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광막한 우주에서 고독에 대처하는 법

문화 / 조용호 / 2021-10-29 17:27:37
SF작가 김초엽 두 번째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
시각, 후각, 인지구조, 시간 등 다양한 감각 실험
불멸과 죽음, 집단과 행성, 복제와 이별에 깃든 연민
"사랑하면서도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관계 성찰"
"네 맞아요. 이해와 사랑의 불일치는 제가 자주 생각하는 주제입니다. 사랑하는 존재를 이해하고 싶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에 실패하는 상황을 자주 보아왔고요. 사랑하면서도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 우리의 관계이지만, 그럼에도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지는 않다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네요."

▲두 번째 소설집을 펴낸 김초엽. 그는 "이 소설들을 쓰면서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다양한 감각을 상상하는 일이 무척 즐거웠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SF소설로 이른바 '순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호평을 받아온 작가 김초엽이 두 번째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한겨레출판)를 펴냈다.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25만부 넘게 팔렸고, 이번 소설집은 출간 일주일 만에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 '로라'에서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신에게도 있지 않나"라고 묻는 말은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의미'인 것이냐고 묻자, 그는 이해와 사랑은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니고 또 꼭 일치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이 메시지는 그가 구현해놓은 소설 속 상황에서 보다 큰 설득력을 얻는다.


'진'은 "사랑과 이해는 같지 않다"는 '로라'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긴 취재를 시작한다. 머릿속에 '잘못된 지도'가 입력된 사람들의 다양한 적응 양상에 대한 취재다. 인간은 고유의 신체 지도를 지니고 있는데, 팔과 다리를 의식하지 않을 때도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에게 몸의 위치와 움직임을 감지하는 고유수용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어긋난 고유수용 감각, 다시 말해 '잘못된 지도'를 가진다. 로라는 어릴 때 큰 교통사고를 당한 후 존재하지 않는 세 번째 팔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사고로 절단된 사지에 환상통을 겪는 일은 흔하지만, 로라의 경우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과잉 사지에 통증을 느끼는 것이어서 어떤 재활치료도 소용없었다. 

로라는 급기야 세 번째 팔을 만들어 붙인다. 이음새에 화농이 생기고 고통을 겪어도 로라는 이 기계 팔을 고집했고, 연인인 '진'을 포옹할 때도 차가운 그 팔을 동원했다. 인간이 지닌 신체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트랜스휴먼 연합'까지 등장하는 소설 속 세상이지만, 진이 보기에 로라의 세 번째 팔은 증강도 향상도 아니었다. 그것은 몸에 대한 훼손이었고, 차라리 결함을 갖기로 선택하는 것이었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진에게 로라는 말한다.

"와, 지금도 그 팔이 너를 만지고 있는 것 같아. 우리가 포옹할 때 나는 세 번째 손을 이용해서 네 뺨을 쓰다듬어. 그런데 그게 사실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 때마다, 내가 어떤 틈새에 낀 존재 같다고 느껴. …네가 떠나면 난 아주 슬플 거야. 너를 사랑하는 일은 나를 기쁘게 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되는 일을 포기할 수는 없어. 나 자신이 되는 일은 인생 전체를 거는 모험이야. 네가 날 지지해 주면 좋겠어."


세계를 돌아다니며 '잘못된 지도'를 지닌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온 진은 말한다.

"로라는 제가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세 번째 팔을 늘 포옹에 동참시켰고요. 이번에도 그랬죠. 눈이 마주쳤을 때, 로라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씩 웃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여전히 로라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동시에 제가 앞으로도, 어쩌면 영원히 로라를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것도요. 하지만 그걸 깨닫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신에게도 있지 않나요."

죽지 않는 불멸인들이 살았던 먼 행성계의 우주 거주구 3420ED. 이곳에서는 월등한 생명공학 기술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건강한 복제를 생산하고 몸을 교체하면서 기억과 자의식을 단절 없이 전송하는 기술로 불멸했다. 이 거주구의 불멸도 감염병이 덮치면서 끝이 났고, 최소 천 년 전 폐허로 변했다. 멸망한 공간을 수습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로몬'이 이 거주구 탐사에 투입된다. 두려움이라곤 태생적으로 입력되지 않은 존재가 로몬인데, 이 거주구 탐사 미션을 받은 로몬은 잘못 복제된 심약한 캐릭터다. 이 로몬이 한때 불멸인들이 살았던 곳에 가서 발견한 것은 그들이 버리고 떠난, 그곳을 겨우 유지해가고 있는 기계들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시스템 오퍼레이터 '셀'은 탐사 로몬을 천 년 동안 기다린 존재 '라이오니'로 여긴다. 셀은 광학장치가 고장나서 대상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결함을 지니고 있다.

불멸인들을 대신해 죽어야 하는 복제들은 두려움이 태생적으로 입력되지 않은 존재들이다. 라이오니는 15살 무렵에 잘못 복제된, 두려움을 안고 있는 소녀라는 사실이 발견돼 폐기될 처지에서 구제된 캐릭터. 이 라이오니가 불멸인들이 모두 행성을 떠날 때까지 마지막으로 남아 기계들을 돌보다가,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하고 떠난 존재다. 그를 기다리며 마지막 소멸 직전에 이른 기계, 그것도 눈이 보이지 않는 '셀'이 잘못 복제된 심약한 로몬과 만나 연대를 확인하는 '최후의 라이오니'는 페이소스를 자극한다.

▲김초엽의 SF에서 복제를 통해 불멸을 구가하던 행성의 사람들은 감염병으로 끝내 '죽음'을 맞는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김초엽의 SF 단편들에는 먼 우주의 고독한 행성 같은 존재들에 대한 연민이 공통으로 깃들어 있다. '숨그림자'의 '조안'은 부서진 우주선과 함께 얼음 밑에서 발견된 원형인류. 한때 지구에 살았고 멸망으로부터 도피해 우주로 흩어졌다는 원형인류인데, 조안은 냉동 상태에서 어렵사리 부활시킨 존재다. 원형인류의 후손인 숨그림자의 사람 '단희'와 조안이 소통하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 발성기관이 퇴화된 '숨그림자' 사람들은 호흡으로 의미를 읽는다. 공기 중에 단 여덟 개의 입자만 섞여 있어도 그것을 인식할 수 있다. 원형인류인 조안은 기체 분자들에서 기억, 감정, 느낌을 연결하고 통합해서 추상적으로 느낀다. 의미로 환원할 수 없는 총체적인 감각인 것인데, 이를테면 단희가 입자에서 읽는 '사랑'은 조안에게 '석유냄새' 같다. 

감각적인 상상력을 밀도 있게 펼치는 '숨그림자'에서도 먼 우주의 이별은 어김없다. 조안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탐험대와 함께 떠나간다.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안나도 마지막 편도 우주선을 타고 머나먼 행성으로 간 남편과 아들을 그리워하며 우주정거장을 떠나지 못한다. '아득한 시간을 순간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우주여행자들의 습관'이라는 김초엽은 "우리가 속해 있는 시간 감각에서 잠시 벗어나 영원한 시간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묘사하고 싶어서, 다른 시간 감각을 가진 존재들의 이야기를 자주 쓴다"고 말한다. 한 번 떠나면 다시 볼 수 없는 우주의 이별과 현실적인 '죽음'은 어떻게 같고 다를까.

"남겨진 사람의 받아들이는 마음에 차이가 있지 않을까요. 영영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극도로 희박한 가능성을 지니지만 그럼에도 우주 어딘가에 상대가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를 것 같아요. 오히려 후자가 더 절망적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안나와 단희는 상대가 우주 어딘가에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듯하네요."

'오래된 협약'은 기후 위기에 처한 지구의 현실과 윤리에 대해 돌아보게 만드는 단편이다. 지구의 탐사선이 '벨라타'라는 행성을 방문한다. 벨라타는 무척 정적이고 고요한 행성으로, 모든 것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고정된 것처럼 보이는 곳이다. 이곳 사람들은 불과 25년 남짓 살다가 생애 마지막 다섯 해 동안은 '몰입'이라고 부르는 상태에 들어가, 기억상실과 언어능력의 급격한 감쇠 속에서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고 폭력적인 상태로 돌변해 죽어간다. 신경독성물질이 대기 중에 분포해 신경계로 침입해 뇌를 파괴하는 것인데 수명이 짧은 것도, 몰입을 경험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지구인이 보기에 벨라타인들이 금기로 여기며 가까이 가지 않는 '오브'라는 물질을 섭취하면 독성물질을 분해할 수 있는데, 이들은 이 해법을 거부하는 안타까운 존재들이다.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지하에 남은 최후 인간들과 애초부터 행성의 주인이었던 오브들의 약속은 작금 지구인들에게 맹성을 촉구한다.  

-미안해요. 우리가 끔찍한 짓을 했어요. 정말 미안해요. 당신들의 행성을 망쳐버렸어요.
-우리의 긴 삶에 비하면 너희의 삶은 아주 짧은 순간이지. 그러니까 우리가 행성의 시간을 나누어 줄게.

▲김초엽은 "우리는 광막한 우주를 영원토록 홀로 떠도는 존재이지만, 짧은 접촉의 순간들을 그려내는 일이 나에게는 그토록 중요한 일이었다"고 썼다. [한겨레출판 제공, ©정멜멜]

행성 단위의 '연민'까지 품는 김초엽 스타일의 SF는 이번 소설집의 경우 '다양한 감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두려움이 잘못 복제된 '최후의 라이오니'를 필두로 '로라'에서는 어긋난 뇌의 인지구조를, '숨그림자'에서는 퇴락한 발성기관을 상정한다. '마리의 춤'에서는 '시각 이상증'으로 눈에 보이는 정보를 통합해내지 못하는 '모그'들의 결핍을 다루고, '캐빈 방정식'에서는 시간 감각이 어긋난 언니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인지공간'에서는 오늘날 인터넷에 뇌를 맡겨버리는 세태를 떠올리게 만드는 '격자 구조'의 세상에서 벗어나려는 주체적인 안간힘을 들여다본다.

김초엽은 "한순간 서로의 표면을 멀찍이 볼 수 있을 만큼 근접했다가, 흩어져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진공 속으로 멀어지는, 우주공간의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은 외로운 떠돌이 행성을 상상한다"면서 "우리는 다르게 보고 듣고 인식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말로 각자 다른 인지적 세계를 살고 있다"고 후기에 밝혔다. 그는 "그 세계들은 결코 완전히 포개어질 수 없고 공유될 수도 없다"면서 "우리는 광막한 우주 속을 영원토록 홀로 떠돈다"고 썼다. 김초엽이 전해온 광막한 우주에서 고독에 대처하는 법.

"어릴 때부터,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우리가 왜 그럼에도 이해에 닿으려고 애쓰는가, 그 점이 참 궁금했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끝내 이해하지 못하고 망가진 관계들 속에서도 아주 찰나와 같은 이해의 순간들이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완벽한 이해를 바라는 대신, 그 교차점들이 우리를 덜 고독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해요. 특정한 사건이나 계기가 있던 건 아니지만 관계에 대한 저의 오랜 생각이 반영된 것 같습니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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