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운영 첫 커피전문점은 1926년 소광교에 문 연 '백림관'

문화 / UPI뉴스 / 2021-07-21 14:21:11
[기고] 무용가 최승희 연구가 조정희 PD
조선인 첫 전문 커피점 '카카듀' 잘못 알려져
철학박사 이관용, 의학박사 이성용 3명이 개업
일본인의 '후타미'보다 4개월 이상 앞서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뜨겁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인 성인의 1년 커피 소비량은 353잔으로 세계 평균 132잔의 거의 3배이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9년 한국의 커피 전문점 시장규모는 5조4000억 원으로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이다.

코로나19도 한국인의 커피 사랑을 막지 못했다. 2020년 에스프레스 머신 등의 커피 기기 수입액은 전년 대비 35% 증가했고, 스타벅스 원두 판매량도 같은 기간에 30% 이상 증가했다. 매장을 이용하지 못하게 되자 집에서 커피를 만들어 먹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다.

▲ 1926년 8월22일자 <경성일보> 2면에 실린 '후타미' 개업 광고. 혼마치(=충무로) 3가에서 "도쿄식 끽다점"을 지향해 문을 연 '후타미'는 개업일인 22일부터 24일까지의 개업피로 기간에 방문하는 고객들에게 사은품을 증정한다고 홍보했다. [조정희 PD 제공]

한국인들의 커피 담론도 지난 20년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커피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대단히 높아졌다. 커피 세계사는 물론 커피 한국사도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한국 최초의 '호텔 커피숍'은 1888년 제물포의 '대불호텔'이며, 경성의 첫 번째 '순끽다점'은 1923년 일본인이 진고개에 개업한 '후타미', 조선인 최초의 '커피전문점'은 1927년 영화감독 이경손이 관훈동에 문을 연 '카카듀'라는 것 정도는 이제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의 문헌조사로 20년 이상 통용되던 상식은 무너지고, 새 상식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일제강점기 일본인과 조선인을 가를 것 없이 경성의 첫 '순끽다점'은 1926년 4월 남대문통 소광교에서 문을 열었던 독일식 커피전문점 '백림관'이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 1928년 9월5일자 <동아일보> 3면에는 조선인이 개업한 첫 끽다점 '카카듀'가 개점축하 피로행사로 무료 입장의 "예술 포스터 전람회"를 개최한다고 보도되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카카듀'의 개업시기는 1928년 9월 초인 것으로 추정된다. [조정희 PD 제공]

최승희 선생의 무용 활동을 조사해 오던 필자는, 그녀의 나체 무용 사진이 걸려 있었다는 종로 2가의 커피전문점 '멕시코(1929)'를 조사하기 시작했고, 이내 일제 강점기 경성의 끽다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관심은 이내 최초의 조선인 끽다점으로 알려진 '카카듀'로 옮겨갔고, 마침내 경성 최초의 '순끽다점'이었다는 '후타미'까지 조사하기에 이르렀다.

관련 문헌을 조사한 끝에 '후타미'의 개업 시기는 1923년이 아니라 1926년 8월22일이고(<경성일보>, 1926년 8월22일), '카카듀'가 문을 연 것도 1927년이 아니라 1928년 9월초(<동아일보>, 1928년 9월5일)였음을 밝힐 수 있었다. 이에 더해 필자는 월간 종합문예지 '개벽' 1926년 5월호에 실린 "경성잡화"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발견했다.

"이성용, 이관용 양 박사와 기독교 청년학관의 독일어 교사 낭승익군은 남대문통 소광교 부근에 경성 초유의 '백림관(伯林館)'이라는 독일식 다점을 열고 영업을 개시하였다 한다."

'백림(伯林)'은 '베를린'의 한자 음차어다. '개벽'의 서술이 사실이라면 경성의 독일식 다점 '백림관'의 개업 시기는 늦어도 1926년 4월이다. 월간잡지의 경우 5월호 원고는 4월 중에 마감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3인의 조선인인 공동 창업한 '백림관'의 개업은 일본인 요시카와(吉川)가 개업한 '후타미(1926년 8월22일)'보다 적어도 4개월 이상 앞선 것이다.

필자가 놀랐던 것은 '백림관'의 창업자들이 당대 조선 최고의 인텔리였다는 점이다. 이성용(李星鎔)은 경성의전을 졸업하고 1924년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병리학과 세균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1년간 박사 후 과정을 거쳐 1925년 11월 경성으로 귀국했다. 이후 그는 병원을 개업해 진료활동을 하는 한편, 활발한 강연과 저술활동도 펼쳤다.

▲ 그동안 영화감독 이경손이 관훈동에 개업한 커피전문점 '카카듀'가 조선인 최초의 커피전문점으로 알려져 왔었다. '카카듀'는 영화 '밀정(2016)'에 등장했지만 고증이 잘 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사진은 영화 스틸.

이관용(李灌鎔, 1894-1933)은 이왕가 이재곤의 셋째 아들로, 1916년 스위스 취리히대학에 입학, 재학 중이던 1919년부터 김규식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와 구미외교위원회 주프랑스 대표부 요원으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1923년 취리히 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귀국, 연희전문학교 교수, 동아일보 특파원 등으로 활동했다.

낭승익(浪承翼)은 1910년까지 대한제국 관립한성외국어학교의 독일어 교수로 근무하던 중 일제의 조선강점으로 학교가 폐교되면서 실직했으나, 이후에도 사립 호동(壺洞) 학교와 청년회관(YMCA) 등에서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독일어 교육을 계속해 왔다.

이 세 사람은 모두 독일어와 독일문화에 익숙한 점에 의기투합, 독일식 커피전문점을 공동 창업한 것인데, 이들의 가족과 지적 배경으로 보아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백림관'을 개업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백림관'을 조선의 지성인들과 문화예술인들의 대화의 장으로 삼고 싶었을 것이다.

▲ 종합 문예시사잡지 <개벽> 1926년 6월호에는 "경성 초유의 '백림관'이라는 독일식 다점이 개점"되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이로써 "경성 최초의 끽다점"은 '후타미(1926년 8월)'나 '카카듀(1928년 9월)'가 아니라 '백림관(1926년 4월)'이었음이 밝혀졌다. [조정희 PD 제공]

'백림관' 관련 문헌이 처음으로 발굴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 끽다점이 어떤 방식으로 언제까지 운영되다가 어떻게 폐업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가 더 필요하다. 3인의 '백림관' 창업자들의 가족적, 사회적, 지적 배경과 그들의 사회 활동에 대한 연구도 중요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성용과 이관용과 낭승익이 왜 하필 그 시기에 경성에서 '백림관'을 창업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반드시 수행되어야 할 향후 과제일 것이다. (*)

▲ 조정희 PD, 최승희 연구가

조정희 PD(최승희 연구가)


[ⓒ U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UPI뉴스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81

뉴스통신사업 : 문화, 나 00033

인터넷신문 : 서울, 아00850 | 등록일 : 2009년 5월 6일

대표 : 김강석 | 편집인 : 류영현

청소년보호관리책임자 : 장한별

대표전화 : 02-7307-114

email: go@upinews.kr

© UPI뉴스 ALL RIGHTS RESERVED
The United Press International, Inc. Website is at UP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