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직설] 정치는 왜 '혐오산업'으로 전락했나

오피니언 / UPI뉴스 / 2021-09-08 14:12:31
"대선 후보 공약에서 여야 간 확연히 입장이 갈리는 주제가 있다. 정책의 차이라면 당연한 일이지만 이 주제는 한쪽은 강조하고 다른 쪽은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미래 재정불안정으로 논란이 큰 국민연금 이야기다…전자는 국민의힘 후보들이다…후자는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이다. 박용진 의원만 국민연금 개혁의 필요성을 이야기할 뿐 다른 후보들에서는 의견을 찾을 수 없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오건호가 <경향신문> 8월19일자에 기고한 '여당 후보엔 왜 연금개혁이 없을까'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한 말이다. "역시 박용진이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유권자들은 벌써 잊어버렸는지 모르겠지만, 3년 전 '유치원3법'과 관련한 그의 활약은 눈부셨다. 당시 이런 일이 있었다.

유치원 비리를 추적해온 한 방송사가 국회 교육위원회 의원들에게 "교육청 감사 결과 비리가 드러난 사립유치원 명단을 달라"고 요청했다. 의원들은 "내가 총대를 멜 순 없다. 큰일난다"며 거절했다. 유일하게 응한 의원이 바로 박용진이었다. 박용진이 시민단체와 토론회를 열자 동료 의원들은 전화를 걸어 "존경하는 박 의원, 걱정돼 전화했다. 나 박 의원 좋아하는데 괜히 유치원과 척지면 어쩌나 해서다. 잘 협의해서 토론회를 하라"고 걱정하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박용진의 모습이 반갑다. 그런데 민주당의 다른 후보들은 왜 국민연금에 대해 말이 없는 걸까? 박용진이 지난 4월에 출간한 <박용진의 정치혁명: 대한민국을 바꾸려는 도전과 용기>라는 책에 그 이유가 잘 설명돼 있다. 그는 "국민연금 개혁 이슈는 정치인들에게 비겁할 것을 요구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구조상 국민연금 개혁의 방향은 지금의 2200만 연금 가입자들의 이해가 걸린 일이고, 500만이 넘는 수급자들에게 손해를 각오하시라고 이야기해야 하는 고약한 내용이 될 수밖에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국민연금 고갈은 불 보듯 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어느 대통령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고 하지 않았다. 인기 없는 일, 다음 선거에 악영향을 끼칠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문재인 정권 역시 그런 비겁한 면을 보여왔다. 그래서 박용진의 존재가 돋보이긴 하지만, 유권자들이 그런 용기를 평가하는 데에 인색한 경향이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박용진의 정치혁명>을 읽으면서 새삼 "왜 우리는 민관 합동으로 정치를 '혐오산업'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가"라는 의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정치가 혐오산업으로 전락하면 국가와 국민의 장래를 염려하는 정치인의 용기가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마저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국회와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바닥 수준이라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를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박용진은 언론과 정치권의 공생관계로 인해 빚어지는 비극을 지적한다. 수많은 언론사가 인터넷을 통한 속보 경쟁과 조회수 경쟁에 조직의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에서 '싸움'이 가장 잘 팔리는 상품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언론은 싸움에 집중하는 동시에 이왕이면 더욱 치열한 싸움을 만들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을 선호한다. 정치인들은 언론의 이런 속성을 귀신 같이 꿰뚫어보고 있다. 박용진은 "정치인들은 자신의 말이 어떻게 전달되고 어떤 반응을 가져올지 이미 예측하고 움직인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극적인 뉴스를 찾는 언론에 자극적인 소재를 제공하는 정치인이 상호의존적으로 정치혐오를 양산하는 모양새이다. 그러다 보니 각 정당의 지도부 회의는 국민들의 정치혐오와 짜증을 증폭시키는 역할만 할 뿐이다. 당장 시급한 과제를 해결할 대안을 제시하거나 미래를 준비할 계획을 이야기하지 않고 오늘 하루 뉴스거리로 소비될 혐오와 조롱, 자극의 잔치만 벌어진다. 장기투자를 통해 사업을 키우고 부를 늘려가려는 것이 아니라 단타매매에만 집중하다 본전까지 까먹는 손해 막심의 정치구조가 굳어져 버렸다."

우리는 머리로는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거니와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손가락으로는 자극을 찾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욕하면서도 즐겨본다. 정치는 말로 싸우는 격투기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이런 판에서 국가와 국민의 장래를 염려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기 마련이다. 그저 누가 더 화끈한 격투기 실력을 보여주는가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이다. 수백만에 이르는 격투기 팬덤을 겨냥한 유튜브 산업은 그런 경향을 강화시킨다.

박용진은 "정치의 본질은 타협"이라고 외치지만, 격투기에서 타협은 있을 수 없다는 게 많은 유권자들의 생각이다. 싸움이 좀 시들해지면, 어느쪽에서, 누가 더 큰 스캔들을 터트릴까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정치가 욕하면서도 즐겨 찾는 혐오산업이 된 것은 이렇듯 언론과 정치권의 공생관계에 구경꾼으로 참전한 유권자도 일조하는 '3각동맹' 덕분임을 어찌 부정할 수 있으랴. 그러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소수나마 박용진과 같은 정치인들의 도전과 용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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