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 공작으로 시작해 공수사단 철수로 끝난 아프간전

국제 / 김당 / 2021-09-01 16:24:13
[김당의 단매] 미국의 아프간 전쟁 20년
CIA 준군사요원 순직으로 시작해 미군 13명 사망으로 종료
바이든이 외친 '미국의 귀환'이 아니라 '탈레반의 귀환' 목도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 주둔 미군이 30일(현지시간) 전격적으로 철군을 완료함으로써 미군 역사상 최장기간으로 기록된 아프간 20년 전쟁을 끝냈다.

▲ 크리스토퍼 도나휴 미국 육군 82공수 사단장이 아프간에서 마지막 철수하는 미군으로 C-17 수송기에 오르고 있다. [미 중부사령부 제공]


아프간 카불 국제공항에서 단행된 완전 철군 때 가장 나중에 C-17 수송기에 몸을 실은 미군은 군 경력 30년차의 크리스토퍼 도나휴(Christopher Donahue) 미 육군 82공수사단장이었다.

미군은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테러 위협 때문에 자체 설정한 철군 시한(31일)을 하루 앞두고 서둘러 아프간을 탈출해야 했다.

도나휴 소장이 굳은 표정으로 C-17 수송기에 오르는 적외선 야간 투시경 사진은 이날 미 중부사령부가 배포한 아프간 전쟁사의 마지막 장면으로 공식 기록됐다.

 

부시(공화)∙오바마(민주)∙트럼프(공화)∙바이든(민주)의 20년 전쟁

아프간에서의 미군 철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오래된 소신의 결과다. 바이든은 상원 외교위원장이던 2001년 아프간 전쟁 개시에 찬성했다. 미국 헌법상 '전쟁선포권'은 의회에 있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 미군 중부사령관인 케네스 메켄지 해병대 대장이 철군 작전을 지휘하기 위해 지난 8월 17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미 중부사령부 홈페이지]


대통령이 된 바이든은 지난 4월 14일 아프간 전쟁을 20년 만에 끝내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는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을 지휘하는 네 번째 미국 대통령으로, 이 책임을 다섯 번째 대통령에게 넘기지 않겠다. 미국의 가장 긴 전쟁을 끝내야 할 때이며, 이제 미군이 집으로 돌아와야 할 시간이다."

그의 말처럼 아프간 전쟁은 금세기 초인 2001년 전대미문의 9∙11테러를 당한 조지 W. 부시(공화) 행정부에서 시작해 버락 오바마(민주)와 도널드 트럼프(공화)를 거쳐 바이든(민주)까지 20년이나 지속되었다.

부시가 알카에다(al-Qaeda)와 그 수장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에 대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간을 침공할 때만 해도 전쟁이 이렇게 장기화될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빈 라덴 제거공작에서 아프간 침공전쟁으로 선회

미국이 처음부터 아프간 침략전쟁을 하려던 건 아니었다. 9·11 테러 1년 전 알카에다 요원 2명이 450kg의 폭약을 실은 보트로 예멘 아덴항에 정박 중인 미 구축함 USS 콜(Cole)호를 들이받은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미 구축함이 평시에 공격을 받기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폭격 이후 처음이었다.

콜호 피격 이후 CIA 대테러센터는 빈 라덴을 제거하기 위한 아프간 비밀공작을 개시해 그의 은신처를 추적했다. 대테러센터는 9·11테러가 터진 2001년 9월까지 아프간의 모든 지역과 부족을 망라한 100명 이상의 '휴민트(HUMINT)'를 아프가니스탄에 확보하고 있었다. 본래는 아프간 토착민 비밀공작팀을 배치해 빈라덴을 체포 또는 사살하려고 했지만 상부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

네오콘(neo-conservatives)은 '깡패국가(rogue states)'에 대한 선제공격을 정당화한 부시 독트린을 내세워 아프간 침공전쟁으로 선회했다. 전쟁의 선봉에는 미군이 해외에서 겪은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1983년 10월 헤즈볼라의 레바논 미군시설 폭파 사건(해병대원 220명 포함해 미군 241명 사망)을 계기로 만든 CIA 대테러센터가 앞장섰다.

이란 혁명 이후 미국을 타깃으로 한 테러리즘이 확산되자 레이건 대통령은 조지 H. W. 부시 부통령(뒤에 아프간 전쟁을 개시한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에게 대테러 대책을 위임했다. CIA 국장을 지낸 부시는 테러리즘에 대응할 독립부처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1986년 2월 CIA는 대테러센터(CTC, 2004년에 NCTC로 확장)를 창설했다.

아버지 부시의 주도로 만든 대테러센터가 아들 부시 때에 테러와의 전쟁의 선봉에 선 것이다. 이들의 임무는 CIA 국가비밀공작부와 공동으로 적의 은신처로 침투해, 적들을 파악하고 그들의 계획 의도를 포착해 비밀공작 전장(戰場)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CIA는 '적의 적은 내 친구'라는 교범에 따라 탈레반의 적인 '북부동맹'을 '내편'으로 끌어들였다.

 

네오콘, 빈 라덴 제거했지만 '이슬람국가 IS' 출현과 세력 확장 초래

▲ 한 시리아 반군이 중국제 FN-6 대공미사일 발사기로 보이는 것을 겨냥하고 있다. 


클린턴 정부부터 부시 정부까지 7년(1997. 7~2004. 7) 동안 CIA 국장으로 재임한 조지 테닛(George Tenet)은 9.11테러를 막지 못한 책임과 테러리스트를 처리(?)할 의무를 동시에 지녔다.

CIA와 중동의 전장을 관할하는 미 중부사령부(CENTCOM)의 합동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작전회의는 테닛 국장 주관으로 CIA 본부 7층에서 매일 오후 5시에 열렸다. 군사지원 담당 CIA 차장인 공군의 존 캠벨 장군, 미 중부사의 CIA 자문관인 게리 마이크 존스 준장, 대테러센터의 코퍼 블랙과 CTC 특수공작부의 헨리 크럼프턴 등이 회의의 고정 멤버였다.

대테러센터는 국방정보국(DIA)과 국가영상지도국(NIMA)의 지원을 받아 3차원 그래픽의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아프간 전역의 지리정보체계(GIS)를 실시간 시각화할 수 있는 '마법 상자'를 만들었다. 또한 최대 40시간을 체공할 수 있는 무장 프레데터(Predator)에 헬파이어 미사일을 장착한 대형 드론을 운용∙발포하는 권한이 군에서 CIA에 이양되었다.

대테러센터 특수공작부가 하는 일은 현지 침투공작원과 위성정보를 근거로 지도 위에 전투기 폭격이나 순항미사일, 드론 공격 등으로 제거할 표적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CIA가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 전략을 수립하고 전쟁의 선두에서 비밀공작을 수행하는 것은 유례가 없던 일이었다. 아프간 전쟁의 첫 사망자도 미군이 아닌 CIA 준군사요원인 마이크 스팬(Mike Spann)이었다.

미군과 영국군이 주축인 연합군은 탈레반(Taliban) 정권을 무너뜨렸지만, 빈 라덴을 포함한 다수의 지도자와 알카에다 요원들은 탈출에 성공해 파키스탄에 꽁꽁 숨었다. 미국은 미국인들에게 악몽으로 기억된 베트남 전쟁처럼 장기전의 수렁에 빠진 가운데 누가 적인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고군분투해야 했다.

마침내 전쟁을 개시한지 10년만인 2011년 5월 2일, 오바마 행정부에서 CIA와 해군 특수부대(Navy Seals)의 공조작전으로 빈 라덴을 사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민주주의를 이식하려는 미국의 노력으로 아프간 최초의 선거에 의한 정부가 수립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프간에 평화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카불 밖의 정정은 늘 불안했고 탈레반은 급속히 세력을 회복해 반격을 가해왔다. 길을 잃은 미국은 앞서 2차 이라크 전쟁에서 실패를 경험했음에도 아프간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부시의 네오콘은 중동의 '악의 축'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을 제거하고 민주제도를 이식하면 중동에 민주혁명을 촉발시킬 것이란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하지만 네오콘의 주장과 달리, 후세인 제거는 더 폭력적인 '이슬람국가 IS'의 출현과 세력 확장을 초래했다.

결과적으로 아프간 전쟁은 미국인들에게 막대한 희생과 천문학적 비용의 빚을 남겼을 뿐이었다. AP통신에 따르면, 지난 4월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2448명이 숨졌고, 쏟아부은 돈은 2조2610억 달러(약 2524조4000억원)에 달했다.

 

CIA 비밀전쟁은 성공했지만 아프간 '출구전략'은 실패

▲ 미군 중부사령부 사령관 케네스 메켄지(Kenneth F. McKenzie) 해병대 대장이 철군작전 중 이슬람 IS-K의 테러로 사망한 미군 13명에 대해 '깊은 애도'를 표명한 성명 [미 중부사령부 홈페이지]


아프간 '출구전략(exit plan)'은 오바마 때부터 모색되었고, 트럼프는 대통령후보 시절부터 국민의 전쟁 피로감을 파고들어 부시의 아프간 전쟁을 비판하고 철군을 공약했다. 트럼프는 탈레반과 협상해 임기말인 지난해 2월 미군을 14개월 뒤에 아프간에서 완전히 철수하기로 한 '도하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바이든의 아프간 미군 철수는 트럼프가 체결한 '도하 협정'의 가이드 라인에 따른 것이다. 바이든의 말대로 미군은 이제 막 20년 전쟁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문제는 치밀한 출구전략에 따른 질서 있는 퇴각을 보여주지 못한 점이다.

빈 라덴을 제거하려는 CIA의 아프간 비밀전쟁은 성공적이었지만, 아프간 전쟁의 마지막 보름은 실패로 끝났다. CIA는 미군이 철수하더라도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하려면 적어도 석 달은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미군이 철수를 시작하자 CIA가 돈과 무기로 공을 들인 아프간 정부군은 백기 투항했다. CIA의 정보 실패였다.

게다가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의 테러공격으로 철수작전이 진행 중인 카불 공항에서 미군 13명을 포함해 100명가량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미 중부사령부 사령관 케네스 메켄지(Kenneth F. McKenzie) 해병대 대장은 깊은 애도를 표명한 성명을 냈다. IS 폭탄테러로 사망한 미군 13명은 CIA 정보 실패의 희생양이었다. CIA 준군사요원의 순직으로 시작된 아프간 20년 전쟁은 미군 13명(해병대 11명, 육·해군 각 1명)의 철군작전 중 사망으로 끝난 셈이다.

미군의 완전 철수가 이뤄지자 탈레반은 축포를 쏘며 환호했다. 세계는 바이든이 외치던 '미국의 귀환(America is back)'이 아니라 '탈레반이 돌아온 세상'을 목도했다. 탈레반의 귀환은 미국인들의 오래된 '악몽'을 일깨웠다.

1975년 4월 30일 미국인들은 그때까지 미국이 참전한 최장기 전쟁이었던 베트남 전쟁(1960~1975)의 마지막을 사이공 함락이라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목도했다. 그 이후 수십 년 동안 미국과 미국인들은 '베트남 신드롬'에 시달려야 했다. 미국이 해외에서 더는 군사력을 행사하길 원치 않는 미국 유권자의 성향을 반영한 이 신드롬은 이제 '아프간 신드롬'으로 변이되어 나타날 가능성이 커 보인다.

U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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