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생설계 희망은 없고"…블라인드에서 '섹파' 찾는 대기업 직장인들

사회 / 곽미령 / 2021-06-18 11:12:05
직장인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에 인스턴트 만남 찾는 '구인글' 봇물

"나랑 섹파할 사람? 나 오늘 서로 맘에 들면 섹속(섹스약속)도 가능" (제과 대기업 ○○○ 직원 30대 중반 A), "새로운 여자랑 하고 싶어서 파트너 정리하고 다시 섹파 구합니다." (○○전자 연구원 30대 후반 B)…

요즘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게시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문구들이다. 섹파(섹스 파트너)를 찾는다는 내용으로, 올린이들은 주로 대기업에 다니는 20·30대 남성이다.

불건전한 만남을 유도하는 글을 올리면 신고를 받아 이용정지를 당할 수도 있지만, 정지를 당해도 재가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용인되는 분위기다. 

이들은 어쩌다, 왜 블라인드에서 이런 일들을 벌이는 것일까. 자기 소개글을 올리고 '나랑 섹파 할 사람'을 찾는 ○○○ 제과 대기업 직원 A를 지난 10일 저녁 여의도역 4번 출구 앞에서 만났다.

A는 만나자마자 "바로 우리집으로 갈래?"라고 물었다. A의 차 안에서 질문을 던졌다.

▲ 블라인드 캡처 글. fwb는 'friend with benefit'의 약자다. 블라인드에서 '섹스파트너'의 의미로 쓰인다.


―왜 블라인드를 통해서 섹파를 구하는거야?

"회사일이 너무 많아. 매일 9~11시쯤 퇴근하는데 업무량은 말도 안되게 많고 상사XX 정말 죽이고 싶어. 회사에서 온갖 업무스트레스 다 받고 집 가면 혼자 있으니깐 외롭잖아."

― 어떻게 블라인드에서 섹파를 구하겠다는 생각을 했어?

"우리부서 직원들이랑 얘기하다가 더러 블라에서 섹파 구해서 즐기고 있다고 해 나도 하게 됐어. 몇차례 해봤는데 만족해. 일단 우리집가서 얘기할래? 술도 종류별로 다 있어."

―부서에 블라에서 섹파 구한 직원들이 꽤 많나봐?

"많지. 부서에만 몇명 있어. 우리 부서 유부XX(유부남 상사)도 세컨으로 최근에 한명 구했더라고. 요즘 다들 블라만 하잖아. 가볍게 만나기 딱 좋지. (기자의 허벅지에 손을 올리며) 너는 최근에 마지막으로 한게 언제야?"

―그런게 왜 궁금해?

"너도 하고 싶어서 나온거 아니야? ○○○ 바로 앞 오피스텔에서 나 자취하거든. 지금 가면 차도 안막히니까 우리집 가서 한번 하자."

더 이상의 취재는 곤란했다. 신변 위협이 걱정돼 서둘러 자리를 마무리했다.

30대 후반 ○○전자 연구원 B는 솔로라고 했다. B와는 전화 인터뷰했다.

―나이도 꽤 있는데, 왜 블라인드에서 가벼운 만남만 찾아?

"이제는 나이도 많아서 소개팅도 안들어와. 나이가 들어도 남은 건 성욕 뿐. 블라인드에서 사람들이 너도나도 섹파 구하길래 나도 한번 구해봤어."

―혹시나 해서 묻는데 유부남은 아니지? 블라인드로 몇명이나 가볍게 만나봤어?

"유부남 아니고, 결혼하고 싶어도 돈 때문에 못해. 대기업 다니면 뭐해. 이 나이 먹고도 집도 없는데. 누가 나랑 결혼해주겠어."

―앞으로도 계속 블라인드 통해서 여자들 만날 생각이야?

"만날 생각이야. 어차피 여자친구도 없는데 뭐. 그나저나 오늘 바로 볼 수 있어? 내가 너 있는데로 데리러 갈게. 차에서 한번 해도 되고."

번듯한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들이 어쩌다 블라인드를 통해 '가벼운 섹스'만을 추구하고 있는 것일까. 대한민국이 주거·양육·교육 부담이 너무 버거운 사회가 되어버린 것과 무관치 않을 듯하다.

가정을 꾸리고 2세를 낳아 양육하는 미래 설계는 비현실적인 일이 되어버리고, 역설적으로 개인의 삶을 중시하고 인스턴트 만남을 추구하며 현재를 즐기는 것이 그들에게 더 의미있는 삶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인생을 설계할 희망도 이젠 안보이고, 그냥 부담없이 즐기는 관계가 좋아." 인스턴트 만남을 찾는 이들 중 상당수가 이렇게 말했다.

UPI뉴스 / 곽미령 기자 ayms7@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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