 해결한다.

여기에 앞서 서울의 집값, 교육 1번지에서 벌어진 사적 복수극을 다뤄 '고품격 막장 드라마'라는 역설적 평가를 받은 펜트하우스가 지난 4일부터 시즌 3에 돌입했다.
 
▲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해 복수해주는 내용을 담은 SBS 드라마 '모범택시'. [SBS홈페이지 캡처]


대중은 왜 새삼 이 같은 사적 응징과 복수 드라마에 열광하는가.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직접 응징이나 사적 복수에 나서는 모습이 드라마 속에서 그려진 건 최근 일"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사법체계에 대한 불만,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과거에는 '법은 대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그리는 법정 드라마 정도로 풀어나갔다면 최근에는 더욱 강한 자극의 드라마로 다루고 있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소위 '정의의 철퇴'를 스스로 드는 주인공이 등장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그 배경에 "국가공권력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있다고 봤다.

김성수 문화평론가는 "'법이 만인에 평등하지 않다', '법으로 해결을 못 할 것이다'라는 절망이 팽배해있기에 사적 복수를 한다거나 자력구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신중권 변호사(법무법인 거산)는 "사법체계와 재판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다"라며 "공권력에 의한 처벌이 약하거나, 아예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국민이 생각하니, 정의를 개인적으로 실현하는 모습에서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환호한다고 볼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자신을 '악당'이라 칭하는 드라마 '빈센조' 주인공은 말한다. "난 여전히 악당이며, 정의 따위엔 관심조차 없다"라고. 그는 "정의는 나약하고 공허하다. 이걸로는 그 어떤 악당도 이길 수 없다"라고 강조한다.

그의 독백은 이어진다. "만약 무자비한 정의가 세상에 존재한다면, 기꺼이 져주겠다. 악당 역시 평화로운 세상에 살고 싶기 때문이다"  이어 그는 "이런 세상은 불가능하기에 새로운 취미를 가지게 됐다. 쓰레기를 치우는 것. 쓰레기를 안 치우면 쓰레기에 깔려 죽기 때문이다"며 자신을 '필요악'으로 규정한다.

김성수 문화 평론가는 '필요악'이란 캐릭터성에 동의하면서 "이런 콘텐츠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형식적 민주주의는 많이 진전됐다. 하지만 인권 의식과 주권 의식이 높아진 데 반해 실제 사회 시스템은 이같은 의식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기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드라마의 이같은 캐릭터를 소비하는 모습도 달라졌다. 김 평론가는 "'빈센조' 같은 캐릭터는 예전 같았으면 그냥 악인으로 정의됐을 캐릭터"라며 "하지만 지금은 그 악인이 칭찬을 받는다"라고 했다.

그는 "과거 이런 캐릭터의 결말은 대체로 '권선징악'이었다. 합리적인 법적 테두리 안에서 문제해결을 한 이는 살아남고, 사적 응징을 한 이들은 결국 끝이 나빴다. 이런 결말을 통해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교육했다면, 최근 드라마의 내용전개와 결말은 분명히 다르다"라고 말했다.

▲ tvN 드라마 '빈센조'는 "쓰레기를 치우는 것. 쓰레기를 안 치우면 쓰레기에 깔려 죽기 때문이다"는 독백으로 끝이난다. [tvN 캡처]

그는 과거였다면 '복수의 화신'으로밖에 소비되지 않았을 모범택시의 주인공이 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시즌2를 준비하고 있다는 점을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변화 열망이 크다는 걸 알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런 변화 욕구를 제대로 된 입법이나 합리적인 틀 안에서 반영해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변화 욕구들을 제대로 된 입법이나 사법의 합리적 틀 안에서 반영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담은 드라마의 등장은 가능할까.

신 변호사는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변화보다 법이 따라오는 게 느릴 수밖에 없다는 법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의심스러우니 처벌하자'라는 식이 되어선 안 된다. 그러다 보니 국민의 법 감정은 '쟤 나쁜 놈 같은데 왜 처벌 안 하냐'는 식으로 흐르기 쉽다"고 지적했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적 응징을 다룬 드라마가 나오고, 이를 보고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국가는 진지하게 반성해야 한다. 그래야 '모범택시'를 보고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될 수 있다"며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UPI뉴스 / 김지원 기자 kjw@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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