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또 하명?…8월 한미연합훈련 '고냐 스톱이냐'

정치 / 허범구 / 2021-08-02 17:00:21
김여정 "또 적대적인 전쟁연습하는지 예의주시"
정부 "예정대로 훈련"…與 송영길 "전작권 전환용"
설훈 "훈련 연기해야"…남북관계 위해 포기 가능성
野 최재형 "말려들면 안돼" 태영호 "북핵인질 안돼"
"한미관계냐, 남북관계냐."

문재인 정부가 딜레마에 빠졌다. 남북 통신연락선이 어렵사리 연결됐는데 '김여정 변수'가 돌출했다.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 1일 담화에서 8월 한미연합군사훈련 취소를 공식 요구했다. 통신연락선 복원에 따른 대가를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한미연합훈련은 제대로 치러질 수 있을까.

▲ 북한 조선중앙TV는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당 중앙위원회 8기 2차 정치국 확대회의를 지난 6월 29일 주재했다고 같은 달 30일 방영했다. 당시 회의에서 김여정 당 부부장이 발언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김 부부장은 "며칠간 나는 합동군사연습이 예정대로 강행될 수 있다는 기분 나쁜 소리들을 듣고 있다"며 "북남관계의 앞길을 더욱 흐리게 하는 재미없는 전주곡이 될 것이라고 본다"고 경고했다.

그는 "우리 정부와 군대는 남조선측이 8월에 또다시 적대적인 전쟁연습을 벌여놓는가 아니면 큰 용단을 내리겠는가에 대해 예의주시해볼 것"이라고 위협했다.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에 대해선 "남조선 안팎에서는 북남수뇌회담문제까지 여론화하고 있던데 경솔한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단절됐던 것을 물리적으로 다시 연결시켜놓은 것"이라는 얘기다.

김여정 '담화 폭탄'에 국방부 "할 말 없다"…與 송영길 "예정대로 훈련" 

국방부는 2일 "한국과 미국 당국에 의해 결정될 사안"이라며 원론적 입장을 고수했다.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코로나19 상황, 연합방위태세 유지, 전작권 전환 여건 조성 등 제반여건을 종합 고려해 긴밀하게 협의 중"이라고 전했다. 김 부부장 담화와 관련해선 "국방부 차원에서 언급할 내용은 없다"며 말을 아꼈다.

한미 군 당국은 일단 이번 연합훈련을 계획대로 시행하는 방향으로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10일부터 나흘 동안 위기관리참모훈련을 통한 한·미 사전연습을 한다. '본 훈련'인 한미 연합지휘소연습은 16일부터 열흘 남짓 진행하는 일정이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에서 "이번 훈련은 시뮬레이션 방식의 전투 지휘소로 실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여정 부부장이 말한대로 적대적 성격이 아니라 전작권 회수를 위한 필수적 훈련"이라고 강조했다. 집권여당 대표가 직접 나서 김 부부장 우려를 씻어주려는 인상이다.

대선 앞둔 與, 남북관계 개선 '정치적 효과' 기대…설훈 "연합훈련 포기하라"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결국 남북관계 개선에 따른 '정치적 효과'에 집착해 연합훈련을 취소할 것이라는 관측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에선 벌써 "훈련은 안된다"는 압박성 주장이 공개적으로 나왔다.

5선 중진인 설훈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본격적인 대화 복원을 위해 한미 공조를 통한 유연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8월 한미연합훈련을 연기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설 의원은 "남북-북미관계의 새로운 변곡점을 만들기 위해서도, 코로나19 방역을 위해서도 한미연합훈련을 연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교류협력 재개에 시동이 걸렸다"며 "현 국면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 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이 지난해 2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북한 지역 개별 관광 실현을 위한 법적·제도적 검토'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여당 중진 의원이 김 부부장 담화가 나온지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적극 호응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송 대표가 '예정대로 훈련 진행' 입장을 밝힌데 대해 "(한미 연합훈련 연기에) 선을 그은 것은 유감"이라고 비판했다.

설 의원은 이낙연 전 대표 대선캠프에서 활동하고 있다. 훈련 연기론은 이 전 대표 의중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 전 대표는 최근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에 따른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강한 희망을 피력한 바 있다. 지난달 29일 언론 인터뷰에선 "남북 정상회담이 문재인 대통령 재임 중 한 번 더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며 "가능성이 제일 높은 시기는 베이징 겨울올림픽"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 '복심'으로 꼽히는 민주당 윤건영 의원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베이징 올림픽이 남북 정상회담 적기라는 분석에 공감을 표했다. 윤 의원은 "2018년 평창 올림픽을 통해 잃어버렸던 남북관계 10년을 되찾는 계기를 만들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문재인 정권 말기에, 그것도 대선을 앞두고 권력 핵심 인사와 유력 대권 주자가 남북관계 개선에 절실하게 매달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 부부장이 자신 있게 연합훈련과 남북관계를 연계하는 담화 폭탄을 투척한 배경이다.

남북 관계가 대화 국면으로 진전되면 '대선 호재'가 될 수 있다는게 여권 기대감이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성과를 거두면 정권 심판 여론도 약화할 수 있다.

이런 정치적 효과가 예상되는 남북관계 전환기에서 연합훈련은 악재일 수 밖에 없다. 북한이 연합훈련을 빌미삼아 통신선을 다시 끊고 대화의 문을 아예 걸어잠그는 건 문재인 정부에겐 최악의 시나리오다. 결국 훈련이 취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받는 이유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코로나19 상황을 들어 훈련중단을 희망한 통일부 고위 당국자 최근 발언을 거론하며 "한미 양국이 숙고하는 모양새를 취하다가 코로나19 사태를 명분으로 훈련을 취소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김여정 하명' 재연시 정치적 부담 커…野 "北 협박에 굴복 안돼"

문제는 김 부부장 한마디에 현 정부가 납작 엎드리는 볼썽 사나운 모양새가 또 연출되는데 있다. 앞서 정부는 대북전단 살포를 처벌할 수 있도록 남북관계발전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김여정 하명' 논란에 휘말린 바 있다.

지난해 6월 김 부부장은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남측 당국의 대응을 문제삼으며 남북 통신연락선을 끊고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화들짝 놀란 정부는 대북전단살포금지법 개정을 추진했다. 야권은 '김여정 하명법'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정부가 이번에 연합훈련을 취소하면 '김여정 하명'에 또 굴복했다는 비판 여론이 확산되면서 큰 정치적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한미동맹의 상징인 연합훈련이 취소될 경우 한미관계에 미칠 악영향도 문재인 정부로선 큰 타격이다. 

국민의힘에선 "훈련중단은 안된다"는 견제의 목소리가 잇따랐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우리 내부를 이간질하고 한·미 갈등을 부추기려는 북한의 저의에 말려들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최 전 원장은 "마치 대한민국 군통수권자에게 지시를 내리는 듯하다"며 "군 통신선 연결과 대화 재개를 미끼로 연합훈련을 중단시키겠단 저의가 깔려있다"고 지적했다.

탈북민 출신 태영호 의원은 "김정은 남매의 협박에 굴복해 연합훈련을 중지한다면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잃는 것은 물론 영원히 북핵을 사는 인질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UPI뉴스 / 허범구 기자 hbk1004@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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