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두려움의 백신은 자신만의 즐거움을 연주하는 것"

문화 / 조용호 / 2021-10-15 14:27:10
파리 사는 에세이스트 이화열 '지지 않는 하루'
암투병 과정에서 길어올린 죽음에 관한 단상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일이 중요
"감시 사회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 자유 절실"

파리에 사는 에세이스트 이화열 씨를 만났다. 비즈니스 때문에 서울에 들어왔다가 가족이 기다리는 프랑스로 출국하기 하루 전, 그동안 그녀의 일터였던 서울 합정동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이화열은 파리지앵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자녀들과 함께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단아한 문장으로 쌓아가며 독자들과 더불어 사유하는 글쓰기를 해왔다. '배를 놓치고 기차에서 내리다'(현대문학)로 독자들에게 일찍이 각광받았던 그가 올 초에는 8년 만에 '지지 않는 하루'(앤의서재)를 펴냈다. 암 판정을 받고 수술 후 항암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기록한 단상들이 삶과 죽음을 새롭게 연주한다.

▲암투병 과정의 단상을 에세이집으로 묶어낸 이화열. 두려움에 지지 않고, 생기 넘치는 하루도 지지 않기를 바라는 두 겹의 마음으로 '지지 않는 하루'를 펴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그녀가 직장암 3기 판정을 받고 항암치료를 끝낸 시점은 1년 전. 평소에 메모하는 습관을 지녔는데 이 과정 또한 고스란히 문장으로 기록됐다. 어린시절부터 유난히 죽음에 대한 사유를 많이 했다는 그녀이고 보면, 직접 죽음의 가능성을 직면하면서 나온 문장들인 만큼 더 각별하다. 그녀는 서문에 두려움에 대항하는 백신을 나름대로 처방해놓았다. '각자 즐거움을 연주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인간은 이 부조리한 삶의 희생자일 뿐이다. 유한한 삶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고통에 대한 두려움,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이 모든 두려움이라는 병의 백신은 자신만의 즐거움을 연주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보르헤스 시의 한 구절처럼 세월의 횡포를 음악과 속삭임, 그리고 상징으로 바꾸기 위해서….'

 

"자신의 즐거움을 안다는 게 사실은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맛을 통해 느끼는 기쁨도 자기 것이 아닌 사람들이 있잖아요? 진짜 중요한 것은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것, 자기 자신을 아는 거예요. 서양에서도 정신분석은 결국 자기 자신을 파악하기 위한 그런 과정이잖아요.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 자신의 즐거움을 아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암에 걸려서 1년밖에 못 산다면 어찌할까, 이런 질문을 통해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나의 근본적인 욕망 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중심을 잡고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으면서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 그 안에서 자신의 즐거움을 찾아내고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현재를 살아내는 일은 당위의 항목이지만, 이를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홀로서기를 시도해도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울 터이다. 이화열은 "모든 욕망에서 완전히 해방돼서 살기는 힘들고 어느 정도 그러한 욕구를 동지로 삼으면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반드시 인정욕구가 아니라도 다른 데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소비하는 즐거움보다 키워주는 즐거움, 경작하는 즐거움"을 예로 들었다. 암 선고를 받은 상태에서 현재의 즐거움을 탐색하려면 무엇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맞서는 자세가 전제돼야 한다.

 

'두려움은 대부분 두려움에 대한 상상에서 온다. 죽음의 가능성을 마주하는 경험은 수영장 바닥으로 내려가는 체험과 비슷하다. 그건 존재의 무기력함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경험일 수 있다. 물의 깊이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바다나 호수에서 수영을 할 수 있다. 죽음의 두려움을 직면하고 바닥에서 올라올 수 있다면 자유로운 삶을 사는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암이라는 병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동기로서 죽음의 새로운 면을 보게 만든다.'

▲이화열은 암이라는 단어가 처음에는 생소하게 들렸고, 폭력조직에 끌려가는 느낌이었다고 술회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이화열은 처음 암 판정을 받았을 때, 암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생소하게 들렸다고 했다. 낙천적이면서 강인하게 살아가는 그녀와 암은 누가 보아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고 했다. 갑자기 폭력조직에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이후 찾아온 감정은 담담함이었다. 그녀는 "운명을 정면으로 대면하는 느낌이었다"면서 "그 대면에서 기가 죽고 싶지 않은 느낌이 좀 많이 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물의 깊이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수영을 할 수 있듯이, 죽음의 두려움을 직면하고 바닥에서 올라올 수 있다면 자유로운 삶의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성찰이 이런 태도에서 나왔다.

 

철학자 알랭이 말하는 행복의 의미는 "웰빙을 위한 행복도, 환상과 거짓으로 자신을 속이는 행복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면서 "진실을 대면하는 영리함과 용기에서 나오는 행복"이라고 썼다. 이화열이 인용한 알랭은 말한다. '행복은 추구하는 게 아니다. 그건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다. 우리 안에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면 행복은 그저 하나의 단어일 뿐이다. 추론이 아니다. 인생은 그냥 인생 자체로 좋은 것이다.' 그러한가. 행복은 이미 자신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 밖에 있는 그것은 그저 하나의 단어일 뿐인가. 자신 안의 즐거움을 열심히 발견하고, 그 안에 있는 행복을 다시 꺼내는 일을 그녀는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행복하다는 건 여행, 성공, 부, 기쁨 때문이 아니다. 그냥 행복하므로 행복하다. 인생의 풍미가 행복이다. 딸기에서 딸기 맛이 나듯 인생에서 나는 맛이 행복이다. 햇빛은 아름답고, 비는 달콤하고, 세상의 소음은 음악이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고, 이것이 일련의 기쁨이다. 슬픔, 고통, 심지어 피로도 인생의 맛이다. 존재한다는 건 그냥 좋은 것이다. 다른 무엇과 비교해서 좋은 것이 아니다. 존재는 허무가 아니라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세상의 모든 생명은 태어나지도 지속하지도 않았으리라. 눈을 즐겁게 하는 색깔을 생각하라. 느끼는 것은 기쁨이다. 우린 삶에 갇힌 죄수가 아니라, 삶을 맛보며 사는 것이다. 보고 만지고 판단하고 세상을 펼치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아침 보행자 같다. 지평선에 쌓인 모든 것들이 갖는 의미는 바로 내가 원하기 때문이다. 본다는 것은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살고 싶어 하는 것이다. 모든 삶은 기쁨의 노래다. 사람들은 베토벤이 고통을 극복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살아 있는 다른 존재들도 그 나름의 승리를 쟁취한다. 거지나 개도, 의심할 여지없이.'

 

▲항암투병 중 노르망디 해변에서 휴식 중인 이화열. [이화열 제공]


그녀가 책에 인용한 알랭의 '노르망디인의 어록'이다. 새겨둘 만한 벅찬 어록이다. 항암 치료를 하는 일년 동안 그녀는 여행을 많이 다녔다. 그중에서 노르망디에서 선상낚시를 하며 고등어를 잡아 올리던 기쁨을 유난히 기억한다. 그때 선장은 한여름 섭씨 40도를 웃도는 파리로 왜 다시 돌아가려고 하느냐고 물었다고 했다. 파리에 가면 고통스러운 항암 주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의 생각은 이런 문장으로 남았다. '결국 우린 같은 목적지로 향한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지 모르는 불확실성 사이에 있다. 수천 년 전 에피쿠로스 철학자는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했다.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것이 없어지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화열은 대학에서 의상디자인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하다가 정치광고회사에 들어가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DJ의 광고 카피를 쓰고 디자인을 했다. 이후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프랑스로 건너가 '타이포그래피 국립아틀리에'에서 수학하던 중 파리지앵을 만나 파리에 정착했다. 허니문베이비로 딸 '단비'를 얻었고, 서른여덟 살에 낳은 아들 '현비'는 그녀의 인생에 엄청나게 달콤한 포상휴가를 안겨주었다. 딸은 엘리트들이 모이는 그랑제꼴 총학생회장을 거쳐 엔지니어로 일하는 중이고, 갓 스무 살인 아들은 월반을 거듭해 대학원에서 해양생물을 전공하고 있다.

 

이화열은 "조심하는 것보다 잘사는 것이 우선이었다"면서 "살아 있는 동안 내 습관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프랑스에서는 한 집 걸러 코로나19에 감염되는 상황이었는데, 그 리스크 때문에 사람을 안 만나는 건 그녀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결국 코로나19 양성반응이 나와 병원신세를 져야 했지만, 지나친 조심스러움이 주는 기본적인 불편함을 그녀는 참지 못한다고 했다. 프랑스 재경부에서 보안 관련 일을 하는 남편 '올비'는 정반대의 성격이라며 웃는다. 파리 생활 27년차인 그녀가 느끼는 이즈음 한국과 프랑스 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무엇일까. 


"자유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퇴색한 걸 정작 한국 사람들은 인지하지 못하고 사는 것 같아요. 5공화국 시절에는 자유를 억압하는 눈에 보이는 권력과의 투쟁이었다면, 지금 한국사회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권력에 지배당하며 살고 있어요. 도처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뿐 아니라 SNS에서 서로 감시하며 댓글을 통해 통제하는 양상이지요. 글로벌한 추세이기도 하지만 한국사회는 그 정도가 훨씬 심한 것 같습니다. 타인에 휘둘리지 않는 삶이 절실합니다."

▲이화열은 "죽음의 두려움을 직면하고 바닥에서 올라올 수 있다면 자유로운 삶을 사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배를 놓치고 기차에서 내리다'를 두고 문학평론가 이재룡은 "두 나라 말이 뒤섞인 방언이 개성적이고, 자발적 유배를 택한 소수자만이 지니는 감수성이 미묘하다"고 평한 바 있다. 그녀는 '유배'라는 단어가 주는 쓸쓸함이나 그리움의 감정과는 거리가 먼 성격이라고 했다. 파리의 유명 파티시에 브랜드를 한국에 론칭시키기 위해 5개월 가까이 서울에 머문 그녀는 "누군가를 그리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가서 보면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놀라운 낙천성과 강건함이다. 더 하고 싶은 말을 청하자 이화열은 보르헤스의 시를 대신 암송했다.

 

"세월의 횡포를 음악과 속삭임 그리고 상징으로 바꿔라. 누군가 석양에서 찾아낸 꿈 그 서글픈 황금이 시일지니, 가난하고 불멸하는 시일지니, 시는 여명과 석양처럼 다시 온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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