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기득권 동맹 카르텔이 너무나 완강하다"

문화 / 조용호 / 2021-11-12 10:36:31
열다섯 번째 시집 '나비가 돌아왔다' 펴낸 이시영
나비 한 마리가 돌아오는 것은 세계가 변하는 일
시인은 심연의 소리를 듣고 순간을 포착하는 사람
"국민 하나하나가 바로 서서 개벽의 주체가 돼야"

누님은 잘 계시는지 몰라/ 우리 둘 이복이지만 동복보다 더 가까웠던 60년/ 전주 덕진 수목장 햇볕 잘 드는 언덕에 90평생 외로웠던 뺨 대고 누우셨으니/ 오늘 밤 별빛도 그 뺨에 사뿐 내리리('누님을 생각함')

이시영(72) 시인이 최근 펴낸 열다섯 번째 시집 '나비가 돌아왔다'(문학과지성사)는 다시 누님을 생각하며 문을 연다. 그는 '용산 역전 늦은 밤거리/ 내 팔을 끌다 화들짝 손을 놓고 사라진 여인'을 두고 '운동회 때마다 동네 대항 릴레이에서 늘 일등을 하여 밥솥을 타던/ 정님이 누나가 아닐는지' 모른다고 일찍이 첫 시집('만월'·1976)에서 '정님이' 누나를 떠올렸다. 그때 시인은 이십대 후반이었고, 다시 누님을 생각하면서 시집을 여는 지금은 칠순을 넘어섰다. 그동안 반백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고, 평생 외로웠던 한 누님은 수목장 언덕에 누워 별빛을 받는 중이다.

▲새 시집을 펴낸 이시영 시인. 그는 "나비 한 마리가 찾아오는 것에서 세계의 변화를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세월은 어김없이 모든 것을 퇴락하게 하고 소멸을 향해 나아가게 하지만, 시인의 성찰과 감성은 세월만큼 깊어지고 벼려지기도 한다. 이시영의 이번 시집은 그가 그동안 보여줬던 '짧은 시'와 '이야기 시' 유형을 토대로 이즈음 그의 심안(心眼)에 포착된 풍경과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담아냈다. 한 행이 그대로 시 한 편으로 완성되는 '삼월'은 짧은 시의 전형이다.

저 삼월의 따스한 하늘가에 문득 고개를 묻고 돌아보는 딱새 한 마리('삼월')

이번 시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시편으로 꼽은 이 짧은 시에 대해 그는 "사유에 이르기 전 내 나름의 독특한 활력 같은 것을 느끼는데, 삼월 하늘가에 고개를 묻고 있는 딱새 한 마리를 언어로 채색해 보여줌으로써 그것이 독자들에게도 느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며 "이전에는 묘사 위주였다면 이번에는 묘사라기보다 그냥 느낌으로 솟아오른 것들"이라고 말했다. 먼저 쓰려고 했던 게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터져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같은 맥락에서 "배롱나무 배롱꽃이 새하얗게 지는 날/ 흐릿했던 길고양이의 두 눈이 화등잔처럼 반짝 켜지는 것을" '바람 속에서' 지켜보기도 하고, "참새 한 마리가 내려앉자 가지가 휘청하면서 파르르 떨더니/ 이내 지구의 중심을 바로 잡는"('수평') 풍경을 성찰하기도 한다. '추운 날'에는 "날은 저물어 오는데 길고양이 두 마리가 아파트 외진 구석에 앉아 서로의 등을 열심히 핥아주"는 풍경을 본다. '처서(處署) 전'에는 "가을비가 세차게 내리꽂히는 아침, 제비들이 처마 끝에 두 발을 얌전히 오그리고 앉아 하늘을 올려다본다"고 쓰고, 눈 내린 파미르고원을 보면서는 "높고 드넓은 파미르고원에 올해의 첫 눈이 내려/ 오래전 죽은 양들의 목뼈를 가만히 덮는다"고 '서설'을 썼다. 

인태 형과 진식이 형 그리고 몇이 있었던가. 하굣길의 아래 냇가 지나 방아다리쯤이었을 것이다. 누가 갑자기 숭렬이 형에게 의붓자식이라는 말을 했다. 그날 오후 햇빛은 밝았고 토끼풀 향기는 강렬했다. 상대를 코피 나게 쓰러뜨린 숭렬이 형이 이번엔 언덕 아래로 대굴대굴 구르며 통곡하기 시작했다. 진식이 형이 달래고 얻어맞은 친구가 다가가 잘못했다고 빌어도 울음은 다저녁때가 되도록 그치지 않았다. (…) 1950년대 지리산 밑 마을에는 의부를 둔 눈 소년들이 많았다.('중학 시대')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 지리산 인근에서 자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성장한 이시영 시인의 뼛속에는 이곳 대지와 산의 정서가 박혀 있다. 이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상경한 그는고향 마을에 의부를 둔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한다. 지리산에 입산해 돌아오지 못한 남자들이 많았으니, 아이가 딸린 여자들이 개가를 하는 경우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밖에 없었는데 당시만 해도 개가를 한다는 건 완전히 죄인 취급을 받는 풍조여서 숨어서 걸어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외아들을 지리산에서 잃은 뒤 며느리를 동네 부자인 금산 양반의 후살이로 보낸 슬픈 노인"('유문교')도 있었다. 

이시영은 "완전한 전근대적 농촌사회에서 고등학교 때까지 살다가 올라와 도시인도 아닌 경계인으로 살아왔다"면서 "나는 조선의 마지막 자식이기도 하고, 근대의 아들이 되기에는 아직 미숙해서 속에 감춰두고 쌓인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떤 것이 이야기 시가 되고, 또 어떤 풍경은 짧은 시로 터져 나올까. 그는 "따로 구분하기보다는 사유에 이르기 전 미묘한 분위기 속에서 활력이 느껴져서 나오는 게 짧은 시라면, 이야기 시는 내 속에 쌓인 서사들이 자연스럽게 터져나오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지금도 쌓여있는 서사들이 '엄청나게' 많다고 했다. 이번 시집에는 옛 농촌에서 쌓아둔 이야기 말고도 그가 문단에서 만났던 박목월 이문구 김구용 같은 문인들도 여럿 나온다. 그는 "이문구 형 이야기만 가지고도 100편은 더 쓸 수 있다"면서 "좋은 선배들 만나서 좋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강변에 나비가 돌아왔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저것은 세계가 변하는 일이다('나비가 돌아왔다')

이번 시집의 표제가 된 '나비가 돌아왔다'의 배경에 대해 묻자 그는 "우리는 지구 환경에 너무 무관심했다"면서 "뉴델리에서 공장을 일주일 정도 쉬니까 히말라야 봉우리가 보이더라는 얘기처럼 나비 한 마리가 돌아오는 효과는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인류의 삶이 지속 가능할지에 대해선 부정적이라고 했다. 나비가 돌아오는 것은 세계가 변하는 일인데, 사람들이 이런 것에 대한 자각이 별로 없어서 안타깝다고 했다. 

▲이시영은 "완전무장한 한 환경미화원 노동자가 청소차 꽁무니에 매달려 겨울 속을 씽씽" 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에 장엄한 것이 있다면 바로 저것"이라고 '새벽 4시'에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이시영은 1980년 '창작과비평사'에 입사해 엄혹한 시절 잡지의 폐간을 겪었고, 김지하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를 펴낸 뒤 끌려가 고초를 당했으며, 80년대 말에는 황석영의 방북기를 계간지에 실었다가 급기야 구속까지 되었다. 한국사회의 험난한 과정을 통과해온 그가 바라보는 이즈음 지형은 어떠할까.

"근본적인 건 변하지 않은 것 같다. 기득권 세력이 너무 어마무시하다. 우리가 그것을 깰 수 있을 것이라고 솔직하게 현 정권에 기대를 했던 건 아니지만, 그들마저 또 다른 기득권이 돼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민중권력을 창출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풀뿌리 운동부터 새로 시작하지 않으면 한국사회는 어려울 것 같다. 도올이 최근 벌이는 '농산어촌운동'처럼 쇠락한 농촌 공동체 하나 살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발본적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선거니 이런 걸로 한국 사회가 쉽게 변하리라고 생각했던 건 큰 오산이었던 것 같다. 기득권 동맹의 카르텔은 완강하다. 그 기득권을 대변하는 작금의 언론으로는 깨부술 수 없다. 기득권이 된 민주노총이 아니라 노동자 하나하나가, 국민 하나하나가 진짜 개벽의 주체로서 독립해 변하지 않으면 힘들다." 

2003년 '창비' 주간 겸 부사장 직함을 마지막으로 퇴직할 때까지 출판사를 찾는 문인들 술 상대는 주로 그의 몫이었다. 술이 그리 만들었을지는 모르되, 그는 연전에 식도에서 악성세포가 발견돼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지금은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고 있다. 이번 시집은 이런 과정에서 씌어진 시들이 포진하고 있어서 더 각별하다.

수덕사의 높은 산방에서 이 절의 방장 설정 스님은 이국에서 온 작가들에게 "제 스승은 101세에 열반에 드셨는데 그날 아침에도 '지금이 몇 시냐'고 물으셔서 '8시입니다' 했더니 '알았다'고 말씀하시고는 잠깐 뜰 아래를 내려다보시고는 바로 돌아가셨다"며, 대체 죽음이란 이처럼 문을 열고 나가듯이 조용히 맞이하는 것이라며 그의 곁에 다가선 푸른 눈들을 향해 조용히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문을 열다')

▲지리산 아래에서 성장해 상경한 이시영은 "도시인이 아닌 경계인으로 살아왔다"면서 "근대의 아들이 되기에는 아직 미숙해서 속에 쌓인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이시영은 "예전에는 죽음이라는 게 먼 남의 일인 것 같았는데 이젠 아주 가까이 있는 친숙한 친구 같기도 하다"면서 "문을 열고 나가듯 조용히 죽음을 맞을 수 있다면 도인이겠지만, 누구나 한 번 겪는 일이라면 당당하게 맞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그가 바라는 궁극의 시는 어떤 경지일까. 

"궁극적으로는 꾸미지 않는, 자연 상태인 시를 쓰고 싶다. 자연의 어떤 상태를 문득 발견해 내 언어로 채색해서 순간에 찰칵 포착하듯 빛났으면 좋겠다. 매일 한강변을 산책하는데 요즘 철새들이 돌아오는 철이다. 선발대가 한강에 착 내렸을 때 느낌, 차갑다거나, 따듯하다거나 그런 느낌들, 그런 것을 쓰고 싶다. 낙엽들이 막 떨어질 때는 무슨 생각을 할까. 순간에서 순간으로 이동하는 사물의 눈부심이라든가, 이런 것에도 마음을 의탁하고 싶다. 그런 순간을 발견하는 사람이 시인 아니겠는가. 시인은 순간 속에서 영원을 발견하는 사람이다."

좋은 시인이란 어쩌면 듣는 사람인지 모른다/ 그래야 깊은 산 삭풍에 가지 부러지는 소리도 들을 수 있고/ 놀라서 달음박질치는 다람쥐의 재재바른 발자국 소리도 조심조심 들을 수 있다/ 때론 벼락처럼 첨탑 높은 교회당을 때리는 야훼의 노한 음성도/ 어릴 적 볏짚 담 너머 키 작은 어머니의 다듬이 소리도 함께 들을 수 있다/ 좋은 시인이란 그러므로 귀가 쫑긋 솟은 사람인지 모른다/ 그래야 잉크병 얼어붙은 겨울밤 곱은 손 불며/ 이 모든 소리를 백지 위에 철필로 꾹꾹 눌러쓸 것이다('듣는 사람')

▲이시영은 "기득권 세력이 어마무시하다"면서 "발본적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선거니, 이런 걸로 한국 사회가 쉽게 변하리라고 생각했던 건 큰 오산이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이시영은 시인은 '듣는 사람'이라고도 썼다. 그는 "현대문명 구조 자체가 타자에 대한 존중이 너무 없는 것 같다"면서 "시인이라도 조용하게 만상의 소리를 듣고 내부의 심연으로부터 올라오는 소리를 적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는가"라고 말한다. 그는 "거창한 것을 내세우기보다도 생명 가득한 것들에 대해 눈을 뜨고 싶다"면서 "그동안 은폐됐거나 위축되어 내 속에 죽어 있던 것들을 부활시켜서 세상을 다시 한 번 살아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가 어느 비 내리는 새벽에 발견한 소리의 빛깔은 희고 푸르다.  

새벽에 다녀간 비는 가난한 시인의 담장을 지나가느라 두두두둑 소릴 낸다// 새벽에 다녀간 비는 어두운 어두운 곳만을 딛고 다니느라 간혹 발목이 희다// 새벽에 다녀간 비는 산동네 길고양이 등을 쓰다듬고 오느라 간혹 눈이 매처럼 푸르다('새벽에 다녀간 비는')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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