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프루스트는 자폐적 자기 중심의 상류계급 병자"

문화 / 조용호 / 2021-07-22 14:27:50
원로 불문학자 정명환 신작 '프루스트를 읽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통독 후 메모한 단상들
대작의 장면들과 언급들이 준 자극과 인상 기록
"평생 남몰래 간직해온 부끄러움 어느 정도 해소"

'20세기의 문학적 사건'으로 일컬어지는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방대한 분량으로, 망각의 어둠 속에 탐조등을 비추어 지나간 시간의 기억들을 재조립하면서 19세기 당대 프랑스 문단과 사교계, 예술과 사랑에 대한 집요한 사유를 담아낸 작품이다. 프루스트는 1913년부터 코르크 마개로 창문을 봉인하고 집필실에 틀어박혀 낮에는 자고 밤이면 일어나 죽을 때까지 이 작품에만 전념했고, 사후 모두 7권으로 출간됐다. 

 

사건 위주로 전개되는 스피디한 서사가 아니라서 끝까지 인내심을 지니고 읽어내기는 쉽지 않다. 마들렌 한 조각과 홍차의 맛에서 유년기의 기억을 떠올리며 지나온 시간들의 편린을 재조립하는, 관념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사유의 문장들이 이어진다. 원로 불문학자로 사르트르의 실존철학을 천착한 정명환(92) 서울대 명예교수가 "연구자가 아니라 아마추어로서 이 소설을 샅샅이 읽어나가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고 말한 배경이다. 

▲구순을 넘긴 나이에도 읽기를 멈추지 않고 방대한 분량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비평 에세이집을 펴낸 원로 불문학자 정명환. [현대문학 제공]


정 교수는 최근 '프루스트를 읽다'(현대문학)를 펴내며 "나는 평생 일종의 부끄러움을 남몰래 간직하면서 살아왔다"면서 "그것은, 명색 불문학자, 그것도 현대불문학 전공자로 통해온 내가 프루스트의 '잃었던 때를 찾아서'를 통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이 부끄러움과 뻔뻔함을 어느 정도나마 해소하지 않고서는 자괴심 때문에 편히 눈을 감을 수 없으리라는 생각으로 드디어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고, "끝까지 읽지 못하고 죽어도, 아예 안 읽고 죽는 것보다는 마음이 편하겠지"라는 각오로 임한 5년 여의 작업 끝에 독서 단상을 기록한 단행본으로 결실을 맺었다. '죽음과의 경쟁'에서 이긴 셈이다.  

 

"이 책은 결코 프루스트 연구서가 아니라 그의 대작 중의 어느 장면들과 언급들이 나에게 준 자극과 인상의 기록이다. 한데, 이런 다분히 주관적이며 완전히 비체계적인 읽기의 과정에서, 나는 차츰 프루스트에게서 멀어져가는 것을 느꼈다. 읽기 시작했을 때의 매혹에서 풀려난 것은 아니지만, 프루스트와 나 사이에는 문학적 지향에 있어서 어떤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읽어나갈수록 더욱 절실하게 의식하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해서 프루스트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어서, 구원의 원리를 제 속에서 찾아낸 반면에, 나는 자기혐오와 자기비판을 문학 공부의 동기로 삼아왔고, 이런 지향은 한심스럽게도 죽음을 앞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정 교수는 프루스트의 문학관이 자신이 추구해온 바와 다르다는 사실을 여러번 반복해서 강조한다. 물론 그가 세계문학의 왕좌 반열에 올라 있는 프루스트 일생일대의 역작을 쉽게 폄하하는 건 아니다. 그는 "읽는 도중에 가끔 책을 내려놓고는 한숨을 쉬었다"면서 "한 인간이 어쩌면 이렇게 엄청난 감성과 지성, 관찰력과 상상력, 분석력과 구상력을 함께 갖출 수 있단 말인가"라고 찬탄한다. 특히 프루스트의 음악론에 대해서는 기립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정 교수는 술을 좋아해서 '지나치게 마시고 여러 기행과 추태'를 부렸었지만 10년 전 위암으로 절제 수술을 받고 나서는 끊고 말았는데, 청각만 유지된다면 죽음 직전까지도 향유할 수 있는 쾌락으로 음악을 꼽았다. 

 

'마치 태초에, 아직은 지상에 그 둘(바이올린과 피아노)만 있었을 때와 같았다. 아니 그보다는, 그 이외의 모든 것을 향해서는 닫혀 있는 세계, 어떤 창조자의 논리에 따라서 구축된 이 세계에서는 영영 그 둘만 있게 된 것 같았다. 그것이 바로 소나타였다.' 세상 천지에 '바이올린과 피아노'만 존재하는 것 같은 경지로 소나타를 묘사하는 프루스트의 문장들을 인용하고, 연주자는 '곡을 향해 열린 창문'에 불과하다는 서술에 대해서도 무릎을 친다.

 

'그 연주가 하도 위대한 피아니스트의 솜씨인지라 듣는 사람은, 그 연주자가 피아니스트라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그 연주가 하도 투명하고, 또 그가 연주하는 것만으로 충만되어 있어서, 연주자 자신은 듣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고, 걸작인 곡을 향해서 열린 창문에 불과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대목을 두고 '프루스트는 대단한 감성을 갖춘 심미가'요, 그 누가 프루스트처럼 연주의 극치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감탄한다. 이형식 서울대명예교수가 완역한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펭귄클래식코리아, 전12권)을 텍스트로 삼아 따라 읽으면서, 이러한 찬사는 적어도 3권까지는 지속되는 편이다. 정 교수는 "읽으면서 나는 자꾸만 한숨을 쉬었다"면서 "일언일구가 지식과 관찰과 체험과 상상에 있어서, 즉 내면적 인생의 면에서, 내가 얼마나 모자란 인간인가를,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전혀 달리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이 소설은 누누이 일러주기 때문"이라고 쓴다.

▲'20세기의 문학적 사건'으로 추앙받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지은이 마르셀 프루스트. [위키미디어]


프루스트가 감동적으로 묘사한, 조모가 죽음을 맞는 대목을 언급하면서는 정 교수 자신의 사생관도 덧붙인다. 그는 "'죽음이여, 오늘 오려면 오라'고 하며 맞아들일 태세를 늘 갖추고, 만일 안 오면 또 하루를 덤으로 살았다는 요행을 누리는, 이런 죽음에 대한 적극적 순응 태세가 있어야 우리는 노년의 괴로움을 덜고 염담하고 평정한 나날을 보낼 수 있다"고 몽테뉴의 말을 전제하면서 "기력의 약화에 꺾이고 불치의 중병에 시달리면서도 죽기 싫다는 욕심에서 철없는 짓을 하며 자신을 더욱 들볶는 노인들이 비일비재하거니와, 부끄럽지만 나도 그런 늙은이"라고 고백한다. 

 

'새로운 상황이 생길 때마다, 이것은 '다른 것'이라고 믿는 인간의 속성. 그 속성 때문에 인간은 예술적, 정치적 오류를 진실인 양 받아들인다.'루스트의 이러한 성찰을 인용하면서는 작금 이른바 '민주국가'의 허상에 대한 노학자의 견해도 피력한다. "명색 민주국가의 선거제도 하에서는, 오직 국민을 위한다는 가장 그럴듯한 구호를(즉, 국민들이 진실이라고 믿기에 가장 잘 분식된 외양을) 내건 정당이 대부분 승리하게 되는데, 승리한 그 정당의 패거리들은 곧 그런 외양적 구호는 내던지고, 자유와 정의에는 아랑곳없이, 감추고 있던 발톱으로 권력을 움켜쥐고 서로 뜯어먹으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도가 심해져야 민중은 겨우 진상을 자각하고, 다음 선거에서는 반대당에 표를 주지만, 결국은 이 악순환적인 프로세스가 되풀이되기가 십상이다. (…) '정치는 가치의 위조'라는 폴 발레리의 명구가 함께 생각나기도 한다." 

 

프루스트에 대한 찬사와 기대는 책 권수가 늘어나면서 서서히 비판적 시각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그는 "억지로 참아가면서 프루스트를 계속 읽고 있긴 하지만, 기나긴 '소돔과 고모라' 편에 이르자 그 매력은 점점 더 줄어서 이제는 답답함과 짜증이 날 정도"라면서 "수많은 인물들을 등장시키면서, 어떤 대의나 타자를 향해서 자신을 내바치고 자신을 내던지는 인물이 없는 작품, 특히 장편소설은 달리 없을 것"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프루스트를 읽으면서 내가 이런 부정적 느낌을 갖는 것은, 젊어서부터 실존적 견지에서 문학을 생각해왔고 그런 견지에서 지금껏 탈피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삶이란 무엇이며, 무엇이 삶을 슬픈 것으로 또 반대로 살 만한 것으로 만들어주느냐는 절실한 질문에 대답해주는 것이 문학이라는 생각이 없었다면 나는 문학공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혹시 마지막 권인 '되찾은 때'에 이르면 프루스트에 관한 내 생각이 일변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끝까지 읽어나가려고 한다."


정 교수의 희망과는 달리 마지막 권에 이를 때까지 그의 기대는 채워지지 않는다. 그는 "프루스트는 연애관과 마찬가지로 대타 관계론에서도 어쩌면 이렇게까지 치졸한 자기중심주의에 빠져 있을까 하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다"면서 " 그가 기껏 말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사람을 위해서 자기희생까지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걸머진 의무에 불과하다는 것"이라고 적시한다. 그는 프루스트의 예술론 중 한 대목을 두고 "공동체의 일들을 관심사로 삼는 작가들은 문학을 염두에 두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말"이라며 "프루스트의 자기중심주의와 유아독존은 고황에 든 불치의 중병"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프루스트가 부유한 상류계급에 속하는 병자이며, 또한 철저한 자폐적 자기중심주의자였다"고 규정한다. 


세계문학의 성좌로 오래전 자리를 굳힌 '대작'을 이처럼 솔직하고 과감하게 자신의 생각을 기준으로 비판할 수 있는 것은 정 교수가 문학비평에서 수용하는 '의도의 오류'를 믿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가가 이러저러한 의도로 어떤 작품을 썼다고 설명을 해도 그 의도가 그대로 독자에게 수용되어야 한다는 도리는 없다는 것이며, 작품이 일단 독자의 수중에 들어가면 작가의 의도와는 딴판으로, 심지어는 반대로 읽힐 수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죽음과 경쟁을 벌이며 읽기를 완수한 노학자는 플라톤의 말을 인용하며 당당하다.

 

"일찍이 플라톤은 작가가 죽으면 작품은 고아가 되어 수많은 독자들에 의해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학대를 받는다고 말한 일이 있지만, 바로 이 학대야말로 작품의 행복한 운명이며, 학대가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여러모로 일어날수록 그 고아는 영예로운 것이다. 그리고 아비의 뜻을 알건 모르건, 작품을 고아처럼 다루는 학대자는 큰일을 한 것이 된다. 그것은 작품의 의미가 풍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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