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용진, 판교 마을 주민들과 함께 '불법 도로점용'

사회 / 탐사보도팀 / 2021-07-21 15:04:10
차량 차단기, 과속방지턱, 차단 말뚝 등 무단으로 설치
이웃 주민들 "불법 시설물 철거하라" 해당관청에 민원
"과속방지턱은 정용진 차량들 과속 때문에 설치한 것"
지난 15일 아침 6시경,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의 한 고급주택가. 이른 아침이라 주택 11채가 있는 이 마을은 고즈넉했다. 간간이 새들의 지저귐이 고요한 마을의 아침 공기를 갈랐다. 마을 주변은 태봉산과 남서울 C.C(골프장) 등 녹음(綠陰)이 둘러싸고 있었고, 고급주택 대문 앞엔 외제 승용차 등 고급 승용차들이 주차돼 있었다. 이른 시간인데다 이 마을이 막다른 도로에 위치해 있어 오가는 행인은 없었다.

이 마을 주택 11채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집이다. 정 부회장은 2011년 5월 플루티스트 한지희 씨와 재혼하면서 이 곳에 둥지를 틀었다. 4467㎡(1351평) 부지에 건축연면적 3049.10㎡(922평). 2020년 기준 개별주택공시가격은 149억3000만 원이다. 취재진이 찾아간 날, 정 부회장 저택 대문 안엔 국산 승합차 두 대와 승용차 한 대가 주차돼 있었다. 정 부회장이 타고 다니는 것으로 알려진 벤츠 승합차는 보이지 않았다. 집 안 다른 주차장에 있는 듯 했다. 건축물대장에 따르면 이 집 지하 1층엔 378.19㎡(114평) 규모의 넓은 주차장이 있다.

정 부회장 가족이 사는 이 마을엔 전직 은행장을 비롯해 건설회사 대표, 대기업 임원,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 등이 거주하고 있다. 마을 입구엔 '조용한 주거지역입니다' '주민스티커 미부착 외부차량 주차금지' 등이 적힌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바로 옆 도로엔 과속방지턱이 설치돼 있다. 안내 표지판에서 5m 가량 떨어진 곳엔 차량 통행 차단기가 설치돼 있다. 차단기엔 폐쇄회로(CC) TV가 부착돼 있다. '외부 차량은 돌아가시오'라는 안내 문구도 나온다. 이 차단기 아래 도로에도 과속방지턱이 솟아 있다. 차량 진입과 주·정차를 막는 돌 말뚝(볼라드·bollard)도 10여 개 박혀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사는 경기도 성남시 백현동 마을의 입구. 이곳 주민들이 불법으로 차량 차단기, 과속방지턱, 차단 말뚝, 안내표지판 등을 설치해 인근 주민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탐사보도팀]

얼핏 보면 개인 땅에 외부인 차량이 진입하는 걸 막기 위해 차단기 등을 설치한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차량 차단기와 CCTV, 안내표지판, 과속방지턱 등이 설치된 도로는 경기도 '성남시' 소유다.

20여 년 전부터 이 마을 주민이 하나둘 이곳 주택 부지를 매입하면서 도로 부지는 성남시에 기부채납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금은 엄연히 사유지가 아닌 시유지다. 따라서 차단기 등은 불법 시설물이다. 법적으로 '불법 도로점용'에 해당한다. 불법 시설물로 외부인의 차량 통행은 물론 주차도 막고 있다.

도로법 제38조에 따르면 도로점용은 도로에서 시설물을 신설·개축·변경·제거함으로써 도로의 보전·관리에 장애가 될 수 있는 행위다. 도로점용을 하고자 하는 자는 관리청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정 부회장이 사는 마을의 주민들은 관리청인 경기도 성남시청이나 분당구청 등의 허가를 받지 않았다. 분당구청 관계자는 "마을 주민들이 구청에 알리지도 않고 차단기와 과속방지턱 등을 임의로 설치했다"며 "불법으로 도로를 점용한 것이어서 성남시가 변상금을 부과했다"고 말했다. 변상금은 남에게 끼친 손해를 물어 주기 위해 내는 돈이다.

'불법 도로점용' 사실에 대해 정용진 부회장 측은 "(해당 시설물들이) 불법으로 설치됐는지 몰랐다. 변상금이 부과된 사실도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마을 주민들은 왜 불법 시설물을 설치한 것일까. 이 마을에서 20년째 살고 있는 남서울주민협의회 회장은 16일 본지와 전화 통화에서 "낮엔 마을 인근에 있는 상가 직원들이 자신들의 차량을 마을에 주차했고 밤엔 자동차를 마을에 주차한 채 '음란행위'를 하는 외지인들이 있었다. 심지어 무단으로 쓰레기를 버리고 간 경우들도 있었다"며 "경찰에 민원을 제기했고, 성남시에도 주민 35명이 집단으로 민원을 제기했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주민들이 1000만 원 정도를 모아 차단기 등을 설치했다. 물론 정 부회장도 돈을 냈다"고 말했다. 외부인의 주차와 차량 내 애정행각, 쓰레기 무단 투기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설치했다는 주장이다.

▲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거주하는 경기도 성남시 백현동 저택. [탐사보도팀]


"정용진 차량 속도, 불안했다" vs "험하게 운전하지 않았다" 


그런데 과속방지턱은 외부인이 아닌 정용진 부회장을 비롯한 그의 가족 그리고 정 부회장 저택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과속 차량들' 때문에 설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연은 이렇다. 정 부회장 측 차량들은 마을 도로에서 제법 빠른 속도로 운행했다. 이 마을 주민 가운데 정 부회장(53)은 나이가 어린 축에 속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마을 주민 대부분이 70~80대로 연로한 탓에 정 부회장 측 차량들의 '골목 질주'가 자칫 사고로 이어질까 불안해했다고 한다. 주민협의회 회장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운전하는데 정 부회장 집 젊은 경비들(직원들)이 속도를 내고 다녔다. 그래서 '너희들 진짜 이럴래. (시속) 15㎞ 이내로 운행하자'며 (과속방지턱을) 안전상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이웃 주민은 "정 부회장이 타고 다니는 벤츠 승합차 등 정 부회장 집 차들이 지금도 마을 도로를 가장 많이 오간다"며 "정 부회장 집에서 일하는 직원만 20여 명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 부회장 측은 "마을주민들이 불안해 할 정도로 운전을 험하게 하지 않았다"며 마을 주민 주장을 반박했다.

마을 주민과 인근 주민 '갈등'…설전 벌어지기도

이 마을 내부의 문제만이 아니다. 지난해 9월 설치된 불법 도로 시설물들 때문에 정 부회장이 사는 마을의 주민들과 이 마을 인근 주민들 간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변상금을 내더라도 시설물을 그대로 놔두겠다"는 마을 주민들과 "불법 시설물이니 철거하라"는 이 마을 인근 주민들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양측은 분당구청 등에 집단 민원을 여러 차례 제기했다. 심지어 주민 간에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이웃 마을 주민은 "예전엔 이 마을 도로로 산책을 다녔는데 차단기가 설치된 다음부턴 잘 안 다닌다"며 "이 마을 분들이 (경제적으로) 잘 사시는 분들이라 그런지 좀 유난스럽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또 다른 인근 주민 역시 "개인 땅도 아닌데 마음대로 도로를 막고 차량을 다니지 못하게 할 수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마을 인근 식당 관계자는 "(우리 식당) 바로 앞 도로에 차량이 많이 몰릴 때 그 마을 도로로 진입해 유턴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마을 주민들이 그것 때문에 민원을 많이 제기했다"며 "그 마을 입구에서 조금만 시끄러워도 주민이 나와서 항의하는 일이 많았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이에 대해 주민협의회 회장은 "어떤 차량이든 차단기에 가까이 다가가면 자동으로 차단기가 열린다. CCTV도 전기가 연결되지 않은 짝퉁이다. 누구나 들락거릴 수 있다"며 "차단기는 전시 효과에 불과하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지난 19일 오후 취재진이 승용차로 차단기에 접근하자 자동으로 차단기가 열렸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을 외부인이 알 수는 없는 노릇. 취재진은 외부인으로 보이는 운전자가 마을 입구로 차량을 진입했다가 차단기가 설치된 걸 알고 회차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분명 전시효과는 있었다.

▲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거주 마을 입구엔 불법으로 돌 말뚝(볼라드)도 설치돼 주정차를 막고 있다. [탐사보도팀]

분당구청 "'변상금 내며 버티겠다'고 해서 난감"

분당구청은 불법으로 도로를 점용한 주민협의회와 이에 대해 민원을 제기한 주민들 양쪽 입장 차이가 워낙 커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분당구청 관계자는 "(주민협의회 쪽에선) 차단기를 설치한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 그 문제를 해결해주면 원상복구 하겠다고 한다. 성남시청에서 변상금을 부과했음에도 변상금을 계속 내면서 버티겠다는 완강한 입장"이라며 "그렇다고 그 길로 차량을 다니지 못하게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난감할 뿐"이라고 말했다.

정 부회장 거주 마을의 주민들은 해마다 변상금을 내더라도 차단기 등을 철거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성남시청은 지난 1월 변상금을 부과했고 주민들은 이를 납부했다. 성남시청 관계자는 "변상금은 도로를 불법으로 점용한 기간과 점용 면적 등을 감안해 결정되며, 해당 차단기는 지난해 9월경 설치된 것이어서 올해 1월 부과된 변상금 액수가 그리 크지 않았다"며 "구청과 양쪽 민원을 조율하는 방향으로 협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정용진 부회장 측은 "주민들이 의견을 모아서 설치한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주민들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 있을 것이다"며 "의견이 모아지면 그 의견에 따를 것"이라는 입장이다.

UPI뉴스 / 탐사보도팀=김지영·조성아 기자 tamsa@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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